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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피라미드를 보다.
오늘 카이로와 피라미드 관광을 위해 수에즈 ATM 앞에 섰다. 잔뜩 긴장된다. 왜 긴장하는고 하면, 이 ATM 기계가 내 카드를 잘 인식할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중진국이나 후진국을 갈 때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달러만 사용가능한가? ATM에서 그 나라 돈을 찾아서 사용가능한가? 현지의 ATM이 내 카드를 읽을 수 있나? 등등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유럽여행에서도 한 번도 걱정하지 않은 일들을 겪게 된다. 만약 어떤 마리나 근처에 ATM이 딱 하나인데, 그게 안 되면 정말 황당한 상황이 된다. 많은 마리나 들이 도심에서 먼데 있다.
윤태근 선장님은 적어도 1만 달러는 가지고 출발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나는 몰랐다. 나는 수에즈 통과하는데 필요한 300만원만 달러 환전했다. 유럽에서는 현금이 별 소용없었다. 카드로 충분하다. 200만원 환전해서 한 달 동안 쓰고도 남았다. 일부러 현금 쓴 경우도 많았다. 이집트 오자마자 이렇게 불안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행이 수에즈에서는 ATM이 잘 되었고, 현지 돈 사용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포트사이드와 이스마일리아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스마일리아에도 ATM이 한 대 있기는 하다. 내 카드는 인식하지 못하고 아내 카드만 가능했다. 카드가 안 되도 마리나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반드시 달러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이스마일리아를 탈출하는 게 답이다.
북쪽에서 포트사이드로 접근하는 배들은 최대한 빨리 수에즈로 가는 게 답이고, 남쪽에서 수에즈로 가는 배들은 수에즈에서 머물며 최대한 많은 준비를 하고, 디젤 꽉꽉 채워 가는 게 답이다. 영국인 부부는 키프로스에 도착해서 비행기로 영국으로 간단다. 오늘 덴마크 선장 톨스는 키프로스로 떠난다. 포트사이드를 패스해서 곧장 간단다. 나는 디젤 200리터 (리터당 1.5달러)를 더 사서 총 200+300+350 = 850 리터를 바리바리 싣고 부품과 식량을 다 사면 곧 떠난다. 홍해는 바람이 변덕스러우니, 곧장 기주 5.5 노트로 지나갈 생각이다. 내 항해는 유람이 아닌, 기한이 있는 바쁜 일정이다.
수에즈 에이전트 무스타파는 똑똑한 청년이다. 친절하다. 수에즈로 올 사람은 무스타파를 찾아 의론하면 된다. 그는 자기 힘으로 어려운 일은 자신의 보스를 찾아 해결해 주었다. 무스파타를 만나면서 부터 이집트를 정상국가로 다시 보게 되었다. 무스타파의 보스는 ‘캡틴 말디’라는 사람인데, 호방하고 누가 봐도 대장 같다. 직접 쇠사슬 회사까지 같이 가서 일을 처리해 준다. 다시 말하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에이전트 찾지 말고, 포트사이드로 수에즈 오는 사람들도 무스타파를 찾아 일정을 만드는 것을 강력히 권유한다. 이스마일리아와 포트사이드는 일종의 감옥이다. 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스타파 수에즈 에이전트 : +201069912287
이집트까지 왔으니 피라미드를 보고 싶었는데, 우리끼리 버스타고 택시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불편하고 위험하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니 제대로 보지도 못 할 거고 관광지에 사기꾼도 많다고 들었다. 그래서 옆의 배들을 설득했다. 같이 그룹을 만들어 한 버스를 타고 일일 트립을 하자. 프랑스 젊은이들은 2주 동안 이집트를 돌아다니고, 그중 레오는 프랑스에 다녀온단다. 오른쪽 러시아 보트는 의견이 갈린다. 뒤쪽 러시아 자작 세일 요트 커플은 ‘가격이 적당하면’, 이라고 한다. 나는 상황을 무스타파에게 말했고 무스파타는 그의 보스 캡틴 말디에게 보고했다. 어제 나는 무스타파와 함께 캡틴 말디를 만나러 그의 사무실로 갔다. 캡틴 말디는 지난 10년 동안 수에즈를 지난 한국 요트는 2-3척, 일본도 그 정도, 중국 배 1척. 미국, 영국, 프랑스는 수 없이 많다고 한다. 나는 이제 곧 한국 요트들이 수 없이 수에즈 운하를 지날 거라고 말한다. 개인적 소망이다.
캡틴 말디에게, 우리는 그룹으로 작은 버스를 타고, 카이로와 피라미드 관광을 하고 싶다고 했다. 수 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던 캡틴 말디는 어딘가 전화 했고,
7명이면 1인 20달러, 총 140달러.
4명이면 1인 25달러, 총 100달러란다. 내 생각엔 엄청 저렴한 가격이다. 만약 러시아 인들이 안가면 100달러 내고 우리가족만이라도 갈 작정이다. 다행이 자작 세일요트의 안드레이와 케이트 커플은 함께 가기로 했다. 한국 돈 65,000원에 마이크로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이집트 관광을 하게 된 거다. 그래서 오늘 교과서에서만 보던 피라미드를 보러 간다. 상당히 감격 스럽다.
마이크로 버스는 오전 9시에 마리나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 기사 이름은 알리. 한 시간 반을 달려 카이로 시를 지나는 고가도로에 올라가니, 카이로가 한눈에 보인다. 첫인상은 상당히 낡은 건물들과 완전히 낡은 건물들이다. 혼잡한 상태로 자동차들이 다니고 스쿠터 위에 헬멧을 쓰지 않은 일가족 4명이 타고 달린다. 거리에 현대, 기아차가 많이 보인다. 2002년에 단종 된 대우 누비라가 자주 눈에 띤다. 신기하다.
이집트 역사박물관에 왔다. 입구에는 엑스레이 가방검사 기계가 있다. 엄청나게 사람이 많다. 피라미드에서 나온 각종 부장품, 석조물, 미이라 석관. 전시의 규모가 다르다. 1시간 동안 1층도 겨우 수박 겉핥기로 보았다. 압권은 역시 소년 왕 투탕카멘의 황금 미이라. 인물 조각들은 대부분 코가 뭉개져 있다. 오래전 읽은 자료에는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가 스핑크스에 포를 쏘고 이집트 조각상들의 코를 뭉갰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여기 방문할 때 자기 조상들의 행적을 뚜렷이 보게 된다. 무슨 생각을 할까? 박물관 건물에서 나오니 뜬금없이 fish and chips 가 있다. 이집트 박물관 한가운데 커다란 영국 국민메뉴라니 뭐지? 마치 우리나라 독립기념관에서 스시를 파는 격이랄까?
1인 200 이집트파운드, 총 400 이집트파운드
두 번째 코스는 기자의 피라미드. 입구서 부터 엄청난 인파다. 이집트 수학 여행단이 많다. 1시간 동안 구경하기로 하고 차에서 내리자, 마차를 타라고 호객꾼들이 몰려든다. 마차를 타고싶 은 마음은 1도 없고 소매치기가 많다니 바지 주머니 지갑이 신경 쓰인다. 간신히 호객꾼들을 떼어내고 말똥, 낙타 똥을 조심하며 티켓발매소에 도착. 40년 전 시골 버스 매표소 같다. 우리 앞에 직원 표식을 목에건 남자가 온다. 제일 앞에 피라미드 하나 돌아보는데 1인 240 이집트 파운드다. 너무 덥고 사람 많고 흙먼지가 날려서 잠시 고민한다. 그래도 이집트까지 왔는데. 표를 사니 또 어떤 이가 앞장서서 우리를 입구로 안내한다.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일반인 학생들이 뒤엉켜 아기 유모차를 들여놓을 수가 없다. 다행이 입구 안내원이 도와줘 간신히 들어갔다. 가방은 엑스레이 검사기를 통과해야한다.
입장료 1인 240 이집트파운드 총 480 이집트파운드
피라미드 지역에 들어가니 엄청나게 멀고 엄청나게 크다. 우리는 외곽에서 사진이나 찍고 돌아가기로 한다. 코리안? 하고 인상 좋은 이집트 청년이 다가온다. 신경 쓰인다. 꺼져주라. 그런데 사람들이 없는 경찰 주차구역으로 오라고 잡아 끌더니, 우리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들고 튈까봐 엄청 신경 쓰인다. 그러나 제법 멋지게 사진을 찍어준다. 이거 팁 줘야하나? 하는데 이미 20유로를 달란다. 아내가 5유로. 내가 1달러에, 30 이집트파운드를 주고 떼어낸다. 뭔가 한심하다. 이들의 선조는 이미 수천 년 전에 세계를 휘어잡고 유대인들을 노예로 잡아 엄청나게 찬란한 나일문화를 만들었다. 이들은 지금 마차와 낙타 똥을 뿌리며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수에즈 운하로 돈을 벌면서도 여전히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그 위대한 선조 이후 수천 년을 낭비한 것인가? 가슴 답답하다.
러시안 커플은 2시간이 다 되어 나타났다.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다. 기사가 엄청 긴 1시간이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진다. 우리는 조금 일찍 도착해 1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으러 맥도널드 짭 분위기가 나는 식당에 갔다. 고기 크레페와 피자를 시켰다. 대기하는 기사를 위해 크레페 하나를 더 산다. 피자와 크레페는 맛있었다. 총 470이 나왔는데 70이 뭐냐 물으니 서비스료 란다. 기사에게 크레페를 주니 고맙게 받는다.
러시안 여자가 Khan El Khalil 바자르 가자니까, 기사가 바로 앞에 큰 바자르가 있다고 하지만, 굳이 Khan El Khalil 바자르로 가자고 요구한다. 분위기 쌔하다. 아내는 몸이 별로라 바로 돌아갔으면 하는 눈치다. 하지만 그룹여행이니 그럴수도 없다. 한참을 달려 바자르에 도착하니, 완전 혼돈의 카오스다. 차들은 코를 먼저 들이미는 놈이 장땡이고 가운데로 사람들이 막 뛰어 다닌다. 나는 007영화나 빵발이(브래드 피트) 액션영화에 보면 이집트 거리를 영화적으로 과장한 것인 줄 알았더니 그대로 극사실주의 표현이었다. 우리는 그냥 차에 머물기로 한다.
Khan El Khalil 바자르 주변은 남대문 시장보다 5배는 더 혼잡하다. 1시간 동안 러시안 커플은 내리고, 우리 차는 인근주차장을 배회한다. 20여 분을 헤매다 겨우 한자리 잡았다. 시장 통을 헤매는 것보다 차에서 기다리는 편이 낫다. 기사 알리는 우리가 준 크레페로 늦은 점심을 때운다. 인근에 어린이 병원이 있는지, 어린이들을 데리고 지나가는 이집트 부부가 많다.
1시간 30분이 되어도 러시안 커플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빨리 마리나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 50달러 아끼려다 참 고역을 치른다. 이제서야 이스마일리아에서 톨스 일행도, 영국 부부도 러시아 파워보트 사람들과 왜 상종을 안했는지 알겠다. 무례하고 제멋대로다. 이들 커플만 그런 사람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결국 기사가 무스타파에게 전화하고, 직접 아까 하차한 장소로 찾으러 간 후에야 2시간 만에 나타났다. 사과도 없다. Khan El Khalil 바자르가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기가 막힌다. 오후 6시 다 되어 출발하는데, 마리나 도착하면 8시다. 그러나 퇴근하는 차량에 막혀 차는 꼼짝을 못한다. 이 와중에 러시아 여자는 가다가 멋진 다리가 나오면 사진 찍게 멈추어 달라고 한다. 남자는 음악이 크다 작다. 에어컨을 켜라 꺼라 말이 많다. 차가 정체 되자, 갑자기 문을 열어 달래더니 길에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동행 딱 하루 만에 어떤 사람들인지 알았다. 이런 사람들인지 진즉 알았다면 50 달러 때문에... 젠장.
갑자기 우리에게 수단 사와킨으로 가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그곳 에이전트 연락처를 아냐고 한다. 아내는 모른다고 하라고 눈치를 준다. 그들이 가진 연락 번호는 우리와 같은 에이전트다. 이미 다른 홀랜드 요티가 줬단다. 이들은 뚜렷한 정박지도 없어 보인다. 아마 후루가다에 먼저 정박하고 또 머물다 나중에 수단으로 갈 거다.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커플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걸까? 연민도 있지만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다시는 그룹 여행을 조직하지도, 참여 하지도 않기로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결심한다.
오후 7시 48분. 차량은 아직도 정체 중이다. 거의 1시간 동안 1키로도 못 왔다. 좌측 차선으로는 차량통행이 원활하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와 함께 vip 의전 차량 몇 대가 지나간다. 저 의전 차량 때문에 도로 통제되어 길이 막힌 거라면 정체가 곧 풀릴 거고 그렇다면 이집트는 한참 후진국이라는 말이지. 차량 정체가 곧 풀렸다. 기사 알리는 한국 총알택시 뺨치는 솜씨로 정체구간을 빠져 나오고, 고속도로 진입로 입구에는 헬멧 안 쓴 세 명이 탄 스쿠터가 달린다. 진풍경이다. 그러나 잠시 후 12차선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일가족을 보고 우리는 입을 헤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대단하다.
알리, 첫 번 째 휴게소에서 세워 줘. 소변이 급해. 응 그럴 거다. 나도 급하다. 12분 후에 첫 번 째 휴게소가 나왔다. 다들 후다닥 휴게소 안 화장실로 들어간다. 한국 편의점만한 휴게소는 현대식이고 깔끔하다. 음료와 과자도 판다. 물과 콜라, 초컬릿, 리나 요거트를 사고 카드로 계산한다. 이집트 와서 처음으로 카드를 써본다. 이집트에도 뭔가 현대화 바람은 분다.
오후 9시 45분. 수에즈에 접근하니 운하 부근엔 카페가 불야성을 이루고, 거리 공원은 서울 한강수변공원를 연상 시킨다. 거리 공원마다 아이들과 시민들이 공원 잔디밭에서 쉬고 있다. 오후 10시에 마리나로 돌아온다. 와보니 프랑스 44피트 세일요트 한 대가 좌현에 계류되어 있다. 무스타파는 내게 1시간 후에 디젤이 온단다. 뭔가 묘하다. 왜 한밤중에? 저녁 11시에 25리터 말통 8개, 200리터가 왔다 한참 경유 통을 좌현에 묶는데, 프랑스 배에도 수백 리터를 싣는다. 또 우리 배 우측에 파워 보트에도 몇 톤 싣는 것 같다. 만약 내일 나에게 수에즈 세관 앞으로 디젤유를 산다는 서류를 쓰라면 정상적인 거래, 만약 아니라면 이집트 시민들이 사는 리터당 320원에 사서, 우리에게 리터당 1.5 달러에 파는 거다. 아니라면 왜 저들이 이 한밤중에 야반도주 하듯이 경유 배달을 하냐 말이지. 지금은 자정 12시 43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