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uG2LXA9kUs
이 비디오 모음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주제는
구원의 전체 개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어쩌면 오해하고 있지 않는지 하는 것입니다. [음악]
이 시리즈의 이전 두 비디오에서
우리가 살펴본 것은 성경 이야기였으며,
또한 성경 이야기가 구원의 의미와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서 설명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펴본 것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어떻게 구원이
이집트에서의 구출을 의미했으며,
그리고 바벨론 포로 당시 고대 유대인들에게
구원은 새로운 출애굽을 의미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바벨론을 떠나
전에 살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이유는 창조와 언약의 큰 약속이
땅과 성전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이유는 땅과 성전은
더 큰 현실을 향한 이정표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구약성경에서
그분의 영광으로 온 땅을 가득 채우겠다고
거듭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성전의 그림과도 잘 어울립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그의 영광으로 채우시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온 땅을 위해
하고자 하시는 일의 표징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땅에 충만할 것이라는 이사야 11장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는 시편 72편의 끝 부분에서는
다가오는 왕이 가난한 자와 압제 당하는 자들에게
공의와 자비를 행할 때
온 땅이 여호와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성들 앞에 제시된 약속입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으로 눈을 돌려 볼 때
우리가 계속해서 발견하는 것은,
신약성서 기자들이 예수님의 이야기를 소개할 때
구약성경의 약속들이 성취된 것으로 소개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가장 분명한 구절은 요한복음의 시작 부분일 것입니다.
이 구절은 제가 속한 전통에 따라
크리스마스 캐롤 예배에서 읽혀지기 때문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서로 다른 학교에 다니는 네 명의 자녀가 있었고
네 번의 다른 캐럴 예배에 참석해야 했던 사람으로서 말하면,
여러분이 그 예배를 모두 참석하고 났을 때쯤이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익숙하게 듣게 될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없이 된 것이 없느니라."
그리고 그 절정에 이르게 되면,
창세기 1장의 절정에 해당하는 다음의 말씀이 나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여기서 거하셨다는 헬라어 단어는
그가 ‘장막을 쳤다’는 뜻, 즉 ‘장막을 세웠다’는 뜻입니다.
이 요한복음의 설명은
새로운 창세기이고,
새로운 출애굽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목적이
갑자기 ‘예’(성취)가 되는 장소이자 수단이십니다.
바울이 고린도후서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약속은 모두 그 안에서
‘예’가 됩니다. 즉, 성취됩니다.
그리고 창조의 목적과 언약의 목적과 새 창조의 목적,
그리고 이제 새 언약의 목적은 예수님 안에서 성취됩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이 전하는 이야기는
예수님 자신이 참된 성전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자신의 몸인 성전에 관해
말씀하신다고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그 이야기를 예수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실 때에도 하시고,
그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도
계속 말씀하셨다고 소개합니다.
제자들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에 사는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담은 전달자가 될 것입니다.
즉, 그들은 원래 인간이 되어야 하는 참된 모습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든 것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새 창조세계를 다스릴 새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으러 가신 이야기와
예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새 출애굽, 새 언약,
하나님 백성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바로 그 중심에 죄 용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해방의 메시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이 바로 구원의 의미였습니다.
즉 내가 행한 모든 나쁜 일들이 더 이상 나를 속박하거나
제약하지 못한다는 기쁨의 외침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내 미래를 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처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어떻게 그 일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어 온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옮겨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에서
“성령을 받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새 성전이 세워지는 곳,
새 언약이 이루어지는 곳이 되셨듯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 스스로가 새 언약의 백성, 새 피조물이 되어야 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세계에서 새로운 창조의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순탄하게
금방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오순절 날부터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해야 할 일은
단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고
세상은 점점 더 유토피아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장차 올 일을 미리 맛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묘사된 대로
최종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가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시대와 성령의 은사,
그리고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예수님의 재림 사이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에게 당하셨던 것처럼
교회는 세상에게 그런 대접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프게도 우리는 종종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그것은 고통, 박해, 순교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초기 기독교 저술들(베드로전서와 같은 책을 생각해 보십시오)에서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이 고난에 대해 걱정하고 있음을 봅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들이라면
지금 어떤 문제도 겪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을 직접 처리하셨다면,
왜 우리는 그런 것과 상관없이
평안한 삶을 살아갈 수는 없습니까?'라고
어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가 대답하기를, ‘아니다,
‘하나님의 미래로 가는 길은 예수님의 길과 같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고,
자기 목숨을 구원하려면 잃을 것을 각오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입니다.
우리 선배들도 항상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이라고 부르는 책에서 그런 일이 계속되는 것을 봅니다.
그런 이유로 신약의 서신서는
특히 새 성전인 교회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친히 거하러 오시는 곳입니다.
이전에 인류는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즉 이쪽은 유대인, 저쪽은 이방인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하나의 새로운 것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장에는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이 나오는데
그 목적은 언제나 메시아이신 예수 안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연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장에서 우리는 이 목적이
인류를 하나의 예배하는 가족으로 연합시켜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성장하는
한 몸이 되도록 의도했다는 것을 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시대 서부 튀르키예에서
복음을 듣고 어리둥절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 안에 지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셔서 거하신다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은 결국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거하실
궁극적인 실재를 가리키는 표징이자 표지판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존재목적에 대하여 말씀드리자면,
교회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주역인데,
그 교회는 새 창조의 작은 작동 모델이며,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세상을 회복하시는
세상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되도록 계획되었습니다.
창조의 하나님은 새창조를 하고 계십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언약을 갱신하시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에게 밀어닥친
이처럼 위대한 실제입니다.
그리고 구원이란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심지어 죽음까지도 하나님이 이미 처리하셨다고 선언하는 실제입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은
전체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백성들은 자신의 구원을 기념하면서,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전부가 되실 때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전부가 되실 때입니다.
이 시리즈에는 구원의 전체 의미에 대한
여러 비디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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