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이일하 교수의 「흐름으로서의 생명」 강연은, 현대 생명과학이 도달한 최첨단의 언어로 생명의 본질을 풀어내면서도, 그 핵심 사유가 이미 동양의 선현(先賢)들이 수천 년간 탐구해온 우주적 원리와 정확히 호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나는 동양학 박사이자 실용주역과 자평명리학자로서, 이 강연 속에서 지적 희열과 깊은 감명을 동시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기에 견해를 덧붙인다.
주역(周易)이 말하는 ‘변역(變易)·불역(不易)·간역(簡易)’의 원리, 명리학이 사주팔자를 통해 밝히는 생명의 코드, 불교가 설하는 연기법(緣起法)과 무아(無我)의 진리 ― 이 모든 전통의 사유는 생명을 ‘고정된 실체’가 아닌 ‘흐름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장(場)’으로 이해한다. 이는 교수의 강연이 제시한 생명 과학적 통찰, 즉 유전자와 세포, 환경과 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생성·변화하는 ‘생명 현상’의 본질과 정확히 같은 궤를 이룬다.
과학은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동양철학은 상징과 직관을 통해, 같은 산의 정상을 향해 다른 길을 오르고 있다. 주역의 괘(卦)는 생명의 흐름을 상징으로 표현하며, 명리학은 출생 순간의 시간적 코드로 그 흐름의 방향성을 해석한다. 불교는 그 흐름의 무상(無常)성과 연기(緣起)의 상호성에 주목한다. 오늘날 생명과학 역시 동일한 흐름의 논리를 ‘네트워크’, ‘동역학’, ‘자기조직화’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나는 이 만남 속에서 동서(東西)의 학문이 단절된 평행선이 아니라,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노래하는 상보적 지혜임을 확인한다. ‘생명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과정으로서 흐른다’는 이 단일한 통찰 속에서, 과학과 동양철학은 비로소 한 지평 위에서 서로를 비춘다.
1. 불교(佛敎)의 연기(緣起)와 무아(無我) - 생명의 본질을 꿰뚫다
교수는 생명체가 원자의 끊임없는 교체, 즉 '흐름' 속에서 '동적 평형'을 이루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緣起)와 무아(無我)" 사상의 과학적 증명과 다름없다.
교수가 말한 "어제의 나를 구성했던 원자와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원자는 다르다"는 통찰은, 불교가 설파한 '나'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무아(無我, Anatta)"의 이치를 완벽하게 설명한다. '나'는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이 잠시 화합(和合)하여 만들어진 일시적인 현상일 뿐, 그 어디에도 불변하는 '나'의 핵(核)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체가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음식을 섭취(Negative Entropy)하여 자신의 질서를 유지한다는 설명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긴다(此生故彼生)"는 "연기법(緣起法)"의 원리 그 자체이다. '나'라는 존재는 음식, 공기, 햇빛 등 수많은 인(因)과 연(緣)의 조합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립할 수 없는 "관계적 존재인 것이다." 결국 과학이 밝혀낸 생명의 '흐름'은, 불교가 말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 즉 우주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진리를 실험실에서 확인한 셈이다.
2. 명리학(命理學)의 오행생극(五行生剋) - 우주적 흐름의 축소판, 인간
명리학은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본다. 태어난 연월일시를 통해 부여받은 사주팔자(四柱八字)는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 그 사람이 지닌 "기(氣)의 흐름에 대한 설계도이다."
1. "오행(五行)의 순환":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는 단순히 물질이 아닌, 우주 에너지가 순환하는 5가지 상태와 운동성을 상징한다.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로 이어지는 상생(相生)의 관계와 "목극토(木剋土), 토극수(土剋水)..." 로 이어지는 상극(相剋)의 관계는, 교수가 말한 생체 내 "물질대사(Metabolism)"의 정교한 조절 과정과 정확히 일치한다.
"상생(相生)"은 세포를 만들고 에너지를 축적하는 "동화작용(Anabolism)"과 같다.
"상극(相剋)"은 불필요한 것을 억제하고 분해하는 "이화작용(Catabolism)"과 같다.
2. "용신(用神)과 균형": 사주에서 지나치게 강한 기운을 억제하고 약한 기운을 북돋워 중화(中和)를 이루게 하는 핵심 오행을 "용신(用神)"이라 한다. 이것이야말로 교수가 '정교한 일꾼'에 비유한 "단백질"의 역할과 같다. 단백질(효소, 호르몬 등)이 생체 반응을 정교하게 조절하여 항상성(Homeostasis), 즉 '동적 평형'을 유지하듯, 사주 내의 용신은 오행의 생극제화(生剋制化)를 통해 개인의 삶이 균형을 이루도록 작용한다.
결국, 건강한 생명은 단백질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이듯, 순탄한 삶은 사주팔자 내 오행의 흐름이 막힘없이 균형을 이룬 상태라 할 수 있다.
3. 주역(周易)의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 - 변화야말로 생명의 본체
주역(周易)의 핵심은 "역(易)" 즉, "변화"에 있다. 이 변화는 무질서한 혼돈이 아니라, 음(陰)과 양(陽)이라는 두 기운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이다.
교수의 강연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의 근본 원리인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 - 낳고 또 낳는 것을 일러 역이라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생명체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을 거슬러 질서를 유지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바로 '생생(生生)'의 과정이다. 음과 양이 만나 태극(太極)을 이루고 만물을 생성하듯, 생명은 외부 물질과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신을 창조하고 재생산하는, 살아있는 역(易)의 구현체이다. 교수가 보여준 생명의 역동성은, 멈추지 않고 변화하며 나아가는 우주의 근본 원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결론: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말하다
이일하 교수의 강연은 생명이라는 현상을 "외연적(外延的) 분석과 실증"을 통해 그 본질에 접근한 현대 과학의 위대한 성취이다. 그리고 우리 동양의 철학은 "내성적(內省的) 통찰과 직관"을 통해 수천 년 전 이미 그 본질을 꿰뚫어 보았다.
과학은 '흐름 속의 동적 평형'이라 말하고, 불교는 '연기적 무아(緣起的 無我)'를 설파하며, 명리학은 '오행의 생극제화'로 설명하고, 주역은 '생생불식(生生不息)의 변화'를 노래한다. 용어와 접근법은 다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는 없으며,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성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위대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훌륭한 강연으로 과학과 동양철학의 깊은 해후(邂逅)를 이끌어준 이일하 교수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첫댓글 주옥같은 내용들 가득 찬
교수님의 보물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