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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생산된 물건을 나누는 방식을 자원의 할당방식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할당방식은 크게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시장적 방식, 즉 물건을 사고파는 방식이다. 시장적 방식에서는 물건이 귀하면 가격이 오르거나,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오르는 일을 통해 수요, 공급의 균형을 맞출 거라고 믿고 있다. 그런가하면 사전에 필요한 물건을 계산해서 생산지시를 통해 수요, 공급을 맞추는 계획적 방식이 있다. 지금 세계는 오로지 시장적 방식이 가장 올바른, 혹은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자원의 할당방식이라고 믿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시장적 할당방식의 챔피언이라고 할 미국에서 대규모 수재가 발생하자, 비시장적 할당이 판을 쳤는데, 하나는 약탈이고 하나는 배급이었다.
약탈은 자원할당의 전통적인 방식인데, 이 약탈의 룰을 정해 세계정복에 성공한 사람이 징기스칸이다. 징기스칸은 한 도시를 점령하면 예전 정복자와 달리 권력자나 부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약탈기간을 넉넉히 주었는데, 덕분에 약탈에 참여하는 병사들은 장교나 졸병이나 거의 균등하게 한 몫을 챙길 수 있었다. 말 한필에 실을 수 있는 물건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물자가 풍부했던 중국이나 아랍에서의 일이고, 유럽같이 가진 것 없는 동네에서는 아무리 약탈기간을 많이 주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런 곳에서는 병사들끼리 다툼이 일어났고, 징기스칸의 부하들이 유럽정복에 흥미가 떨어진 이유였다. 덕분에 유럽은 몽고의 정복을 면할 수 있었지만...
기존 사회주의 계획경제 하면 무상배급이 연상된다. 북한은 지금도 하루 쌀배급량이 정해져 있어 일인당 몇백그램을 제공받는다. 이런 식의 배급은 물건이 모자랄 때 긴장과 초조함을 가지고 진행된다. 재난이 일어난 곳에서는 배급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 경제에서 자원배분의 기본은 배급이 아니고 무상제공이다. 기존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무상제공은 그 비중이 적지 않았는데, 의료와 보육, 교육, 주택, 별장, 난방 같은 서비스는 무상제공이 원칙이었다. 의료서비스를 배급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교육도 마찬가지고, 보육도 물론이었다. 다만 현물은 대부분이 무상제공이라기 보다는 배급 형식이나, 판매에 의존했다.
우리가 만들 사회주의 사회는 대다수 물건과 서비스가 무상으로 제공될 것이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함부로 쓰기 때문에 결국 물건이 모자랄 것이라고 상상하기 쉬운데,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 치약을 공짜로 쓸 수 있다고 치약 사용량이 갑자기 늘어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양치질하라는 엄마의 성화와 도망가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치약을 한통씩 쓸 일은 안 생긴다. 인구가 1000만명이 있는 사회에서 한달에 치약 한통이 필요하다면 치약이 한달에 천만하고 만개쯤만 더 공급되어도, 사람들은 “치약 하나는 흔해빠졌어“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다.
내일 당장 시장에서 돈을 주고 물건을 안사고 무상으로 제공되어도 생산량을 조절할 필요가 없는 품목을 적으라면 수천개, 그것도 모두 생활필수품으로 채워질 것이다. 쌀, 라면, 배추, 무, 밥그릇, 허리 24인치 바지, 숟가락, 젓가락, 재떨이, 공책, 장갑, 안경, 비누, 생리대, 콘돔, 무좀약, 회충제, 감기약, 고춧가루, 마늘, 양파, 머리빗, 나훈아 CD, 강호동 캐롤송 CD, 자동차 윤활유, 마우스, 스피커, 모니터 등등
보통 사회주의경제에 회의를 갖는 사람들은 사람의 소비욕구라는 것이 무한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있거나 관심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지금도 롤렉스시계를 차기 위해 굶주리며 저축을 하는 사람은 없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기능과 디자인에 일차적인 관심을 갖지 상표에 현혹되지 않는다. 특히 사회주의 사회에서 상표가치를 높이려고 광고를 하는 일은 없을 테니 이런 경우는 극히 제한될 것이다.
모든 것이, 아니 세상 재화와 서비스 대부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회가 어떻게 작동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상품의 가치구성은 대개 토지임대료, 생산수단의 가치, 임금, 그리고 은행이자, 이윤 등이다. 토지가 무상으로, 기계가 무상으로, 원료가 싸고 임금이 거의 없고, 이자가 없고, 이윤이 없다면 상품이 무상으로 제공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필수물건은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LCD TV 같은 것은 어떻게 무상으로 제공될 수 있냐고 물을 수 있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직 충분히 공급되기에는 무리가 따르는 물건들이 이같은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도 특별히 도둑촌(부자동네)에 사는 일부를 제외하면 이런 물건들이 보급되는 순서도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LCD TV 도 처음에는 공항, 지하철, 학교와 같은 공공장소, 그 다음에는 기업체, 그리고 큰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의 순서로 퍼져 나갔다. 사회주의 경제에서도 이정도의 우선순위는 생산을 결정하는 공장평의회나 소비를 결정하는 소비자 평의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무대포로 물건들이 생산될 일이 없기 때문에 기준과 조절이 요구된다. 필요이상의 낭비적인 소비생활은 역으로 과도한 노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인 사회구성원들은 이를 조절하고 결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재화들은 적어도 세가지 부류로 나뉠 것이다. 우선 필수품으로 분류되어 무상으로 제공될 1차품목이 있고, 생활필수품이지만 개인의 편의를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하는 에어콘, 식기세척기, 자동차 같은 2차 품목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요트나 경비행기 같은 누구 눈으로 보더라도 사치품이 있을 수 있다.
2차품목은 자동차와 같이 개인의 편의에 비해 공해나 석유와 같은 자원낭비, 도로점유, 주차공간 등의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한 품목들은 소비, 생산자 평의회에서 상당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그 생산량이 결정될 것이다. 그래서 2차품목부터는 개인의 소비범위에서 선택의 영역으로 남겨야 한다. 즉 드럼세탁기를 위해 지펠 냉장고를 포기할 것인지, 콘도회원권을 위해 연장근무를 자청하는 등의 선택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절대 필수품이 아닌 경우는 주문후에 보유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제공의 순위는 앞서 밝힌 합리적 기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면 사치품의 경우는 어떨까? 이런 경우는 콘도회원권처럼 쿠폰제로 운영하거나 공동체가 소유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보석처럼 공동이용이나 소유가 불가능한 품목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양을 규제하거나, 상당한 희생과 노고가 쌓이지 않는 한 보유가 힘든 대상으로 만들면 된다.
그런데 기존 사회주의 사회는 왜 이런 간단한 일을 실제 실행하지 못했을까? 이러한 시스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인과 공장, 지역공동체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정보교류가 필수적이다. 미래의 궁핍이 두려워 미리 챙겨놓으려고 너도나도 나서게 되면 물자의 결핍이 사회전체적으로 퍼지기 마련이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식적으로는 모두 노동자국가라고 자처했지만 노동자들의 의사가 존중되고, 계획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애초에 봉쇄되었다. 따라서 기존사회주의 국가들은 서로가 정보를 신뢰할 수 없었고, 무상으로 무엇을 공급하는 것을 사실상 포기해버렸다.
다음호에는 계획경제에서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계산의 허구성을 밝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