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 갈매기를 안고
방방곡곡에서 찾아오고 있는 친구들을 기다립니다.
그 소중하고 고유한 존재들을 맞이할 생각에
빈 방석을 바라보자니 기분좋게 설레입니다.
예상대로 다들 씩씩하게 잘 찾아왔습니다.
일단 식후경이지요.
우리가 얼굴 맞댄 첫 식사는 고소한 콩국수였습니다.
주어진 몫을 책임지기로 하고, 한 그릇 비워냅니다.
후식은 빨갛고 달게 익은 수박.
그 시원함을 아삭아삭 베어먹다보니
화장실 문이 자주 열렸다 닫히더군요. ^^
배도 부르고, 이제 간단한 자기소개와
5박 6일간의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합니다.
13세부터 17세까지, 각 달리 걷고있는 길.
이 다양함이 어우러질 앞으로의 시간을
친구들의 생각과 의견을 반영하며 만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김희동 선생님이 던지는 농담과 함께 부르는 고운 노래로
어색한 분위기가 풀어지기 시작합니다.
선한 얼굴들이 빛납니다.
잠깐의 휴식시간 뒤 산책나간
연구소 뒤 금호강변.
강바람이 반가움으로 불어옵니다.
연구소로 돌아온 우리가 처음 했던 것은?
연필깎기.
손잡이를 돌려 연필을 깎는 익숙함에서 벗어나
나의 글씨를 위한 연필을 천천히 느리게,
정성스레 칼로 깎아봅니다.
그리고 새 글씨 반듯꼴을 배워 쓰는 시간이 이어집니다.
한글이 처음 만들어졌을 적 본디 모습을 되살려
그림그리듯, 천천히, 곱게 글씨 쓰기.
닿소리 홀소리부터 내 이름을 거쳐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갈매기의 꿈>속 한 구절까지
한 획 한 획 연습해 나갑니다.
습관에서 벗어난 쓰기 방법이 약간은 낯설고 어렵지만
선생님께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가며 열심이지요.
이렇게
이번 학림에서 쓰일 공책 표지에
친구들만의 글씨가 새겨집니다.
「갈매기의 꿈」
옥수수 하나씩 베어물고
텃밭을 들러 저녁 먹으러 가는 길-
강물 속 물고기의 헤엄을 지켜보고
오늘의 수확물은?
방울토마토, 가지, 고추, 콩, 무우…….
식물에 관심이 많은 규영친구.
상추꽃 두 송이를 종이사이에 끼워갑니다.
그리고 다시 쭉 걷다보니
이렇게 멋진 말이 따라오기도 했지요.
갈림길에서
빠르지만 차가 씽씽 다니는 길이 아닌
느리지만 안전한 숲길을 걷기로 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걸었습니다.
대단하지요.
친구들의 발자국에 고맙습니다.
그렇게 만난 저녁밥상.
"우와~!"
세 접시를 거뜬히 해치운 친구들이 있었으니, 설명이 필요없겠지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최고 인기 메뉴는 바로 이 된장찌개.
성원에 힘입어 내일 아침밥상에서 또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설겆이를 스스로 하며 저녁식사를 마무리하고
갈매기 인형 만들기 첫번째 시간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갈매기의 몸통을 만드는 날.
권봉희 선생님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갈매기 본에 맞추어 천을 자른 후 바느질에 들어갑니다.
남자 친구들도 꼼꼼한 바느질로 권봉희 선생님의 칭찬을 받았답니다.
모두들 피곤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있게 바느질 솜씨를 보여주었지요.
실수했을때는 당당히 물어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이렇게
친구들-바늘-실이 한 땀 한 땀 걷는 걸음으로 갈매기의 몸이 태어났습니다.
그 걸음에서 날개도 움트고, 몸과 날개가 이어지겠지요.
오늘 함께 부른 노래 가사.
<별이 아닐까? 너는 별이 아닐까?>
그 고운 목소리 계속 귓가에 맴돕니다.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첫댓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참 따뜻해집니다. 제 아이가 저 안에 있지 않은데도, 마치 아는 아이들인 양 다들 곱고 대견해 보이네요. 많은 아이들이 이런 시간을 경험하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보게도 되고, 열 살 딸래미가 몇 년 후에 저런 고운 시간을 가져볼 수 있을까 꿈을 꿔 보기도 합니다.^^ (마음이 딴 데를 헤매고 있는 열여섯 살 큰 녀석은...ㅠㅠ)
따듯함이 느껴지는 사진과 고운 글을 몇번씩이나 보았습니다.
이런 선생님들 안에 제 아이와 우리 아이들이 있다는 행복감에 눈물이 날것만 같아요.
행복은 화려한것이 아니지.... 또한번 희동선생님의 통전철학을 느낍니다.
마음이 힘들었는데 (개인 일로..^^) 세상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르네요.
감사드려요.
아이를 혼자 멀리 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참 편안해졌어요. 아이에게 특별하고도 의미있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하며 이 시간을 우리 아이가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고맙고 행복하답니다. 자세한 이야기까지 올려주셔서 함께 하는 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니 따뜻한 분위기가 전해져오네요. 고맙습니다.^^
나이 마흔즈음에 치열하게
나와 만나는 중입니다.
내 삶이 이끄는데로 나를 내맡기는데도 훈련과 연습이 이리 필요하리란 것을 짐작은 했었을까요...
딸아이가 마주할 삶의 질문들이
지금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면
엄마보다는 덜 헤매지 않을까하는 부모욕심이...아직 멀었나봅니다.
: )
저역시 여행중이라 아이의 첫날과
마지막날을 함께못함이 아쉽지만
글을통해 함께함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