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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요한일서 4:20)
존 스토트는 이를 "수직적 은혜의 수평적 증명"이라고 명명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누리는 자는 필연적으로 이웃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의 두 번째 그룹인 '오래 참음, 자비, 양선'은 바로 타인과의 관계(對人的, Outward) 속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열매들입니다.
2. 오래 참음 (Makrothymia): 보복을 포기하는 거룩한 인내
대인적 열매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오래 참음(헬라어: 마크로투미아)'은 단순히 힘든 상황이나 질병을 견디는 인내(휘포모네)가 아닙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사람에 대한 인내'를 뜻합니다.
나를 자극하고, 오해하며, 상처를 주는 이웃(또는 교회의 지체)을 향해 즉각적으로 분노를 터뜨리거나 보복할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 권리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께 심판을 맡기는 거룩한 지연(Delay)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형제의 연약함을 견뎌내는 이 오래 참음이야말로 참된 영적 공동체를 유지하는 유일한 접착제라고 말합니다. 성도가 타인을 향해 오래 참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반역자인 나를 향해 십자가에서 무한히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입니다.
3. 자비 (Chrestotes): 타인의 고통을 끌어안는 따뜻한 공감
두 번째 열매인 '자비(크레스토테스)'는 차가운 율법주의적 잣대를 거두고, 타인을 향해 한없이 부드럽고 친절한 태도를 취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종교는 날카롭고 차가웠습니다. 그들은 정통 교리를 가졌으나, 죄인과 병자들을 향한 긍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은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겔 36:26)을 이식하십니다. 자비는 마음속의 동정심에 머물지 않습니다. 강도 만난 자의 상처를 싸매어 준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의 영적, 육신적 고통에 깊이 공감하며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는 '행동하는 친절'입니다.
4. 양선 (Agathosyne): 단호하고도 적극적인 선의 성취
세 번째 열매인 '양선(아가토쉬네)'은 자비와 비슷해 보이나 더 역동적이고 강력한 특성을 지닙니다. 자비가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향'이라면, 양선은 '적극적으로 선(Goodness)을 도모하고 실행하는 도덕적 능력'입니다.
J.I. 패커는 양선이 무조건 사람들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유약함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채찍으로 내쫓으신 것이나, 바울이 베드로의 외식을 공개적으로 책망한 것도 모두 교회를 거룩하게 회복시키기 위한 '양선'의 발로였습니다.
양선은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기 위해(롬 12:21), 때로는 단호하게 불의를 배격하고, 형제가 죄에서 돌이키도록 사랑의 징계도 마다하지 않는 '거룩하고 강인한 선행'입니다.
5. 제33강 결론: 세상이 교회를 읽는 유일한 성경
목사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들고 다니는 검은 가죽 성경책을 읽지 않습니다. 세상이 읽는 유일한 성경은 바로 '성도들의 삶의 태도'입니다.
아무리 강단에서 정통 신학을 부르짖고 방언 기도가 예배당을 울려도, 주차장에서 이웃과 멱살을 잡고 다투거나, 직장에서 아랫사람을 가혹하게 대한다면 그 교회의 성령론은 철저한 가짜입니다. 성령께서 아름다운교회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를 찌르는 가시 같은 이웃을 향해 '오래 참고', 상처받은 자들을 '자비'로 싸매며, 어두운 세상 속에 불꽃처럼 '양선(선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수평적인 성품의 열매야말로, 타락한 세상을 향해 십자가의 복음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위대하고도 강력한 변증(Apologetics)입니다.
(제34강 예고: 하늘을 향하고, 이웃을 향했던 열매가 이제 가장 치열한 내면의 통제로 향합니다. '대아적(對我的) 열매 - 자신을 향한 충성, 온유, 절제의 원리'로 거룩한 진군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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