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지는 사건이 동네에서 일어났다.
땅위에 내려온 까마귀는
모든 인간의 관심을 끌었고
까마귀 부모는 관심을 보이는 인간을 공격했다.
어찌 저찌 좋지 않은 조언으로 애매한 위치의 나뭇 가지 위에 올려놓은 까마귀는
인간이 만든 둥지에서 편치 않아 보였고
그것은 모든 인간의 '구원자 본능'과 '길들여서 소유하고 싶다.'는 독점욕의
투사물이 되었다.
땅 위에서 까마귀의 공격을 받았을 때보다 새끼는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그때 정작 나는 이 아이를 구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뒤늦은 것이 이미 동네 119에 의해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까마귀를
죽을지 살지도 모르는 생판 모르는 지역의 야산에 방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방사 하면 뭐 야생 동물의 먹잇감이 될 것임이 분명한데
그 이후로 인간과 까마귀 사이의 접점도 사라지고
구슬픈 까마귀 부모의 외침만이 계속 하늘을 맴돌았다.
내가 그 까마귀를 위해 새벽 3시에 깨어나서 잠을 못 이룰 떄에도
실은 나서지 못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너무나 부끄러운 이유였다.
나는 남들이 내게 까마귀 이야기를 할 때
왜 네가 구하지 않니? 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었다.
그런데 내가 구하지 못한 이유는
내 자신이 까마귀와 전혀 어떤 연결감이 있는 샤먼이 되고픈 기대감이 있는데
이번 계기로 내 자신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나는 이제껏 남들이 나에게 화이트 투사를 한다면서 부담스러워 했었는데
부담스러운 이유는 내 안에 그 화이트 투사의 기대감을
나 자신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는 사실을 이번에 알아차렸다.
그러나 내가 그런 존재인지 아닌지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런 존재가 아닌 나라도 나는 나인데
나는 내가 뭔가 신과 연결감을 가진 존재이고 싶었나보다.
그런 존재가 아니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을 못할것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계속 하다가
그래서 내가 그리스 신화를 강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왜 그리스 신화가 반쪽짜리 여신들만을 다루게 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소망이 없다고
운명이 없는 건 아니다.
그냥 거기에 내 작은 소망을 걸어보는 것일뿐
그것이 아니라도
나는 나로의 운명이 존재함을
알아차리는 꿈이 와서
기쁘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