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6 백희나 <연이와 버들도령>
2023. 7. 13 사노 요코 <100만 번 산 고양이>
내 인생에서 나는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2주 동안 신입모임에서 함께했던 책 백희나 작가님의 <연이와 버들도령>, 사노 요코의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버들 도령이 죽었다가 살아나지만 얼굴이 비슷하게 생긴(작가님은 일부러 얼굴을 똑같이 만들었다 하셨는데) 연이가 감정 없이 늙은 여인이 시키는대로 살다가 비로소 다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백희나 <연이와 버들도령>
<알사탕> <장수탕선녀님> <이상한 엄마> <구름빵> <나는 개다> 등 다양한 작품을 내시고 아이들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고 계신 너무나 유명한 작가님. (일본 서점에 갔을 때 한 쪽에 백희나 작가님의 그림책만 전시되어 있어 놀라웠다는 말씀도 들었다) 이 책을 함께 읽은 8살 아이의 한 마디 "엄마, 슬픈데 재미있어.." 나이 든 여인이 내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연이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버들 도령 옛이야기를 실감나는 인형과 배경으로 담아낸 스토리는 흥미진진하고 또 아름답다.
<연이와 버들도령>은 그동안 작가님이 손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사진을 찍었던 경험과 능력들이 모두 응축된 작품같다
옛이야기에서 사용되었던 계모, 의붓어미 대신 '나이 든 여인' 이라 칭해서일까, 나이 든 사람으로서 책을 읽는 게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연이의 표정은 줄곧 무표정이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나이 든 여인 옆에서 군림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한 건 아닐까..
무지개 다리는 보통 죽음을 암시한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는게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군림당하고 감정없던 '과거의 내'가 죽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났다는 의미일 것 같다.
보통 옛이야기는 "~~그래서 오래오래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기 마련이지만 작가님이 "아마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라고 표현해서 오히려 더 좋았다
표지에서 눈 속에 서 있는 연이. 그리고 겉표지를 벗겨내면 버들 나무 아래에서 서 있는 연이가 있는게 인상적이다
<라푼젤> 이야기가 많이 겹쳐졌다. 라푼젤이 독일어로 상추를 뜻하는데 <연이와 버들도령>에서도 상추가 등장하는게 뭔가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버들도령이 죽었다는 걸 알았을 때 연이의 행동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아마도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연이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리 슬프진 않았어. 오히려 버들 도령을 만나서 도움을 받았던 일이 이상하게 느껴졌어. 연이에겐 그동안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이런 기막힌 일이 닥쳤어도 그래, 그러려니 싶은 거야. 그저 죽은 도령이 가여울 뿐이었지"
아무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그저 담담한 연이가 안쓰러우면서도 무기력해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걸 내어주며 버들 도령을 살리고 눈물을 터뜨린 연이는 마음에 단단하고 강한 무언가를 품고 살았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정희 님의 감상평 중에 이 부분이 와닿았고 마음에 많이 남았다.
연이의 그 '담담함이 아니, 슬프다고 힘들다고 주저앉지 않고 삶을 이어가는 그 '단단함'이 연이를 지탱해준 힘이 아닐까? 삶은 그런 거라고, 추운 날이 있으면 따뜻한 날도 있고, 고되고 힘든 날이 지나면 눈부시도록 환한 날이 오고, 그저 그렇게 묵묵히 살아내야 하는 거라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감상평 중에서>
나이 든 여인이 결국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었다는 결말에서 '어떻게 나이들어야 할까' '나이를 잘 먹는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말씀에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연희와 버들도령> 그림책을 읽으면서 <옛날 옛적 갓날 갓적> 책 속에 연이, 버들도령 이야기들을 찾아 읽었다. 사실 그동안 옛 이야기는 읽을 기회가 많이 없었고, 권선징악의 큰 뿌리나 여성이 나약하게 묘사되곤 하는 것들이 불편하기도 해서 손이 가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잘 알려진 옛이야기 몇 개만 보고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됐다.
오랫동안 구전되고 전해지는 이야기는 그만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아이들 역시 지금으로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옛이야기를 접하고 들으면서 재미있기도 할 테고, 궁금하기도 할 테고 좀더 우리의 문화와 옛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계기도 될 것 같다. 옛 이야기 그림책을 조금씩 찾아보고 아이들과 재미나게 읽어보고 싶다. 옛 이야기의 세계에 아주 조금씩 발을 들여놓게 해주는 감사한 시간이다..
사노 요코의 <100만번 산 고양이>
3년 전쯤, 사노 요코가 쓴 에세이 <시즈코상>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미워하고 힘들게 했던 엄마의 아픈 과거를 솔직하게 풀어낸 글들을 읽으며 "많이 힘들었겠다... 어른이 되어도 어린 시절 상처가 더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하니.. 이렇게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 난 정말 못된 딸이야 / 엄마도 참 힘든 삶을 살았네요 / 미안하다 말해줘요 / 치매에 걸려줘서 고마워요 엄마
이렇게 큰 제목들을 보다보면 요코가 어린 시절 고통을 많이 겪었음에도 그것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결국은 엄마를 이해하려하는 시간을 가지는 단단함이 대단하다 느껴진다.
수진님이 사노 요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부분에서 작가님의 그 단단함이 더 느껴졌다. 대부분의 책에 본인의 경험담이 녹아있는데 그렇게 솔직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고통과 상처들을 치유하지 않았을까. 고양이에게 자기 생각을 투영해서 표현하고 '자유 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작가. 아 그렇구나..
죽고,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 불교의 윤회사상이 떠올랐다..
고양이가 처음에는 작게 그려졌지만 도둑고양이로 진정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게 되는 순간부터 고양이가 크게 그려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흰고양이는 100만 번 산 고양이를 만나 자기로서의 삶을 살았을까. 흰고양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고양이는 독립적인 동물이고 홀로 존재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 습성을 사노 요코가 잘 이해하고 그림책으로 그린 것 같다. 흰고양이는 몇 마디 하지 않고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그동안 홀로 살다가 이 줄무늬 고양이를 만났을테니 만족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흰고양이가 죽었을 때 백만번 산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습니다..라고 나오는데 그동안 몰랐지만 내가 죽었을 때마다 나를 위해 울었던 왕, 뱃사공, 아이 등의 마음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늦게서야 그 사람들 마음을 알고 백만 번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철학적인 메세지가 담겨있는 책.. 아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사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뭔가 마음에 확 와닿는 것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책이라는데.. 하지만 모임에서 책을 다시 읽고 사노 요코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보고, 또 다른 분들의 책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정리되어 갔다.
고양이가 백만 번 죽고 살고 이게 정말일까 아니면 환타지일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사노 요코 작가님의 작품에는 환타지가 정말 많이 녹아 있다고 한다. 고양이의 죽음이 은유적으로 표현된 것이든 아니든 자유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했던 고양이에게 그 삶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리라.
일방적인, 누군가의 소유물로 살아간다는 것은 온전한 나의 삶이 시작하지 못했음을 의미했고, 그래서 제대로 된 시작조차 못한 고양이에게는 죽음마저도 무의미했으리라...자기 자신을 알고 사랑하게 된 이후에야 타인을 살피고 사랑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우리는 이번 생에서 찾을 수 있을까? <수진님의 감상평 중에서>
책 마지막에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라고 나오는데 후회 없이 살았기에 편안하게 눈을 감은게 아닐까 싶었다.
누구나 살아가며 이런 소망을 품고 살 것이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힘든 일을 겪을 수록,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없을 수록 나 자신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다. 사노 요코도 힘든 가정사 속에서 '나를 잃는' 경험을 많이 했을지도...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자유 의지를 갖고자 노력하지 않았을까. <100만 번 산 고양이>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이유, 많은 사람들의 인생책(오늘 모임에서도 두 분이나 인생책이라고 하셨던)으로 꼽은 이유를 이제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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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의 후기를 쓰다 보니 길어 너무 길어졌네요 ^^;
<연이와 버들도령> <100만 번 산 고양이> 함께 읽으며 여러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 감탄사를 수십 번 한 것 같아요.
사노 요코의 많은 책들을 찾아와서 소개해주신 수진님, 그리고 <연이와 버들도령> 3쇄 표지는 뭔가 다르다는 정보도 주시고 멋진 책갈피도 만들어 나눠주신 정희님 감사합니다 ~
일용할 간식 챙겨주신 정원님, 미선님도 감사해요 ^^ 다음주에 만나요~~
첫댓글 역쉬 스피드를 따라갈수가 없어요~~~ 저번주 후기도 기다렸었는데. 오늘 1타 2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