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위, 갈증, 한순간도 풀 수 없는 긴장감
정승권 (정승권 등산학교장)
확보물이 연달아 빠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왜 안 걸리지' 라는 의식은, 내 눈의 초점이 빠지는 확보물에 맞춰지며 아주 또렷하게 머리 속에 떠올려졌다.
극도로 긴장된 마음은 추락이 길어질수록 점점 약해졌고, 내 몸이 멈추었을 때는 매우 안정된 평온함을 되찾았다.
왼팔 팔꿈치에 통증이 오고, 로프에 쓸린 오른손목이 쓰렸다.
안전벨트에 8자 매듭으로 묶인 로프에는 야속하게 빠져버린, 찌그러진 작은 카퍼헤드, 머리가 없는 끊어진 와이어, 믿지 못할 로스트에로우, 머리가 파인 조그만 너트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형! 괜찮아?”
“응!”
민호와 내가 주고받은 간략한 대화였지만, 우리에게 더 이상 말이 필요치 않았다.
단지 이 순간 로프에 파동이 일 정도로 강렬하게 무엇인가를 마음속으로 주고받고 있음을 나를 허공에 매단 로프에서 느낄 수 있었다.
“혀~엉, 힘내라!”
내가 떨어지는 것을 하강하며 보았는지 밑에서 기범이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나를 위로하려는 기범이의 외침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를 매단 로프에서 느껴지는 것만큼 강렬할 순 없었다.
그건 단지 그가 내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추락시 가장 중요한 드릴 떨어뜨려'
추락 시작 지점에 돌아왔을 때 드릴이 없어진 걸 알았다.
확보물을 사용할 수 없는 곳에서 스카이훅을 걸기 위해 구멍을 파는 용도로 사용하는 드릴을 잃어버린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당장 이곳을 돌파해 나아가려면 스카이훅 외에 어떤 장비도 소용이 없다.
게다가 빠져버린 카퍼헤드 자리에 카퍼헤드를 다시 설치했기에 긴장은 매우 고조되어 있었다.
조금 전처럼 카퍼헤드가 또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동작은 매우 부자연스러웠고, 장비 찾는 일을 곤욕스럽게 했다.
망치와 함께 걸어놓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 드릴을 허탈감과 아쉬움에 혹시나 하여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이중 기어랙의 장비 속을 샅샅이 뒤졌지만 보이지 않았다.
확실하게 잃어버렸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민호가 홀백에 남아 있는 장비에서도 찾지 못한 후였다.
지금 드릴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오랫동안 미덥지 않은 카퍼헤드에 매달려서 적절한 장비를 찾으려고 애쓰면서 잃어버린 장비의 아쉬움에서 벗어나려니 집중력만 흐려졌다.
한참 후에야 드릴 대용으로 카퍼헤드를 박는 평평한 정이 최선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잘 파지지 않는 정으로 예리한 훅 자리를 만들 수는 없었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훅 자리와 연속적으로 카퍼헤드를 사용하자니 시간이 많이 걸렸고,
A4구간을 통과하자 나를 확보하는 민호 모습이 먼 발치에 보였다.
기범이가 고래고래 소리질러 김시영 부장과 한화정씨와 함께 땅거미가 깔린 엘캡 바닥에 다 내려섰다고 알린다.
포타레지에서 저녁식사를 다 마칠 때쯤 김건준씨에게 무전 연락이 왔다.
“오늘 등반 어땠어요?”
“나 떨어진 거 봤습니까?”
“못 봤어요, 떨어질 때 얘기하고 떨어지세요. 그래야 카메라로 잡죠.”
“살벌한 루트라 자주 떨어질 것 같으니 카메라 들이대고 잘 기다려봐요.”
“그래도 이왕이면 사인을 주세요. 하! 하! 하!”
“허! 허! 허! 내려간 사람들은 어때요.”
“무사히 잘 내려왔습니다.”
요세미티 엘캡을 오르자는 제의가 나에게 처음 들어온 건 지난 4월 노스페이스의 정상욱 부장으로부터였다.
대신 가장 어려운 루트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등반계획은 매킨리 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6월 말, 디지틀조선의 정용권 기자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디지틀조선의 인터넷 생중계의 이벤트성 등반계획은 1시간 짜리 방송용 다큐멘터리 촬영도 포함되어 있으며, 삼성라이프닷컴의 후원을 받아 등반대원 4명과 취재기자 3명으로 구성하기로 계획했다.
등반대원 중 1명은 이번 등반대의 후원사인 삼성라이프닷컴의 미국 뉴욕지사 부장인 김시영씨가 내정되어 현지에서 합류키로 되어 있었고, 취재기자는 월간山 정정현 기자, 스포츠조선 송철웅 기자, 디지틀조선 김건준PD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대원 2명은 내가 선발해야 했고, 그래서 막강해야 할 정예대원 구성은 간단했다.
2명의 대원 중 1명은 나와 함께 엘캡을 여러 번 등반한, 경험 많은 영원한 빅월 파트너 이민호였고, 다른 한 명은 작년 빅월 등반대회에서 우승한 김명철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러한 ‘거사’를 앞두고 한 두 개 일이 비뚤어지지 않을 리 없었다.
명철이는 굳게 믿었던 미국 비자가 출발 이틀 전 반송되는 황당한 상황을 당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시급하게 다른 대원으로 교체해야만 했는데, 어려운 A5+급의 레티슨트 월(Reticent Wall) 등반을 위한 대원을 선발한다는 것은, 게다가 떠나기 이틀 전 적당한 대원을 영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급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2년 전 엘캡의 시 오브 드림즈(Sea Of Dreams)를 함께 등반한 미국 LA에 사는 기범이에게 합류하자고 제의하는 것 외에 없었다.
그러나 바쁜 미국생활을 무시하고 등반제의를 한다는 건 그에게 큰 부담을 안겨줄 수도 있다.
전화연락도 잘 되지 않는 그에게 한 가닥의 기대로 인터넷 메일만 보내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외국어대 산악부 출신인 한화정이라는 여성 대원을 추천받게 되었다.
가정주부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는 그녀는 모든 일에 자신이 있었다.
그녀가 들려주는 대학시절 요세미티 암벽등반의 꿈 이야기들을 통해 그녀가 이번 엘캡 등반에 자신감이 넘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원정대는 7명으로 꾸려졌다.
또 다른 하나의 원정대가 우리를 지원해주기 위해 동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대원 가족들의 요세미티 관광 원정대인데,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나와 친구 가족의 요세미티 등반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고, 정정현 기자와 송철웅 기자 가족도 때마침 계획되어 있었다.
이렇게 가족등반대가 꾸려졌고, 인원도 우리보다 3명이 더 많은 10명이 합류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 합동(?) 원정대는 총 17명의 대규모 원정대로 꾸려지게 됐다.
'등반 이틀째 물 부족으로 2명 하산'
서니사이드 캠프장의 고요함은 아이들이 떠들어대는 통에 사라졌지만, 텐트사이트를 지정받은 다음날부터 고요함이 다시 찾아왔다.
7월28일, 서니사이드 캠프장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난 아침, 뉴욕에서 온 김시영 부장이 마지막 대원으로 합류했다.
서울에서 인터넷 메일로 인사를 나눈 정도였을 뿐, 처음 만나는 사이라 서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해 로열 아치스의 작은 암벽에서 등반하며 적응훈련을 했다.
거구이긴 하지만 20년 전 대학시절부터 암벽등반을 해온 몸이라 움직임이 정확했다.
총각시절 많은 여자들의 마음을 울려 놓았음직한 체구와 준수한 외모는 암벽등반을 대하는 순수한 열정에서 그 모습이 건장한 시골뜨기 같아 보였다.
새들도 깨어 나지 않은 새벽에 텐트를 두들기며 누가 찾아왔다.
기범이었다. 오늘 새벽에 도착해 나를 찾았다고 한다. 반가움과 황당함이 함께 찾아들었다.
그가 불쑥 나타나 계획된 일이 뒤죽박죽 될 상황을 예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기범이가 와 주었으니 등반이 쉽게 풀리리라는 분명한 예측은 나의 흥을 부추겼다.
그래서 부족한 장비를 기범이가 남가주산악회 박경수 형에게 부탁해 지원받기로 하고, 적응시간을 연장하여 총 5명이 등반하기로 등반계획을 바꾸었다.
우리가 레티슨트 월 루트를 오르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최고 인공등반 등급을 가진 엘캡에서 가장 어려운 루트이기 때문이다.
엘캡에는 A5+급의 가장 어려운 루트가 2개 있다.
그 중 하나인 레티슨트 월은 최근에 초등된 루트라 이곳 클라이머들도 가장 어려운 루트로 인정하고 있다.
또 하나의 A5+급 루트는 오래 전에 초등되었기에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르면서 확보물이 많이 설치되어
있을 거라는 점을 감안해 조금 쉬울 거라는 평이었다.
이 점을 간과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하여 어쩌면 이벤트성 등반에 맞는 좀 더 쉬운 루트를 택하는 것도 현명한 판단이라는 생각도 갖게 했다.
하지만 어찌 클라이머의 마음이 상업적일 수 있겠는가 싶었고, 또한 정작 나의 자존심은 레티슨트 월을 벗어날 수 없었다.
레티슨트 월의 등반 시작기점은 뉴 던(New Dawn)이란 루트를 통하여 7피치 올라선 레이 레이디 레지(Lay Lady Ledge)다.
총 12피치의 비교적 짧은 루트지만 뉴 던의 7피치를 포함하면 19피치에 이른다. 그래도 엘캡 중앙에 나 있는 평균 30피치의 루트들에 비하면 짧다.
그렇다면 피치 길이가 매우 길 거라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우리가 준비한 60m 로프는 짧아서 등반이 매우 힘들어지거나, 어쩌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하게 되어 그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뉴 던은 오래된 루트라 A3급 구간은 어렵지 않았지만, 다섯 명 분량의 식량과 물, 그리고 장비의 홀링은 역시 어렵고 힘들었다. 강렬한 태양열과 유난히 후덥지근한 더위는 물을 많이 마시게 했고, 포타레지에서 만나는 서늘한 밤만이 더위와 갈증을 식혀주는 유일한 포근함이었다.
이틀에 걸친 뉴 던 등반은 물과의 싸움이었다.
그래서 레이 레이디 레지에서 맞은 두번째 밤은 포타레지에서 맞은 지난 하룻밤의 황홀한 추억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물통을 입에 대고 들이마시고 싶은 갈증만 느끼게 하는 밤이었다.
“형. 물을 확인해야겠어요”
등반 이틀째, 그동안 씩씩했던 기범이 말투가 이번엔 자신감 없게 들렸다.
“어느 정도 남은 것 같니?”
“홀백을 다 뒤져봐야겠어요.”
레이 레이디 레지는 거대한 넓이의 테라스였지만 돌무덤이 여기저기 있어 옹색했다.
우리 다섯 명이 둘러앉아 물 대책을 세우며 옹색한 밤을 지새웠다.
준비한 53리터의 물 중 이틀동안 우리가 마신 물은 23리터, 남은 건 30리터였다. 앞으로 5일을 더 등반해야 하는데 거의 반을 마셔버린 것이다. 남은 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레티슨트 월 등반이 시작되는데, 물이 부족한 상태에서 등반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내일 물을 보충하러 내려갔다가 모레 올라오죠.”
“정 대장 그러지 말고 내가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형. 이렇게 하죠, 내가 김 부장님과 화정씨와 함께 내려갈 테니 민호하고 등반하세요,
그러면 남은 물 가지고 두 사람이 충분히 등반할 수 있을 거예요.”
“기범이형! 형이 등반하고 내가 내려가겠습니다.”
대장인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대원들에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기범이와 김 부장님의 정확한 판단과 설득력 있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내가 내려가는 것은 우리의 등반을 성공시키기 위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경험 많은 이기범씨가 내려가 주어야 하강을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범아, 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나는 기범이에게 나의 결정을 넌지시 건네는 말투였다.
“형 내가 누굽니까! 엘캡 하강 전문 가이드 아닙니까!”
그는 노즈를 자기 집 드나들 듯했고, 게다가 엘캡타워에서 하강한 경험이 풍부한 하강 전문가이드임이 분명함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인공등반에서 볼트길은 쉬어 가는 구간이다. 그러나 이 루트의 볼트 간격은 너무 멀어 하나 잡기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볼트 하나 잡을 때마다 물 한 모금씩 마셔대야 했다.
물론 치터스틱이 있다면 쉽겠지만, 그런 것 가지고 다니면 우스운 꼴이라 싫었고, 두번째 볼트길을 지나고부터
제발 볼트길만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대할 뿐이었다.
키가 2m 되는 사람이 볼트를 설치했다고 하더라도 다음 볼트를 박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었다.
키가 3m 되면 모를까. 그래서 나는 이 루트는 볼트길과 피치 확보용 볼트를 내려오면서 박았을 것이라 짐작하기에 이르렀다.
‘추락은 신의 뜻대로’
한데 더 황당한 문제는 마지막 볼트에서 크랙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고 게다가 아무런 장비를 사용할 수 없는 매끈한 바위면 뿐이라는 점이었다. 키가 4m쯤 되어야만 손을 뻗어 크랙 속에 장비를 설치할 수 있을 거리였다.
그래서 등반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점점 자존심이 찌그러지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 한참 위, 어느 한 곳에 포인트 훅 구멍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줄사다리의 제일 높은 단을 밟고 일어선 다음 스카이훅을 쥔 손을 갈비뼈가 휘도록 뻗었지만 훅이 닿지 않았다.
손끝에 훅을 겨우 받쳐들고 밀어 올렸더니 예측대로 훅이 걸렸다. 이것에 체중을 싣기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훅이 흔들리지 않을 엉겨붙은 자세로 살며시 올라가보니 ‘추락은 신의 뜻대로’라는 장비를 사용해야만 할 바위 흠집이나 다름없는 드릴로 파놓은 훅 사용의 자리였다.
이 루트는 인공등반기술의 극치를 보여주려고 극도의 어려운 동작을 이끌어내기 위해 너무 인위적으로 만든 루트임을 절실하게 느끼게 했고, 그래서 등반해야 할 이유와 가치를 점점 상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짜릿함을 맛본 후에 그래도 한 번 더 해보고 싶은, 부족한 인간의 소박한 본능은 어찌하랴.
더위, 갈증, 한시도 풀리지 않는 긴장감에 몹시 시달려서인지 내 몸의 기가 쇠약해진 것을 느꼈다.
먹히는 것은 물밖에 없었다. 하루에 2리터의 물도 부족했다.
포타레지에 누우면 꼼짝도 하기 싫었다. 오늘도 김건준씨에게서 무전기로 연락이 왔다.
“오늘 등반 어땠어요?”
“말이 필요 없는 루트 같아요.”
“무슨 뜻이죠?”
“루트를 너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아서 등반에 의미를 갖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물도 부족할 것 같고, 그래서 어쩌면 다른 루트로 우회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사를 이대로 써서 올려도 될까요?”
“그래요. 그리고 루트를 바꾸는 건 내일 더 등반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정 대장님이 잘 결정하시겠지요.”
“그래요. 내일 다시 연락하죠”
“.....”
“형 기범인데, 형 이야기 다 들었어, 끝까지 밀어붙여요, 물은 내가 정상에서 서포트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범이의 간절한 바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등반의 의미와 어려움보다는 부족한 물이 가장 큰 문제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 레티슨트 월의 등급 표기는 많이 잘못되어 있었다.
등반을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동안 모든 구간의 느낌이 A3급 이상이었다.
그런데 웬만한 곳은 등급표기조차 되어 있지 않고, 표기되어 있는 구간도 2등급 정도 낮게 돼 있었다. 정말 웃기는 루트였다.
너트 와이어에 리벳행어를 카라비나로 연결해 테이프로 붙여 빳빳이 세우는 일은 쉽지만, 그것을 볼트에 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들뜨는 바윗장에 나이프하켄을 박고 체중을 실으면 하켄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움직였다.
스카이훅을 집어던지며 걸리기를 바라기도 했고, 60m 로프를 거의 사용해 로프가 빠져나오지 않아 짜증스러웠다. 피치 종료 확보용 볼트에 줄사다리를 걸면 사그라드는 긴장감은 목마름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오늘 등반을 마치고 위노타워(Wino Tower)에 올라섰다.
이제 우회할 건지 밀어붙일 건지를 조금 후면 무전기로 연락올 김건준씨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정 대장님 김시영입니다.”
“김 부장님이시군요, 정승권입니다.”
“컨디션 어떻습니까?”
“예, 아주 좋습니다.”
“오늘 이기범씨하고 화정씨하고 나하고 엘캡 정상에 물을 데포시켜 놓았습니다.”
“아! 그러셨나요?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6피치 중에 가장 어려운 A5+급 구간이 마지막 피치에서 두 번째 피치에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우회할 수 있는 루트가 있었다.
“형, 기범인데 물이 지금 얼마 남았지?”
“5리터쯤 될 것 같다.”
“형, 어떻게 할까, 내가 위에서 물을 내려 줄까?”
“아니야, 아직 버틸 수 있고 내일 더 등반해 보고 결정하겠다.”
A4급 구간을 넘어서는 동안 내 물통의 물은 벌써 바닥이 났다. 그래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물통을 흔들어댔지만 느낌이 없었다.
뚜껑을 열어 입에 대고 물통 꽁무니를 쳐들어 봤지만 물 몇 방울이 입 속으로 떨어졌다. 수도꼭지를 입에 물고 원없이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만 간절했다.
버석거리는 입 속을 혀로 핥아가며 홀링을 마쳤을 때 장비를 회수하며 주마링하는 민호가 발치 밑에 다다랐다.
“민호야, 물 좀 있니?”
“조금 있는데 형 줄 건 없지~.”
민호는 빈정거리며 자신의 물통을 내게 건네며 다시 말을 이었다.
“형, 아까 밑에서 보니까 홀백 밑이 젖어 있는 것 같은데.”
“뭐~어!”
앞으로 이틀을 더 가야 하는데 물은 2리터밖에 남지 않았다. 쏟아버린 물에 대한 욕심은 갈증만 더욱 부추겼다.
그리고 어느덧 이 루트에 적응되었는지 등반의 어려움은 문제될 게 없었다. 단지 버석거리는 입속과 타는 목마름이 문제였다.
기다렸던 김건준씨 대신 기범이에게서 무전기로 연락이 왔다.
“형, 어때요? 물은 얼마나 있지?”
“2리터 정도.”
“형 내가 내일 화정씨 하고 정상으로 다시 올라갈께요.”
“그래 줬으면 좋겠다.”
“김 부장님은 조금 전에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김건준씨가 배웅 갔어요.”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먼저 가서 미안하니 형이 내려오면 말하라고 했어요. 그리고 형수님이 바꿔달라 하네요”
“응….”
“형, 저예요!”
“여행 많이 했어?”
“예. 당신 등반 상황이 조금 어렵다고 하던데, 몸은 어때요?”
“아임 파인!”
“안전하게 등반하고 잘 내려오세요. 우진이가 바꿔 달래요”
“우진이니. 아빠야.”
“아빠, 언제 내려와?”
“두 밤만 자면.”
“빨리 내려와야 돼. 안녕!”
‘잡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물통’
이 루트를 우회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건 나와 민호만의 등반이 아니었다.
폭 2mm, 길이 30여m의 좁은 크랙을 등반하기에는 물도 장비도 모두 부족했다.
너트를 망치로 때려 박는 치욕적인 장비기술을 여러 번 구사했다.
이 좁고 긴 크랙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러프 하켄을 아껴야만 했기에 크랙의 바위 모서리를 정으로 깨서 작은 너트를 끼워 넣을 수 있는 새로운 등반기술을 부족한 장비에 대한 절박한 심정에서 고안해냈다.
하지만 러프 하켄을 모두 사용해 버렸는데도 이 구간을 통과하지 못했다.
몇 개 남지 않은 카퍼헤드로 이 궁리 저 궁리하는 동안 밀려드는 건 어둠과 지독한 갈증뿐이다.
“형 기범이에요. 줄 내린 위치가 맞아요?”
무전기에서 구세주 같은 기범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범아, 물 좀 내려라!”
“형 조금만 기다려요!”
정상으로 이어지는 10피치 종료지점에 확보할 카라비나조차 남지 않은 상황에서 도착했을 때 어두운 밤 허공에 테이프로 동여맨 물통 한 개가 로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내 머리 위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기범아, 스톱!”
하지만 어두운 밤 허공에 멈춰진 그 물통은 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손으로 잡을 수가 없었다.
- 끝
첫댓글 그래서....어떻게 됐을까....? 개 궁금...
진짜 궁금해지네요~~
다음은요~~?
그게 왜 궁금할까? 이상하다...
9년 전에
그 옆을 등반했었지...뉴던이라고
지금은 고인이된 창구하고...
이알 강사하고있는 인철이 그리고 대인이하고 나 그렇게 넷이서....
브라질팀이라고 까불며...
벽에서 8일 동안 빡세게 있으면서...
저 길은 어떤 놈이 갔었나 생각했었지....지저분하게 보이던 헤드길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정승권씨와 앤디 커크패트릭...등이 지나갔네...
어찌 안 궁금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