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이 바라는 교회의 진정한 시노달리타스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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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뉴스 지금여기 - 교회와 세상 기자명 장현례 입력 2023.04.18 13:49 수정 2023.04.18 15:38
특별기고
언젠가 성당 성전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함께 걷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친교, 참여, 사명'. 코로나로 인해 어쩌다 한번씩 간간이 미사를 드리러 다니던 저에게는 용어도 낯설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현수막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기후위기남양주비상행동에서 함께 활동하는 원동일 신부님(의정부교구 1지구장)이 가톨릭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교회에 대해 느끼고 바라는 바를 얘기 나누는 시노드 경청 모임을 갖고 싶다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때서야 성전에 걸려 있던 시노드 현수막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관심하기도 하고 불성실한 신자인 탓이 크지만, 그럼에도 과연 시노드의 의미를 알고 경청모임에 참여한 신자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올라왔습니다. 나아가 교회 안에서 ‘용기 있고 담대하게 말하기’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인데, 한껏 용기 내서 꺼낸 신자들의 의견이 진정성 있는 경청 과정을 통해서 잘 전달이 되었는지, 전달된 내용은 앞으로 어떻게 반영이 되는지 혹은 되기는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들기도 합니다.
제가 팔당 지역에 있는 생협 활동을 시작으로 먹거리 운동을 시작한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간 동안 한번도 종교가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듣겠다는 이러한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제안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남양주시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분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아울러 가톨릭뿐만 아니라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찌 보면 이전까지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가 전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는데, 시노드 경청 모임을 통해서 일회성이기는 하지만 가톨릭에서 이런 기회를 만든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경청 모임을 진행하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시민사회단체에서 다른 종교에 비해 가톨릭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으로 높고, 요구들도 다양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날 모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톨릭교회도 신자들만을 위한 갇혀 있는 조직으로 이미 보수화되고 기득권화 되었다는 뼈아픈 지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저 역시 시민사회단체 구성원으로서, 가톨릭 신자 한 사람으로서 전적으로 공감했고, 이런 이유로 교회 안에서 이곳저곳을 떠도는 난민 신자 같은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기후위기남양주비상행동 구성원 20여 명이 성당에서 손팻말을 들고 서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장현례)
제가 알고 있는 사제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일상의 삶을 통해서 실천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한 분들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누구보다 깨어 있어야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제가 교회 안에서 기득권이라 할 수 있는 사목회와 신자들에게 대접받고 누리는 것도 모자라 신자들이 차별당하는 것처럼 생각 들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느라 세상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어 힘든 교우들이 신앙을 통해 위로를 얻고, 사제는 이런 신자들에게 영적 지도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지역 공동체 안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깨어 있는 사제의 역할일 것이고, 시노드를 통해서 가고자 하는 교회의 방향일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예수님 사랑의 복음을 생활 안에서 실천해야 하는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족한 저 같은 신자의 눈으로도 사제의 모습들은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안 되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이유로 저와 같은 난민 아닌 난민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이어 오는 신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해서 다행스럽게도 복음적 삶을 실천하고 어려운 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부님들과도 함께했던 감사한 기회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이명박 정권 당시 전국에서 벌어진 4대강 사업 시기였습니다. 당시 팔당에서도 지난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유기농업을 하던 농민들은 하루아침에 농지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고, 당사자인 농민들과 생협 조합원들과 지역 주민들이 이를 막아 내고자 힘겹게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힘겨운 싸움에 수원교구 신부님들이 매일 미사로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장기간 단식으로 기나긴 고통에 함께해 주셨습니다. 4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신부님들이 함께해 주시지 않았다면 농민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 지역 주민들이 훨씬 더 빨리 지쳤을 것이고 싸움을 계속 이어 가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 덕분에 팔당 지역의 4대강 싸움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부의 일방적 행정 폭주를 막아 내고 협의를 이끌어 낸 곳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는 가톨릭과 시민사회단체 활동 기간에 접점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2021년 말경에 현재 창현 성당 주임 김규봉 신부님이 제가 팔당생협 이사장으로 있을 때 기후위기남양주, 구리비상행동을 만들어 보자고, 여러 경로를 통해 저를 어렵게 찾아오신 때였습니다. 그때 또 한번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신부님이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굉장히 놀랐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20년 동안 활동하면서 단 한번도 역으로 신부님들께 이런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후위기남양주비상행동의 상임대표를 맡아 현재까지 헌신적으로 활동을 이어 오고 계시는 원동일 신부님의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또한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영역의 시민사회 활동을 위해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열심히 공부하시는 모습은 지역에서 함께 활동하는 활동가들에게 귀감과 함께 큰 힘을 주고 계십니다.
사제와 함께 길거리에서 기후정의 탄소중립을 알리는 손팻말을 들고 있는 일부 활동가들 모습. (사진 제공 = 장현례)
그런데 이 두 사제의 활동으로 4대강 싸움 때처럼 가톨릭교회가 전반적으로 기후위기 활동에 결합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만 남양주시 시민활동가들이 굉장히 운이 좋아서 이런 훌륭한 사제들을 만나게 되었고, 두 사제가 개인 신념에 따라서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종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회칙을 선포하시고, 회칙에서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놓인 기후위기와 기후위기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 그리고 또 하나의 약자인 대지의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모든 사제가 동참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전국 곳곳에서 또 다른 이름의 4대강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덕도와 새만금 갯벌에서 신공항 문제로, 설악산에서 케이블카 문제로, 지리산에서, 제주에서, 지역 곳곳에서 골프장 건설 문제로 기득권에 맞서, 자본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경으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농사지어도 제값을 받기도 어렵고 팔리지 않아서 자식 같은 농산물을 갈어엎어야 하는 농민들, 똑같은 일을 해도 제대로 된 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불안한 일터를 지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여러 개 알바를 전전하면서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떼우는 청년들 등.... 모든 어려움이 있는 곳에 교회가 있고, 사제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의 밥상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넘어서 농민의 현실과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골프에 관심 갖기보다 골프장 문제로 불거진 지역 사회 현안에 눈 돌리고, 청년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다고 꾸짖기보다 청년들의 가슴 아픈 현실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켜 내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여기에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노달리타스를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기는 것은 낮은 자세로 고통받는 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경청하고 공감하는 시노드의 여정과 다름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를 위한 교회가 신자들만을 위한 교회가 아닌 예수님께서 가장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사랑을 실천하셨던 것처럼, 가톨릭에서 세상을 향한 경청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자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어, 시노드 여정이 사회적으로 확대되기를 신자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 봅니다.
활동가 8명이 재활용해서 만든 종이 손팻말을 들고 자연 안에서 골프장 건설 반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장현례)
활동가 10명이 길가에서 내방 3리 골프당 건설 반대 현수막을 걸고 시위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장현례)
대성리역 앞에서 탈석탄, 탈송전탑희망 국토도보순례단 10여 명이 '송전탑 백지화하라!', '석탄, 화력 중단하라!' 현수막을 앞에 세우고 계단 위에 서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장현례)
장현례(소피아)
의정부교구 창현 성당 신자, (사)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상임이사.
경제적 불평등이 먹거리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건강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사회에서 먹거리 정의 실현 운동을 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사회의 먹거리 양극화 체계를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가치를 통해 건강하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세상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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