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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역사 하나님 나라 그 하나 됨의 위대한 서막 1
2000 years of history, the great beginning of the unity of the kingdom
2000년 역사 하나님 나라 그 하나 됨의 위대한 서막- 1( 네이버 블로그는 한 번에 업로드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두차레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
(2000 years of history, the great beginning of the unity of the kingdom of God)
할렐루야!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하나인 것과 같이 모든 이 세상의 믿는 무리도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이 주님의 뜻인 줄 믿습니다. 약 500년 경에 천주교에서 개신교가 나왔고 그리고 천년 전에 정교회가 천주교에서 분리되었습니다. 주님의 뜻이 있었겠지만 주님의 큰 아픔이 되었을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주님께서 이 땅의 교회에 원하시는 것이 분열이 아니라 하나 됨이고 단절이 아니라 연결임을 믿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지 2천 년이 지났습니다. 교회는 양적으로 크게 성장해서 지구 인구의 약 1/3이 다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열심히 주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며 주님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주님께서 오셔서 교회나 교파를 보고 구원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잘 믿는 것을 통해서 구원하실 것을 믿습니다. 약 35년 전에 저를 부르시어 도구로 삼으시고 천주교인 아내를 통해서 천주교를 배우고 그리고 아내와 이혼을 통해서 분리의 큰 고통을 겪게 하시고 이제는 정교회의 나라 러시아에서 온 아내와 함께 정교회도 배우게 하시고 이 세상의 세 교회가 하나가 되게 서로 분열을 가져온 이신칭의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를 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이 짧은 글을 통해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세상의 신자가 교파를 초월해서 이 부분에 있어서 하나가 되게 하나님이여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그 놀라운 증거로 글을 읽는 모든 분께 놀라운 일이 생기게 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십자가 대속의 사랑을 확인하며 그 심령이 불과 같이 뜨거워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의가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것을 보면서 틀림없는 세상의 심판이 존재함을 뼈저리게 느껴서 회개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소서! 그리고 십자가 사건 이전에 이미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벌하지 않고 길이 참으시며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모든 죄를 비로소 용서받게 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을 보면서 성경은 과학 중의 과학임을 깨닫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주여 모든 사람의 영안을 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시고 이 땅에 사는 모든 크리스천이 오직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서로 형제로서 국적과 인종과 남녀노소를 초월해서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고 문제가 있는 사람들,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의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크신 은총을 베푸사 성경을 이해하게 하시고 그 문제가 어떤 문제이든지 해결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신칭의에 대해서 빙산의 일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세상의 주님의 백성들이 이 글을 통해서 진정한 이신칭의의 뜻을 이해해서 이제는 성령을 받는 일에 관심을 갖고 교파를 초월해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이 놀라운 일이 주님의 은혜로 온 세상으로 퍼져가게 하소서!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와 우리가 사는 터전을 사정없이 파괴하는 쪽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믿는 이들이 온 세상에서 오직 예수님을 믿는 이유 하나로 형제가 되고 서로 다정하게 관용하며 정을 나누게 하시고 연합해서 세상에 선을 행하며 주님을 증거하며 주님의 의와 그 나라를 굳게 세우게 하소서! 모든 이곳에 오시는 분이 복을 받게 놀라우신 은혜를 모두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하나님의 도구로 부르심을 받은 김 정관 목사(다윗 목사)입니다. 저는 루터나 캘빈이 성경적인 진리를 발견하고 놀라워했던 것과 같이 놀라면서 전합니다. 그리고 우쭐대다가 너무나 큰 다양한 고통을 겪고 회개했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하셨는데 저도 역시 별 볼일이 없이 아래와 같은 성경의 내용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자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이 설쳐대었습니다. 그러나 이도 잠시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습니다. 한 번은 직장에서 일을 하다가 넘어져 왼 발의 인대가 두 개나 완전히 끊어져서 5개월간 수술하고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설치다가 아침에 직장에 가려다 쿵 하고 쓰러졌습니다. 아내의 기도로 겨우 일어나 하려고 하던 일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허리와 허벅지와 정갱이 부근에 통증이 왔는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와서 이를 견디려 온 힘을 다 쏟았는데 2개월이 지나도 낫지 않고 더 오래 사시길 바랐는데 어머니께서 소천을 하셨습니다. 마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시던 분이셨는데 이제 기댈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참으로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겸손해라 겸손해라 하시고 마음을 낮추면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고 또 통증이 오면 낮추고 그렇게 자동적으로 할 수가 있게 훈련을 받고 있으면서 제 글도 그 방향이 버르장 머리가 없던 곳에서 이제는 조금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비난, 비판 그리고 정죄를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으로 집중해서 행했는데 제게 온 고통은 하루 종일 지속되고 끝내는 고통의 끝을 보여주심으로 마침내 제가 하는 정신이 나간 일을 깨닫게 되고 이렇게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의 구원은 몰론 믿는 사람들이 서로 교리가 달라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서로 용납하면서 더욱 온전한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천주교와 루터를 비롯한 개신교도 이신칭의 문제가 있지만 분리가 아니고 단절도 아니 되며 서로가 존중하며 하나가 되는 것이고 정교회와도 그렇고 개신교내에서 루터나 캘빈의 이신칭의가 500년이 지나서 비록 새롭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절대로 캘빈이나 루터를 비판하지 말고 당시의 상황에선 최선의 주님의 뜻으로 보고서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공부를 해서 보완하고 발전하는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고 이들과 분리나 단절을 말고 하나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런 고난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제 글은 이미 여러 차례 설명을 드린 내용들인데 새로 파워포인트로 정리하고 그리고 한글로 또 파워포인트 자료가 핸드폰으로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다시 설명을 드립니다.
아무쪼록 모든 분들이 제가 하나님께 받은 성경의 내용들을 촘촘히 검토하시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시길 기도합니다. 이 자료들은 모두가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성령님의 감동하심으로 모두가 만들어졌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인내와 자비로 큰 죄를 지었던 죄인이 용서를 받고 끊임없는 격려로 성경을 읽고 정리하면서 이해되고 전도를 하면서 성령님의 감동으로 이해되고 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새로운 깨달음이 올 때 늘 기쁨과 함께 오고 저는 그 깨달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곧바로 노트에 적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오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왔고 무슨 일을 하든지 이를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모든 일을 잠시 중단하고 받아 적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수도 없이 모였고 나중에 이런 성경의 이해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들떴습니다. 그리고 마음대로 손을 놀리다 크게 얻어맞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식은 모든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쪽으로 사용이 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이제까지의 이해에 덧붙여 새로운 이해를 첨가해서 조금 더 세밀하게 그리고 더 정확하게 성경 말씀을 만나고 빙산의 일각을 넘어서 깊이 물속에 잠긴 빙하의 참된 모습을 보듯이 성경을 보면서 칭의 논쟁으로 나누어진 교회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더 옳다가 문제가 아니라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시나 즉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나를 살피며 주님께서 밝힌 길로 가면 되는 것이지 누가 더 옳다 더 잘 안다는 문제가 아니 될 줄로 믿고 우리의 모든 신앙을 조금 다른 성경의 이해를 만나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새롭게 더 충실하게 하면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 이렇게 원대하게 설명한 본문의 내용과 칭의의 내용들을 차례로 보면서 과연 제 주장이 맞는지 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우선은 파워 포인트 29장이고 이를 컴퓨터로 보시면 조금 글자를 작으나 읽을 수가 있는데 핸드폰으로 보시기 어려운 부분은 한글로 다시 정리를 해서 보이니 한글 문서로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읽어 보시고 읽는 중에 하나님의 위로와 자비가 충만히 임하시고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위의 내용을 한글 문서로 다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의(롬 3:21-26)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정받는 이인칭의(Righteousness from Faith) 지금 상황에서 내가 사는 유일한 길은 이런 사실과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天國) 첫 강의 목차
제목: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의
목차: 1. 서문
2. 성경 본문- 로마서 3장 21-26절, 로마서 5장 8절
3.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1) 하나님의 사랑
2) 구원
4.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와 이신칭의
1) 그림.
2) 하나님의 의.
3) 이신칭의에 대해서
(1) 이신칭의의 성경적 근거. (2)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예.
(3) 칭의의 주체-하나님과 나. (4) 칭의의 객체- 죄인인 인간.
(5)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
(6) 칭의 된 믿음의 도표
5. 찬양, 간증-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말씀이 이루어짐
1. 서문
고달픈 인생! 내가 지고 살아야 하는 삶의 무게가 너무나 무겁게 느끼어진다. 왜 나는 이렇게 좋은 나라에서 빛이 한줄기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허덕이며 살고 있는가? 사람들은 내가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하고 가족도 내 탓을 한다. 정말로 내가 무능해서 이 세상이 이렇게 버거운 것일까?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고 공부도 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부지런히 살았는데 왜 나만 이렇게 뒤에 처져 있는 것인가? 나에게는 희망도 없고, 돌파구도 없는가? 내 주변의 누구도 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홀로 이 우주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렇게 느끼는 것은 나 혼자 만의 생각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버겁게 사는 것도 내 잘못이 아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이 있는데 확실한 것은 내가 아직도 그 원인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 탓만 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나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복을 주시는 가장 권세가 강한 분과 관계가 틀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겸손히 이를 인정하고 이 관계만 바로잡으면 나는 모든 짐에서 해방이 될 수가 있고 자유롭게 될 것이다.
사람 편에서 틀어버린 관계를 바로잡고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님을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를 위해서 보내셨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킨 주범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죄를 짓는 사람이 받아야 할 형벌인 피를 흘림과 죽음을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그분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받도록 하셨다.
모든 인류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나도 역시 예외가 절대로 될 수가 없다. 하나님 앞에 죄는 마음으로 짓는 죄도, 양심을 어기는 죄도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을 어기는 것도 모두가 죄인데 하나님도 모르고 그분의 법도 모르고 산 나는 사실 밥만 먹으면 죄를 쉬지 않고 지었던 존재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다 그렇다. 이제 이런 나를 사랑하셔서 나의 모든 문제의 원흉인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그분의 아들을 나 대신에 희생시키신 것이다.
이제 이런 나의 구세주 예수님을 믿으면 나는 나의 죄를 용서받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바로 잡히게 되어 죄로 인해서 내가 홀로 지고 살던 모든 짐에서 해방이 된다. 사망의 굴레도 벗게 되고 저주의 문제도 해결이 된다. 마음이 치유받고 기도가 상달이 되고 믿는 모든 사람과 형제가 되며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시고 통치하시는 예수님을 주로 모시게 된다.
이제 인생의 모든 짐을 다 벗어던져도 된다. 해방을 노래하고 자유를 소리쳐도 된다. 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이 진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도 받게 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은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다.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해서 자유를 누리자
예수님을 믿기로 했으면 가까운 교회에 출석하거나 혹은 성경을 읽기 바란다. 그리고 나를 좌절케 하고 나를 실패하게 했던 과거의 잘못된 행위들을 끊고 새롭게 살기를 바란다. 더 깊은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알기를 원하는 분은 뒤의 글을 읽기 바란다.
이 작은 책자는 영어로 번역이 되어 온 세상의 사람이 다 보게 될 것이고 동영상을 만들어서 영어로 한국어로 설명을 할 것이다. 읽게 되는 많은 분들이 위로받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되고 주님께 즐겁게 헌신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표지를 천국으로 하고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로 천국을 설명하니 한자로 표시를 했고 두 번째 페이지에서 이 책을 통해서 나눌 하나님의 은혜의 제목을 적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그 타이틀로 정했는데 이는 로마서 3장 21-26절의 말씀을 요약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를 선포하는 로마서 5장 8절을 본문으로 설명할 것이다.
흔히 십자가 하면 예수님의 대속을 설명하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죄인인 인류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요하게 설명하는데 이는 틀림이 없는 진리이다. 그리고 복음이다. 이와 함께 로마서 3장 21-26절에서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는데 역시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을 통해 설명한다. 한 인류 구원의 위대한 사건에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의가 동시에 나타나 있음을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로우신 하나님으로부터 성도의 의에 대한 인정을 본문과 본문에 등장하는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을 보면서 설명하고 이를 인정하는 주체인 하나님과 그리고 인정을 받는 객체가 되는 인간 즉 죄인 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고 그리고 이들의 어떤 믿음이 칭의가 되었는지 성경을 통해서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도표로 알기 쉽게 한눈에 보도록 표시했다.
모든 인생이 한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의를 잘 인식하고 이 땅에 살면서 가장 먼저 해야 되고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 모든 문제에서 해방이 되는 삶의 길로 한 분도 빠짐없이 들어서길 간절히 기도한다.
2. 성경 본문- 로마서 3장 21-26, 5장 8절
로마서 3장 21-26, 5장 8 절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개역개정)
21. 그러나 이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은 율법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율법서와 예언서가 바로 이 사실을 증명해 줍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무런 차별도 없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십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느님이 주셨던 본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렸습니다. 24.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모든 사람을 죄에서 풀어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 은총을 거저 베풀어주셨습니다. 25.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26. 오늘날에 와서는 죄를 물으심으로써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올바르시다는 것과 예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공동 번역)
21. But now a righteousness from God, apart from law,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23. 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 and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25. God presented him as a sacrifice of atonement, through faith in his blood.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justice,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26.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justice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NIV)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8.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8. But God demonstrates his own love for us in this: While we were still sinners, Christ died for us.(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2-1 성경 본문의 설명(로마서 3장 21-26절)
로마서 3장 21-26절은 개역개정과 공동 번역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글로도 이해가 쉽지 않다. 그리고 영어 성경도 역시 그 표현을 다양하게 했다. 우리는 이 구절을 반드시 올바로 이해를 해야 된다. 이 구절 속에 하나님의 사랑도 있고 하나님의 의도 있고 이신칭의도 있다. 그리고 구약이 들어 있는데 예언서와 율법서로 표현이 되어 있다. 아울러서 구약의 제사 제도가 제물, 희생, 피 흘림 등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성경을 과학 중의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은 어떤 현상을 관찰하고 이를 설명하며 이를 이론화한 것으로 증명이나 검증이 가능한 것의 집합체를 과학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이런 과학에 비추어서 모든 면에서 정확한 과학 중의 과학이다.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하면 할수록 글자 한자 한자가 다 진리로서 우주와 인간과 그리고 역사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한다. 내가 이런 과학적인 성경을 아직도 믿지 않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렇게 정확한 성경을 무슨 원인으로 내가 읽지도 않고 있고 읽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성경을 겸손한 마음으로 대하고 읽으면 누구나 성경이 진리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본문 21절은 하나님의 한 의가 율법과 별도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 의는 율법서와 예언서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의미는 율법이 의에 대해서 규정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과 온 인류에게 주어졌는데 이 율법이 추구하는 정의나 공평, 혹은 공정 그리고 죄에 대한 합당한 벌의 모습이 아니라 예언서 즉 하박국서에 그리고 율법서 즉 창세기에 이미 예언이 되어 있는 하나님의 한 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의로서 인종, 국적,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이 예수님을 믿으면 얻게 되는 의라는 것이다. 율법이 추구하는 의와 완전히 다른 믿음을 통해서 오는 의인데 이 의가 하박국서 2장 4절에 그리고 창세기 15장 6절에 예언이 되었다는 것이다. 23절은 아담의 죄로 에덴에서의 영생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담의 죄와 우리가 살면서 짓는 자범죄로 인해서 우리가 죽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24절은 하나님의 사랑과 의의 표현이 동시에 있는 십자가 사건 즉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을 통해서 우리는 아무런 노력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 해도 의롭게 될 가능성이 1%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25절은 성경이 과학 중의 과학임을 증거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의 이해는 구약의 제사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구약의 동물의 피를 흘리는 제사는 피가 생명이며 죄의 대가는 사망으로서 피 흘림이 없이 용서가 없기에 하나님께서 오직 택한 민족 이스라엘에게만 죄의 용서의 길을 열어 주셨는데 이를 율법으로 규정하고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으니 구약의 의미가 여기에서 유래된다. 누가 죄를 지으면 제사법에 따라 흠 없는 짐승을 성막에 가져가서 제사장과 함께 율법에 정해진 규정대로 피를 흘리고 잡아서 제물로 드릴 때 그 사람의 죄가 용서가 되었는데 이 율법의 규정대로 예수님께서 똑같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이것이 대속이며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셔서 속죄를 한 것인데 이는 피를 흘려야 죄를 속할 수가 있다는 믿음 즉 이런 제사 제도에 대한 믿음으로 이런 제사 제도의 원형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죄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가 화목케 되는 제물이 되셨다는 것이다.
25절의 끝부분의 이해가 참으로 중요한데 망극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를 온 세상에 나누는데 실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를 길이 참으시며 쉬지 않고 감동하시고 격려하시고 깨닫게 해 주신 우리 주 예수의 사랑이며 하나님의 은총이며 성령의 감동임을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신 이유를 설명하는데 영어 버전을 통해서 이해를 해야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기 전에 우리가 과거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무슨 의미인가? 죄에는 합당한 벌이 오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인데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죄를 짓는 모든 인류를 그냥 보시기만 하고 바로 벌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의미로서 이것은 실로 하나님 편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길이 참으시는 중에로 설명한다.
여기서 간과는 용서와는 의미가 다르다. 용서는 완전히 죄를 없는 것과 같이 한다는 의미이지만 간과는 죄에 대한 벌을 유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시고 피를 흘리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시고 이제 이를 믿는 사람들을 완전히 용서하시고 의롭다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성경은 가히 과학이라고 하는 놀라운 사실이 숨겨져 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지 않고 바로 죄인인 모든 인류를 죄에 합당한 벌을 바로 내리셨다면 나중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위해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다 하면 이미 죄에 대해서 벌을 받은 사람은 아니 이미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합당한 처벌을 받아서 몸이 망가지고 재산이 날아가고 명예가 실추가 되었는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죄가 용서가 된다고 하면 내게 과연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반드시 하나님께 항의하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은 이런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서 오는 인내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내가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서 아직도 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면서 즉시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모든 죄로 인한 처벌에서 자유 하게 되니 얼마나 내게 복된 소식이 아닌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의해서 새롭게 살게 된 사람들이니 이를 전파하고 찬양함이 당연하지 않는가? 25절 하반부에 영어 성경은 분명하게 과거에 지은 죄를 벌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정의를 나타내셨다고 하는데 모든 인류의 죄에 대한 벌을 반드시 내려야만 하나님의 정의가 실행이 되는데 이를 자신의 아들이 대신 받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벌을 반드시 내리시는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26절은 하나님께서 이제 와서 이렇게 즉 위와 같이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의 의를 드러내신 것은 자신도 의로우신 분이시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려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다. 영어 성경도 참고를 해야 하고 공동 번역도 참고를 해야 되는데 모든 번역이 이렇게 해석을 하도록 도왔다. 성경 정리 공부법을 오천만의 로마서에 소개를 했는데 이 공부법이 이렇게 의미를 찾아가는 길잡이가 되게 했으니 장신대 신대원 공부를 위해서 25년 전에 방문했을 때 어떤 수험생이 테리 홀의 파노라마 성경을 소개해 준 것도 하나님의 인도함이니 그 책 속에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법을 소개를 했는데 장신대 신대원 공부도 잊고 성경 정리에 기쁨을 누리게 하시고 계속해서 성경을 정리하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은혜이고 나는 게으르고 무지하고 제갈 길로 가고자 쉬지 않고 몸부림쳤고 그리고 때로는 심각한 죄도 지었던 하찮은 인간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본문을 이렇게 설명을 드리는데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리라 믿는데 이를 바탕으로 더욱 올바른 이해로 모두가 전진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의를 깊이 이해하고 온 세상을 품고 사랑하고 정의롭게 살기를 기원한다.
2-2 성경 본문의 설명(로마서 5장 8절)
하나님의 모든 은혜로 이 페이지를 마지막으로 기록한다. 먼저 파워 포인트로 27페이지를 완성하고 컴퓨터로 카피를 하는데 5장 8절의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에 대해서 글이 빠졌음이 보이면서 무엇을 쓸까 하니 별로 떠오르는 말들이 없다. 그 순간 문을 누군가가 두드리며 책을 한 권 가져다준다. 군산 늘 사랑 교회 교인인데 어제 부활 전도 책자를 한 권 나누어 주었는데 자신도 선물로 한다며 제목이 “하나님의 광야 학교”이고 저자는 고영환 목사님으로서 군산 늘 사랑 교회 담임이신 분이 쓰신 책이다. 감사를 드리며 주신 분이 나가자 곧 읽어 보았다.
책의 87페이지에서 98페이지를 읽는데 곧 눈물이 난다. 책을 출판했을 때 굉장히 인기가 있었다고 조금 책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는데 목사님께서 자신의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그리고 재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아직 어릴 때 버스에 깔려 죽은 것을 눈앞에서 보시게 되는데 이런 일반인이 한 번도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들을 눈앞에서 잃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제 이해가 되느냐고 물으시면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 아버지의 상한 마음도 전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이 책은 만 삼천 원의 작은 책자인데 모든 분이 사서 읽어 보시면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가 있으리라 믿는다. 참으로 완벽한 타이밍의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5장 8절은 관련된 구절과 함께 이해를 해야 되는데 로마서의 핵심 구절이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의로운 이를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고 희생하는 이가 거의 없는데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실히 증명하셨다고 말씀하신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우주에 어디에 있겠는가? 나로서는 너무나 이 사랑을 설명하는데 부족함을 느낀다. 나보다는 위의 목사님께서 아들과 아내를 잃는 경험을 하시고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보다 더 깊이 이해하셨으니 그분의 책을 통해서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더 절절히 이해하길 부탁을 드린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아들의 사랑을 늘 묵상하면서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고 넓이를 더욱더 잘 이해하는 것이 성도의 삶이고 기도이다. 진실로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6장의 말씀을 하루에도 쉬지 않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변의 분들을 따뜻하게 사랑함이 우리 모두의 변치 않는 사명이며 의무임을 굳게 믿는다. 로마서의 깊고 넓은 바닷속으로 이신칭의의 얕은 이해를 넘어 모든 성도가 힘차게 나아가자!!!
3.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1
십자가 하면 생각나는 말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모두가 빨간색이 대부분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빨간색 무슨 관련과 사연이 있는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이는 나에 대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에게 빨간색으로 나타난 것인가? 빨간색은 단심이라 하여 한결같은 마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빨간색과 가장 급히 연결이 되는 것은 피다. 피가 빨간색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빨간색이고 이는 피로 표현이 되었고 이를 다시 십자가로 표현을 왜 했을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빨간색의 피와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피는 생명이고 피가 없으면 죽음이다. 그래서 자신의 피를 흘리는 것도 위험하게 생각하고 타인의 생명을 해하는 일은 피를 흘려야 한다.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이 피로 그리고 십자가로 왜 나타난 것인가. 십자가 하면 떠오는 첫 사람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참혹한 십자가형을 당하시고 죽으셨다. 이는 사실이다. 십자가도 예수님을 나타내시고 성경도 신구약이 예수님을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져야 할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를 지셨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 장사 후에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고 모든 이를 심판하시고 재림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약속대로 예언대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인간의 모습을 입으시고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려 오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을 가지고 계시며, 요한복음은 세상의 창조주가 예수님이라고 하고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이시고, 빛이시며,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 주라 한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피로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나타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지만 오직 하나뿐인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 아들을 피를 흘리고 죽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이다.(롬 5:8) 어떻게 하나뿐인 아들을 우리를 사랑해서 바치시기까지 하셨을까
이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 죄는 지은 사람이 피를 흘려야 하고 죽어야만 해결이 되는데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아들을 피를 흘리고 죽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이 사랑을 묵묵히 실천하신 이기 바로 예수님이시다. 누구든지 이 아들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고 우리는 영생을 누리게 되고 문제가 해결이 된다. 나의 유일한 살길이다. 우주에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리이고 최강의 복되고 기쁜 소식이다. 먼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자.
인간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보기 전에 먼저 알아야 됨)―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3.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구원 2
십자가도 사실이고 예수님도 사실이다. 이 순신 장군을 보지 못해도 믿는 것은 기록과 유적이 있기 때문이다. 2천 년 전의 예수님을 온 세상의 수십억 명의 사람이 다 믿는 것은 그분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기록은 예수님의 생애를 곁에서 생생하게 지켜본 사람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분을 본 사람과 믿는 사람이 증거하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끊어지지 않고 그 수를 늘리면서 지금까지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도 진리이고,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시작이 된 것이고 누가 사람이 상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누가 한 사람을 속일 수가 있고 여러 나라를 속일 수가 있고 그리고 수백 년을 속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과 많은 나라와 오랜 역사를 통해서 속일 수는 없다. 거짓은 시간이 가면 곧 탄로가 나고 모든 사람이 거짓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구약은 4천5백 년, 신약은 2천 년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가 온갖 수를 다 써서 이를 부인하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성경 말씀이 거짓이 아니라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사람과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게 오랫동안 믿고 있는데 이는 성경이 틀림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줄기차게 증가하고 있고, 온 세상이 다 예수를 믿으니 이를 거짓이라 말하는 것은 오리려 내가 너무나 잘못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이고 이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우리의 주를 믿는 것이다. 그분의 본래의 모습과 그분의 사역과 그분의 말씀인 성경과 그리고 그분의 재림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죄인인 나도 너도 그리고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는다.
구원은 성경을 검색하면 수백 개의 구절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쓰임이 하나로 통일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경의 검색을 통해서 정리를 해 보면 어떤 사람을 어떤 곤경에서 건진다라는 의미가 있으니 이는 우리를 죄에서 죽음에서 건진다라는 말로 이해가 된다. 그리고 해방한다란 말로도 쓰이는데 죄로 인한 죽음과 저주에서 벗어나게 한다. 자유 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고 회복시킨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역시 죄로 인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는데 이를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원은 죽은 사람을 살린다 라는 의미도 강하게 있다. 죄로 인해서 영원히 살게 창조된 인간이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누구나 죽게 되는데 이런 죽음에 이른 사람을 살려서 영원히 살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구원은 높인다. 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는 죄로 인해서 수렁에 빠지고 깊은 지옥 갈 우리를 건져서 높인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백성의 삶과 영광스러운 지위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의미한다. 그리고 구원은 승리하게 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인간을 꾀어서 죄를 짓게 하고 지옥으로 인도하는 마귀와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뜻이다. 마귀의 싸움에서 승리함으로 그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낸다는 의미이다. 이 외에도 고친다, 문제를 해결한다. 등 여러 가지 의미가 복합된 말로서 우리는 구원의 의미를 잘 이해를 해야 된다.
예수님을 통한 우리의 구원은 죄로 인해서 죽게 되고 저주를 받게 되고 그래서 소망이 없던 우리를 이와 같은 구원의 의미로 구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영생을 누리고 죽음을 극복하고 죄의 사슬에서 자유 하게 되고 낮은 저주의 자리에서 영광스럽게 높여지고 그리고 모든 마귀의 궤계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놀라운 진리를 논하기 전에 먼저 나의 구원을 점검해야 한다. 의롭게 인정을 받는 이신칭의는 구원을 얻은 하나님의 백성의 믿음의 삶, 혹은 생활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그 사람에게 인정하시는 놀라운 은총이기 때문이다.
의롭게 되는 것도 믿음이지만 구원을 받는 것도 역시 믿음으로 인함이다. 앞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그리고 이를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고난 즉 피 흘리심과 십자가 대속을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 이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지지만 성도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식하고 죄에 대해서 겸손하게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절차에 따라서 교회에서 교육을 받고 예수님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죄를 용서받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령을 기다리게 된다, 때가 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틀림없이 임하셔서 이 사람을 능력으로 살게 하신다. 이렇게 성도가 믿음의 생활을 성령의 인도로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하나님의 때에 의에 대한 인정을 어떤 믿는 사람에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논할 이신칭의이다. 이에 대해서 계속해서 알아보자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이신칭의의 성경적 근거와 의미 칭의의 주체 하나님인가 혹은 나인가?
믿음, 칭의의 객체인 인간, 믿음의 방패
4-1.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인간의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은 한계가 없다. 진시황은 죽지 않는 약초를 구하러 온 세상에 사자를 파견했다. 그리고 거대한 무덤을 건설했다. 이집트의 파라오도 거대한 피라미드를 사후에 자신의 부활을 위해서 사막에 건설했다. 모든 권력자가 영생을 위해서 할 수가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 모든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 돈과 시간과 모든 열정을 다 바친다. 이 작은 문서가 그 길을 틀림없이 그리고 부족함 없이 알려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오직 5분의 시간을 절대로 아깝게 생각지 말기 바란다.
위의 그림은 앞에서 설명드린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피를 흘리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형상과 그리고 이를 믿고 의롭게 되는 성경 구절이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과 이렇게 십자가를 통해서 피를 흘리고 독생자가 죽어야만 구원이 되는 우리 인간에 대한 설명이다.
십자가에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가 동시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어주신 사랑으로 나타난 것은 이미 살펴보았다. 이제 그분의 의가 어떻게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났는지 보자
하나님께서 사랑이시지만 그래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서 내어 주셨지만 또한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은 성경을 통해서 잘 나타나 있다. 그분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하는 법인 율법은 하나님께서 정의로우신 분이심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정의는 올바름이며 공정함이기도 하지만 또한 죄에 대한 벌과 심판으로 나타난다. 죄를 지으면 합당한 벌을 받는 것이 성경의 정의이기도 하고 세상 법의 정의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의 죄로 인해서 죽게 된 운명에 처해졌다. 오직 자신의 피 흘림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 이에서 벗어날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이런 인간을 사랑하셔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받아야 할 마땅한 죽음의 형벌을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받도록 하셨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 죄인 된 인간에 대한 사랑의 확실한 증거이다. 또한 하나님의 의의 실행이 인간이 죄로 인해서 완전한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지 아니하시고 독생자를 보내시고 대신 형벌을 받게 하셨으니 이 벌이 피 흘리심과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저주를 지시고 묵묵히 그 부끄러움과 고난과 죽음을 맞으셨으니 이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인함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 예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참혹한 십자가의 중한 짐을 지신 것이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으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어 흘러내리도록 기도하셨다. 끝내는 택한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 의해서 고소되고 총독 빌라도의 사형 판결로 십자가를 어깨에 메시고 골고다로 향하셨다.
그곳에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이 박히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달리셔서 운명하셨다. 실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우리의 나음을 위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창에 찔리시고, 우리를 화평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으셨다. 그리고 우리를 살리려고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장사한지 사흘 만에 예수님을 부활하게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세상을 주관하시며 심판하시려 재림하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가 예수님을 통해서 십자가에 나타났으니 이를 통해서 믿는 우리는 의롭게 된다.
그리고 정의는 모든 권력자를 비롯해서 인간의 추구하는 또 하나의 가치이다. 불의한 자나 국가나 단체는 온 세상의 지탄을 받고 생존을 할 수가 없다. 개인도 마찬가지로 어디에서 죄로 낙인이 찍히면 인생이 바로 끝이다. 회복되기 어렵다. 그래서 모든 인간과 국가와 단체는 정의를 표방한다. 그 정의 그 의를 바로 나도 받아 누릴 수가 있으니 이는 바로 세상을 만드시고 모든 인간과 국가와 단체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가장 우주에서 높으시고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이다. 내가 살인을 했든, 간음을 했던 도적질을 했든 속였던 폭행을 했던 세상의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내가 누구도 덤빌 수가 없는 유일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는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 내용을 설명하고자 위의 그림으로 표현을 했는데 가운데는 누구도 반박할 수가 없는 성경 말씀을, 그리고 오른쪽에는 나를 사랑하시고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왼쪽에는 나와 너 우리 모든 인간의 본 모습을 설명한다. 그리고 정의로우신 가장 높으신 분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어떤 죄를 지었던 상관없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되는 믿음에 대해서 설명한다. 물론 그 믿음을 담는 나의 참된 모습, 죄인 된 나의 모습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길지 않다. 아울러서 500년 전 로마서 1장 17절의 구절을 보고서 당시에 믿던 분들을 각성시키고 이렇게 500년이 지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 세상에 설명하신 개신교의 선진들 캘빈과 루터의 혁신적인 도전이 있었기에 우리도 그 주장을 따라서 성경의 더 세밀한 부분을 살피게 된 것이다. 나의 섣부른 판단과 잘난 채 한 태도들은 성경을 이해하는 큰 은총을 받은 자로서 마땅히 취할 태도가 아니었다. 오천만의 로마서의 글 중에 그런 내용이 있는데 바로잡을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단절시키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가 되게 하시는 분이심을 큰 육체적인 고통으로 알게 되었고 뻐기던 나의 못난 모습들을 회개한다. 다시 한번 반복해서 그분들의 생명을 건 도전이 있었기에 성경의 새로운 부분이 열리고 나와 같은 영광에 약한 후배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이렇게 세상에 이신칭의를 전하는 것임을 고백한다. 스스로 못남을 증명한 아직도 배움의 여정에 있는 가난한 목사는 위대한 믿음의 선진과 지금 죽을힘을 다해서 주님께 충성하며 목회하시는 모든 목사님께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 관대한 마음으로 친구로 받아 주길 기도한다.
같은 제목으로 두번째 글이 다른 페이지에서 이어집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