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료사 (신희선)
작년 이맘때 먼저 사회사업 한 언니가 있습니다.
“희선아, 단기사회사업 해볼래?”라는 한 마디로 제게 물어주었습니다.
먼저 경험한 친한 선후배 사이로 지내는 예림 언니 덕에 처음 단기사회사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기사회사업? 사회사업? 사회복지? 다른 건가? 처음 접하는지라 더더욱 갈피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학 생활하며, 책에서만 배웠던 사회복지가 항상 저에게는 의문이었습니다.
책에서 배운 것들이 현장에 나갔을 때, 봉사활동 할 때, 왜 책과 봉사는 다를까?
분야는 같지만 다른 내용일까? 왜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사회사업은 처음이라 많이 서투르고 어려웠습니다. 겁먹었습니다.
많이 두렵고 걱정했지만, 그래도 처음인지라 더 제대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배우고 싶었습니다. 방화동에서 먼저 걸언했던 사회사업 선배의
행복했던 사회사업의 경험으로, 그 이야기로, 제 생애 첫 사회사업 걸언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 배움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정현종)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회사업은 사람다움, 사회다움을 생각하는 데서 비롯합니다.
방화동에서 여름 단기사회사업 시작하기 전, 사회사업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첫 시작을 해야 했던 만큼,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사회사업 바르게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회복지 열정으로 뛰어든 만큼, 미래의 직업으로까지 이뤄나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먼저 배웠던 선배의 경험이 귀했습니다.
먼저 걸언한 예림 언니에게 권대익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선생님에게는 저를 맡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회사업 하시는 분이라며 재밌는 분이라고 소개해주었습니다.
권대익 선생님과 처음 통화할 때를 잊지 못합니다. 저는 그전까지도 예림 언니와 통화했습니다.
통화를 떨려 하는 사람이 아닌데, 왠지 모르게 많이 떨렸습니다.
심장이 쿵쾅거렸습니다. 언니의 응원에도 저는 떨었습니다.
권대익 선생님과 통화할 때에도 “네. 네.” 대답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손에 땀이 나고, 목소리가 계속 떨리는 제게 권대익 선생님은 웃으며 괜찮다며,
떨지 말라고 해주셨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낯선 사람에게
첫 대화에 격려를 받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권대익 선생님이 누구신지 더 뵙고 싶었습니다.
첫 사회사업을 좋은 권대익 선생님께,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복지요결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당사자, 사회사업, 이웃과 인정, 근본…. 새롭고 많은 단어를 들었습니다.
매일같이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그 시간이 하루하루 쌓일수록
그동안 제가 생각했던 사회복지는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봉사하며 책과 현장이 다름에 혼란스러움을 단번에 정리해주었습니다.
머리를 한 대 띵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단기사회사업한 지 중반쯤에는
나도 모르게 복지인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항상 부르셨던 그 노래가 이제는 제가 부르고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사회사업에 스며들고 있는 제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아~이게 사회사업이구나,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이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더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좋은 가르침 주신 권대익 선생님이 너무 귀합니다.
진심어린 사회사업가가 뭔지를 보여주시는 우리 선생님. 그 배움이 너무 귀합니다.
사회사업의 첫 배움을, 걸언을 바르게 이끌어주신 한덕연 선생님, 권대익 선생님
그리고 많은 조언으로 응원가 축복주신 방화11종합사회복지관의
실무자 선생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함께 머리 맞대며
열정으로 공부해준 동료들에게 고맙습니다. 함께한 사람들이 귀합니다.
* 추억
아직도 동료들과 처음 은하수 어린이공원에서 모였던 그 날을 잊지 못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사회사업이라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까,
어떻게 함께 잘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지원사로 먼저 동료들을 접했습니다. 먼저 접한지라 더 궁금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듣는 말투와 목소리 너무 떨렸고 긴장됐습니다. 모든 게 새로웠습니다.
제일 오빠라며 대화를 많이 이끌어 줬던 선재 오빠,
걷는 모습이 ‘푸우’ 같은 실무자 면접을 함께하여 더 반가웠던 새봄 언니,
예림 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 만나자마자 말 걸고 싶었던 예영 언니,
지원사의 사진에서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만났을 때 더 바라보게 되었던 예지 언니,
얌전히 앉아서 동료들을 바라보며 긴장했지만, 눈빛이 선했던 정아,
지하철역에서 서로를 먼저 알아보았지만 부끄러워 인사하지 못했던 민주.
그때의 서로 알아가려 하지만 부끄러워했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부터였을까요?
다 같이 모였을 때 많이 떨렸지만,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함께함이 두근거렸습니다.
11명의 치열했던 경쟁률을 뚫고 모인 만큼 더 귀했던 것 같습니다.
7명의 동료가 모여 하루하루 나아갈수록 서로를 알아가고, 더 가까워졌습니다.
호형호제하기로 하며 더 애틋해지며,
함께 방화동에서 사회사업하고, 사회사업 꿈꾸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느꼈습니다. 평생을 함께할 동료들을 만났다는 것을요.
함께 머리 맞대고 어떻게 하면 사회사업 잘할 수 있을까, 바르게 할 수 있을까를 공부했습니다.
많이 어려워하기도 했고 답답해하기도 했습니다.
힘들고 지치고 헤맬 때도 우리는 함께 했습니다.
더 함께 격려하고 응원했습니다.
복지요결로 공부하며, 실무자 선생님들께 조언 들으며 그리고
당사자와 만나며 이웃과 인정을 느꼈습니다. 배웠습니다. 배우며 쌓아갔습니다.
고려산을 동료들과 함께 올랐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체력이 약한 동료들도 있었고, 지친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무릎이 약한 저에게는 더더욱 많이 힘들었습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권대익 선생님께 포기한다고 이야기할까,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할까. 수없이 많이 고민했습니다.
정말 많이 힘들었고,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다들 힘들었을 텐데 더 저를 챙겨주었습니다. 오르는 내내, 내려오는 내내 응원해줬습니다.
함께해줬습니다. 정말 고마웠습니다.
모두가 힘들었고 지쳤을 상황에 티 내지 안아준 동료들을 잊지 못합니다.
사회사업 동료라는 이유로, ‘함께’라는 이유로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해주며 격려해준 동료들이 귀합니다. 그 눈빛과 행동의 따스함을 잊지 못합니다.
힘들면 표정에 바로 드러났던 저의 습관도 이제는 다듬어졌습니다. 힘들어도 웃게 되었습니다.
동료들이 언제나 저를 보며 웃어주었고, 함께 나눴고, 어떤 일이던 섬기며 경청해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틋하고 서로를 아끼는 사람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6주라는 시간 동안 함께 웃고 울었던, 발바닥 닳도록 두루 마을을
함께 살피며 공부했던 동료들과 이제는 매일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정말 많이 기억날 겁니다. 잊지 못할 겁니다.
6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함께 해준 동료들이 너무 귀합니다.
힘들고 지친 상황에서도 호형호제로 섬겨준 동료들.
선재 새봄 예영 예지 정아 희선 민주.
항상 7명이라며 불렀던 이름. 챙겼던 사람들. 정말 소중합니다.
함께했던 그 시간 덕에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웃고,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냥 함께 머무름이 귀합니다.
이 시간이 지나가도, 함께 배운 실습의 시간이 끝나고 잊지 않을 겁니다.
이 인연 계속 이어 나갈 겁니다. 많은 시간을 나눈,
그 시간에 어떤 상황에도 서로를 생각해준
선재 새봄 예영 예지 정아 민주. 잊지 못할 겁니다. 고맙습니다.
* 소망
2020년 여름 단기사회사업하며 사회사업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우리 동네에 나쁜 개는 없다’ 사업을 맡으며,
당사자들과 함께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며,
사람 사는 냄새 누구나 정붙일만한 사회가 행복한 사회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이라 두려웠고, 처음이라 서툴렀습니다.
조금은 느리고 뒤쳐졌다 생각되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하게 당사자와 함께, 당사자가 주인 되게 도왔습니다.
당사자와 함께하며, 당사자를 도우며 어른과 아이가 함께 공존하며,
사회사업가가 발맞춰 돕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실천이 첫 발단이 이번 사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이었던 만큼, 방화동에서 배웠던 사회사업을, 그 방법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3주 동안 함께 어떻게 하면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잘 할 수 있을까, 머리 맞대며 활동했던
김경옥 님, 전선미 님, 정연이, 이정이, 다연이, 사랑이를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한 번의 경험이 모든 것들을 좌우할 순 없지만,
좋은 기관과 좋은 슈퍼바이저 선생님께 배운 깨달음과 경험이
사회복지 현장에서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대학교 3학년의 자리에서 현장에 나아가는 준비를 하러 돌아갑니다.
아직은 열심히 준비하고 있지만, 이 준비가 이 경험이 어렵고 흐릿하다, 처음이라
두려워하기보다 ‘처음이니 더 마음껏 사회사업 열심히 준비할 수 있겠다.’ 생각하려 합니다.
앞으로 남은 대학 생활동안 엉덩이 싸움에서 이기겠습니다.
사회사업과 더 가까이 친해지며, 공부하고 준비하겠습니다.
현장에 나아갈 때쯤에는 준비된 사회사업가가 될 수 있도록,
진심으로 당사자를 만날 수 있는 사회사업가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올해 여름, 방화동에서의 걸언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서툴러도 어려워도 그것을 진심으로 바라보며, 현장에 나아갈 준비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겠습니다. 비록 그 준비가 소박할지라도, 차곡차곡 쌓아 발전시키겠습니다.
속도에 맞춰 최선을 다해 천천히 나아가겠습니다.
당사자와 발맞춰 걸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귀한 동료들과 귀한 실무자 선생님들께 발바닥 닳도록 경험하고 배운 만큼 잘 기억하겠습니다.
6주 동안 함께 했던 방화동 주민들 그리고
많은 가르침과 진심 어린 응원을 아낌없이 나눠주신 권대익 선생님,
그리고 호형호제하며 정말 잊지 못할
선재 새봄 예영 예지 정아 민주 정말 고맙습니다. 함께함이 행복했습니다.
첫댓글 이예림 선생님 덕분에 신희선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공부 실천 추억 글쓰기. 4가지 핵심어로 6주 동안 함께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긴장하며 방화11 실습 지원한 날이 얼마 되지 않은 듯 한데,
두 달이 지나고 좋은 선후배, 동료로 남았습니다.
귀한 인연을 꾸준히 이어갑시다.
남은 사회복지 대학생활을 뜻있게 잘 보내기를 응원합니다.
올해 여름이 희선에게 오래오래 남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