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8일(금)입니다.
며칠 전 둘째를 통해 예수님께 "예수님,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데요?"하고 말씀드리며 예수님이 허락하실 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오늘 오후에 요청하지 않았음에도 예수님께서 나에게 머리를 깎으러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사진 찍으러 갈 것(내심 폭포를 생각하고)도 말씀드려 허락을 받았습니다.
머리 하나 깎는데도 예수님께 여쭙고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때가 있습니다. 항상 그런 것이 아니고 여쭈어봐야겠다는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내 스스로 예수님의 계심을 확인하며 예수님께 주재권, 인도권을 돌려드리려는 믿음의 발로입니다.
나는 지갑을 두 개 가지고 다닙니다. 하나는 내 지갑으로 돈은 없고 중요한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카드 등이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돈을 보관하는 지갑입니다.
언제든지 예수님이 쓰시고자 하시면 나는 그 지갑을 내어드립니다. 돈이 부족하면 예수님이 쓰실 체크카드를 내어드립니다.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고 쓰시는 분도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주로 둘째를 통해서 지갑을 챙기시고 아내나 조카를 데리고 다니시며 사용하십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님의 인도 속에 살고 있으므로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순종하는 것이지만 예수님보다 사람을 보는 사람은 이런 것에도 넘어지게 될 일입니다. 목회자가 주도하는 교회, 어린아이가 주도하는 교회, 성도가 주도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이 영안을 통해 친히 주도하시는 교회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내가 예수님께 여쭙고 미용실에 가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지 않으려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하다보면 예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 자기의 삶을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없이 사는 것이 됩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예수님을 무시하는 삶이 불순종과 타락한 삶입니다. 늘 예수님을 의식하는 사람은 무엇을 할 때 예수님께 여쭙고 행합니다.
예수님의 허락을 받아 행하려 합니다. 스스로의 계획과 노력으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앞세우지 않으면 내가 정한 계획이나 물질이 내 인생을 주도하게 됩니다. 나는 예수님대신에 그것에 이끌려 살게 됩니다. 예수님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나는 그것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늘 예수님이 내 생각과 결정의 중심, 행동의 중심이 되고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내 즐거움, 물질이 내 힘의 원천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가 내 기쁨, 직장이 내 삶의 기반이 되게 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 덕분에 산다는 고백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 돌릴 영광을 스스로 취하거나 어느 누구나 무엇에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내 주인, 곧 내 주님이시라면 늘 예수님의 주장과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나도 때때로 예수님을 무시하고 행할 때가 많음에 고통하며 회개합니다.
주님을 무시하고 일을 저지를 때는 평안이 없고 고통이 꽤 오래갑니다.
예수님의 직접 인도받아 행하는 일에는 꺼림이 없으며 예수님이 시키신 일이기에 누가 뭐래도 떳떳할 수 있으며 담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머리 하나 깎는데도 예수님의 인도가 필수적입니다.
모든 권을 주님께 맡겼다가 머리라고 슬그머니 내 권리로 찾아올 수는 없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님 안에서 산 사람은 늘 예수님을 인정하며 예수님의 인도 자체를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내 자아가 산 사람은 자신의 자유가 억압받을 때 견디지 못합니다.
자신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역할과 존재감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와 열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예수님 안에서 버려야 할 것이 많고 이에 따르는 고통이 크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자유는 예수님 안에서만 진정 가치가 있고 예수님 안에서만 보존되는 것임을 말입니다.
예수님을 떠나 자기 독립을 생각하며 행동하는 즉시 교만한 마귀와 동류가 되며 마귀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속하든지 마귀에게 속하든지 두 가지의 선택이 늘 존재할 뿐, 중간지대는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늘 예수님께 묻고 지시받아 행하는 예수님 중심의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