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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6일 1박2일로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개최한 시상식에서 지나간 아픔을 치유하듯 환한 미소를 짓고 부부 서로에게 수상의 공로를 돌리며 2010연도대상 동상을 수상하였습니다. 15년 동안 어려운 경제환경과 암이라는 질병의 고통 속에서 이루어 낸 성과이기에 우리부부에게는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Good to great! 라고 말씀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Think Next
보험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장 먼저 제안하고 이를 앞장서 실천하는 삼성화재의 "Innovation" 전문가의 정신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우리가족은 모두 같은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며 공부하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남편과 저는 15년 전에 삼성화재 대리점을 시작하였고, 딸은 여직원으로 3년 전부터 함께 일하였으며, 1년 전에는 아들까지 보험대리점 일에 합류하여서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처럼 복잡하고 다사다난한 세상에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한번 하는 것도 어렵지요.
그런데 가끔 한자리에서 식사하고 회의하고 공부할 때 정말 행복합니다.
딸과 아들도 결혼정년기가 되려면 3년 ~ 5년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아주 귀하고 즐겁습니다.
남편은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석사준비를, 딸은 문화공연기획을 위해서 공부하며
아들은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5월15일 스승의 날!
국민대학교 원우회에서 마련해준 카네이션을 교수님께 달아드리며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나는 대학원에서 나이가 제일 많습니다. 이제 웬만한 모임에서는 내의사와는 상관없이 왕언니 역할을 하고 심지어 아기들은 할머니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대학원에서 아들.딸과 같은 원우들과 함께 생활하니 좀 쑥쓰럽기도 하지만 이모,왕누님,왕언니 하면서 따라 주는 젊은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 젊어지는 생활을 하니 무척 행복합니다
쉰세대인 내가 컴용량 286으로 586용량을 공부하려니 정말 힘이 듭니다. 뒤돌아 서면 잊어버리고 눈은 자꾸만 흐려지고, 글씨를 많이 쓰면 엄지손가락도 저립니다. 물론 시험을 볼때면 머리 뒤통수가 땡기고 어깨가 뻐근하고 파김치가 되어 온몸이 다 지칩니다.
49세에 시작한 공부를 6년째하고 있습니다. 4년만에 졸업하기 힘들다는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원 3학기 재학 중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주님은 이토록 어렵고 힘든 내 생활 속에서도 무난히 공부하도록 도와주셨는지, 어렵다는 경영학사에 재무설계사자격증까지 갖출 수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재무설계 봉사를 하면서 주님의 깊은 뜻을 헤아려 봅니다.
올해나이 54세 이지만 마음은 20대의 늦깎이대학원생입니다.
매주 토요일에는 학교수업이 있습니다. 그리고 4년 동안 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에서 젊은 학우들과 어울려 공부한 탓인지 더 젊어졌다고 합니다. 평일에는 종사하고있는 업무에 열심히 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은 스터디에서 학습하면서 휴일이란 저에게 없었습니다. 많은 애경사는 남편이 대신 도와주었고. 각종모임에서, 회사행사로 가는 공짜 해외여행까지 모두 포기하고 지독하게 노력한 성과라고 봅니다. 제가 어떤 봉사를 하든, 모임을 하든, 공부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지 믿어 주고 도와주고 자랑해 주는 잘생긴 팔불출 남편의 사랑이 있기에 아직도 제 무한도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작년 2월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금융,보험전문가 MBA 석사학위와 금융 최고의 자격증인 CFP (국제공인재무설계사)에 도전합니다. 금융의 사법고시라고 하니 무척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1차 자격증인 AFPK(한국재무설계사)를 갖추었기에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자세하게 아는 듯이, 군제대하고 2년제 대학을 졸업한 25세의 신세대 멋있는 아들은, 엄마가 대학원 가는 학비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서 2009학년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에 편입해서 지금은 4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일류기업인 삼성 맨이 되기 위해 삼성화재(주) 보험 대리점을 시작하였고, 열심히 공부하여 어려운 재무설계사 자격증도 땄습니다.
우리 네 식구는 모두 보험가족으로 탄생되어 삼성화재(주) 본사의 지원을 받아 성동구 성수동 소재 아담한 개인사무실에서 온 가족이 함께 일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합니다.
딸 박애홍(27세)은 '카오스공연팀'을 이끌고 중국 및 국내공연을 하며 새벽연습이
긑나고 오전에는 쉬고, 오후에는 저희 부부를 도와 보험사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지도사로써 성동구 응봉지역 아동쎈타에서 사무 저소득가정 및 편부모 자녀들에게
방송댄스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며 열심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부부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사내데이트를 하였습니다.
출퇴근 길을 같이 오가며 직원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 데이트하며, 주옥같은 연애편지와 많은 추억을 만들며 5년 동안 열애 끝에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자수제조업을 시작하여,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노력한끝에 5년만에 사업성공을 하여서 30대 초반에 공장과 큰 고급 주택을 소유하면서 부유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함께 했던 직원들과 회사를 정리한지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불황으로 섬유제조업을 정리하고, 새로 시작한 신규 사업실패로 결국은
공장건물과 큰 주택을 정리했습니다. 수십 억 원의 재산정리를 하였지만 오 갈데 없는 우리가족에게 수억의 빚이 여전히 남아있어 대책없는 나날을 지냈습니다.
평소 활발했던 남편이 좀처럼 안방에서 나오지를 않게 되자, 아는 사람의 권유에 이끌려 보험대리점을 시작하였습니다.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었기에 여상을 졸업한 나에게는 안성맞춤 직업이었습니다.
우리 가족들의 생활비 밖에 안 썼는데 늘 현금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예금이나 연금을 가입한 것도 아니고, 집을 구입 한 것도
펀드를 가입한 것도 아닌데 늘 빈털터리였습니다. 모두 빚 갚는데 사용된 셈입니다. 10억 원의 빚에 대한 이자를 갚으려고 5개의 카드를 가지고 돌려 막기로 몇 년을 버티며 IMF때 카드대란에 기여한 카드회사 우수고객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 동안에 채권자인 자산관리공사의 소송으로 1년을 보내기도 하였고, 은행 및 건강보험, 국민연금, 연체는 물론 상호금고의 최고 장까지 줄을 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구청에 자동차세를 못 내서 퇴근 후에는 번호 판을 감추는 코미디 같은 짓도 하다가 결국은 뺏겨서, 찾아오기도 하는 힘든 시간이 계속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추석을 바로 앞두고 신용불량자로 등재되어 월급에 차압이 되어 고향에 못 내려가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지인들의 개인사채를 갚으려고 보험료대납 하기 바빠서, 만원짜리 1장을 바꾸어서 천원짜리 몇 장으로 온 가족이 하루 하루를 지탱하고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고향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는 남편도 용돈이 부족하여 궁핍한 생활을 겪어야 했습니다. 늦은 밤이면 택시비가 걱정되어 '지하철 막차시간을 파악하고 적당한 시간에 귀가하라'는 전화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취기가 약간 오른 목소리로 ' 친구가 택시비 준다고 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새벽3시쯤 되었을까 택시비가 부족하니 '7천 원을 가지고 나오라'는 전화를 받고 참 속이 없다는 생각에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은 비상금을 다 털었지만 부족 했었나 봅니다. 사실 나도 현금이 한푼도 없었고, 아이들의 지갑을 열어 봐도 마찬가지고, 저금통을 뜯어봐도 방법이 없어서 급한 대로 내 명함 1장을 들고 내려가서 "기사님, 창피하지만 집에 돈이 없네요. 내일 전화 한번주시면 7천원 대신 1만원으로 송금해 드릴께요. 정말 죄송해요."
라고 말을 하자 기사는 덩치가 남산만한 남편을 한 번 쳐다보더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명함을 건네 받고 택시비는 외상으로 그냥 간 적도 있었습니다. 그 후로 술 취한 남편은 어쩌다 택시 타고 집에 오면 택시비 대신 '여보 명함 가지고 내려와' 하고 착각을 하곤 하여서 웃지 못할 일화가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월급날이 다가올수록 현금은 물론 조금씩 사서 쓰는 생필품까지 몽땅 떨어집니다. 화장품, 라면, 계란, 치약,휴지는 물론 쌀마저도 떨어져서 잘아는 식당에서 누룽지를 얻어 와서 몇 일을 버틴 적도 있었습니다.
AFPK(종합재무설계)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렇듯 온갖 채무에 대한 실제 경험에 의해 재무컨설팅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동안 재무컨설팅은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줄만 알았는데, 채무가 또한 재무컨설팅에 포함되는 개념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 많은 빚을 좀더 현명하게 효율성있게 관리하고, 분산 설계해서 15년 이란 세월 흐름의 투자 효과도 같이 이용했더라면 수억의 이자와 수수료가 절감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재무설계는 너무 늦었습니다. 이미 미련하도록 수수료와 연체이자를 갚느라고 오랜 세월이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한 달 동안 온갖 스트레스 받으면서 발 품을 팔면서 힘들게 받은 소중한 피같은 나의 돈을, 그 많은 이자로 과태료로.....월급 때마다 아깝지만 정말 별 도리가 없었다.
이리저리 시간이 흐르다 보니 어느 정도 빚은 대충 정리가 되었습니다. 빚 갚는 재미라고 할까? 연체된 청구서를 찢어 버리면서 오는 감동, 아마도 목돈을 모으는 것 보다 훨씬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았지요. 그 동안 밀린 세금과 국민연금을 소급해서 정산을 하면서,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노후를 위해서 단 얼마라도 준비하면서 잘 될 거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대로 열심히 활동해서 일을 시작할 때 세운 '10억 빚 갚기인
제1의 목표달성'을 이루었습니다.
이 기쁨도 잠시 우리가정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검은 그림자가 다가왔습니다.
2008년 5월 고향 군향우회 총무국장인 남편은, 수십 동의 천막 속에서 노래자랑 사회를 3시간이나 진행하는데 쏟아지는 빗소리와 쾅쾅 울려 대는 고음의 대형 스피커 소리에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오른쪽 귀가 안 들린다고 해서 다음날 바로 한양대학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뇌의 MRI검사는 물론, 각종 검사를 해 보았더니 '돌발성 난청'으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기간 치료를 받고 결국 '보청기를 사용하라'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처방을 받았습니다. '아직은 아니다'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남편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침을 맞으러 한의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또 다른 지병이 있는지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검사를 실시하였습니다. 남편의 목에는 갑상선암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요즈음 피곤해 하고, 짜증을 내고, 목소리도 조금씩 변해가고, 청력도 이상이 생긴 것 이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의사는 "청력을 한쪽만 잃은 것에 감사하며, 갑상선암을 조기 발견한 것을 럭키하게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10월 2일 갑상선 양쪽을 다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그후 4번의 방사선치료를 하고 나서 완치되었다는 반가운 결과와 평생동안 호르몬약을 먹어야 하는 긴 처방을 받았습니다.
가족은 희망을 접지않고 재출발하겠다는 의지로 2009년 1월31일 KBS아침마당 토요가족노래자랑에 '위하여!땅끝패밀리"팀으로 출연해서 4,500여통의 전화득표로 2등을 했습니다.
'10월 1일 방송통신대학교 경영학과 졸업여행으로 외국여행을 가기로 한 부인은, 모든 여행일정을 취소했습니다. 예기치 않은 남편의 또 다른 발병(갑상선암)으로 인해, 수술일자(10월 2일)를 최대한 당김으로써 난생 처음 가는 외국여행에 불참하게 되었기에
나는 마음속깊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부인의 여행스케줄에 따라 10월 14일자로 수술을 하려고 했으나, 남편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인은 한시도 수술을 늦출 수 없다며 결국은 아쉽게도 나이 먹은 학우들과의 졸업여행을 포기했습니다.
그 동안 삼성화재에서 영업실적이 우수한 부인은 여러 차례 여행 갈 기회가 있었지만 모든 빚을 청산하고 정신적인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다니기로 서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외국여행을 한 번도 안 간 것입니다. 암이라는 병이 기분은 별로 좋지 않지만, 열심히 사는 부인을 격려하고, 나 자신 또한 실망하지 않기 위해 즐거운 추억도 만들어 힘있는 남편과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는 부인과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노래를 부르며 우리가족 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암진단을 받은 며칠 후 KBS에서 노래자랑 예선에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참석해야하나 포기해야 하나. 그러나 딸과 노래연습을 하는 동안 잠시라도 우울한 기분을 즐겁게 전환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수술날짜 잡아 놓고 왠 노래연습?' 하고 코웃음 치겠지만, 우리가족은 여유있게 연습을 하였고, 가족 서로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여의도로 향했다. 일단 예선은 가볍게 통과 했습니다.
갑상선암 수술후 3개월이 지난 2010년 1월31일 드디어 우리가족은 방송출연을 하게되었다.
* 2009년 2월 지천명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4년만에 방송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 하며, 국민대학교 금융.보험전문가 경영대학원(MBA) 석사과정에 입학하는 부인을 위해!
* 갑자기 찾아온 병마와 싸우고 있는 가장으로서, 가족들의 활기 넘친 분위기전환을 위해!.
* 많이 힘들어 하는 4.50대 중년들에게 희망주기 위한 이벤트!
작년 2009년 1월 31일(토) KBS 1TV 아침마당 토요가족노래자랑에 출연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겸손해 하는 남편이 큰맘 먹고 남은 용기를 내서 출연 신청한 것입니다.
가족화목을 우선하고, 사업실패 후 10억원 빚 갚기, 나의 학업에 대한 도전과 열정, 그리고 고객에 대한 고마움. 남편의 암 수술 등 엎어진 중년도 하면 할 수있다는 희망을 전하며, 파워개그맨 이용식씨와 행복의전도사 최윤희여사님께서 많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경기가 나쁘고 힘들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요즈음 재미없고 우울한 사람들에게 훈훈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하고자 네 식구 모두 생방송에 출연하였는데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서 격려와 위로를 되받았습니다. 우리가족의 사랑과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마음속 깊이 심어 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족은 사업실패전 상황으로 돌아가기 위해 가족화목을 다지며 오늘도 전력투구 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오늘이 있기까지는 건강,교육,열정,배려를 생활화하는 우리가족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에 제가 읽는 책은 연봉10억 원 영어강사 유수연의 성공비법 '20대, 나만의 무대를 세워라'. 와 강헌구 교수의 '가슴 뛰는 삶'입니다. 비록 내 나이는 53세이어서 20대만큼 빠른 두뇌와 몸 상태는 아니더라도 50대인 나의 가슴이 뛰도록 도전하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은 열정은 있습니다. 저자는 20대에 초라하게 열심히 살면 30대에 화려한 성공한다고 역설하지만, 50년의 삶 경험을 바탕으로 재 도전하면 남은 나의 인생 제2막이 뽐 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재무설계사라는 전문가로서 그 동안 여러 가지의 부채를 상환해 본 경험자로써, 컨설팅을 해본 실무자로써, 중년에 여러가지 사정으로 많이 힘들어 하는 분들에게 채무설계를 도와 아름다운 재무설계와 은퇴설계의 전공을 전달하며, 비전과 도전 그리고 성공은 누구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