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12:15-32, 바른 예배, 20.3.31, 박홍섭 목사
신명기 12장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려야 할 바른 예배가 무엇인지를 이방 제사와 대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중에 정하신 한 곳에서의 예배의 중요성을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예배하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아직 어떤 한 장소를 구체적인 예배의 장소로 지정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런 때에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12:13–14)는 명령은 무슨 의미일까요? 어떤 한 장소에 의미를 부여해서 신성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 제사와 비교한 바른 예배의 형태로 강조되고 있는 맥락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이들은 작은 산, 높은 산, 낮은 산, 푸른 나무 아래 등등 자기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자기들이 좋은 장소에서 자기들의 방식대로 제사합니다. 이런 곳에서 신에게 제사하면 조금 더 신의 능력과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자기의 방식이나 자기의 편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장소도, 내용도, 방식도 형태도 자기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예배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중심의 바른 예배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향한 고백과 감사와 즐거움이 동반됩니다. 5-7절입니다.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이고, 거제와 서원제와 낙헌 예물은 자신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로 고백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에 순종해서 예배할 때 이런 고백을 드리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주의 백성들에게 예배는 종교적인 의무 이전에 가장 큰 특권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 우리의 마음에 이런 고백과 감사와 기쁨이 있는지요?
한편, 바른 예배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로 말미암은 예배의 기쁨과 감사를 누리려면 레위인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바른 섬김이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레위인은 자기 기업이 없이 예배를 위해서 전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각 지파 속에 흩어져서 이 일을 하는 레위인들을 잘 돌보라고 명하십니다(12,18). 12:19절을 보십시오.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하나님은 땅을 분배하지 않고, 성막을 섬기고, 도피성을 섬기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하는 레위인들의 필요를 이스라엘 각 지파가 채우도록 하셨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레위인과 비슷한 면이 많죠. 교회가 목회자들의 생활을 돌보고 생활에 필요를 공급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종과 노비들에 대한 배려도 중요합니다(12,18). 비록 이들이 예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주의 백성들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입고 있다면 약자를 향한 배려를 가지게 됨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쌍히 보셔서 은혜로 우리를 대하시듯이 그리스도인과 주의 교회도 그런 시각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합니까?
뿐만 아니라 바른 예배는 고기 먹는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광야에서 고기는 제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면 제사와 상관없이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15-23절이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히신 후에 네 마음에 고기를 먹고자 하여 이르기를 내가 고기를 먹으리라 하면 네가 언제나 마음에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니”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고기가 제사할 때 드려진 고기가 아니라 하여도 하나님이 주신 고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먹고 싶은 고기를 먹으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삶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배당에서 예배만 드리지 않고 더 많은 시간을 일상에서 보냅니다. 그때 자신의 취미와 욕구에 따라 고기도 먹을 수 있고 다른 취미활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기를 먹을 때도, 취미활동을 할 때도, 일상을 이어갈 때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정신으로 해야 합니다. 그 정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살피면서 조심하는 것입니다. 12:16, 23-24절이죠. “다만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함께 먹지 못하리니 너는 그것을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으라”. 고기를 먹을 때 '피'를 먹지 말아야 했습니다. 피를 먹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셨음을 기억하며 생명에 대한 존중과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의 마음 때문입니다. 고기를 먹을 때만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일을 할 때 동일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삼가 살펴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예배로 드리는 바른 예배입니다.
동시에 성물과 서원물을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26-27절이죠. “오직 네 성물과 서원물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가지고 가라 네가 번제를 드릴 때에는 그 고기와 피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에 드릴 것이요 네 제물의 피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위에 붓고 그 고기는 먹을지니라”. 성도의 모든 삶이 예배라고 하면서 삶을 강조하면서도 ‘성물과 서원물’을 드리는 모습이 없다면 그가 말하는 삶의 예배는 바른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성물과 서원물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집에서 자신을 위하여 먹는 고기가 있고, 하나님께 온전히 다 드리는 번제가 있다면, 피를 태우고 일부는 제사장과 이웃과 함께 먹어야 하는 화목제물도 있어야 합니다. 바른 예배는 그렇게 예배의 형식을 갖춘 공적예배와 일상에서 그 예배의 정신을 몸으로 구현하는 삶의 예배가 함께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에 가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32절이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모든 말을 너희는 지켜 행하고 그것에 가감하지 말지니라”. 어떤 경우, 다른 데서 종교적 열정을 배워서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보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더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을 섬기기 위해 자녀를 바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도 자녀를 바치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자녀를 바치지 못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녀를 바치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리석은 우리입니다.
30-31절이죠.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섬겼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 자녀를 불살라 드리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헌신처럼 보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대단한 헌신이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 자식을 희생시키는 가증한 죄입니다. 거짓 종교와 헛된 예배는 그렇게 자극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형태 속에는 이런 모습이 없을까요? 말씀을 가감하면서까지 헛된 욕망을 자극하면서 사람들의 헌신을 강요하고 자극하는 요소말입니다. 믿음으로 한다고 말해도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우상숭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하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살펴서 가감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어도 말씀에서 벗어나 가감하는 순간 바른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동성애를 말하고 인권을 말하고 사랑을 말할 때 인권과 사랑을 말하면서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빼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죄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자리까지 가면 더하는 죄를 짓는 것이죠. 단적인 예로 동성애를 들었지만 정치와 경제와 모든 영역에서 성도는 그런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특별히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적예배는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가감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호와 욕구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바른 공적 예배를 드리고 동시에 바른 삶의 예배를 드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