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제12장(第十二章)
君子之道는 費而隱이니라
군자(君子)의 도(道)는 비(費)하고 은미(隱微)하니라.
費는 用之廣也요 隱은 體之微也라
비(費)는 용(用)이 넓음이요, 은(隱)은 체(體)가 은미(隱微)함이다.
夫婦之愚로도 可以與知焉이로되 及其至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知焉하며 夫婦之不肖로도 可以能行焉이로되 及其之也하여는 雖聖人이라도 亦有所不能焉하며 天地之大也에도 人猶有所憾이라 故로 君子語大인댄 天下莫能載焉하며 語小인댄 天下莫能破焉이니라
부부(夫婦)의 어리석음으로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되 그 지극함에 이르러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부부(夫婦)의 불초(不肖)함으로도 능히 행할 수 있으되 그 지극함에 이르러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능하지 못한 바가 있으며, 천지(天地)의 큼으로도 사람이 오히려 한(恨)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큰 것을 말할진댄 천하(天下)가 능히 싣지 못하며, 작은 것을 말할진댄 천하(天下)가 능히 깨뜨리지 못한다.
君子之道는 近自夫婦居室之間으로 遠而至於聖人天地之所不能盡하여 其大無外하고 其小無內하니 可謂費矣라 然이나 其理之所以然은 則隱而莫之見也라 蓋可知可能者는 道中之一事요 及其至而聖人不知不能은 則擧全體而言이니 聖人도 固有所不能盡也니라 侯氏曰 聖人所不知는 如孔子問禮問官之類요 所不能은 如孔子不得位, 堯舜病博施之類라 愚謂 人所憾於天地는 如覆載生成之偏, 及寒署災祥之不得其正者라
군자(君子)의 도(道)는, 가까이는 부부(夫婦)가 집에 거처하는 사이로부터 멀리는 성인(聖人)과 천지(天地)도 능히 다할 수 없는 것에 이르러, 그 큼이 밖이 없고, 그 작음이 안이 없으니, 비(費)하다고 이를 만하다. 그러나 그 이치의 소이연(所以然)은 은미하여 드러나지 않는다. 알 수 있고 능할 수 있는 것은 도(道) 가운데의 한 가지 일이요, 그 지극함에 이르러 성인(聖人)도 알지 못하고 능하지 못한 것은 전체(全體)를 들어 말한 것이니, 성인(聖人)도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
후씨(侯氏)[후중량(侯仲良)]가 말하였다. “성인(聖人)도 알지 못하는 것은 공자(孔子)께서 예(禮)를 묻고, 관제(官制)을 물은 것과 같은 종류요, 능하지 못한 것은 공자(孔子)께서 지위를 얻지 못함과 요순(堯舜)이 널리 베푸는 것을 부족하게 여김과 같은 종류이다.”
내가 생각건대, 사람이 천지(天地)에 대하여 한(恨)한다는 것은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어 생성(生成)함에 있어서의 편벽됨과 추위와 더위, 재앙과 상서가 그 바름을 얻지 못함을 이른다.
詩云 鳶飛戾天이어늘 魚躍于淵이라하니 言其上下察也니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上下)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詩는 大雅旱麓之篇이라 鳶은 ?類라 戾는 至也요 察은 著也라 子思引此詩하사 以明化育流行하여 上下昭著가 莫非此理之用이니 所謂費也라 然이나 其所以然者는 則非見聞所及이니 所謂隱也라 故로 程子曰 此一節은 子思喫緊爲人處니 活潑潑地라하시니 讀者其致思焉이니라
시(詩)는 〈대아(大雅) 한록편(旱麓篇)〉이다. 연(鳶)은 솔개의 종류이다. 여(戾)는 이르름이요, 찰(察)은 드러남이다. 자사(子思)는 이 시(詩)를 인용하여 화육(化育)이 유행(流行)하여 상하(上下)에 밝게 드러남이 이 이(理)의 용(用) 아님이 없음을 밝혔으니, 이른바 비(費)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이연(所以然)은 보고 들음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이른바 은(隱)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이 1절(節)은 끽긴(喫緊)[요긴(要緊)]하게 사람을 위한 것으로 활발발(活潑潑)[생동감(生動感) 넘침] 한 곳이다.” 하였으니, 읽는 자들은 생각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君子之道는 造端乎夫婦니 及其至也하여는 察乎天地니라
군자(君子)의 도(道)는 단서가 부부(夫婦)에게서 시작되니,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천지(天地)에 밝게 드러난다.
結上文이라
위 글을 맺은 것이다.
右는 第十二章이라 子思之言이니 蓋以申明首章道不可離之意也라 其下八章은 雜引孔子之言以明之니라
우(右)는 제12장(第十二章)이다. 이는 자사(子思)의 말씀이니, 수장(首章)에 도(道)는 떠날 수 없다는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이 아래 여덟 장(章)은 공자(孔子)의 말씀을 섞어 인용하여 이것을 밝힌 것이다.
도(道)를 따라 행함은 능히 선(善)을 택한 것이요, 중도(中途)에 폐함은 힘이 부족한 것이다. 이는 그 지(知)가 비록 족히 미칠 수 있으나 행(行)이 미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강하게 하여야 할 경우에 강하게 하지 않는 자이다. 이(已)는 그만둠이다. 성인(聖人)이 이에 대하여 억지로 힘써서 감히 폐지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요, 지극히 성실하고 쉼이 없어서 저절로 그만둘 수 없는 바가 있으신 것이다.
君子依乎中庸하여 遯世不見知而不悔하나니 唯聖者能之니라
군자(君子)는 중용(中庸)을 따라, 세상(世上)에 은둔(隱遁)하여 인정을 받지 못하여도 후회(後悔)하지 않나니, 오직 성자(聖者)만이 이에 능하다.”
不爲索隱行怪하니 則依乎中庸而已요 不能半塗而廢하니 是以로 遯世不見知而不悔也라 此는 中庸之成德이니 知之盡하고 仁之至하여 不賴勇而裕如者니 正吾夫子之事로되 而猶不自居也라 故로 曰 唯聖者能之而已라하시니라
은벽(隱僻)한 이치를 찾고 괴이(怪異)한 행실을 하지 않으니, 중용(中庸)을 따를 뿐이요, 중도(中途)에 그만두지 못하니, 이 때문에 세상에 은둔(隱遁)하여 알아줌을 받지 못해도 후회(後悔)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중용(中庸)의 성덕(成德)이니, 지(智)가 극진하고 인(仁)이 지극하여, 용(勇)을 힘입지 않고도 충분한 자이니, 바로 우리 부자(夫子)의 일이시되, 오히려 자처(自處)하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오직 성자(聖者)만이 이에 능하다.’ 하신 것이다.
右는 第十一章이라 子思所引夫子之言以明首章之義者 止此라 蓋此篇大旨는 以知仁勇三達德으로 爲入道之門이라 故로 於篇首에 卽以大舜顔淵子路之事로 明之하시니 舜은 知也요 顔淵은 仁也요 子路는 勇也니 三者에 廢其一이면 則無以造道而成德矣라 餘見(현) 第二十章하니라
우(右)는 제11장(第十一章)이다. 자사(子思)께서 부자(夫子)의 말씀을 인용하여 수장(首章)의 뜻을 밝힌 것이 여기에서 끝났다. 이 책의 대지(大旨)는 지(智)·인(仁)·용(勇)의 삼달덕(三達德)을 도(道)에 들어가는 문(門)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책머리에 곧 대순(大舜)·안연(顔淵)·자로(子路)의 일로써 밝히셨으니, 순(舜)은 지(智)요, 안연(顔淵)은 인(仁)이요, 자로(子路)는 용(勇)이니,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없으면 도(道)에 나아가 덕(德)을 이루지 못한다. 나머지는 제20장(第二十章)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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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古稀宴때 드릴 冊(2020.02.07) 원문보기 글쓴이: 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