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따뜻한 기온의 남쪽도시 통영에서 자라 눈에 대한 기억이 거의없는 내게 눈은 신비로움 그 자체였다
군입대를 위해 타고간 열차에서 내리며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발목을 덮는 쌓인 눈에 내눈은 화등잔만 해 지고 입으론 우와 눈이다 눈이아라는 말로 감탄사를 연신 쏟아낸다
그랬던 첫눈의 기억은 다음날부터 원수로 돌변하고 만다 그렇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좋아했던 그 눈이 지겹도록 내려 날이면 날마다 밀고 쓸고 퍼 나르며 치우기에 온 힘을 쏟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이니 누군들 그렇지 않았을까
훈련소를 거쳐 자대배치를 받고 다시 다른 부대로 전출이 되고 부대 이름이 서너번 바뀌는 그런 와중에도 국방부 시계는 쉼없이 돌고 돌아 어느듯 나의 첫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하게 퇴색되어 악몽에서 멀어져 갈 무렵 또다시 사건이 일어난다
내가 어느정도 짬밥으로 군생활이 약간의 여유로움으로 지내는 상병시절 버스도 다니지 않는 곳으로 파견나가 근무중 회식이 있던날 그날따라 선임병들의 성화에 못 마시는 술을 기분좋게 몇잔 마시고 후임병과 동초근무를 나갔었는데 휘영청 밝은 달빛아래 온세상이 눈속에 파묻힌 그런 그런 날이었다
제대로 마시지도 못하는 술 몇잔에 열기가 올라 서 있기에도 힘든데다 구토까지 치밀어 올라 도저히 근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같이 근무서던 후임에게 나는 몸시 안좋아 잠깐 바람좀 쐬고 온다고 하고는 그대로 쉴곳을 찾았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인 그 와중에도 눈에 띈곳은 단 한곳 식기 건조대 밑 그곳은 허리까지 내린 눈밭에서 열외된 단 한곳의 유일한 쉼터였다
회심의 미소를 입에 문 나는 누가 볼세라 재빨리 그밑으로 포복잠입한 후 편안한 자세로 누워 세상 모르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조점호에서야 내가 없어진줄 알고는 야단법석 소대에 완전히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소대장이 중대장에게, 중대장은 다시 대대장에게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하고 다시 여기저기 찾아 나섰다
하지만 식기 건조대 밑은 내가 들어가고 난 뒤에도 밤새내린 눈으로 온전히 가려져 나를 발견하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일단 아침식사를 먼저 하고난 후 찾아 보기로 소대장이 결정한 후 소대원들이 한명씩 식기건조대에서 식기를 뽑아 가던중 내 후임 한명이 건조대 밑에 잠들어 있는 나를 발견하여 쌓인 눈을 치우고 꺼집어 냈는데 그때까지도 나는 술에 취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고 힌다
먼저 막사안으로 옮겨진 나는 혹여 밤새 얼었을지모를 몸을 소대원들이 주무르고 맛사지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술에 취한 난 그것도 모르고 몇시간을 더 자고 난 후에야 부시시 깨어난 뒤 일어나 앉으며 앞에 있는 후임에게 도리어 뭔 일이냐고 물었다고 한다. 이후 그 상황이 온 부대에 퍼져 한참을 부끄러워 했었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병장으로 진급을 하고 한달 후 나는 하사관 학교로 교육을 가서 두달간의 교육 수료 후 졸업을 하고 하사계급장을 달고난 뒤 다른 전우들과 부대로 복귀하여 대대장님께 복귀신고를 하러 갔는데 그때의 일을 잊지 않으시고 계셨는지 관사에 인터폰으로 말씀 하시길 여기 인삼주 4잔에 인삼차1잔 가져 오라고 하셨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우리 부대의 전설이 되어 후임병 누구나 우리 부대로 전입을 오면 그 전설을 듣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어느 누구 한사람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이후 나는 제대를 하였지만 그전설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고 한다 어언 38년이 지난 지금도 전우회를 통해 부대와 인연을 맺고 있어 옛 전우들과 가끔씩 만나면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며 전우대원들과 웃음꽃을 피우고 있으며 그시절 단 한번의 실수가 지금까지 부대의 전설로 회자 되고 있다 며칠후에 또 부대방문의 날이다 그 얘기가 전설로 존재 하는 한 나 또한 전설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