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글을 쓰는 문학의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의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책을 읽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좌중을 향해 생각을 밝히는 그는 이곳의 리더인 양천웅시인이었다. 회장이라 부르는 그는 우리 회원들의 간절한 열망에 힘입어 새롭게 둥지 하나를 틀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독서모임의 구성과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김용갑 도서관장과 조경수 팀장께 감사한다는 말도 거듭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12월부터 겨울방학에 들어간 중앙도서관의 행복한 어르신글쓰기 교실, 매년 겨울이 오면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노년의 청춘들이 갈 곳을 잃은 것이다. 새봄이 올 때까지 꼼짝하지 말고 겨울잠에 취해 들라함은 잔인한 사월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름 하여 '수원중앙도서관 문우 독서 동아리'라는 기치 아래 모인 정식 회원은 모두 열다섯 명이었다. 이들은 앞으로 매주 목요일 오전 열시부터 열두 시까지 도서관 회의실에 모여 한주동안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토론하며 독후감 내지는 글을 써와 합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앙도서관 '문우 독서 동아리' 겨울방학은 가라_1
이날 첫 모임부터가 뜨겁기 이를 데 없는 자리였다. '만남'이라는 제목의 글쓰기 숙제를 발표하고 합평할 때는 칭찬도 따랐지만,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보니 걷잡을 수 없는 불꽃이 튀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이날 비교적 무난하고 좋다는 평을 받았던 한 작품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만남
더러는 아닐 때도 있다고 하지만 너는 그냥 하늘의 기쁨이었으면 좋겠다 너는 그냥 화안한 웃음이었으면 좋겠다 인연이라는 신비의 눈을 가진 너는, 내 운명의 홀씨 하나.
그렇게 수업이 끝난 뒤에는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함께 식사도 하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산책도 하고, 가까운 곳에 찾아가 문학적 감성도 키우자며 입을 모았다.
중앙도서관 '문우 독서 동아리' 겨울방학은 가라_2
날씨도 쌀쌀하여 찾아간 곳은 지동교를 건너 따끈한 순대국 시장이었다. 삼삼오오 저마다들 모여와 정담을 나누며 한 끼 식사로 우리 서민들의 애환을 달랠 수 있는 수원의 명소가 아닐까싶었다.
중앙도서관 '문우 독서 동아리' 겨울방학은 가라_3 소주잔을 높이 들고 시발(詩發)을 외쳤던 위력은 여지없이 발휘되었고, 발길이 향한 곳은 그곳에서 멀지 않은 지동마을의 시화골목이었다.
'알몸의 전구가 꺼지고 새벽이 가라앉은 골목에 해가 뜨면 미상의 화가가 낳은 사생아들이 눈을 비비며 벽을 나오고, 때 묻은 배낭 멘 사내들이 지나간 자리엔 바람만 남아 아이들이 팽이를 돌리며 연을 띄운다'는 우리 동아리 이태학 무명시인의 시처럼 그곳에는 사람도 자동차도 쉽게 볼 수가 없었다. "여린 가슴이, 두고 간 심장이 바람에 낙엽처럼 굴러다니고 잘못 찾아온 고요가 지루하게 머물 뿐"이었는지도 몰랐다.
중앙도서관 '문우 독서 동아리' 겨울방학은 가라_4
'지동에 오면'이라는 고은 시인이 쓴 시 앞에 이야기는 꽃을 피웠다. 원문대로 '할아버지 생신날'이라고 벽에 써야했는데 시인의 실수로 그만 '할아버 생신날'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한 줄을 모두 지우고 다시 써야만 했던 것을 당시 자리를 함께했던 자신이 'ㅁ'받침 하나를 더 붙이면 어떻겠느냐고 고은 시인에게 말해 해결했다며 일행 중 한 회원은 무용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언제나 그렇듯 즐겁고 신이난다. 이날 벽화골목의 탐방은 추운 날씨 속에서도 뜨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노년의 청춘을 유감없이 향유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