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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장 38절, 1장 8절 및 몇 구절의 이해
할렐루야! 전능하시고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 온갖 죄로 물들어 자신만 믿고 살던 무지몽매한 죄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하셔서 늘 함께 하시며 늘 인내하시며 차근 차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심을 감사와 영광과 존귀를 돌립니다. 늘 조급했고 늘 세상의 영광을 찾듯이 믿으면서도 이름을 내고자 몸부림치는 근시안적인 인생을 오래 참으시며 이렇게 자료를 만들게 해주시고 나누게 해 주셨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선하고 의로운 뜻이 손을 놀리고 몸을 놀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하소서
샬롬! 성경말씀의 이해는 하나님의 은혜로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 이루어졌습니다. 특별히 말씀을 이해하고자 몸부림 친것이 아니라 그의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해하게 해 주셨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시간이 가면서 전도를 하면서 저절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이 자신에게 이루어질 때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데 모든 믿는이에게 일어날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면 모든 분에게 말씀을 깨닫는 축복이 우리를 섬기는 교회의 목자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아직도 늘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잘 이해해 주시고 제가 이글을 읽는 모든 분을 위해서 늘 간절히 기도하듯이 부족한 저를위해서 꼭 복음을 잘 전하도록 삶의 여건이 개선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부탁을 드립니다.
성경 말씀의 이해
은행에 다니다 고시공부를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 누군가에게 난을 캐어서 팔면은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20여 년 전에 1년 동안 남부 지방의 산을 헤맨 적이 있다. 도시락을 싸서 가을부터 풀들도 시든 야산의 소나무 아래를 새로운 품종의 난을 찾아다니는 재미는 다녀 본 사람 만이 알 것이다. 돈을 벌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명품으로 키울 수 있는 난을 찾는 재미는 아름다운 산과 들의 경치와 함께 참으로 마음 설레고 즐거운 일이었다. 수많은 민춘란 속에서 변이 종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 같이 어려웠다. 수천 포기의 난을 매일 훑으며 1년을 돌아다녔지만 귀한 난을 만나지는 못했다. 비록 흔한 변이 종은 몇 번 만났지만 책에서 보는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는 난은 보지를 못했다. 너무나 열정이 지나쳐 추운 겨울 눈 속을 헤치면서도 추운 줄을 몰랐고 무더운 여름날 풀이 무성해서 난이 잘 보이지도 않는데 홀로 산에 올라 난을 쓰다듬다 독사가 머리를 내미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기도 했다.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을 해서야 이 일이 비로소 포기가 되었다.
행정고등고시에 1점 차 실패를 하고 목사가 되고자 본격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잠실교회 중등부 교사와 고등부 교사로 3년을 봉사하면서 좋은 교재와 담당 목사님을 만나 매주 공과 공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목사님께 공과를 공부하고 그리고 다시 한 주간 가르칠 것을 묵상하면서 준비를 하고 토요일 날 학생들에게 전화를 하고 최종적으로 강의안을 준비해서 예배를 드린 후에 공과를 가르쳤다. 1년 50여 주일날 성경 전체를 절기별로 잘 정리를 해서 가르치기에 교사로 1년을 봉사하면 성경을 대충 한 번은 훑어보는 셈이 된다. 장신대 신대원에 입학하기 위해서 장신대 도서관에 1998년 무렵부터 2년간 공부를 하면서 시험보다는 성경 정리에만 매달렸다.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서 1년간 봉사하면서 전도에 대한 훈련과 지사마다 방문 해서 예배를 드리며 말씀을 준비해서 전하곤 했다. 성경을 통독하기도 하고 정리를 하면서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는 은혜를 많이 체험했는데 새로운 내용을 깨닫는 기쁨이 너무나 커서 여백이 있는 성경을 사서 부지런히 적기도 하였다. 새로운 난을 찾아 산을 헤매던 열정으로 성경을 재미있게 보았다. 그러나 내가 안 성경의 내용은 톰슨 주석 성경 등의 주석을 통해서 보면 이미 믿음의 선진이 이해를 다해서 풀이를 해놓은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수 없이 겪다 보니 내가 다른 믿는 분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이 없음이 인정되고 내가 이해할 성경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서 깨달음이 와도 이미 새로울 것이 없겠다 생각하고 특별히 여백에 적어 넣지도 않고 새로운 것으로 흥분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을 많이 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제대로 교회와 좋은 선생을 만나 배웠어야 하는데 나는 27-28살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니 성경을 모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늘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신학대학원에 등록을 하고서도 이 배움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해서 두어 번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분을 만났지만 안타깝게도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이단들이었다. 이단이 너무나 우리 주변 가까이 아는 사람으로 있기에 분별을 못한 것이다. 사람을 보아서는 이단을 분별하기 어려웠다. 그 사람들의 가르침을 듣고서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 자신이 옳지도 않은 것을 자신만 옳다고 믿고 가르치는 곳이 이단이다. 목사도 있고 전도사도 있고 내가 가르치던 학생의 어머니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이단의 무리가 있다. 절대로 성경의 배움에 목이 마르다 해도 교회를 떠나서 배워서는 아니 되며 홀로 공부해서도 아니 된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제대로 가르치는 분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우리의 목자가 그런 분이길 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포기하고 사는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생각하지도 못한 성경에 대한 이해를 나의 체험을 통해서 얻게 하시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성경적으로 나는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신학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많이 보낸 전도 편지를 정리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라는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래 적은 구절들이 그러한데 아직도 온전한 이해를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내가 이해를 했다고 생각을 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 그동안 이해를 하지 못한 부분들이 이해되며 그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것들이 그때서야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점의 이해를 내 수준에서 설명하지만 누군가 나보다 더 온전히 더 깊이 넓게 아시는 분은 나의 이해의 부족을 단번에 알아차릴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정확한 까닭이다.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 세상의 법조문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의 확실한 뜻을 표현한 일점 일획 뺄 수도 더할 수도 없는 정확한 말씀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나의 이해가 올바르길 진실로 바라고 나의 25년 이상의 신앙생활 속에서 아래 구절 말고 또 이렇게 다시 소개할 수 있는 새로운 구절의 이해가 그의 없음을 밝히며 이 구절의 이해도 성경의 새로운 구절의 이해를 위해 몸부림 친 것이 절대로 아님을 밝힌다. 그렇다 해도 전도를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도전하는 어둠의 세력에 잠잠히 있었지는 아니하였다. 늘 말씀을 묵상하며 이기려 하고 언제나 몇 아니 되는 암송하고 있는 성경 구절로 싸움을 쉬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전하는 일을 늘 하면서 성경을 접하고 특별히 관리 집사를 하면서 어쩔 수없이 8년을 빠짐없이 새벽 기도를 드리고 신학대학원 7년 동안 늘 공부를 했음을 밝힌다. 모두가 성경 말씀을 사랑하고 늘 묵상하며 늘 배우며 가르치며 복음을 늘 전하길 기도드리며 부족하나마 그리고 개인적이지만 아래 구절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고자 한다. 더 많이 아시는 분의 격려를 부탁드리고 배움을 시작하신 분들의 도전을 기대한다. 그리고 이런 이해가 내 개인의 의도적이 것이 아니라 저절로 된 것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조금이라도 독자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1. 사도행전 2장 38절에 대한 이해
내가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를 다닐 때 나와 같이 잘 지내던 지금은 세계적인 의사가 된 경우가 주일이면 예배당에 간다고 한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교회가 없었고 걸어서도 갈 수는 있지만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교회 예배당에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이다. 중학교를 다닐 때는 교회에 관련된 이야기를 그의 들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 같이 하숙을 하던 신철이가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고 그의 아버지께서 믿음에 투철하셔서 그의 형제의 이름을 신철 신강 신석으로 지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기동창인 문호는 나에게 훗날 그때 예수님을 믿으라고 권했다는데 나는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은행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면서 무협지에 빠져있었다. 은행에 들어가서는 믿는 분이 직접 기타를 가르쳐 주시는데도 기타도 믿음에 대해서도 잘 배우기 못하고 말았다. 하숙집 아주머니께서 성경을 주시며 전도를 해서 조금 관심을 가졌지만 교회 생활은 지속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카투사로 군대에 갔는데 교회가 있어 간 첫 주에 모두에게 인사를 하였더니 다음 주에 대표 기도를 시키는 바람에 너무나 아는 것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그때부터 제대를 할 때까지 교회에 가지를 아니하였다.
회개
나의 본격적인 신앙생활의 시작은 김해 장유의 반석교회에서이다. 불교에 심취를 해서 매일 산에 올라 명상을 하였는데 5월의 신록이 아름다운 어느 날 산 중턱에서 바라다 본 나무들의 모습은 저것이 만들어졌다는 깨달음으로 왔다. 그리고 교회에 마음의 평안을 위해 출석을 하게 되었는데 김성수 장로님께서 성경책을 주셨다. 공부를 하던 어느 날 두려움이 골을 까뒤집는 것으로 왔는데 어찌할 바를 찾다 성경을 보고 펼쳤는데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이었다. 말씀이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눈에 들어오는데 나의 옳다고 믿는 모습은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인 너무나 잘못된 것이었다. 눈물이 나며 무릎이 꿇리고 기도가 나오는데 나를 도구로 써주세요 하는 기도였다. 과거의 나의 잘못된 모습을 버리고 고전 13장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27년을 살아온 삶의 태도를 부정하고 고전 13장 말씀대로 살려니 참 어려웠다. 교회생활은 편치를 않았다. 늘 맨 뒷자리에 않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몸도 마음도 편치가 않았다.
영접
김해 장유에서 경남대 기숙사로 옮겨서 계속 고시에 매달렸다. 어느 날 4영리로 전도를 하는 학생이 4영리 책자를 가져와서 전도를 하길래 교회 다닌다 하니 책을 두고 갔다. 아직 교리도 성경도 잘 모르는데 혼자서 가만히 읽어보니 예수님을 영접하고 싶어서 영접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대학교 아래에 있는 교회에 출석해서 대학부에 등록을 해서 다니는데 늘 편치를 않았고 적응의 어려움이 있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
회개 후 5년이 지나서 다시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로 세례를 받았다. 반석교회는 장로교 통합 측 소속의 교회이다. 세례를 받고 나니 마음이 많이 편안 해졌다. 예배를 드리는 것도 수월해지고 교회생활도 많이 편안하게 되었다.
죄 사함
죄 사함은 피 흘림을 통해서 온다.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도 없다고 하셨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고 죄 사함이 저절로 오는 것일까? 그렇다면 성경의 위 구절은 회개하고 각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죄 사함을 받는다 라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아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은 죄 사함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본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죄 사함이 피 흘림을 통해서 옴을 구약 전체를 통해서 배운다. 이스라엘인은 구약의 약속대로 피 흘림의 제사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서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만 믿어서는 아니 된다. 반드시 그분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사건을 믿어야만 한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신성을 확인하고도 그분이 피 흘리시고 십자가에서 죄인인 날 위해 죽으심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도 죄 사함이 없다고 하겠다. 우리는 반드시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보배로운 피를 흘리셨음을 반드시 믿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일이 죄 사함을 받는 일이다. 베드로의 고백대로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지니다.라는 고백도 해야 하고 그리고 반드시 그분이 나를 위해 죽으심을 믿어야 한다. 죄 사함은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온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나에겐 오랫동안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살았지만 죄 사함에 대한 이해는 그때도 지금도 많이 부족함을 고백한다. 죄 사함은 주님이 십자가에 매 달리신 것이 나의 죄로 인함을 인정할 때 일어난다. 나를 위해 주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것을 인정할 때 일어난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따르던 무리는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을 보고 흩어졌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지만 구약에서 예언했고 주님도 여러 차례 이야기를 했지만 자신들을 위해 죽으심을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임하심을 통해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 경남대 바로 아래에 있는 교회에서 나는 세례 전에 학습을 받았다. 정말 작은 믿음이었고 정말 예수님과 교회와 성경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적었지만 예배시간에 교인들 앞에서 목사님의 교리문답을 통해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정하고 나를 위해 죽으심을 인정한 것을 나는 비록 그 시간을 오랫동안 그의 생각하지 못했지만 주님은 늘 기억하고 계셨음을 밝힌다. 나의 오래전의 작은 고백을 주님은 믿어주시고 지켜주셨음을 믿고 주님의 경이로운 인내와 믿을 구석 없는 인생을 믿어주심을 무한 감사를 드린다. 사랑이 너무나 부족한 나 같은 인생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이해하기가 진실로 진실로 어렵다./// 이렇게 작성하고 수년이 지나서 영어성경을 읽으면서 이해를 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성경을 이해하고 있는데 영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와 죄 사함을 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죄 사함을 위한 세례로 설명을 하고 있음을 봅니다. 한글 성경만 보고서 구절 구절을 그대로 한 점의 오차가 없는 것으로 배우고 믿고 살다가 다른 한글 번역(공동 번역과 표준 새 번역 등)과 영어성경도 보면서 성경을 보면 그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이런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 되었던 세례를 받을 때 예수님의 사역과 나의 죄인 됨을 알고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올바로 이해를 한 후에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이 있는데 반드시 회개는 선행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다음 단계 성령의 선물이 앞의 모든 절차를 잘 거쳐야 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회개 없는 세례에도 죄 사함이 올 수가 있는지는 연구과제이고 그리고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말씀에 따르면 회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와 죄 사함 그다음에 오는 것이기에 반드시 절차를 지켜야 되는 것이고 죄 사함과 칭의는 깊은 연관이 있기에 가장 선행되는 회개는 너무나 중요한 예수님을 믿는 삶에 있어서 절차이고 회개는 죄에서 돌이킴과 동시에 반드시 사랑을 하지 않던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하니 반드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절차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고 칭의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스스로 믿어 보았자 하나님 보시기에 죄 사함이 없으면 성령의 선물도 없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믿는 사람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이 부분이 해결이 아니 된 사람은 거듭남의 문제에 가서도 걸리게 되니 예수님께서 거듭나지 아니한 자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으니 이 말씀을 이길 성경의 말씀은 성경의 전체에 어디에도 찾아보기가 힘들 것이고 예수의 종에 불과한 바울의 서신을 자의로 해석을 해서 위로를 삼고자 해도 헛일이 되는 것입니다.(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렇게 잘못 믿고 사랑을 하지 않으면서, 천국이 보장이 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를 용서받은 새롭게 된 사람이 정의를 행치 않고 사랑도 하지 않으면서 믿음으로 천국에 가고자 하는지 참으로 잘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자기 힘으로 올바로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형교회 목사도 이 부분에 와서 해결이 되지 않은 분은 먼저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선물
행정고시 1차에 두 번째로 붙어서 대학원에 진학한 후 학교에 말씀을 드리고 서울대 옆 신림동에서 2차 준비를 그룹스터디를 하면서 열심히 했다. 신림동에 있는 선민 교회에 출석을 했는데 담임목사님은 대신 총회장을 역임하신 박 기수 목사님이셨다. 어느 날 예배를 드리는데 역시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앉아 있는데 설교를 하시던 목사님께서 갑자기 우시는데 예수님께서 흑백의 모습으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다. 그리고 입에서 빨간 불을 뿜어주시는데 내 가슴에 작은 불꽃이 몇 개가 보이고 손에는 땀이 나며 병든 자가 믿는 이면 내가 기도하면 낫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런 체험이 너무나 신비로워서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힘들고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른 채 오랜 시간이 지나갔다. 당시에 관리 집사님으로 계시던 지금은 장로님이 되신 분께서 아무 말도 아니했는데 하나님을 만났구먼 하시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아픈 분들이 기도를 하면 낫는 일이 발생했고 훗날 방언이 통변이 되기도 했고 그 일이 있은 후 3일 동안은 천국에 있는 느낌으로 살았다. 무엇을 할지 몰라 기도하니 나의 친구의 이름을 부르시는데 처음 음성 보다 두 번째 음성이 크게 들리고 한 번만 더 물으면 고막이 터질 것 같아서 다시 묻는 것을 포기하고 즉시 새벽에 귀에 들린 이름의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을 하였다. 항상 나를 만져주시는 박 권사님을 뒤에서 권사님도 아무도 모르게 옷만 살짝 만졌는데 뒤로 돌아서시며 엄지를 세우시며 “수석 해라, 수석 해라” 두 번을 말씀하셨다. 모든 일이 나의 상식과 상상을 초월해서 일어났다. 고시에 수석 하라는 의미로 알아듣고 책상에 수석 합격이라고 써 붙이고 2차 시험을 무사히 보았으나 과목낙제 없이 1 점차로 낙방하였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사도행전 2장 38절]
2.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의 이해
내 증인이 되리라
고시에 실패 후 주님의 뜻에 따라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공부를 해서 목사가 되는 줄로 알고 결혼과 동시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신대원에 들어가려고 몸부림쳤다. 잠시 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함평에 집을 사서 내려가 전북대 교수인 강 준만 교수께 전도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전도 편지의 시작이었다. 곧 서울로 올라왔으나 공부가 고시공부같이 잘 되지가 않았다. 고시 1차 2차 과목 보다 양도 과목도 많지가 않은 것으로 느껴지는데 마음먹은 대로 공부가 잘 되지가 않았다. 너무나 오랫동안 고시공부에 지친 것도 있었다. 몇 년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1년을 하루에 200집 정도 전도만 하고 다녔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다니는데 한 사람이 전하면 나는 뒤에서 기도만 했다. 하루는 어느 집에 동료와 같이 들어갔는데 마침 성경공부를 가족이 칠판을 두고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가르치고 어머니와 자녀가 듣고 있었는데 동료가 들어가서 국민일보 홍보를 하려고 하니 심히 나무라며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었다. 동료가 방언으로 기도를 하는데 내 생각에는 너무나 분해서 못할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 방언이 이쑤시개 같은 작고 날카로운 것이 내 귀를 찌르듯이 들어오면서 통변이 되는데 놀랍게도 그분을 축복하는 말이었다. 공부를 한다고 장신대 도서관에 갔으나 시험공부는 아니하고 테리 홀의 파노라마 성경에서 소개한 성경 정리만 고시공부하듯이 재미있게 집중적으로 하다 보니 8개월이 지나갔다. 어느 날 도서관 바로 밖 난간에 서 있는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는 신호가 왔다. 무릎을 꿇으려고 하며 주변을 보니 부끄러워서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앞에서 난간에 기대어 서 있던 시험 준비 중인 분인지 신대원 학생인지는 모르지만 분이 무릎을 땅에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땅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내 할 일을 그분이 하는 것 같아서 고맙기도 했지만 내가 할 일을 못한 것 같아서 이후에 그런 신호가 오면 빠짐없이 어디서든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고 애를 썼다. 교인 중에 엉뚱한 곳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심히 놀란 사람들이 있다. 신대원은 떨어지고 아내는 내 곁을 떠나고 나는 빚을 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되었다. 잠실교회에 병들고 낙망한 심신을 기대고 누웠다. 틈만 나면 성전의 의자에 누웠다. 일은 사무장님이 다해 주셨다. 4년이 지나니 삶에 대한 체념이 나를 찾아왔지만 전도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2년쯤 지나니 결실이 보이고 3년째에는 50명 정도가 교회에 등록했다. 가족 구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어머니 삼촌 숙모 내 동생의 자녀들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곧 재혼을 하고 아들을 보았다. 편지는 계속해서 보내고 전도도 부지런히 했다. 편지를 보낸 지 5년쯤 되어 보낸 자료를 정리해 보니 양도 많고 보낸 대상도 너무나 다양해 내가 한일이 아님이 믿어졌다. 독자의 샘이 무척 나겠지만 어느 날 편지를 쓰는데 너는 저리가 있어라 내가 쓴다는 느낌과 함께 나와 주님이 하나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나는 없어진 것 같았다. 편지로 전하고 만나서 전하고 일하다가 전하고 차가 고장 나면 전하고 전하는 일이 보편적인 일이 되었다.
너희가 권능을 받고
병든 이에게 손을 엇고 기도하면 낫는 역사가 일어났다. 성전에서 허리가 아파서 기도하면서 움직이지도 잘 못하던 전도를 많이 하시던 집사님을 기도하자 통증이 완전히 사라져서 너무나 놀라서 뛰었다. 고혈압과 당뇨가 동시에 있던 교회에 다니지도 않는 70 되신 분이 나았고 그분 옆집에 사시던 분이 그분의 소식을 듣고 자신이 어지럼증을 이야기하자 기도하니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동상에 걸린 이의 발 아랫부분을 잡고 기도하는데 수백 개의 바늘이 찌르는듯한데 나았고, 어느 호흡이 곤란하시던 할아버지께서는 기도를 하며 팔을 조금씩 문지르니 깊은 호흡을 한 번 하시더니 호흡이 편안해지시며 몸이 따뜻해진다. 몸이 따뜻해진다 하셨다. 전도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복음을 전하고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할 때 낫는 역사가 일어났다. 어느 날 동네의 가본 적이 없는 집의 뒤 곁으로 주님은 나를 인도하시고 기다리라 하시었다. 5분쯤 있으니 옆집 빌라 주차장으로 차를 주차를 하던 사람이 뒤에 있는 기둥에 차가 부딪히는 것도 모른 채 후진을 하고 있었다. 나는 힘껏 “멈춰”하고 소리쳤다. 차가 기둥과 불과 1-2cm 사이를 두고 멈췄다. 차에서 나와서 놀라며 고맙다는 여성을 보며 내가 이곳에 와 있을 이유가 없다고 하며 “잠실교회에 출석하세요” 권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주님을 나를 멈추어 세우고 기다리게 하시곤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서울의 번잡한 곳에서 만나게 하시었다.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전도 편지는 전북대 강 준만 교수를 시작으로 가족과 이웃 50명을 4년째 보내고 최근에는 동창 전도 편지를 1200명에게 발송했으며 재활용품 수거와 다양한 일들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동창들에게 성경을 정리를 해서 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경을 12주제로 뽑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하여 12주제를 뽑고 이를 고교별로 절기에 따라 사진을 찍어 달력에 넣어 100만 명 달력 전도를 할 계획이 있다. 약 7억 원의 돈이 드는데 사이토 히토리가 내 주리라 믿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책을 일본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영어로 번역해서 한국과 동시에 출판을 하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리라 믿어진다. 잠실교회에 대한 비전이 있는데 이를 위해 헌신한 후 가족과 같이 러시아로 가서 선교를 하고 싶은 것이 나의 꿈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나의 신림동 선민 교회에서 20여 년 전의 체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특별히 삶의 여러 실패 가운데서도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자라가는 것을 보고 또 전도 편지를 보낸 결과를 보면서 신대원 논문을 쓰면서 그리고 위로의 자료를 준비하면서 사도행전 1장 8절과 2장 38절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생기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성령이 임한 것임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행전 2장 38절의 내용과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니 순서가 잡히고 성경의 말씀이 나에게도 실현되고 있음을 보았다. 비록 선민 교회 장로님께서 “하나님을 만났구먼” 하시며 알아주었지만 내게 성령이 임하심을 최근에서야 내가 할 수 없는 복음을 전한 것과 성경 말씀을 보면서 알아가고 있지 오랫동안 나는 모른 채 살았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얻는다라고 하지지 않으시고 증인이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복음을 전하며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의 신분 지위 고하 처지나 성공 여부를 보고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통해서 성령이 임하심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오직
사도행전 1장 8절은 오직으로 시작한다. 1장 8절에 있어 오직이라는 말은 이 말씀 중에서 가장 최근에 이해가 된 말씀이다. 성령님 앞에 오직이 붙어있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임하심 외에는 길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명예 권력 돈 건강 지식이 있다고 증인이 된다고 하시지 아니하였다. 반면에 아무것도 없어도 성령만 임하시면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주변과 땅 끝까지 살게 된다는 말이다. 복음을 전하면서 일을 하다가 나는 경찰서에 도둑으로 몰려 조서를 받은 일이 있고 또 다른 일로 법정에 서는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님께서는 염려를 말라 하시고 아무런 준비도 시키지 아니하셨다. 그리고 정말로 쉽게 문제를 해결해 주시어 아무 해도 입지 아니하였다. 일과 복음을 동시에 했는데 약간의 무시나 낭패를 당하면 주님은 참으라 하시고 참으로 기이한 방법으로 무시를 바꾸어 주셨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며 살면서 작은 어려움과 핍박이 있었지만 큰 해는 없었다. 오히려 늘 주님의 동행을 느끼며 기적을 체험하고 결혼도 잘해서 큰 꿈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낭패나 화를 당하는 것은 복음을 전해야 할 때 전하지 못해서 오는 일이지 예수님을 전하면 만복이 온다. 전하는 일을 절대로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현세와 내세의 형통을 원하는 이는 적극적으로 주님과 함께 복음 증거에 나서야 하고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에 말씀한 대로 행하고 성령님을 사모하고 선물로 받아야 할 것이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3.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대한 이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공부에 빠져서 결혼과 자녀를 낳는 일에 대해선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가 50이 다 되어 또 결혼을 하고 자녀를 기르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아들을 낳아서 길러보니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가 되고 늘 마음이 아들에게 있다. 아들은 참으로 많은 기쁨과 웃음을 준다. 나와 같이 교회에서 청소를 하던 김 집사님은 이제 자녀를 고등학교에 넣고 대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자녀는 7살까지 부모에게 해 줄 것을 다해 준다고 했는데 정말 아들은 기쁨이다. 아들이 나서 누워만 있다가 뒤척이고 앉고 기고 일어서고 걷는 과정을 지켜보고 무엇인가 배우는 것을 보는 것은 참 큰 기쁨이다. 조금씩 걸을 때 공원에 나가서 놀게 놓아주지만 늘 내 눈길은 아들에게 있다. 모든 부모가 자녀에게 그러하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런 아들에 대한 나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사무장님께서는 내가 혼자 살 때 주님의 사랑을 아버지의 사랑에 비교해 말씀해 주셨는데 나는 자녀가 없어서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하면 같이 있고 싶은 것이 진리이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위해 죽으셨지만 또 사랑하시기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아들을 놀게 하고 우리 일을 하면서도 관심과 눈길이 늘 아들과 함께 하면서 아들이 넘어지거나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려 하면 즉시 일어나 뛰어가서 일으키고 붙잡아 주듯이 주님도 결코 우리를 쳐다만 보시지는 아니하신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쉬지 않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도우신다. 나에게 가장 많이 들리는 소리는 “힘을 내라”이다. 우리는 늘 모든 일에 주님을 초대하고 주님과 함께 해야 한다. 우리가 문제가 생기면 기도하면 된다. 교회 성장에 대한 글을 써놓고 가지고 다니다 집에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홀로 찾다가 찾지 못하고 잠시 마음을 접고 기도를 했는데 나는 놀라고 기뻐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내가 평소에 도무지 두지 않을 냉장고 위에 서류가 있는 곳으로 주님은 나를 인도하셨다. 감리교회 목사님께서 조이 도우슨이 쓰신 ‘성령의 음성을 듣는 법’이라는 책을 주셨는데 조금 읽다가 말았다. 너무나 나와 같은 마음으로 경험으로 글을 써 놓아서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실로 복음을 전할 때에는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찾아서 헤맬 때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를 하셨는데 주님이 서면 이스라엘 백성도 멈추고 주님이 가시면 이스라엘 백성도 따라갔다.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아들이 이제는 조금 자라니 위험한 도시 길에서 홀로 가려고 가끔씩 하고 엄마나 나를 따라 오지를 않으려 한다. 혼을 내면서 엄마 손을 꼭 잡으라 당부를 한다.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일은 주님의 말씀대로 “뱀처럼 지혜롭게 비둘기같이 순결하게”를 늘 묵상하며 행해야 하는데 우리는 늘 주님의 눈치를 살피며 행해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우리는 항상 우리 스스로도 주님과 모든 일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나 어려운 일 좋은 일을 함께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물론 범사에 감사함이 마땅하다. 은행 현금출납기를 청소하면서 어느 지점에 갔더니 유난히 체크하는 것이 심하다. 경비하시는 분을 시켜 책임자가 확인을 하라고 한다. 나를 청소하는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그렇게 대한다. 내 친구들이 대부분 은행의 지점장이라 가끔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너무 하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된다. 다른 지점에서도 청소가 지점의 고가 평가에 들어가니 잘하라고 주의를 준다. 화가 치밀어 “야 너희는 한 달에 천만 원을 받고 나는 한 달에 백만 원을 조금 받고 일을 하는데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하지 않냐 그리고 고가 평가의 항목이 수도 없이 많은데 내가 하는 청소를 너의 고가의 모든 것으로 이야기하며 나에게 너희가 승진 못하는 짐을 지우냐 이 못된 놈아!!” 하고 책임자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번만 더 건들면 혼을 내려고 하고 있는데 주님은 상상도 못하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시원하고 통쾌하게 해결을 해 주셨다. 아내의 통장을 가지고 돈을 그 은행의 어느 지점에서 입금을 했는데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아내의 통장에는 돈이 많지는 않지만 제법 들어 있었다. 그리고 통장을 정리를 하지 않아서 정리할 통장 몇 개와 현금을 100만 원을 입금해야 했다. 지금은 어느 지점에 가서도 같은 은행이면 사무를 볼 수가 있기 때문에 하루에 10 곳 넘게 가는 지점 중 한 곳에서 주차를 하고 그 일을 보려고 하는데 기다리다 보니 주차 예정 시간이 다 되어 할 수없이 포기를 하고 다음 지점으로 이동했는데 바로 나를 괴롭히는 그 책임자가 있는 지점이었다. 현금 출납기 청소를 끝내고 아내의 입금과 통장정리를 위해 백만 원과 통장 서너 개를 직원에게 주면 부탁을 하니 평소에 청소를 끝내고 사인을 받으려 오려니 하고 보고 있던 책임자는 다른 부서의 책임자였다. 직원이 통장정리를 끝내고 자신의 책임자에게 결제를 받으려 하니 없어서 그 책임자에게 가서 결제를 받았다. 내 아내의 통장과 잔고를 확인했으리라. 다음에 가니 그 책임자가 나와서 인사를 하며 반가이 맞아 준다. 나를 청소하는 사람으로 무시하고 잡아먹으려 하는 태도에서 확 바뀌었다. 지점을 나오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전도를 하다가 성경을 사주어야 해서 7500원이 필요했다. 고 물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나서며 조 용기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해 보기로 했다. 조 용기 목사님께서 “주님이 우하면 나도 우 주님이 좌하면 나도 좌”하며 사신다 하셨는데 나로 리어카를 잡고 고물상을 나서며 주님께서 하늘에서 주택과 고물 있는 곳을 아시리라 믿고 리어카를 몰고 가는데 가는 곳마다 신문만 있었다. 1시간 동안 동네를 돌면서 신문으로 만 채워 고물상에 돌아오니 사장님이 어찌 잠시 만에 신문만 싣고 오냐며 신기해하신다. 달아 보니 7000원이었다. 나는 수도 없는 기적을 체험했다. 일일이 기록하기도 어렵다. 이렇게 전도를 하면서 주님의 함께 하심을 배워가고 있다. 실제로 주님은 늘 함께 하셨음을 말씀하시기도 했다. 나의 삶이 실패와 낭패로 이어지고 있는데 진실로 눈동자와 같이 보호하셨음이 느껴지고 믿어진다. 우리는 우리대로 반드시 무슨 일이든지 주님과 함께 해야 됨을 믿어야 하고 모든 일에 주님을 초대하고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겠다는 각오를 굳게 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장 20절]
4. 누가 복음 11장 9-13절 말씀에 대한 이해: 약속
주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주시겠다 하시며 성령을 주신다 하셨다. 나는 이 구절을 잘 이해를 못 하고 사람의 아버지가 아들이 구하는 것을 주시는 것과 같이 하나님도 사람이 구하는 것을 주시리라 하셨음이 맞는데 왜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셨을까 의문이 생겼다. 이 구절에서 다른 모든 것은 언급이 없고 오직 성령을 주시겠다는 말씀만 있다. 주님은 구하는 이에게는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았다면 반드시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만 됨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의 배움이나 체력 물질 명예로 살아갈 수가 없음을 주님은 잘 아시고 우리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배운 이는 배움을 중히 여겨 성경의 가치를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자신의 배움으로 살려고 할 수 있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에 의지해서 돈의 힘으로 살려고 할 수 있고 권력이 있는 자는 권력에 의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에 의지하지 말 것을 늘 강조하신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싸워야 할 상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다. 이들은 우리의 지식 능력을 훨씬 초월한다. 반드시 말씀으로 살아야 하고 반드시 성령을 선물 받고 성령의 충만으로 살아야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언덕을 오르는데 오르기 바로 직전에 횡단보도가 있고 적색 등이 들어와 잠시 오토바이를 멈추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신호가 바뀌어 출발을 하니 오토바이가 움직이지 않는다. 뒤에는 차가 있어 재촉을 하는데 앞으로 가려고 해도 되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어서 오토바이에서 내려 밀고 차선에서 나와 인도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점검을 하니 기름이 다 떨어진 것이다. 참으로 횡단보도 앞에서 선 것이 다행이다. 만약에 조금 앞으로 나가다가 위로 올라가는 언덕에서 멈췄다면 뒤에서 빠르게 오는 차량들도 당황하고 나도 무슨 일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성령의 충만이 사라지는 것은 오토바이 기름이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그런데 아직 성령의 선물도 없다면 무엇보다도 신자의 시급한 일은 성령을 받는 일이다. 주님은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절차를 지켜 구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반드시 주신다. 베드로와 바울만 목사님들만 받고 누리는 일이 아니다. 성경은 목사님과 베드로 바울에게만 적용이 되고 일반 신도는 그들의 용감한 신앙 행위를 그냥 감상하고 보고 대단히 여기라고 기록된 것은 아니다. 예수님이 보혈로 죄 사함 받은 모든 성도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다만 우리는 성령님을 사모하고 받기를 기도해야 한다. 성령을 주시리라는 말씀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나는 많이 부족하지만 주님은 주님의 백성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가장 주시고 싶어 하는 선물이 성령님 이신 것 같다. 우리의 구함을 최고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는 주님의 마음이라 믿는다. 성령을 선물 받는 모습은 다양하기에 우리는 일일이 설명하기 쉽지는 않다. 성경의 기록대로 마가 다락방의 역사와 장대현 교회의 역사 성령 받은 분의 안수기도 등이 기억이 나는데 나는 아직 아는 것이 너무 부족하다. 어찌 되었던 우리는 반드시 성령을 선물 받아 행하고 성령의 은사를 받고 열매를 맺으며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1장 9-13절]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에 쓴 글입니다. 죄 사함 부분만 덧 붙여 설명하고 그대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