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2-06
작 은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사람들은 고속(高速)과 함께 고단위(高單位)의 큰 것을 추구해왔다. 그러면서 또한 그것을 마음대로 이루어왔다. 컴퓨터를 얘기하는 요즈음은 전에 크게 쓰던 킬로(kilo)라는 말을 넘어, 메가(mega)니, 더 큰 기가(giga)니 하는 말을 쓰고들 있다. 어느 분으로부터 사람들의 우스개 소리를 전해들었다. 요새는 "억수(億數)로 많다"고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그저 보통으로 듣는단다. 그래서 사람들의 귀에 차는 말이 되려면 "조수(兆數)로 많다“고 말을 하여야 된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그 크던 억(億)이라는 수가 요즈음에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수가 된 것 같다. 사람들은 극소수의 작은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산출량(産出量)이 적은 것이 보석(寶石)이다. 그 양이 많으면 아무리 귀히 여기던 것도 값진 것이 아닌 흔히 여겨지는 물건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크고 많은 것보다, 작은 것이 소중하고 귀할 때가 있다. 이것이 희소가치(稀少價値)이다. 보기 드문 물건이 좋듯이 우리들도 주위에서 보기 드문 사람이라면 그것이 바로 작은 사람이 아닌 큰 대수로운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화 가운데 몇 개? 몇 살? 얼마? 몇 사람? 등의 마음에 가지고있던 의문스러운 말들을 꺼낼 때가 있다. 구도(求道)를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교회를 맡아보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당신이 섬기고있는 교회에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모입니까?”하는 물음이다. 그렇게 많이 모이지 않는 교회의 담당자로써는 대답하기가 어색하다. 그런데 참 우습게 여겨지는 모습은, 우리들에게 찾아드는 이들도, 이곳에 몇 명이나 같이 살고 있느냐? 하고 물을 때이다. 교회야 사람들이 많이 있으면 속된 사람들을 많이 불러들여서 좋은 일이겠으나, 우리의 공동체야 사람이 많고 적음이 그리 무슨 대수가 되겠는가? 오히려 대안적(代案的)인 공동체나 집단모임에는 같이 사는 식구들이 더 적은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 세상이 밝은 세상일 것이다. 가끔 나는 그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여러분들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돌아 갈 수만 있으면 왔던 이전의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대안학교(代案學校)란 말처럼 가정의 대안이 되는 대안공동체(代案共同體)라는 말 어떠한가? 이런 곳에 몇이라는 말이 그렇게 중요한가?
나는 작은 것을 좋아한다. 크거나 많으면 나의 주변머리로는 잘 헤아리지를 못한다. 좁은 시야의 속안(俗眼)으로는 둘레를 둘러보지를 못한다. 그러면서 반면에 속으로는 일이나 상황의 본질은 모른 채 겉만 건드리는 겉 핥기 꼴로 머무르는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웬만한 것이면 다 눈에 들 수 있는 작고, 쉽게 여겨지는 것을 보기로 하였다. 그렇다고 작은 것을, 가지고 노는 노리개로 여기지는 아니할 것이다. 오히려 손에서 벗어나 물 위로 던져져 파문을 일으키는 하나의 작은 돌이 되었으면 한다.
공동체 이야기
신 록(新綠)
6월은 신록의 계절이다. 나는 6월의 색인 초록빛을 좋아한다. 꽃이 피었다가 지고 그 다음에 돋아난 연한 새잎이 이제는 햇빛을 한껏 받아 짙은 엽록(葉綠)을 띠어간다. 그래서 주위가 온통 신록이 우거진 숲 속이 되었다.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육신(死六臣)의 한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은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하니 蓬萊山 제일봉에 落落長松 되었다가 白雪이 滿乾坤할제 獨也靑靑 하리라”하였다. 진실을 외면하는 흰눈(白雪)의 수양대군의 세력이. 만건곤(滿乾坤), 천지에 가득 한다 할지라도. 독야청청(獨也靑靑) 하리라, 홀로 높은 절개를 지켜 늘 변함이 없겠다. 오늘은 선거일이다. 사람들이 홀로 푸른 나무처럼 변함이 없어야 하겠다.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처럼 태도나 방법 등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 세워졌으면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였다. 우리들 또한 한가지가 되어야겠다. 옳은 일을 지키어 뜻을 굽히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집의 한쪽을 감싸고있는 산 울의 대나무 숲의 푸른 대들, 죽순이 자라나 곧게 뻗어 오른 연한 대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쑥쑥 자라간다. 우리는 다 자란 것이 아니다. 그저 자라 가는 것이다. 여기저기 치솟은 대를 보면서, 어느 쪽으로도 굽지 않고 곧게 더욱더 자라주기를 바란다. 세상에 굽은 일도 많은데 올곧은 대나무처럼, 굽은 세상을 바로잡아 가야겠다.
나는 우리들에게 찾아드는 이들에게, 꺼내는 말이라는 것이, 별 일 아닌 말을 끄집어내어 대답하게된다. “이곳에서 우리들은 그저 한유하게 지냅니다”라는 그 얘기다. 여기저기 밭일에 열중하는 처는 이 말을 들을 때 못마땅해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일은 놀이같이 하고, 운동과 같은 놀이는 일처럼 한다면, 참 좋은 노릇과 놀이로 여겨진다. 시간 속에서 한가하고 여유를 갖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일만을 열중하던 사람은 다 이루지 못한 일로 조바심을 떨칠 수 없게되고, 반면에 늘 일없는 무위(無爲)한 사람은 무력감이 찾아들 것이다. 우리들은 한유한 가운데 세상의 노릇과 놀이의 그지없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만 있다면 참 좋은 삶일 것이다. 그 안에서 아름다운 세상을 더욱더 가꾸고자하는 마음마저 있다면 빠짐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일은 나보다는 다른 사람 좋으라고 해내는 것이다. 아예 그러자면 나부터 좋은 일이라면 얼마나 더더욱 좋겠는가?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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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조점숙
박영근
문창수
정무래
박종만
어귀녀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02년 1월 2일에 대전에서 오신 김정옥 선생님께서 오래 전에 출타하여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청주 성덕원에 계시다는 소식을 면사무소를 통하여 전하여 들었습니다.
* 02년 4월 30일에 대전에서 오신 최진완 선생님께서 5월 11일에 손가락이 버거스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집에 가셔서 통원치료를 받으며 곧 낳으셨습니다. 그 후에 집에서 생활을 하십니다.
* 되살미사랑나눔봉사대(유영수). 주중
교회(연제국.권은혁). 대덕교회(이중삼정진일)에서 각각 휠췌어를 보내주셨습니다.
* 수돗물의 고장으로 02년 5월 21일과 22일에 새터공동체 샘을 다시 팠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1인).주식회사EG(이광형).성남교회안수집사회.일불사.김종모외3인.조길환.전장호.김기홍만나교회(전남홍외6인).동산베이커리.어귀녀.문창수.정무래.김태훈.최종현(진수정).이순섭.세광교회.채윤기(박현실).박종만.아름다운교회(오은탁).통계청(임명선외3인).대덕교회.예수마을.대전서노회박정도.왕지교회.장진성.옥천동부교회표성식.안명옥.계영수.대덕교회(이중삼백종학).설천교회.조점숙.한삼천교회.이정애.이종국.유인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