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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복음의 의미 안에 들어있는 0과 1이라는 디지털 기호를 코드로 성경말씀을 풀어내는
태승철의 오늘의 번제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내 운명>의 줄거리:
운명적인 사랑의 상대를 우리는 참으로 다양하게 묘사합니다. 당신은 나의 태양. 나의 봄. 나의 보배. 나의 꿈. 나의 행복 등등. 시내산에서 선민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계약을 체결합니다. 말하자면 선민 각자에게 하나님이 운명적 배우자가 되셔서 결혼을 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선민의 운명이신 하나님은 결코 로맨틱하고 스위트한 모습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두려움에 질식할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운명인 사람의 일상은 관연 어떤 모습일까요?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내 운명
(출19:7~25)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14.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준비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하니라
15.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16.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서 있는데
17.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18.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내 운명>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내 운명’
1960년대에 나온 팝송 중에서 폴 앤카(Paul Anka) 가수가 부른 “You are my destiny”는 웬만한 나이 드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운명인 사랑을 만나서 부르는 노래 속에 얼마나 달콤한 내용이 들어있는지 모릅니다.
‘너는 나의 운명’에서 운명(運命)이라는 말을 대체하는 아주 로맨틱한 단어가 나오는데 당신은 나의 꿈, 당신은 나의 행복, 당신은 나의 달콤한 손길, 당신은 나의 이루어진 꿈 등으로 그 사랑의 관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천국만이 나에게서 당신의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있죠 / 왜냐하면 내가 혹여나 당신을 떠난다면 나는 바보니까요 / 나는 절대 그런 바보는 되지 않으렵니다.”
‘천국만이 빼앗아갈 수 있는 사랑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죽어야 끝이 날까 그러기 전에는 내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는 당신을 떠나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짜릿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가사 속에서 물씬물씬 풍기는데 운명적인 사랑에는 이면(裏面)이 있습니다.
그것은 달콤하지 않고 아주 쓰디쓴 측면이 있는데, 그 쓰디쓴 면을 기꺼이 맞이하게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운명적인가 아닌가를 결정합니다.
이 쓰디쓴 측면을 가진 운명적 사랑의 이면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느냐의 검증 없이 결혼을 하므로 운명적 사랑이 아니라서 그렇게 이혼이 많은 것이죠.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전 도연 씨가 에이즈 보균자인 다방 종업원으로 나오고, 황 정민 씨가 이 종업원을 순정으로 사랑하는 농촌 총각으로 나옵니다. 에이즈 보균환자와 결혼을 한다든지 그 관계를 지속하게 될 경우에는 모든 걸 다 잃게 될뿐더러 자기도 에이즈가 걸리는데,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더라도 놓아줄 수 없는 사랑이 바로 운명적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남녀 배우는 이 영화로 2005년 당시의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을 받게 되고, 그때 황 정민 씨가 수상소감으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렸을 뿐인데 이렇게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재치 있고 겸손한 발언을 해서 아직도 유명합니다.
달콤하고 로맨틱할 때에는 찰떡 같이 붙어 있다가 조금만 쓰디쓴 상황과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은 운명적 사랑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운명적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폴 앤카의 ‘You are my destiny’ 노래의 가사 마지막 부분에 ‘천국만이 나에게서 당신의 사랑을 빼앗아 갈 수 있죠.’라고 하는데, 이 천국 자체가 내 운명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좀 더 말을 정확하게 하면 선민에게는 어느 여자나 어느 남자가 운명적 사랑이 될 수 없고, 어떤 일이나 어떤 직업이 나의 운명적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선민이 되었다는 것은 다른 말로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운명이 되셨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내 운명이 되셨어요.
폴 앤카는 노래하기를 아름다운 운명 같은 여자를 만났는데 천국에서 나를 불러가기 전에는(죽기 전에는) 이 사랑을 놔줄 수 없다고 합니다만, 살아있는 동안에 그 천국에 계신 하나님께서 나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내 운명이 되셨을 때에 운명이신 하나님에 대해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며, 천국에 계신 하나님이 내 운명일 때에 이 땅에서 선민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 것인가가 오늘 본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운명적 사랑의 가장 모델적인 예를 두 사람을 든다면 아브라함과 욥이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영광중에 나타나신 것으로 마음에서 1등 하셨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보자마자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그 분이 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분이 나의 운명이라는 사실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한 이면은, 그 당시 복 중의 복인 안정된 삶의 기반이었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되고, 그렇게 아름다운 아내 사라를 몇 번이고 포기하게 되는데 운명적 사랑 때문에 집을 떠난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적 사랑을 마음에서 놓지 않기 위해서 조카 롯과 땅을 나눌 때에 롯에게 좋은 땅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 최종적으로는 운명적 사랑을 마음에서 지키기 위해서 자기 인생의 모든 의미를 담고 있는 독자 이삭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죽이는 일까지 감행하게 됩니다.
욥도 마찬가지예요. 아브라함이 잃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잃고 건강까지 잃었지만 그러고도 하나님을 버릴 수 없었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적 사랑이라는 것이고, 하나님이 운명적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뒷전의 일이고 나중의 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운명적 사랑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욥이나 아브라함에게서처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요구하시더라도 하나님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에이즈 보균자인 다방 여종업과 결합하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됨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버릴 수가 없어서 그 여자를 향해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 내용의 황 정민이나 욥이 똑같습니다. 하나님이 다 가져가셨음을 고백하고, 마치 에이즈 균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다 가져갈 것이지만 그래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운명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 이면의 이야기를 우리가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운명인 선민이 바로 그런 사람들인데, 오늘 이 시내 산에서의 계약이 시작되려고 합니다. 이 시내 산 계약이 의미하는 것은,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당신이 누구신가를 보여주시고 인도해주셨는데, 이제는 선민 각자가 하나님과 시내 산 계약을 통해서 결혼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부모를 공경하라 / 살인하지 말라 / 간음하지 말라 / 도둑질하지 말라 /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증거 하지 말라 /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이런 모든 계명은 공동체에게 주는 것임과 동시에 나 개인이 지켜야하는 것으로, 이 계약의 내용은 선민 각자가 하나님과 운명적 관계의 연합으로 돌입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으로 많은 율법과 계명과 말씀들이 주어지겠지만 도대체 이 운명적 사랑으로 하나님과 연합해서 사는 선민의 삶은 어떤 모습이어야 되겠는가를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살아야 운명적인 사랑의 대상으로 어느 여자나 어느 남자 혹은 직업이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을 운명적 사랑으로 알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되는 것인가를 이야기해줍니다.
먼저 10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라고 하십니다.
백성들에게 성결할 것을 요구하시는데, 성결의 상징적인 행동으로 옷을 세탁하고 잠자리를 삼가도록 하십니다. 이것은 옷을 빨아야 성결해진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성결하게 갖는 것으로 자기 마음의 성결을 인식시키고 깨닫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성결’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말하면 ‘성별’이 더 분명한 말로 이제 하나님과 운명적인 사랑의 관계로 연합하는 상대자인 선민들은 성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별된다.’라는 것은 보릿고개가 와도 종자 씨로는 밥을 해먹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종자 씨를 지켜야 농사를 지어서 그나마 나머지 식구들이라도 살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바로 그렇게 내가 지켜져서 하나님께만 드려지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믿기 시작했다면 성별된 것으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잘 나가기 위해서 사는 것도 아니고, 돈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선교사로 가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고 하나님과 운명적 파트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오직 내 존재자체가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니고 인생의 꿈을 위한 것도 아니고 직장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 어떤 것을 위한 것도 아닌 오직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해 구분되어 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보릿고개의 종자 씨와 같은 것으로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면 안 됩니다. 오직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 농사를 지어야 할 뿐, 다른 용도로는 쓸 수가 없습니다.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종자 씨를 팔아도 안 되고, 겨울에 배고프다고 해서 그것을 까먹어도 안 되고, 어떤 용도로도 안 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 운명적 사랑의 대상이 되셨을 때에 선민에게 주어지는 첫 번째 요구입니다.
직장 생활도 하나님이 필요해서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고, 가족에 대한 관계도 하나님이 필요해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것일 뿐, 내가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라를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직장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므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순간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관계를 맺은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You are my destiny’ 노래에서 그 운명이라는 말은 나의 행복, 나의 달콤한 손길이고, 우리나라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영어제목은 ‘You are my sunshine’으로 운명이라는 말이 이렇게 로맨틱하게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내 운명이신 하나님은 내게 임재하실 때에 어떤 모습들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까?
16절에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라고 나오고, 18절에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라고 나옵니다.
즉, 당신은 나의 우레와 번개이고 빽빽한 구름이고, 당신은 나의 큰 나팔소리이고, 당신은 나를 무섭게 떨게 하는 분이시고, 당신은 온 산의 진동이고, 당신은 나의 자욱한 옹기 가마 연기, 당신은 나의 맹렬한 불로 어디 하나 로맨틱한 곳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운명인데 이 하나님이 운명일 때에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시는 모습이 이렇게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진동과 나팔소리와 무섭게 떨게 하심과 진동과 옹기 가마 연기와 맹렬한 불로 임하시는데, 구체적인 삶에서 그 하나님과 맞춰서 산다는 것이 대체 무엇이고, 하나님만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먼저 ‘우레와 번개’는 무엇을 말합니까?
당신은 나의 우레와 번개!
당신은 나의 달콤한 손길도 아니고 나의 태양도 아니고 나의 꿈도 아니고 나의 봄도 아닙니다. 하늘에서 우레 소리가 나고 번갯불이 번쩍일 때에 그 순간만큼은 우레 소리를 듣지 않고 번개를 보는 것 말고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들을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이 나의 우레와 번개라는 이 말은 이제 하나님과 운명적인 사랑으로 맺어진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 말고는 들어야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그 누구의 말도 안 듣게 되고, 못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번개도 오직 마음에서 보고 있는 것은 번개가 칠 때 우레 소리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그 번개를 보는 것처럼 오직 당신의 말씀만을 듣게 될 것이고, 당신만을 내 마음으로 그리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빽빽한 구름’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나의 빽빽한 구름!
옛날에 구름 한 점 없는 지평선을 보면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땅인지를 알 수 없을 때에 구름 하나가 바람을 타고 오면, 그 구름이 경계가 되어서 구름 위가 하늘이 되고, 구름 아래는 땅이 됩니다.
즉, 구름 위는 인간세상과는 구분되는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빽빽한 구름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그 빽빽한 구름 너머를 볼 수 없는데, 그 구름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내 마음이 언제나 가서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뢰와 번개는 이 땅의 많은 소리가 들리고 많은 것이 눈에 보이고 마음에 보이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내가 보고 듣겠다는 뜻이고, 빽빽한 구름이라는 것은 언제나 내 마음이 당신이 계신 그곳에 나도 가 있겠다는 것으로 이것이 운명적이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이 땅에서 5년 뒤에 이룰 꿈이나, 바다 건너에 있는 자식들이나, 결혼할 약혼자에게 가 있지 못하고, 이 땅 어디에 있든지 우리의 마음은 빽빽한 구름 위에 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운명적 사랑의 약속입니다.
‘나팔소리가 크게 들렸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나의 큰 나팔소리!
옛날에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모든 일을 다 멈추고, 관심을 집중해야 될 사건이 생겼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임금님이 우리 도시에 오셨다든지, 우리 도시 성벽 밖에 적군이 쳐들어와서 전쟁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이든지, 어느 집안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것이든지 간에 나팔소리가 들리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오직 나팔소리에만 집중해야 된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같은 의미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다가오신다는 것은 임재(만남)를 위해서 다가오시는 것으로, 내 인생에 있어서 모든 일을 다 멈추고 내가 하루 중에서 제일 먼저 해야 될 일은 하나님과 만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밭일을 하다가도 전쟁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리면 다 중단해야 하고, 엄마는 나가서 돌을 주워야 하고, 아빠는 곳간에 두었던 칼과 창을 들어야 하고, 자식들도 하다못해 뜨거운 물이라도 들어야 하고, 새총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매일 아침에 가장 큰 진동과 나팔소리로 나를 찾아오시는 분이기 때문에, 내 마음속이 어떠한 일로 분주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을 다 멈추고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분으로 하나님은 나의 운명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대상을 향해서도 이렇게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떠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다’라고 하는데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나의 자욱한 옹기 가마 연기!
이 세상의 모든 대상들은 내 앞에 있고, 내 앞에 있는 자가 나의 사랑의 대상인데, 나의 운명이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나를 사방으로 감싸고 내가 동쪽으로 가든지 서쪽으로 가든지 남쪽이나 북쪽으로 가든지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좋아서 만났더라도 등지고 헤어지면 끝나는 것이고, 아주 결별이 아니더라도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헤어져야 하고 결혼했더라도 직장에 가려면 집을 등져야 하는데, 하나님은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옹기 가마 연기처럼 나를 둘러싸고 계시는 분이시라서 You are my smoke인 이상한 운명의 대상입니다.
‘맹렬한 불같은 분’이라고 하시는데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나의 맹렬한 불같은 분!
히12:29절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하십니다.
질투가 불같으시고 정열이 불 같으셔서 내 마음이 하나님 이외의 것을 향하거나 담을 때에 결코 참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보세요. 마지막으로 독자 이삭까지 마음에서 다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없앤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붙잡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끌고 가십니다. 욥에게서도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시고 두 배로 주십니다만, 그러나 욥의 마음에는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맹렬한 불 같이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 이외의 모든 것을 다 태워버리십니다.
‘산의 진동’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나의 산의 진동!
이 땅에서 가장 견고한 것이 산인데, 그 산이 진동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운명으로 모시게 될 때에 이 땅에서는 내가 안정된 기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경계를 넘어오면 죽이시겠다.”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네 번씩이나 하십니다. 지금 결혼식인데 로맨틱한 말씀은 한 마디도 안 하시고 다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 말은 이러한 나의 운명이신 하나님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하나님과 사랑의 대상으로 연합할 때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잘 모르고 무조건 하나님께 대들었다가는 다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고 십자가에서 주님과 연합함으로서 이 모든 내 운명이신 하나님에 대해 취해야 될 응답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십자가 생활화입니다. 주님과 함께 내가 죽었다는 고백 하나를 통해서, 당신은 나의 우뢰와 번개라는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고, 당신은 나의 빽빽한 구름, 당신은 나의 나팔소리, 당신은 나의 연기, 당신의 나의 산의 진동, 당신은 나의 맹렬한 불같은 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분이 운명처럼 나의 파트너가 되시고 반려자가 되시고 동반자가 되시는 사건이 이 시내 산 계약 사건으로, 이 모든 요구가 1500년 뒤에 예수님께서 오셔서야 비로소 선민에게 온전히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로는 오늘 본문의 이 모든 표현이 다 맞아떨어질 수 있도록, 우리의 모든 마음가짐과 행위가 나올 수 있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져서 진짜 선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선민다운 선민들의 모습이 초대교회의 모습이었고, 사도들의 모습이었고 우리가 그 길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나의 운명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나의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 당신은 나의 큰 나팔소리이시고, 당신은 나의 옹기 가마 연기이시고, 당신은 나의 산의 진동이시고, 당신은 나의 맹렬한 불이십니다.
이 모든 하나님의 임재를 묘사하는 것에 합당한 행동으로 진짜 선민다운 선민이 되어서 이 하나님과 찰떡같은 연합이 될 수 있도록 십자가를 생활화 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당신은 나의 운명이십니다. 당신 한 분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 이면에 이 세상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씁쓸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기위해 오늘도 매 순간 십자가를 생활화 할 수 있도록 저희 마음을 일깨워 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