오늘은 "폼페이"(Pompei)와 "나폴리"(Napoli)를 가는 날이다.
아침 6시30분에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5시에 일어났다.
창문부터 열어보니 밝아오는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오늘은 맑은 날씨를 보여주려나,,,?
부지런히 식당으로 가니 벌써 몇분이 내려와 식사를 하신다.
저기 써빙을 하시는 대머리 노인네,,,,
무척 쾌활한 목소리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모닝~"을 외친다.
식탁에 모자라는게 있으면 미리 알고 더 가져다 주기도 한다.
저 노인 덕분에 어제 저녁의 기분 나빳던 것이 눈녹듯 사라진다.
오늘저녁도 여기서 묶어야 하니 오늘 하루것만 가볍게 배낭에 넣고 어두운 시간에 버스에 오른다.
아침의 별이 총총하던 하늘은 어디로 가고 또 비가 온다.
그래도 "로마"에서 반대로 가는 길이라 초입만 막히고 갈수록 길이 한가해진다.
7시가 되어서야 고속도로에 진입을 한다.
반대로 진행을 하니 길이 한결 여유롭다
우리나라의 날씨와 달리 비가 오락가락해서 전혀 오늘의 날씨를 예측할 수가 없다.
길이 한산한 덕분에 30여분을 단축해 왔단다.
"폼페이"(Pompei) 遺跡地 입구로 올라가는 언덕에 안내판이 반갑다.
"폼페이"(Pompei) 遺跡地 입구.
이곳의 위치때문인지 안으로 들어와서야 賣票所가 있다.
賣票所 뒤로 보이는 두 개의 門이 우리가 들어갈 入口다.
"마리나 門"(Porta Marina)이라고 하는데 "폼베이"로 들어가는 門으로 "바다의 문"이라 해서 항구쪽의 門을 말한다.
왼쪽은 계단이 있는 步行者 通路이고,
오른쪽은 海産物을 바다쪽에서 運搬해 오는 수레나 가축의 出入口라고 한다.
보행자 통로는 막아놓았다.
매표소 옆의 안내도.
인터넷에서 얻은 안내도.
"마리나 문"(Porta Marina)
들어서면서부터 住居用 집이 보인다.
하지만 자세한 案內圖를 가지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대로를 따라 올라가는데 또 비가 온다.
이 길은 바닥이 덜 파손 되었다.
이곳은 住宅街라 무거운 수레는 다니지 않았다고한다.
길에 드문 드문 박힌 흰돌은 夜光石이라고 한다.
밤에도 이 夜光石 덕분에 길을 알수가 있단다.
길 중간 중간에는 세 개 정도 둥글고 큰 돌을 박아 놓았다.
이 돌은 두가지 작용을 한단다.
하나는 이곳은 비가 오면 빨리 背水가 안되어 길에 물이 찬단다.
사람들이 건너 갈 수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단다.
또 하나는 마차가 빨리 다니지 못하게 하는 속도 조절을 하는 장치란다.
아폴로 神殿(Tempio di Apollo)
公會場 한쪽에 있는 "아폴로 神殿"은 공회장과는 완전히 독립된 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아폴로 神殿(Tempio di Apollo) 에 있는 아폴로(Apollo)像
조금 더 가니 이곳에서 發掘해낸 土器들을 저장해 놓은 곳이 나온다.
1861년 "폼페이" 발굴하는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Giuseppe Fiorelli, 1823년 – 1896년)는
발굴을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
건물, 도로, 심지어 작은 그릇까지도 발굴 되는데 사람의 흔적은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폼페이 최후의 날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화산 폭팔을 미리 알고 모두 피난을 한것인가?
그런데 발굴현장에서 굳어진 화산재 속에서 가끔 이상한 형태의 빈 공간들을 발견되는 것이다.
"피오넬리"는 이 빈 공간에 석고를 채워 보았다.
그리고 석고가 굳은 다음 조심스레 화산재를 거두어 내었다.
순간 "피오넬리"는 석고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말을 못했다.
그것은 폼페이 최후의 날 죽어간 사람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 때 생긴 화산재가 희생자들을 완전히 덮어 화산재가 굳어져 버리고,
화산재 내부의 육체는 고열과 오랜 세월속에 없어져 빈 공간이 생긴 것이다.
이 빈 공간에 석고반죽을 채워 넣자 폼페이 사람들의 최후의 순간이 되살아 난 것이다.
개의 모습도 있다.
도망도 못가고 앉은 채로 마지막을 맞이한 이사람은 그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다.
도시 전체가 뭍혀버렸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저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산으로는 15,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7m 이상의 화산재에 파묻혀 사망했을것이라고 한다.
당시 이곳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로 고향인 폼페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주받은 도시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기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도 1/4정도가 발굴이 안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발굴된 곳도 오랜 세월과 열기에 변형되어 자꾸 무너진다고 한다.
오른쪽은 아직도 발굴을 하고 있는듯 하다.
첫댓글 가이드의 설명 듣기 바쁘고 , 사진 찍기 바뻤는데, 언제 이렇게 구석 구석을 자세히도 보고 기록핫였을꼬,,,,,
이몸은 10월 16일 다녀왔시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