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안동소주’의 유래
소주의 기원에 관해서 중국에서 이미 원나라 이전부터 만들어 마셔왔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데, 중국이 원나라 이전에 소주의 음주문화가 있었다면 교류가 활발했던 이웃인 우리나라도 소주가 전래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소주의 기원도 연대를 올려 잡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당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유력하며, 신라와 당과의 긴밀한 관계를 봤을 때 한반도에도 역시 신라 때부터 마셔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당 이전부터 중국대륙은 물론 먼 중동까지 교역이 빈번했으며,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페르시아의 유리잔이 중계무역으로 왔다면 술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도 전래되어 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안동소주 역시 신라시대부터 그 기원을 잡고 있습니다.
증류기술은 아랍지역의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발명되었는데, 당시 신라는 아랍과 활발한 중계무역을 벌여왔으며, 신라 괘릉에서 출토되는 이국적 용모를 한 무인상과 페르시아 유리잔은 신라와 아랍과의 관계를 증명할 유물이므로, 이때 페르시아 유리잔과 함께 증류주의 제조법이 전래되어 왔을 것입니다.
또한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증류식 술을 마셔왔다고 하는데, 신라와 당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증류식 술이 신라시대부터 마셔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명인전』에는 연산군 때 안동으로 귀양 왔던 농암 이현보 선생이 중종반정 후 지평(持平)으로 복직되어 불요불굴의 정신으로 직무에 충실하여 동료 간에 소주도병(燒酒陶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기록에서 소주의 역사적 일단을 볼 수 있습니다. 『의서(醫書)』에서는 소주가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과 함께 현재 안동 지역민의 제보에서도 상처에 소주를 바르고 배앓이, 식용증진, 소화불량에 소주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안동소주의 특징을 살펴보면,
오직 45% 전통 안동소주3년여의 노력 끝에 조선시대 진상주 완벽 재현에 성공한 조옥화 기능보유자(무형문화재 제12호, 전통식품명인 제20호)가 만드는 민속주 안동소주는 전통성 유지를 위해 오직 45% 안동소주만 생산하며, 누룩을 직접 만들어 술을 빚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누룩인데,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곳은 민속주 안동소주밖에 없다고 합니다.
누룩을 직접 만들고 좋은 쌀과 맑은 물로 정성스레 술을 빚으니 좋은 맛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며, 통밀을 갈아 누룩을 띄운 뒤 시루에서 멥쌀로 고두밥을 찌는데 속까지 익도록 잘 쪄야 술맛이 좋으며 탁주처럼 걸쭉하지 않고 양도 많이 납니다.
찐밥은 밥알 하나하나까지 잘 식혀 누룩가루와 물을 혼합해 항아리에서 3주 정도 발효시키는데, 오래 될수록 풍미가 좋다고 하여 여러 번 되풀이되는 연속 증류방식으로 만들어지면서 불순물이 완벽하게 제거돼 오래 보관할수록 풍미가 더욱 좋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발효가 끝난 전술을 소주고리로 증류하면 이슬 같은 안동소주가 나오는데, 처음 나온 술은 알코올 함량이 70%에 이르는데 차츰 도수가 낮아집니다.
민속주 안동소주는 45%의 고도주임에도 마신 뒤 향기가 입안에 은은하게 퍼져 입안을 개운하게 해 주고 마시고 난 뒤 숙취가 전혀 없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