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951년 1월 4일
통화에는 그날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만주땅에는 눈이 하루걸이로 내리고, 내려쌓인 눈위로 거친 바람이 휘몰아쳐 언제나 눈가루를 뿌옇게 일으켜 올렸다. 그래서 눈이 오지 않아도 사람들은 눈보라를 맞는 형국이었다. 거기다가 눈까지 내리게 되면, 하늘의 눈보라와 땅의 눈보라가 뒤엉켜 난무를 이루었다. 그건 경치로는 장관이었고, 사람의 기동에는 장애였다. 그들은 그런 눈의 소용돌이 속을 뚫고 통화역에 나와 있었다.
김미선은 오래 전부터 속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이원조와 이학송한테서 애써 눈길을 돌려 먼 데를 보려고 했다. 나는 당원이다. 그건 당의 명령이다. 그리고 나도 곧 뒤따간다. 그녀는 이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자신의 가슴에 차오르는 눈물을 퍼내고 있었다.
그 결정은 갑작스럽게 내려졌다. 이원조가 고산진에 있는 박현영을 만나고 와서 서울행은 결정되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인민군신문에서 신문발행을 중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이동을 막았다. 그냥 신문도 아니고 교재의 성격까지 띠고 있는 신문이어서 그 이유는 타당했다. 그러나 이원조의 입장에서는 서울로 돌아가 해방일보를 다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기자들의 근무는 임시라는 것이 묵계되어 있었다. 인민군신문과 이원조 사이에서 이틀 동안 이런저런 말들이 오갔다. 그러는 사이에 기자들의 마음은 불안하게 설렁거렸다. 인민군신문이 내세우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기자들의 심정은 이미 서울행으로 쏠려 있었던 것이다. 다시 서울로 돌아간다! 그건 신문발간과 상관없이 가슴 두근거리는 기쁨이고, 가슴 저려오는 환희가 아닐 수 없었다. 그건 서울을 떠나오며 뼈져리게 느꼈던 참담한 어둠이 찬란한 빛으로 바뀌는 환호였던 것이다.
마침내 서로가 동의한 최종결정이 내려졌다. 이학송 한 사람만 먼저 떠나고 나머지 기자들은 인원교체를 한 다음에 떠난다는 절충안이었다. 그 결정에 충격을 받은 것은 김미선이었다. 그녀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의자에 털퍽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가슴도 그처럼 내려앉았다. 그녀가 마음을 의지해온 것은 바로 이원조와 이학송이었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이다 떠나고 말면.. 그녀는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암담함을 두 사람이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런 결정을 내린 이원조가 원망스러웠다. 어차피 다 한꺼번에 떠나지 못할 바에는 이학송도 남겨두고 가야 했던 것이다. 물론 이학송만이라도 먼저 데려가는 이원조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건 이학송이 가진 특출한 능력 때문이였다. 사적인 감정을 떠나서 생각하더라도 이학송의 그 특출함은 인민군신문에도 절대 필요했던 것이다. 이학송은 인민군신문의 기사를 절반이상이나 혼자서 써내는 형편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쓴 기사도 그의 손질을 거쳐야만 제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는 어떤 기사를쓰든 파지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고, 기사의 종류에 따라 문체까지 달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목을 뽑거나, 긴 글의 내용을 요약하는데도 남들의 생각을 언제나 저만치 앞질러 있고는 했다. 흡사 마술사 같은 폭넓고 다양한 그의 능력을 김미선은 그저 경이롭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리는 끝없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고 있는 어떤 빛의 덩어리인지도 모른다고 김미선은 생각했다. 김미선은 그를 만나면서 비로소 인권과 능력이 구분되어야 하는 확실한 이유를 알았고, 같은 종류의 일을 하면서 능력자를 존중할 줄 아는 태도를 배웠다.
개찰이 시작되었다. 대합실 안이 갑자기 웅성거리며 활기가 차올랐다. "김 동무, 당중앙을 통해서 곧 해결할 테니 조금만 참고 기다리시오." 밝은 얼굴의 이원조의 말이었다. "네, 원로에 편히 가십시오." 김미선은 웃음지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김 동무, 서울에서 만납시다. 기다리고 있겠소." 이학송이 엷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김미선은 이학송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다시 깨문 속입술을 놓아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을 열면 말보다는 먼저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았던 것이다. 기어이 눈물이 후둑 떨어져 내렸다. 이러지 말자고 했는데... 그녀는 목젖이 아프도록 눈물을 삼키며, 금방 얼굴을 들 수 없게 된 난처한 입장을 생각했다.
"김 동무,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먼저 떠나서 미안하구만요." 김미선은 때마침 들려온 나이든 목소리에 구조되듯 고개를 들었다. 안쓰러운 표정을 지은 박 영감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니에요, 저도 곧 뒤따라갈 텐데요 뭘. 편히 가세요." 김미선은 머리칼을 걷어올리며 웃었다. 해방일보 일행은 한 사람씩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김미선은 눈물 어린 눈으로 그 사람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이원조가 눈발 속으로 들어서며 뒤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김미선도 손을 마주 흔들었다. 박 영감도, 다른 사람들도 뒤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이학송 혼자서만 뒤돌아보지 않은 채 짙은 눈발 속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니... 김미선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모르게 서너 발짝 앞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학송은 짙은 눈발 속을 계속 걸어 가고만 있었다. 눈물이 어린데다 눈발이 짙어 이학송의 뒷모습은 금방 흐려지고 있었다.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그러나 이학송은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사람들 속에 뒤섞인 채 눈발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김미선은 그냥 주저 앉아 목놓아 울고 싶도록 서운하고 야속하고 허망했다. 왜 그냥 가고만 것일까. 내가 보인 눈물에 기분이 상한 것일까. 혹시 이원조 선생한테 오해를 받을까봐 그런 것일까. 내가 보인 여자 모습이 주체스러워 그런 것일까. 아니면... 그도 나 같은 마음이라서 속이 아파 뒤를 돌아보지 못한 것일까.
"김 동무, 그만 돌아갑시다." 남아 있는 일행의 말이었다. 김미선은 줄줄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양쪽 손등으로 닦아내며 개찰구 저편을 다시 눈여겨 바라보았다. 이학송의 모습은 없고 눈발만 가득 차 있었다. 김미선은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왜 뒤돌아보지않고 떠났는지 그 연유도 가려지지 않았다. 그를 동료라기보다는 한 남자로 마음에 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였던가... 그녀는 기억을 더듬었다. 날이면 날마다 위험한 고비를 몇 차례씩 넘기며 후퇴를 계속해야 했던 그 어는 대목에선가 그는 불현 듯 커다란 산의 무게를 한 남자로 둔갑하여 가슴에 들어앉았던 것이다.... 박영감과 셋만이 남겨져 강계길을 가다가 미군으로 앞이 막힌 것을 알고 초산 쪽으로 방향을 바꿔잡을 때의 그 단호하고도 결연했던 모습...그러나, 그래선 안된다고 얼마나 자신을 나무라면서, 그를 밀어내려 했던가. 마음은 바로잡힌 것 같았고, 그는 물러난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그와 헤어지는 마당에 맞닥뜨리게 되자 그 동안 자신은 감정의 속임수를 쓴 것뿐이며, 그는 끄떡도 하지 않는 산으로 가슴에 그대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죽은 지 삼 년. 어쩌면 자신은 남편의 초상을 보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백색 테러에 죽어 시체도 찾지 못한 남편은 중간간부다운 열정의 소유자였다. 남편의 외모는 이학송과 달랐지만 그 마음씀이나 식견 같은 것은 두 사람이 너무나 흡사했다. 처자가 있는 그를 소유하겠다는 욕심 같은 건 애당초 없었다. 사랑이라는 것을 전제로 이혼행위의 합법성을 실행에 옮길 만큼 자신은 뻔뻔스럽지 못했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다른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 만큼 자신은 몰염치하지도 못했다. 그저 그가 옆에 있는 것으로 그리고 그의 옆에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여자로서 빈 마음의 자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부대가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김미선은 마음을 수습하고 손거울을 꺼내 눈물자국을 지웠다. 이학송이 이곳까지 올 때처럼 그렇게 고생을 겪지 말고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기를 빌었다. 다음날인 십이월 이십사일 마침내 서울에는 시민 대피령이 내려졌다. 날로 심해지는 추위를 따라 불안감이 고조되어가던 전황이 그 본모습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영하 십오도의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던 서울은 금방 혼란의 열기로 들끓기 시작했다. 지난 유월과는 반대로 방송과 가두선전도 "신속한 사전 대피"를 숨가쁘게 알려 서울 탈출의 열기를 부추기고 있었다. 그날 밤부터 피난짐을 이고 진 사람들로 서울역과 용산역은 수라장을 이루고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서로 밀고 밀치는 혼잡 속에서 이름을 불러대는 외침들, 서로 다투는 고함 소리들, 영문을 알 수 없는 아우성들, 아이들의 울음 소리들이 뒤죽박죽되고,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하는 호루라기 소리들이 쉴 새 없이 찢어져가고 있었다.
"여보, 빨리 피난짐 챙기시오." 민기홍은 대문을 들어서며 말하고 있었다. "너무 늦길래 걱정했어요. 근데, 사태가 또 그리 급하게 됐나요? 피난 떠날 무슨 방법은있어요?" 그의 아내는 다급한 목소리로 두 가지를 한꺼번에 묻고 있었다. "사태는 아직 그렇게 급하진 않은 모양인데 미리미리 피난시키자는 거요. 그리고 신문사에서 내일 떠날 수 있도록 단체로 기차표를 구하기로 했소." 민기홍도 두 가지 대답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어딘가요?" "아마 부산일 거요." "어머! 그럼 또 거기까지 밀릴 작정인가요?" 민기홍은 방으로 들어서며 아내의 잘못된 말을 개의하지 않았다. 정부가 미리 "밀릴 작정"을 할 리가 없었다. 소심하고 세심한 아내는 말이 그렇게 빗나갈 정도로 마음이 동요되고, 겁먹고 있다는 증거였다.
"신문사야 어차피 안전이 보장돼야 하니까 그러는 것뿐이오." "네에. 곧 밥상 들여올께요." 민기홍은 옷을 갈아입으며 시름겨운 한숨을 자신도 모르게 내쉬었다. 미,중이 개입되어 밀고 밀리는 이 공방전의 의미가 무엇인지 해득이 어려운 채 마음만 어둡고 무거웠던 것이다. "시장하신데 어서 드세요." 민기홍은 밥상으로 다가 앉았다. "가두방송을 듣고는 곧 중공준이 들이닥치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정신차렸나보죠? 유월 일로 너무 많이 욕을 먹어서 말예요." 아내의 말에는 정부의 조처에 대해 고마워하는 느낌이 담겨 있었다. 민기홍은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아내가 정부에 대해 불필요한 호의를 갖고 계속적으로 판단을 그르치게 될 것을 염려해서 입을 열기로 했다.
"그게 꼭 유월의 잘못 때문에 국민들을 위해 취해진 조처가 아니오. 그건 일종의 작전이오." "네에?" 그는 놀라는 아내를 건너다 보았다. "그 조처의 일차적인 목적은 소개작전이오. 서울을 비워 적을 궁지에 몰아넣자는 작전 말이오." "아니, 그건 러시아가 나폴래옹한테 쓴 방법 아닌가요?" 배운 티를 내는 아내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자연의 악조건에다가, 점령지가 텅텅 비어 있으니 현지조달을 아무것도 못해 결국 나폴레옹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잖았소." "소개를 시키다 보면 덩달아 피난도 되는 셈이니까 정부로선 그렇게 법석을 떨 만할 일이로군요." 아내의 말이 시큰둥해지는 걸 그는 느꼈다.
"그런 셈이오." "근데 말예요, 포로가 되려면 중공군하테 포로가 돼야 살아난다는 소문이 쫙 퍼져 있는데, 그 사람들은 그리 인정도 있으면서 싸움도 잘 한다는 말이가요?" "글세... 그런 소문이 퍼지고 있긴 하데, 하도 괴상한 말들이 많이 떠돌고 있으니 잘 모를 일이오. 그리고, 사람들이 국민당군을 물리쳤으니까 싸움을 못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미군한테 있소. 미군들은 일단 후퇴를 하기 시작하자 너무 급하게 뒤로 물러서고 있는 거요." "겁먹었나보네요." "전 짐이나 어서 챙겨야겠네요."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싸지 마시오. 기차에 큰 짐은 실을 수도 없을테니까." "그러죠."
민기홍은 쌀보다는 잡곡이 더 많은 밥을 아무 맛도 모르고 씹고 있었다. 그는 이미 어느 한쪽 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처자식을 굶겨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어쨋건 간에 자신은 전시상황의 신문사에서 펜대를 놀리기 시작하면서 일방적으로 한쪽 편만을 들게 되었다. 전쟁은 정치의 적극적 수단이면서, 정치의 목적인 인간의 인간적 삶 자체를 파괴하는 괴물이었다. 전쟁의 기본은 적과 우방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가르는 것이었다. 그 양분법 앞에서는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중도적 입장은 기회주의일 뿐이었고, 객관적 판단은 이기주의일 뿐이었다. 전쟁이 정치를 넘어서 역사라는 명분과 맥을 대고 있을 때 그런 결론은 더욱 선명해졌다. 민기홍은 기회주의자의며 방관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인 자신이 그나마 해체되어버리고 한쪽 가담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박차지 않고 주저앉아 있는 것을 체념주의나 패배주의라고 한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다음날 가족을 이끌고 집을 나선 민기홍은 전차를 타는 데서부터 고역을 치르기 시작했다. 서울역행 전차는 피난짐을 싸 든 사람들로 미어 터지고 있었다. 눈이 퍼붓고 있는 거리거리에도 커다란 피난짐을 이고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달라진 거리의 모습이었다.
서울역은 물론 전날 밤보다 더 북새질을 쳐대며 난장판을 이루고 있었다. 광장에는 발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새로 도착하는 전차마다 계속 사람들을 토해놓고 있었다. "어머, 저 사람들! 서울시내 사람들이 전부 몰려나왔나봐요."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라 기차를 못 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는 아내의 말에 민기홍은 약간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저래봐야 만 명도 못되는 수요. 갑시다. 저쪽으로." 민기홍은 신문사에서 미리 정해놓은 집결지인 헌병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우익의 집합소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역사의 정당성이고 다수의 삶을 위한 혁명이고 다 필요없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지키려고 몸부림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 사는 도시가 서울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기득권이 없으면서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 휩쓸리며 서울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 다만 공산주의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고 이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민기홍은 자신의 의식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식의 생각을 굳이 깃발로 꺼내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기합리화의 변명일 뿐이었고 조금 배웠다는 자가 자기를 위장하는 가증일 뿐이었다. 당면한 위험을 피하고 싶으면 그저 조용히떠나는 것이 오히려 진실이었다.
서로 뒤엉켜 혼잡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 속을 군인들이 둘씩 짝을 지어 헤치고 다니며 젊은 남자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이 순순히 끌려가지 않는데다, 그 가족들까지 합세하여 군인들에게 맞서거나 대들었다. 결과야 뻔한 그 떼잡이판으로 혼잡은 더 심해지고 있었다. "군인들이 왜 남자들을 저리 끌어가고 야단법석이죠?" 민기홍의 아내는 당황해서 물었다. "아마 국민방위군을 뽑아가는 모양이오." "국민방위군? 그게 뭔데요?" "뭐 그런 게 있소. 애 잘 챙기고, 어서 갑시다." 민기홍의 대꾸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기색을 눈치채고 입을 다물었다.
최인석이 속한 국민방위군부대는 대전을 거치고 영동을 지나 추풍령을 앞에 두고 있었다. 지대가 높아져가면서 추위도 혹독한데다가 바람마저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길에는 눈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겨우 대오를 꾸며 걷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는 느린 율동이라도 하듯이 흔들거리고 비틀거렸다. 그들의 옷은 하나같이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때가 덕지덕지 끼어 넝마를 걸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목도리나 보자기나 천조각으로 그저 추위를 막자고 가지각색으로 귀싸개를 한데다가 발에는 새끼줄이나 전깃줄로 감발을 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갈데없는 거지꼴이었다. 그들은 입성만 그렇게 남루한 것이 아니었다. 그 옷들 속에 가려진 몰골은 더욱 비참했다. 굶주림과 추위와 강행군에 시달려온 그들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눈두덩이 푹푹 꺼져 눈알만 퀭하게 드러났고, 메마른 입술은 부르터 갈라진데다가, 수염들은 거칠거칠 돋아나 있었다. 그렇게 말라비틀어진 얼굴들은 설한풍에 부대끼느라고 푸릇푸릇 얼부풀어 터지고 살껍질이 허물처럼 들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드러난 얼굴의 모습일 뿐이었다. 허술한 귀싸개에 감춰진 그들의 귀는 거의가 얼음이 박였고 새끼줄이나 전깃줄로 감발한 발가락들은 동상이 것린 데다 매일같이 무리를 해서 걷는 바람에 서로 씻기고 터져 진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군인들의 사정없는 닦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행군이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 모두가 탈진상태에 빠졌고 발들이 다 그 지경인 탓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그나마 평소의 건강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최인석의 소대는 그 동안 서른일곱으로 줄어 있었다. 열셋이 병들어 죽고 얼어죽었던 것이다. 나머지 아홉 개의 소대들도 거의 비슷한 사상자들을 내고 있었다.
"자아, 자! 힘을 내, 힘! 저 고개만 넘으면 경상도야. 거기 가면 뜨끈뜨끈한 밥도 고깃국도 얼마든지 있어. 기운내라고, 기운!" 장교가 긴 대열의 앞뒤로 왔다갔다하며 쟁쟁한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최인석의 귀에는 그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고 있었다. 소리가 일정하게 들리지 않고 불룩하게도 들리고, 홀쭉하게도 들렸다. 그의 청각만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각도 착각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의 눈에는 산들이 출렁거리고 있었고 길이 붕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심한 열로 들떠 있었다. 눈은 풀려 있었고 헤벌린 입으로는 숨을 쉴 때마다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고 두 다리는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는 벌써 오래 전부터 자꾸 도망가려는 정신을 거머잡으려고 한다는 한가지 생각밖엔 없었다.
그것은 곧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였다. 대열에서 떨어져나가는 것 곧 죽음이었다. 그 동안 그런 것을 숱하게 보아왔던 것이다. 그 죽음들이 얼마나 허망하게 버려지는지를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그렇게 죽어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안돼...안돼...집에...집에까지...앞의 산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뒤집히고 그의 허리가 허청 꺾이는 것 같다가 그대로 푹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의 뒷사람이 그에게 걸려 넘어질 뻔하다가 가까스로 몸을 가누었다.
"정지, 정지!" 뒷사람이 소리쳤다 그의 소리는 기운이 없는데도 사람들은 금방 알아듣고 걸음을 멈추었다. 그들의 의식 속에는 밥, 휴식, 방, 잠, 그런것들 뿐이었다. "뭐야?" 군인이 뛰어오며 외쳤다. "쓰러져 버렸소." 귓사람이 힘없는 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중사가 카빈을 고쳐메며 눈꼬리를 세웠다. "모르겠소. 그냥 픽 쓰러졌소." 뒷사람이 여전히 힘없이 대답했다. "거기 무슨 일인가!" 장교가 뛰어오고 있었다. "옛, 한명이 쓰러졌습니다." 중사의 힘찬 대답이었다. "죽었나!" 급히 멈춰 선 장교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아직 확인 못했습니다." "빨리 엎어!" "옛!" 중사가 한눈길로 주위의 장정들을 훑었다. 서너 사람이 쇠붙이가 자석에 끌리듯 그 눈길을 따라 쓰러져 있는 최인석을 바르게 눕혔다.
"숨쉬나 봐!" 장교가 명령했다. 눈이 감긴 채 입이 반쯤 벌어져 있는 최인석의 초췌하고도 창백한 모습은 얼핏 죽은 것처럼 보였다. 마땅찮은 얼굴의 중사는 마지못해 허리를 굽혀 귀를 최인석 의코 가까이 가져갔다. "이거 끊어질락말락, 아주 가늡니다." "어디, 비켜봐." 장교는 그때서야 무릎을 꺾고 앉았다. 중사가 했던 것처럼 장교도 최인석의 코 가까이 갖다댔다. 장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또 일 생기겠는데." 장교가 낮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할까요?" 중사가 물었다. "양쪽에서 부축해가지고 가다가 집이 나타나면 떨어뜨려놓고 가도록!" "알겠습니다." 이미 실시해오고 있는 중환자 처리방법이었다. 정신을 잃은 최인석을 중사가 지명한 두사람이 양쪽 팔을 하나씩 어깨에 걸었다. 그리고 대열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대열을 따라 최인석의 두 발은 땅에 질질 끌리고 있었다.
눈이라도 내리려는지 검은 구름은 낮게 내려앉고 있었고, 추풍령을 앞둔 길은 갈수록 기울기가 심해지고 있었다. 깊은 산의 겨울은 깊을 대로 깊어져 그 어디에서도 새소리 하나들리지 않고, 추운 적막만 그 끝을 모르게 깊었다. 그 산 속을 굶주리고 지친 대열이 느릿느릿 움직여 가고 있었다. 최인석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처졌던 그의 몸이 거처져 내렸다. 그의 팔을 어깨에 걸고 있던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마주쳤다. 그들의 놀란 눈은 똑같은 느낌을 담고 있었다. 다시 대열이 멈추었고, 두 사람은 최인석을 받쳐 잡았다. 땅바닥에 눕혀진 최인석은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또 뭐야!" 중사가 뛰어왔다. "죽었습니다." 최인석을 부축했던 한 사람이 말했다. "재수 드럽게 없는 놈이군. 다 와가지고." 중사가 고개를 돌려 침을 뱉었다. "또 무슨 일인가!" 장교가 뛰어왔다. "결국 갔습니다." 중사가 대답했다. "안됐군." 장교가 언짢은 얼굴을 하고는, "땅이 얼어붙었으니 팔 수는 없다. 저쪽 아래에다 옮기고 눈을 모아다 덮어라. 육소대 전원, 빨리 작업 끝내고 대열의 후미에 붙는다. 중사, 신속하게 지휘하라!" 장교답게 빠른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옛, 알겠습니다." 중사는 뒤축을 모아 차렷자세를 취해 보이고는, "육소대 전원, 열오해서 우측방행으로 이동!" 잽싸게 지휘명령을 내렸다. 최인석의 시체는 대여섯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들려 길 옆의 약간 움푹한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서른여섯 명의 사람들은 눈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눈덩이는 금방 최인석의 봉분을 만들었다. 그들은 자기네 소대의 열네번째 희생자의 장례를 눈봉분을 만들어 치르고 있었다. "됐다, 그만. 출발이다!" 중사가 명령했다. 서른여섯 사람은 다시 네 명씩 줄을 맞춰 섰다. 그리고 혹한으로 얼어붙은 적막 속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최인석보다 사흘 뒤에 붙들려 서울을 떠난 송성일은 천안과 조치원사이를 행군하고 있었다. 그들 부대는 주먹밥일방정 점심도 굶은 채였다. 그들이 점심을 굶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동안 지방관공서들의 살림살이가 거덜나다시피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밀어닥치는 방위군에게 양곡권이라는 쪽지를 하나씩 받고 주먹밥이나마 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정은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심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뿐만이 아니라 각지방마다 할당된 방위군을 뽑아 경상도를 향해 남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 경기도, 충청남북도 방위군들은 추풍령를 넘어가기 위한 남쪽 분기점인 대전을 향해 도보행군을 하고 있었다.
"중대장님, 저 앞에 마을이 하나 보입니다." 상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며 앞을 가리켰다. "규모는?" "아직 미확인 생탭니다." "한 둬 명 보내 확인하도록." "알겠습니다." 앞으로 뛰어간 상사가 부대를 경계하고 있는 사병 둘을 지목해서 명령을 내렸다. 송성일이 속한 인솔장교는 그 나름으로 머리를 쓰고 있었다. 관청에 들어가 되지 않을 실랑이를 벌이며 기분만 상하기보다는 규모가 어지간한 마을을 만나면 거기서 직접 한 끼씩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 민폐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장정들은 굶겨 혹한 속을 행군시킬 수 없는 일이었고, 정부가 발행한 양곡권을 이장에게 넘겨줘서 다음에 곡식을 받도록 하면 민폐가 될 리도 없었던 것이다.
"중대장님, 대강 오십 가구쯤 된다고 합니다." 상사의 보고였다. "오십 가구라... 그럼 좀 무리 아닐까?" 장교가 상사를 옆눈길로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예, 한 집에 대강 팔구 명꼴인데 좀 잘사는 집에 더 배당을 시키고 하면 한끼쯤이야 해결이 되잖을까 싶은데요." 상사는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은 눈치로 말했다. "알았어. 일단 마을까지 가보도 결정하지." 그들의 부대도 벌써 동사자와 중병 낙오자 백여 명이 생겨 부대원이 사백여 명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인원이 줄어든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장교의 머리를 짧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장교는 금방 머리를 내둘렀다. 열아홉의 동사자와 낙오된 중병자들을 생각하면 차마 못할 생각이라는 것을 이내 깨달았던 것이다. 추위에 못 견뎌 바짝 웅크릴대로 웅크린 채죽은 동사자들의 시체는 상상하기 어렵게 너무나 작았다. 똘똘 뭉쳐놓은 무슨 덩어리 같은 그 작은 시체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 시체들은 팔이고 다리고 아무리 기운을 써도 펴지지가 않았다. 그것들은 꽁꽁 얼어 붙어버린 얼음덩이였다. 그 시체들을 땅에 묻어야 하는 것도 비감했지만, 중병자들은 아무 집에나 떠맡기고 떠나는 것도 비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건 인솔장교로서 갖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면서, 인간으로서 갖는 양심의 아픔이었다. 중병자들은 거의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생긴 열병이었다. 감기에 걸리고, 기침을 심하게 토하고, 그러다가 몸이 불덩어리가 되면서 헛소리를 하거나 눈을 까뒤집었다. 그런 병세는 하루이틀 사이에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약은 전혀 쓰지 못하지, 제대로 먹지도 못하지, 날마다 강행군은 하지, 밤에는 맨바닥 잠을 자야지, 모든 것이 불난데 부채질이었다. 아무 집에나 떠맡겨진 그들이 얼마나 건강을 되찾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다 살기가 말이 아니지만, 한 끼라니까 어찌 해봐야지요. 다 하고 싶어 하는 고생들이 아닌데." 장교에게 양곡권을 받아든 이장의 마지못한 말이었다. 경비병이 하나씩 딸려 장정들은 집집마다 분산되었다. 경비병이 모자라 두 집에 경비병 한 명을 배치하고 장정들을 한 집으로 몬 다음 그 옆집에서 할당된 인원의 밥을 해가지고 옮겨오게도 했다. "여기 양곡권을 받아놨으니까 담에 세상 좋아지면 곡식을 되받게 될게요. 다 궁한 살림이지만 한 끼니까 어찌 좀 대접을 잘해드리시오." 이장은 집집마다 돌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 갑작스러운 일은 마을사람들에게 횡액이아닐 수 없었다. 앞에 남은 긴 겨울을 살아내기 위해 거의가 곡식을 피 아끼듯 해가며 시래기죽을 끓이고 있는 형편에 장정 팔구 명의 밥을 알곡으로 지어내야 한다는 것은 눈 뻔히 뜨고 도둑맞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담에 세상 좋아지면" 하는 이장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나라라는 것은 그저 손해만 보일 뿐 언제 한번 그런 약속을 지킨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살 저며내듯 아깝고 쓰린 마음으로 알곡을 축낼 수밖에 없는 것은 당장 눈앞에 있는 총 때문이었다. 전시에 총과 군인은 거역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다. 한끼 밥을 해내고 어서 그들이 마을에서 떠나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입게 된 피해는 곡식만이 아니었다. 대부분 집이 좁아 방에 다 들어앉을 수 없게 된 방위군들은 마당에다 불을 피우고는 멋대로 짚단을 가져다 불꽃을 키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배짱 좋고 비위 좋은 사람들은 군인의 눈을 슬슬 피해가며 주인에게 솜옷을 내놓으라고 은근히 겁을 먹이는가 하면, 방을 차지하고 앉은 어떤 사람들은 아예 주인 몰래 횃대보를 들쳐 목도리나 옷가지를 슬쩍 훔쳐 넣기도 했다.
예정 없이 당한 일인데다가 마지못해 지어낸 밥에 별난 반찬이라고 있을 리가 없었다. 잡곡밥에 시래기국, 김치가 고작이었다. 한 가지 반찬이 더 오르는 경우 동치미나 무말랭이무침 정도였다. 그러나 주먹밥 한 덩이씩으로 겨우겨우 끼니를 때어온 방위군들에겐 그것이 바로 진수성찬이었다. 모두가 미친 듯이 밥을 퍼 넣고 국그릇이며 반찬그릇들을 핥은 듯이 말끔하게 비워냈다. 그들의 그 게걸들린 모습들을 보고서야 주인집 식구들은 그들이 얼마나 굶주렸는가를 알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안쓰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과연 우리 중대장님이 최고십니다." "우리 중대장님 만셉니다." 마을을 떠나며 장정들은 큰 소리로 입들을 모았다. 행군 도중 잡담은 일체 금지였지만 그말들만은 제지되지 않았다. 장교는 마음이 흐뭇했고 앞으로도 그 방법을 계속 쓸 작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교만이 특출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의 생각이란 다 비슷비슷한 것이어서 다른 인솔장교들도 그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며칠이 못가 마을에서도 한끼 밥을 얻어먹기가 어렵게 되고 말았다. 큰길에서 가까운 마을들을 언제까지나 그런 시달림을 당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 이상 그런 일을 당한 마을에서는 이장이 양곡권을 내밀어 보이며 마을 곡식이 바닥났음을 입증했던 것이다.
모든 마을에서 국민방위군을 꺼리는 것은 양식을 축내는 탓만이 아니었다. 마을사람들은 그들을 도둑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으름장을 놓아 옷을 얻었거나, 슬쩍 훔쳤거나 간에 얼어죽은 것을 모면해야만 하는 그들의 절박한 사정 앞에서 그런 행위는 파렴치하거나 부끄러운 짓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 있고 배짱 좋은 행동으로 돋보였다. 교실 맨바닥에서 모두가 부들부들 떨고 앉은 가운데 몇몇 사람이 옷을 갖게 된 경위를 털어놓는 것은 그대로 무용담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 마을에 들어갔다 하면 너나없이 옷이고 목도리고 추위를 막을 것이면 무엇이든지 훔치기에 앞을 다투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을 손빠르게 닭모가지를 비틀어 품에 숨기기도 했고 무움막을 뒤져 주머니마다 무를 감춘 사람도 있었다. 송성일도 생전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목도리와 개털모자를 구하게 되었다. 송성일은 훔칠 때 가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지만 그 일을 일단 성공하고 나자 죄의식은 커녕 오히려 통쾌감을 느꼈다. 그건, 아 나도 해내고야 말았다, 는 자신감의 확인이었다. 모두가 그런 심정이다 보니 그들의 행위는 기회만 있으면 아무데서나 저질러졌다. 네댓 명이 가게로 몰려들어가 앞에서는 물건을 사는 척 소란을 피우고 뒤에서는 물건을 훔쳐 넣었다. 고구마장수나 떡장수의 가난한 좌판을 그들의 굶주림이 구분할 리가 없었다. 어떤 불량기승한 사람은 무턱대고 좌판의 엿을 집어 으득으득 깨물며, "내가 누군지 아느냐. 나라 위해 목숨바치러 전선으로 떠나는 국민방위군이다. 누구 덕에 편안하게 엿장사 해먹고 사는 줄이나 아느냐" 하고 공갈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말썽이 생겨도 장교나 하사관들은 그다지 크게 탓하지 않았다. 그들은 탈주가 아닌 한 장정들의 그런 잘못을 적당히 보아 넘겼다. 그건 장정들이 당하고 있는 이중삼중의 고통을 이해하거나 미안하게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마음은 그 다음이었다. 우선, 그런 잘못을 너무 심하게 닦달해서 이미 장정들의 가슴에 쌓여있는 불만을 자극하지 말자는 속셈이었다. 앞서간 부대에서 그런 것을 너무 심하게 다뤄 집단행동이 일어나 총질을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라도 해서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 목적지에 당도해 준다면 자신들의 인솔책임이 그만큼 가벼워진다는 계산도 하고 있었다. 장교나 하사관들의 그런 태도에 따라 방위군들의 자구책은 더 적극적으로 변해갔다. 학교의 책상이나 걸상을 때려부셔 불을 피우게도 되었다. "사람 목숨이 더 중하오, 이따위 책상 걸상이 더 중하오." "우리가 이 짓을 못하게하려면 교실바닥에다 안 재우면 될 거 아뇨." 제지하는 군인들에게 장정들은 이렇게 항의하고 들었다.
장정들이 좀도둑질까지 해가며 배고픔과 추위에 맞서 싸우려고 발버둥쳤지만 근본적으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그들은 계속 허기에 지치고 추위에 떨었으며, 손발은 동상이 심해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거쳐 지나가는 곳의 민간인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원성의 대상이고, 경원의 대상이었다.
송성일은 그저 죽은 듯이 참고 견디며 탈출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가다가는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죽고말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얼어죽는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그 생각은 자꾸만 커져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정부에 완전히 환멸하고 있었다. 정부가 그렇게까지 무계획하고 무책임하고 무질서한 줄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정부의 그런 처사는 명백한 살인행위였다. 그로서는 그런 국가, 그런 정부, 그런 정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하등의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탈출하면 무조건 사살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언제 얼어죽고, 언제 굶어죽을지 모르면서 이 죽음의 행렬을 따라가며 서서히 죽어가느니 차라리 탈출을 하다가 총을 맞아 죽는 것이 낫다 싶었다. 그리고 탈출이 꼭 실패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계획이 치밀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송성일의 부대는 대전을 거쳐 동쪽 방향인 옥천으로 가고 있었다. 날씨는 매일같이 이가 갈리도록 추웠고, 열에 들떠서 혼수상태에 빠진 환자들은 날마다 버려지듯 낙오되고 있었다. 송성일은 대전을 지나면서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동족으로 방향을 틀었으므로 집과는 접접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 동안에 탈출을 시도한 자가 없어서 그만큼 유리하기도 했다. 경계병들은 탈출에 대해서 그만큼 안심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유심히 살펴온 바로는 새벽 서너시 사이가 좋을 것 같았다. 두 시간마다 교대하는 보초가 잠들기 좋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가 뜰 때까지 어둠을 타고 멀리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시계를 찬 사람들은 거의가 헐값으로 처분해 배를 채우기에 바빴었다. 자신이 그 신침 흐르는 유혹을 그때마다 매정하게 뿌리쳤던 것은 순전히 탈출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옥천에서 탈출하기로 작심했다. 송성일은 옥천으로 가는 길을 세세하게 눈에 담으며 걸었다. 옥천에서는 밥은 물론이고 교실 맨바닥이나마 잠자리를 얻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다른 지방에서 먼저 도착한 두 부대가 교실을 다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잠자리보다 급한 건 밥의 해결이었다. 책상걸상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변소의 판자벽이며 문짝 관사의 판자울타리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뜯어다가 태우는 판이었다. 교장이나 교감은 그들의 그런 행위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불길이 약해지자 또 땔감을 구해와야 했다. 송성일네 분대에 차례가 돌아왔다. 그들은 학교 뒤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경비병이 따라오지 않은 것이다.
송성일은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어둠 속을 더듬었다. 틀림없이 경비병은 없었다. 하늘이 돕는구나! 송성일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땔감을 찾아 흩어지고 있는 동료들을 경계하며 옆걸음질을 쳤다. 안전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그 즈음에 이미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국민방위군을 편성한 정부의 무모함에 대해 전국적으로 비난의 여론이 거칠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참한 몰골의 국민방위군 대열을 "죽음의 대열" 이니 "해골의 대열" 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일천구백오십일년 일월 삼일 대한민국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옮겨갔다. 그날 눈발이 휘날리는 속에 서울시민 삼십여만 명이 꽁꽁 얼어붙은 한강의 얼음판을 밟고 서울을 떠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인민군이 다시 서울로 들어왔다. 이학송이 서울에 도착한 것은 육일이었다. 매서운 추위 속에 버려진 듯 상처입고 서울을 보자 그는 집 생각이 더욱 간절해져 몸이 비틀릴 지경이었다. 서울이 입고 있는 상처가 자신의 집안에도 미쳤을 것만 같은 애달픔을 떼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떠날 때는 소식 한가닥 남기지 않고 떠나놓고서 뒤늦게 돌아와 그리 다급해하는 건 가장으로서 보자면 더없이 무책임한 감상일지 몰랐다. 그러나 압록강까지 건너갔다가 다시 올아올 때까지 아내와 세자식은 언제나 슬픈 안개로 의식의 배면을 채우고 있었고 안타까운 메아리로 귀울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저기 사무적인 보고와 연락을 서너 시간에 걸쳐 끝나게 되자 서울에 집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이학송은 숨을 헉헉거리며 추위를 헤쳐나갔다. 아내의 소담한 얼굴과 아이들의 유리알같이 해맑은 모습이 눈앞에 선연했다. 무사하기나 한지, 그 동안 뭘먹고 살았는지, 살기가 어려워 혹시 고향으로 내려간 건 아닌지... 그 동안 잊으려고 애써왔던 생각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나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출발할 때는 추위를 느꼈는데 종로오가쯤 이르자 가슴팍에 땀이 배는 것을 느꼈다. 동대문을 지나게 되자 마지막 취재를 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잠깐이나마 집에 들르고 싶었던 간절함을 괴로움으로 바꾸며 발길을 돌렸고, 그 걸음은 그대로 후퇴길로 이어지고 말았다. 동대문 밖에 새로 만든 동네- 신설동에 접어들면서부터 이학송은 기어이 뛰기 시작했다. 이학송은 낯익은 골목 어귀에서 뜀박질을 멈추었다. 뜀박질로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밝은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내가 만드는 별미인 홍어회 냄새가 물큰 풍기고, 세 아이가 깔깔거리며 다투어 뛰어오는 것만 같았다. 그는 숨길을 가다듬으며 빠르게 걸었다. 골목의 집들은 별로 상한 데가 없이 그대로였다. 변두리라 폭격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이 한결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다.
이학송은 자기 집이 있는 샛골목으로 꺾어 돌았다. 금방 아내가 뛰쳐나오는 것만 같고, 아이들이 뒤따라 아빠를 외치며 뛰어오는 것만 같았다. 네 번째 집, 이학송은 가슴에서 섬뜩하게 찬바람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그건 분명 네 번째인 자신의 집이었다. 이학송은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무슨 검은 날개가 펄럭이며 눈앞을 가로막는 것을 느꼈다. 그는 사납게 눈을 훔쳤다. 네 번째 집의 대문은 한쪽이 바깥으로 젖혀진 채 위쪽만 겨우 매달려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대문의 그 모양새는 집안에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도 대문을 그렇게 방치해둘 리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아내의 깔끔한 성미를 생각할 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문으로 몸을 디민 이학송은 멈칫 섰다. 빈 집이 품고 있게 마련인 설렁하고 괴기스런 냉기가 끼쳐왔던 것이다. 넓을 것 없는 마당에는 부서진 살람살이와 휴지나부랑이와 나뭇잎같은 것들이 뒤섞여 어지러웠고, 대청마루에 달린 네모창살의 유리문은 열어 젖혀진 채 유리들은 다 깨져나가고 없었다. 몇 개의 창살에는 깨지고 남은 유리조각들이 무슨 험상궃은 이빨처럼 그대로 박혀 있었다. 그건 집안을 휩쓸고 간 폭력의 모습이었고, 식구들이 당한 수난의 모습이었다. 이학송은 다리가 휘청거리는 걸 느끼며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청마루에는 먼지가 자욱하게 덮여 있었다. 그 먼지의 두께가 집을 비운 지 오래되었음을 말하고 있었다.
문득 마루를 걸레질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셋방살이를 면하고 변두리의 이 집을 장만했을 때 아내는 두 팔을 가슴 앞에 모아 힘주어 바르르바르르 떨어대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아내는 더욱 깔끔함을 드러내 온 집안을 쓸고 닦고 하기에 분주했다. 특히 대청마루를 간수하는 열성은 지나칠 정도였다. 언제나 티끌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두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씻지 않은 발로 대청마루에 올라설 수 있었다. 국민학교 삼학년인 아들은 그런 어머니에게 불만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꿀밤을 얻어맞다가 끝내는 항복하고야 말았다.
이학송은 먼지를 밟으며 안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닫이문에 발라진 창호지는 뻥뻥구멍이 뚫려 있었고, 창살도 더러 부러져 있었다. 그러나 문은 닫혀 있었다. 그는 뜻 모를 두려움으로 방문을 천천히 옆으로 밀었다. 대청마루처럼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장롱은 열어젖혀진 채 옷가지들이 방바닥에 흩어져 있고, 아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경대의 거울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윗목에 놓인 자신의 앉은뱅이책상 위에 놓였던 열댓 권의 책들은 어지럽게 흩어진 채 방바닥에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는 건넌방으로 걸음을 옮겨갔다. 아들의 방이었다. 안방처럼 어질러져 있지 않았다.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책꽂이에 공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아빠, 김일성 장군은 아빠하고 나이가 비슷하게 젊은데 어떻게 장군이 됐나요?" 되살아나는 쟁쟁한 목소리였다. 그는 옆방으로 갔다. 작은 창에는 포플린으로 만든 커튼이 상하지 않고 그대로 걸려 있었다. 국민학교 일학년짜리의 성화에 못 이겨 아내가 난생 처음으로 만든 커튼이었다. "아빠, 난 전쟁이 싫어요. 사내애들은 주먹으로 맨날 싸우고 어른들은 총으로 싸워요. 남자들은 다 싸움만 좋아해요. 그래서 난 아빠 빼놓고는 이 세상 남자는 다 싫어요." 무릎에 앉은 딸아이의 야무진 말이었다. "그럼 난?" 아들이 손가락으로 저를 가리켰다. "오빠도 싫어!" "요게 그냥!" 아들이 주먹을 치켜들었고, "아빠아아!" 딸아이는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가슴으로 안겨왔다. 그 찬물처럼 싱그러운 딸아이의 냄새가 물큰 풍겨오며 콧등이 찡 울렸다. 딸아이의 체취는 그대로 한덩이 울음이었다. 그리고 네 살 난 막내아들의 모습이 그 울음을 떠밀어 올리고 있었다. 막내아들은 아직 어렸던 탓으로 엄마의 품과 등에 매달려 사느라고 자신과는 미처 깊은 정이 엮어질 틈도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더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 그는 어금니를 꾸욱 깨물며 고개를 치켜올렸다. 그리고 눈을 내리감았다. 이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삼킨 울음덩이로 그의 목이 막히고 있었다.
이학송은 대청마루로 나와 섰다. 문득 담장 아래 엎드려 있는 아내의 모습이 보였다. 화단을 가꾸는 아내의 그 모습은 환각이었다. 나뭇가지에는 나팔꽃줄기가 메말라 있고 파삭 말라 변색된 꽃나무줄기들이 바람에 떨고 있는 황폐한 화단은 전에 아내의 손길 탄 겨울화단이 아니었다. 아내는 아침의 꽃인 나팔꽃을 좋아했고 다음으로 분꽃을 좋아했다. 장미나 칸나 같은 화사한 꽃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내의 소담한 성품 탓이었을까... 그런데, 나팔꽃이나 분꽃은 그 모양이 똑같이 닮지 않았나! 나팔꽃이 큰 나팔이라면, 분꽃은 작은 나팔이었다. 아내는 그 닮은 모양 때문에 그 꽃들을 좋아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뒤늦게 깨달은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그 뒤늦은 깨달음이 평소의 아내에 대한 무심함으로 그의 가슴에 사무쳐왔다. 가슴조여 숨이 막히도록 아내가 보고 싶고, 아이들이 그리웠다.
대문을 나선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뒷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문을 흔들며 사람을 불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여보세요, 안 계십니까!" 대문을 더 세게 흔들며 목청을 높였다.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대문틈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대청문이 꼭 닫혔고, 댓돌 위에는 신발 하나 없었다. 역시 빈 집인 모양이었다. 이학송은 돌아섰다. 눈발이 성글게 내리고 있었다. 앞집 대문에서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는 처음부터 목청을 높였다. 마찬가지로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여보세요, 누구 안 계십니까!" 그는 대문을 쾅쾅 쳐댔다.
"누구시유." 안에서 들려온 여자노인네의 목소리였다. 그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드러났다 서로 내왕을 하던 그 할머니였던 것이다. "네에, 뒷집, 뒷집 태기아빱니다." 그의 큰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누구? 태기아빠! 아이고..." 노인네의 다급한 소리에 이어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아이고, 이리 늦게 오면 무슨 소용이 있소." 노인네가 대문을 열어젖히며 한 말이었다. 노인네는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는 인사를 차릴 새도 없이 물었다. "잽혀갔지요, 잽혀가..." 노인네는 연상 고개를 저었다. "애들까지 말입니까?" "아니유, 태기엄마만 잽혀갔는데, 이튿날 어린것들 셋이서 엄마 찾겠다구 집을 떠났다지않우 글쎄. 난 애들이 떠난 담에야 알았는데, 내가 먼저 알았으면 붙들었을 텐데..." 그는 대문의 기둥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안 돌아온 겁니까?" 그는 짐작을 하면서도 그 말을 마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세, 그 어린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태기 엄마도, 애들도 종무소식이우. 애들이라도 어디 살아 있었야 할텐데..." 노인은 눈물이 번지는 눈으로 혀를 하댔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는 중얼거리듯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허청거리며 눈발 속을 걸어 가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 든 그의 오른손에는 팽이가 꼭 쥐어져 있었다.
이학송이 김범우를 만난 것은 이틀 뒤였다. 인민군복차림의 김범우가 신문사로 이학송을 찾아온 것이다. "이 선배님, 저 김범웁니다." 김범우의 말에 글을 쓰고 있던 이학송은 고개를 들었고, 잠시 어리둥절하는 것 같더니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야, 김 형!" 그의 목소리는 마치 울부짖는 것 같았다. "무사하셨군요." 김범우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섰다. 이학송이 김범우를 덥석 끌어안았다. 김범우는 순간적으로 민망함을 느꼈다. 자신은 악수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끌어안게 되니 자신의 반가움이 이 선배만 못한 것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다. 그는 그런 순간적인 느낌을 내던지고 이학송을 맞끌어 안았다. 이학송은 집을 다녀온 뒤로 줄곧 깊은 허망감과 괴로움에 빠져있다가 뜻밖에 김범우를 만나게 되자 감정에 격랑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사람,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이학송이 팔을 풀며 김범우를 눈길로 바라보았다. "내래 피양서 왔시오." 김범우가 씨익 웃으며 자신의 인민군복을 가리켰다. "어서 앉읍시다. 그런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손 형은?" 이학송은 의자에 앉으며 거푸 물었다. "한마디로 하기는 어려운 얘깁니다. 점심이나 먹으며 차근차근 말씀드리죠." 이학송은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뽑아든 김범우가 익숙한 솜씨로 라이터를 켰다. "전주로 떠난 사람이 평양에서 돌아왔으니 얘기가 간단할 수가 없겠군." 이학송은 담배연기를 씹는 것처럼 흘러나오고 있는 입으로 말하고는,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 김범우를 바라보다가, "인민군복에 지포라이타는 또 뭐요?" 의아스럽게 물었다.
"예, 인민해방군에 미제국주의군대 전용이다시피 하는 지포라이타가 안 어울리지요? 역시 선배님은 눈이 밝군요. 이게 다 그거와 연고가 있는 겁니다." 김범우가 라이터를 머리 높이로 던져올렸다가 받으며 의미있게 웃었다. "서울엔 언제 왔소?" "오일날 와서 매일 선배님을 수소문했지요." "소속은 어디요?" "밥집으로 가시죠, 순서대로 말씀드릴 테니까." "그럽시다, 그게 좋겠소." 김범우는 사무실을 나서면서, 전주에 도착한 데서부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키고 하는 잠깐 동안 중단되었을 뿐 김범우의 이야기는 밥을 먹으면서도 계속되었다.
"... 인민군에서는 투항자들에 대해 사상검토를 해서 바로 전선에 배치시키고 있었어요. 물론 감시가 따랐는데, 그거야 어느 군대에서나 마찬가지 일이죠. 제가 OSS 훈련을 받을 때나, 통역을 할 때도 그랬으니까요. 저도 두 번의 자술서를 쓰고 통과가 됐지요. 그 다음에 영어 실력을 테스트 받고나서 통역관 일을 맡은 겁니다. 오나 가나 통역관인데, 그 대상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미군을 위해 통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군을 심문하는 통역을하는 것이니까요. 그 기분은 참 묘하게 달랐습니다." "그 기분 알 것 같소. 하여튼 짧은 동안에 너무 고생이 많았소." 이학송이 김범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웃었다. "고생은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래저래 변화만 많은 거지요. 학병 때부터 아마 그게 제 팔자인 모양입니다." 김범우의 말에 이학송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소리로 웃었다.
"이젠 선배님 차롑니다. 말씀하십시오." 김범우가 입술을 훔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김 형에 비해 내 얘기는 너무 단조롭소. 추석날 밤에 후퇴를 시작해서, 압록강을 건너 만주땅 통화까지 갔다가 되돌아온 거요." 김범우에게 미안한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이학송은 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기분도 기분이었지만 그보다는 전신에 맥이 빠져 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걸어서 거기까지 갔단 말입니까?" "어쩌겠소, 그때 형편이 그랬으니." "아이고, 큰 고생 하셨군요." "고생이야 다 같이 한 고생이고, 산천구경 겸해 좋은 경험이기도 했소." "그런데, 어디 불편하십니까? 몸이 안 좋아보입니다." "아니오, 그 동안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살 기운이 좀 있소." 이학송은 내심을 눈치채이지 않게 하려고 예사롭게 말하고는, "손형이 도당과 함께 입산을 했다면 그 동안 고생이 많았겠소."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그거야말로 손형만 한 고생이 아니고, 지금쯤 고생한 보람을 느끼며 하산할 준빌 하고있지 않겠어요?" "아마 그렇겠소." 이학송이 무겁게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피곤해뵈는데 그만 가시죠.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좀 쉬도록 하십시오." 김범우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아니, 밥값 여기 있소." 이학송이 김범우를 붙들려고 했다. "아닙니다. 전 옷만 이렇게 입었지 통역관입니다. 통역관한테는 특별 급료가 나온다는 것 아셔야 합니다." 김범우가 일부러 뻐기듯이 말하며 밥값을 치렀다.
"참, 식구들은 다 무사합니까?" 김범우가 식당을 나서며 물었다. "다행히 아무 탈 없소." "아 예, 그거 참 대행이군요, 참 잘됐습니다." "다 염려 덕택이오." 이학송은 예의 그 웃음 감도는 얼굴로 태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애의 칼로 찢기고 있는 그의 가슴벽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김범우의 말마따나 전남도당에는 총출동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에 따라 모든 지구는 비상상태 아래서 하산준비를 완료하는 한편 각 군단위로 병력이동을 시키고 있었다. 염상진은 총사의 병력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마다 엄동의 추위를 녹일 만큼 열기로 차 있었다. 조원제가 염상진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이때였다. 광주를 재점령하기 위한 선발대에 조원제네 부대도 포함되었던 것이다. 총사 부사령관이 되어 있는 염상진을 다시 만나게 되자 조원제는 그 반가움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찾아갔던 것이다.
"부사령관 동지, 안녕허십니까!" 조원제는 염상진 앞에 똑바로 서며 거수경례를 붙였다. "아니, 이게 누구요? 조, 조, 그렇지, 조원제 동무!" 염상진이 반색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조원제는 악수를 나누며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자신을 알아보면 다행이고 몰라보면 그의 기억을 깨우쳐줄 작정을 하고 찾아왔던 것이다. "어찌케 지 겉은 것 이름꺼지 다 기억허시고..." 조원제는 염상진의 비상함에 혀를 내두르는 한편 적잖은 감격도 느끼고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니오. 우리가 만난 게 좀 색달랐고, 얼마 되지도 않은 일이었으니까." 염상진은 밝게 웃는 얼굴로 예사롭게 말하고는, "조 동무가 이 지구에 있을 줄은 몰랐소. 그래, 무슨 임무를 맡고 있소?" 친근하게 물었다. "예, 정보과 분트에 있구만요." "아, 조 동무한테 어울리는 일 같소. 그런데 이제 그 임무도 끝나는 것 같은데, 앞으로 할일은 결정됐소?" "예, 당에서 김일성대학으로 진학하라는 분류를 받았습니다." "그것 참 잘된 일이오. 축하하오. 조 동무 같은 사람은 남은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게 좋은 일이오." 염상진은 아주 흡족해하는 얼굴로 기뻐했다. 조원제도 당의 그런 결정에 고마워하며, 그 대학에 갈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입산투쟁이 이렇게 쉽게 끝나버리나, 하는 한 가닥 속생각을 말로 내비치진 않았다. 그것은 다시 찾아온 기쁨의 뒤편에서 생겨난 어이없는 개인적 감정이지 말로 나타낼 생각은 아니었던 것이다. 다시 찾아온 기쁨은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일으킬 정도로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당에서는 하산 다음에 대비해 입산자들의 임무는 다시 분류하는 신속성을 보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입산자들은 하산의 설렘속에서 새롭게 마음들을 가다듬었고, 하산의 기쁨과 열기는 각 지구의 해방구마다 넘쳐나고 있었다.
첫댓글 이거 아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