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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을 가지라(2151.2022.8.21)
막2:1-12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틀린 말입니다. 나는 할 수 있습니다라고 외치고 있으면서 내 한계는 여기까지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스스로 제한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고 나는 그분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내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뒤돌아보면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잘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사람이 살다보면 종종 길이 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주변 주위를 둘러봐도 길이지 보이지 않을 때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포기해야 합니까? 그만 단념하고 그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까? 이럴 때마다 포기해버린다면, 아마도 우리는 영영 어떠한 길도 찾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허면 어찌해야 되는 것입니까? 단념하고 포기하는 것 대신 하나님 앞에 지혜를 구할 수 있길 바랍니다. 미처 보지 못했던 그 길들을 제발 좀 보여달라고 말입니다.
본문 속 친구들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본문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해주는 듯 합니까? 종종 사람들이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에 왔으면 응당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데, 어떤 사람은 종종 사람 때문에 실족하고, 사람 때문에 실망하며, 사람들한테 가로막혀서 예수님 한 번 제대로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사람 바라보지 말고,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연약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도 만나야겠지만 이보다도 먼저 하나님 만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교회에 나아오는 제일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떻습니까? 혹 우리도 모르는 사이게 누군가에게 장벽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장애물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가 될지언정 벽이 되지 않도록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것입니다. 고전10:32절‘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한 중풍병자가 네 명의 좋은 친구를 만남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영육이 고침 받는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가족이나 친구나 이웃이나 교인을 잘 못만나서 패가망신하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좋은 만남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분열과 갈등과 싸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는 누구도 건강하거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외롭고 상처 많은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축복의 만남으로 치료되고, 회복되고, 건강하고 행복한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내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문제을 해결해 주실 뿐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문제를 넘어서 죄의 문제까지도 해결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간절함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문제를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 아니라 영혼의 문제, 죄의 문제, 근본적인 내적인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다 용서하시고, 나를 정상으로 완전히 세우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나아가는 신앙생활하십시요. 간절함으로 나아가십시요. 그렇게 하여 매일매일 예수님 만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로, 기도로, 봉사로, 전도로, 십일조나 헌금으로, 순종으로 보여주시든지 하나님께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주시면 주님께서 보시고 ‘네 믿음대로 되라’라며 기적을 베풀어 한계를 넘어서게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은 여리고 성을 순종함으로 돌았습니다. 순종으로 믿음을 보여주자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혼인 잔치 하인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물을 채우라면 채웠고 떠다 갖다 주라 하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체험했고 그 기적의 도구로 쓰임 받은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밤새 수고해도 잡지 못한 고기를 두 배 가득하게 잡았습니다. 순종으로 믿음을 보이자 갑절의 축복을 경험했습니다.
혈루증 환자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믿음이 생겨 행동으로 옮기자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안에 있는 믿음은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주님께 보여만 준다면 우리 주님 보시고 진짜 기적을 나에게 내 삶 가운데 분명히 베풀어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어려운 일을 몇 번씩 당하게 됩니다. 이제 한계에 도달해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할때가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도에게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놀라운 무기를 선물로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저는 본문을 근거로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 믿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막9:23절‘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그러므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우리 성도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고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무기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극도의 절망 가운데 있던 한 사람이 모든 불가능의 한계를 극복하고 승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중풍병자였습니다. 중풍병이란 병이 어떤 병입니까?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이루어져 뇌기능이 정상적인 역할을 못하게 되어 몸을 자기 맘대로 움직일 수 없는 병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이 잘 안 되는 병입니다. 그런 병자가 자신과 친구들의 믿음으로 우리 예수님을 만나 깨끗이 치료 받고 일어나 침상을 들고 나가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계를 극복하는 믿음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날 모처럼 주님이 집에 계시는 그날 집 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병자들도 많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 들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1절‘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예수님이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들린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 소문이 들렸을까요? 그 소문은 가버나움 동네 전체 사람에게 들렸을 것이고 그 인근 동네 사람들에게도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문이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을 터이나 그 소문에 예민하게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이름 모를 한 중풍병자였습니다. 그에게는 그게 소문이 아니고 복음이었습니다. 똑같은 소리를 들어도 흘러 지나가면 소문이지만 내 귀에 들어와 박히면 그것은 복음이 됩니다. 그 중풍병자는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을 가졌고 그로 자기 뿐만 아니라 가족 식구들까지 힘들게 했고 그 친구들도 안타깝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각종의 병을 치료비도 받지 않고 기적적으로 고친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라는 분은 그 보다 더한 문등병도 고치시고 어떤 병이든지 나오기만 하면 다 고친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믿음은 우리의 한계를 뛰어 넘습니다.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라는 생각, 그분은 우리 인간의 한계 속에 갇혀 있는 분이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자이시기에 그분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연약하나 그분은 강하시고 나는 한계가 많으나 그분은 전능하시다는 의식의 변화가 있을 때 이것이 믿음입니다. 참 신앙은 우리의 옛 생각, 내 경험과 내 능력, 내지식의 울타리를 무너트려야 합니다. 내속의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다른 것은 다되어도 이것은 안돼’라는 고정관념, 이것을 버려야만 그때부터 믿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나를 넘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도 예수님께만 나아가면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 가고자 할지라도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능력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홀로 일어나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러나 중풍병자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믿음이 좋고 건강한 네 명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도 중풍병을 가지고 있는 자기 친구가 예수님께 나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 친구들이 ‘말도 안 된다. 괜히 쓸데없는 짓 하지 말자’하고 말했다면 그는 영원히 중풍병자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그는 좋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예수님께 나올 수 있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이런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 믿음이 좋으면 내 주변에도 믿음 좋은 친구가 붙는것이고, 내 믿음이 시원찮으면 내 주변에는 늘 시원찮은 믿음의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됩니다. 그래서 늘 내 믿음을 잘 키워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나요? 여러분 주변에 누가 여러분의 한계상황에서 함께 갈수 있습니까? 세상 친구들입니까? 가족일까요? 부모님과 자식일까요? 일정한 기간 까지는 같이 갈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래 못갑니다. 우리를 도울 자는 오직 주님이시고 오직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그분이 교회를 세우시고 그 안에 믿음의 동역자들을 모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도울 자를 붙여 주셨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길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지금도 여러분을 여러분이 예상치 못했던 방법으로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바라보지 못하고 내 자신만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막힌 길을 여는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생각도 바뀌었고 도와 줄 믿음의 동지도 생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장벽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 장애물이었습니다. 2절‘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께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장애물 중에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은 사람 장애물입니다. 그들이 여러분의 길을 막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막습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막습니다. 내 친구라고 여긴 사람, 내 동지라고 여긴 사람이 내 길을 막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의 형들이었습니다.
본문의 그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모여든 병자들입니다. 서로 먼저 낫고자 모여들어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늦게 도착한 환자로서 도저히 주님 앞에 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은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이 중풍병 친구가 예수님 앞에 가기만 하면 낫는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지붕 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고 그 중풍병자 침상을 예수님 앞에 내릴 구멍을 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그런 상황을 보고 계신 예수님이 화를 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5절‘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여러분이 그 자리에 계신 예수님이었다면 어찌 행동했을까요? 그들의 무례함과 재물 손상에 대해 격분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그들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그렇게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이 환자를 데려가면 반드시 주님은 이 중풍병자를 낫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 그 믿음이 그들의 무례를 덮었던 것입니다. 믿음이란 길이 막혔을 때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길이 막혔으면 위로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계십니까? 최악입니까? 중풍병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까?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시니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여러분의 환경과 한계를 바꾸어 놓을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힘이 있는 선물입니다. 그 믿음으로 생각을 바꾸시고 그 믿음으로 나를 넘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길을 만들어 주님께 나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 서게 만들어 줍니다. 여러분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무엇으로 넘을 것입니까?
2.내 한계를 극복하려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면 해결해 주십니다.
문제를 가지고 나아오는 자를 거절치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계신지요? 혹 이 중풍병자처럼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갖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렇다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 문제가 내 힘으로 해결 안 된다고 포기하면 세상 사람과 우리가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내 주변에 여러 가지 축복의 손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내 힘으로 안 되면 하나님이 붙여주신 환경과 주변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방법이 무엇이든 내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내 문제는 주님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거절치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책망치 않습니다. 그런 시답지 않은 문제를 가지고 나왔느냐고 박절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문제를 여러분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습니까? 그럴지라도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와 맡기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내가 해결 하려고만 하면 주님은 구경만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홀로 무거운 짐, 견디기 힘든 짐을 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시간 그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주님은 모르는 척 하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주님은 박대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문제를 나 혼자 힘으로 가지고 나아가기 어려운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혼자 끙끙거리지 마시고 주변의 도움을 청하세요. 그것도 믿음입니다. 내 혼자만 해결하려는 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하지 마셔야 합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한식구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동역자들, 특히 주님이 세우신 종들에게 여러분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함께 그 문제를 주께로 가져 나아가면 주님은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상상과 기대를 초월하여 문제를 해결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업의 문제, 가정의 문제, 인간관계 문제, 모든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아오면 주님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가지고 나오는 자들의 믿음을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나온 네 명의 사람들, 어떤 사람일까요? 그 병자의 친구들일까요? 가족일까요? 성경은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다. 비집고 들어갈 수 없다. 결국 예수님을 만나려면 몇 날이고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고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하게 확신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그 중풍병은 치료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포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계신 방의 지붕을 뜯어냅니다. 그리고는 그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내려놓습니다.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주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 믿음의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나에게는 한계가 있지만 주님은 한계가 없습니다.
5절‘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누구의 믿음입니까? 중풍병자 자신의 믿음도 믿음이었을 것이나 그를 데리고 온 그 친구들의 믿음, 그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유심히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보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행위를 보시고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여러분! 혹시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까? 뭔가 믿음문제가 걸려 있지는 않는지를 보셔야 합니다. 너무도 단순한 문제에 걸려 있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믿음을 보시는 주님 앞에 기본적 신앙생활에 결격사유를 갖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십일조, 주일 성수, 예배의 가치, 등등, 그다지 중요한 것같이 보이지 않으나 이런 것들이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행위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 문제를 해결 받지 원한다면 특단의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중풍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은 남이 상상치 못한 특별한 방법을 통해 예수님께로 문제를 가지고 나갑니다. 아무도 그렇게 할 것을 생각지 못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했습니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줍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포기치 않게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동지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보 기도의 효력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헌신하며 기도하면 그 기도 덕에 내 문제가 해결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중보 기도의 능력을 믿습니다. 그러나 막상 내 문제가 해결되면 중보기도 덕이라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부탁하고는 감사를 하는 경유가 극히 적습니다. 제가 목사로서 그런 것을 너무도 많이 체험합니다. 오히려 도와주고 기도해 준 사람들에게 쓰라린 아픔을 당하는 경유가 많습니다. 그 친구들의 중보적 믿음의 행위, 이것 때문에 이름도 알 수 없는 그 중풍병자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도 남을 위한 중보 기도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중풍병자가 그와 같습니다. 이 병자에게는 중풍병이 제일 급선무의 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보신 주님은 그의 죄를 먼저 용서하시며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십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런 효과가 없는 단순한 선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죄 해결 없이는 중풍병을 고쳐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시고 계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그리고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육체의 문제와 영적 문제를 모두다 해결을 받았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우리 문제도 예수님께 가져오면 주의 능력으로 해결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문제를 예수님께로 이끄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행위는 내 삶을 복된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 비결을 알면 여러분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3.내 한계를 극복하려면 중풍병자를 고치신 주님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어야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과 우리들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에게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을 통하여 무슨 말씀을 하시고자 합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병들었음을, 하나님께서 지으신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님을 깨달아야 된다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읽은 막2:17절‘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원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들지 않은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듯이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자신이 의인이라고 하는 자에게 예수님이 쓸데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죄인을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롬3:10절‘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입니다. 요한1서1:8-10절‘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모든 죄인은 예수님께 나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아! 내가 죄인이구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 하나면 이 세상사람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병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 의사에게 가고, 중한 병이 있으면 병원에 입원하듯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으면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막10:46-52절에 보면 거리에서 구걸하던 한 눈먼 자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큰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부르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도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막5:25-34에 보면 12해를 혈루병을 앓던 여인이 군중들을 뚫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하혈이 멈추지 않는 더러운 병이 든 몸이기에 그 당시 사람들과 접촉을 피해야하는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까지 어기며 오직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께로 나왔지만 참으로 불결하고 지저분한 병이라 성경은 그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5장 27절)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무섭고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두렵고 떨려 그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없어 예수님의 뒤로 나왔습니다. 자신이 더럽고 불결하였어도 그 여인은 예수님의 뒤로라도 나왔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어디에 계십니까? 어디로 가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시며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현재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가지고, 우리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예수님께 아뢰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 나올 수 없는 자기 몸을 자신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마비된 중풍병자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좋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4사람이 그를 메워 가지고 나왔다고 기록합니다. 그 중풍병자인 사람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예수님께 나아오게 된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처음에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까? 여러분 스스로 혼자 나 교회 나가겠다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까? 그런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주위에 부모님이나 친척, 그리고 친구나 남편이나 부인의 도움으로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5절에 보면 중풍병자를 메워온 사람들이 예수님께 그를 데리고 왔을 때 사람들이 많아 예수님께 나아갈 수 없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예수님께 내리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보신 것보다도 그를 데리고 온 그 네사람, 또 지붕이라도 뜯어서 구멍을 내어 예수님께 나아가려는 그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전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를 메고 온 사람들의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예수님께 보일 것입니다. 금년에 2명씩 전도해서 예수님께 나아오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중풍병자를 고치신 사건 속에서 우리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야한다, 죄인이면 예수님께 나아와야한다, 예수님께 스스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을 전도하여야 한다, 시험을 이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은혜 받고 구원받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하는 시험을 이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분열과 갈등과 싸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는 누구도 건강하거나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외롭고 상처 많은 세상에서 축복의 만남으로 치료되고, 회복되고,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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