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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원
조선대학교여자고등학교 3학년 지수민
달력의 마지막 장엔 번지점프를
강을 끼고 있는 높다란 번지점프대 아래,
끈을 생명줄처럼 쥔 오빠가 서 있다
목에는 면접 이름표를 그대로 단 채
얼마 전 갔던 회사의
불합격 전화를 받고 오는 길
소고기에 찍히는 등급 도장처럼
오빠 등에도 보이지 않는 낙인이 찍힌다
이젠 더 물러날 곳도 없어,
오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
나이도 점점 한 달을 다 채워 가는데
달력에 가득한 일정 사이엔 왜
출근이란 단어는 없는 건지
이미 너무 많이 왔는데 어디로 가야
떨어지기만 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오빠는
놓은 곳에서 뛰어내리기로 한다
이제 밑바닥까지 내려왔으니
다시 올라갈 일만 남은 거라고
고소공포증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두려움도
아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오빠의 절박함을 이길 수는 없어,
대학교를 졸업하던 날
어머니가 사주신 비싼 정장을 입고
오빠는 소리지르며 번지점프를 뛴다
면접관 앞에서 하지 못한 말들
세상이 들으라고 목청껏, 소리친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상1
서울 영동일고등학교 3학년 박수현
나의 작은 들꽃 축제
진달래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는 늦봄에
젖은 두릅과 산도라지 내음새 풍겨온다
개골소리 흘러오는 앞마당이
까만 어둠에 물들어가면
멀리서 번지는 맨드라미 울음소리
마음속을 찌르르 울린다
굴뚝 위로 숨결처럼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면
부엌간에서 잘게 떠는 가마솥소리 들려온다
할머니 무릎에 머리를 기대자
익숙한 쉰 파스 내음새가 까만 허공에 헝클어진다
쪽마루 아래에 냉이꽃은
작은 자태에도 불구하고 또렷히 눈에 띈다
거꾸로 선 달걀 모양의 흰색 꽃잎은
쪽마루 틈새를 파고든
새하얀 달빛을 품고 있다
굽굽한 내음새보다 쌉쌀한 새싹 향이
코 끝에 짙게 남는다
얘야, 꽃은 피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거란다
할머니의 멍울진 가슴에서 시린 풀 내음새가 피어오른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주저없이 꽃을 꺾으려던 손을 말린 건
할머니의 마른 목소리이다
냉이꽃이 방향을 알 수 없게 흔들리다
다시 꼿꼿한 자세로 한 방향을 향해 꽃잎을 피운다
보살피지 않아도 피는 꽃
예뻐해주지 않아도 예쁜 꽃은
할머니의 잘게 떠는 입술에서 피어난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상2
영파여자고등학교 2학년 송해수
축제
시린 눈 대신 민들레 홀씨가
불똥처럼 튀어오르는 저녁
생기가 흑백 거리 위로
한 웅큼 엎질어진다
유난히 길어진 해는
눈부신 색채로 동네를 장식한다
풍선처럼 부푼 봄꽃들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뜨리는 중이다
어린 동생은 부러진 꽃가지를
불꽃놀이 막대 삼아 휘두른다
가지 끝에서 흩어지는 봄의 폭죽
뿜어져 나온 꽃잎이
반짝이가루처럼 떨어진다
아이들은 초록잎을 뜯어
저녁밥을 짓는다
오늘 잔칫상의 재료는 봄
샛노란 개나리 꽃잎에
조각난 햇볕 한줌이 곁들여진다
겨우내 냉동되어 있던 봄이
사방에 화려한 물감을 칠해놓는다
가끔 여우비가
술처럼 쏟아지며 풍경을 적시기도 한다
끝이 나지 않는 계절의 축제
봄의 끝자락에 매달린 채
다가오는 여름의 안부를 묻는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1
고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박서린
조용한 축제
밤이 긴 팔을 뻗어 주머니를 연다
쏟아져나온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만개한 꽃들이 이름 숨긴 채 아름다운
여름이라는 작고 소란스런 축제다
줄넘기 숙제 하러 나온 아이가 그 광경을 올려다보고
묵묵히 가던 맹인안내견도 멈추어선다
멍 가득한 다리 드러낸 맹인여자는
손에 쥔 줄을 팽팽하게 당기지만
눈앞의 광경을 읊어줄 수 없는 안내견은
가만히 앉아만 있는다
맹인이 알기에는 너무 조용한 축제다
찔레꽃 앞에 가만히 멈추어 있던 개가
다시 묵묵히 안내를 시작하고
맹인은 맨다리에 달라붙는 초여름의 공기가 간지럽다
여름이 그렇게 흘러간다
조용한 축제처럼, 한여름밤에 부르는 노래처럼
흘러간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2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김민서
발레리나와 국숫집 어머니
축제엔 한번도 춤이 빠진적 없으니까
춤추는 사람에 대해 말해볼까요
간판이 반쯤 벗겨진 국숫집에서 벌어지는
춤판에 대한 이야기
불꽃놀이보다 자주 불을 번쩍이는 형광등이 있고
발레학원 거울에 비친 실루엣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있는데
국숫집 문을 열어보면
긴 머리를 묶어올린 어머니
밀가루 뚝뚝 떨어진 부엌에서
발목을 감산 붕대가 색 바랜 토슈즈처럼
바닥을 사뿐히 밟고 있다
조용한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갈라진 입술 틈으로 흘러나오는 얕은 허밍에 맞춰
박수도 함성도 없이
뭉친 면발을 풀 듯
잃어버린 소원을 한 손으로 젓는다
냄비에서 끓어오르는 열기에
이마 위로 땀방울이 맺히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릴 때까지 내버려둔다
연습실에 쏟아낸 마음이 다시 찾아온 것만 같아서
앞치마를 고를 때 자꾸만
무늬를 신경스게 되는 이유다
발레리나와 국숫집 어머니
손끝이 면발을 뽑듯 유연한 곡선을 그리면
거울에 비친 실루엣이 겹쳐진다
우리의 축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럼 이제 우리 같이 춤출까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3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이정원
번지점프
바람이 들인 통증이 아름다워
안쪽이 자꾸만 욱씬거린다며 가슴을 긁던 엄마 더 이상 동그라미를 그리지 않는 생리 달력이 한 장씩 넘겨질수록 가슴이 푹푹 꺼진다고 했어 점점 낭떠러지가 되어가는 엄마의 가슴 더 이상 설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언니와 나는 무턱대고 아래로 뛰어들었는데
기류에 쉽게 떠밀리던 우리 집
밤마다 내 눈가에서는 눈물방울이 추락을 시도하고 그때마다 부풀어오르는 언니의 젖꼭지 분홍빛이 되도록 남몰래 통증을 들이고 있다가
하강을 예측한 듯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싱크대 그릇더미처럼
부서지는 소리를 입 안으로 꾹꾹 삼키다가
덜컥, 우리를 붙잡는 생명줄 하나
자정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면
다시 엄마의 절벽을 오를 수 있다는 듯이
오늘도 우리가 들인 가슴의 통증은 아름다워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4
경기 백암고등학교 3학년 지수현
하룻밤의 축제
전깃줄에 턱을 괸 달,
밤이 참아온 달동네엔 작은 축제가 열렸어
빽빽하게 모여 있는 판잣집들,
동네에 내려 앉은 어둠을
달빛이 묽게 지워내리는 중이야
비좁은 골목 안, 붉은 가로등은
어둠 속에서 이따금씩 깜빡거리고 있어
깜빡일 때마다 드러나는
벌레의 형상들,
하루살이들은 가로등 아래에서
자꾸만 온몸을 흔들어 댔어
밤의 농도가 깊어져 갈 때도
하루살이들의 축제는 끝나지 않았어
금세 바스라질 듯, 작은 몸을 이끌고
불빛 중앙으로 향하는 하루살이들,
깜빡거리는 가로등 밑에서
한번 뿐인 춤을 추는 중이야
달동네 위로 해가 다시 떠오르면
하루살이들은 계속 날개를 파닥일 수 있을까
어디선가 풍겨온 알코올 냄새가
자꾸 내 코끝을 찔어 댔어
다신 오지 않을 시간 속,
하루살이들의 작은 몸짓이
골목 구석에 아리게 고여 있어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차하5
선일여자고등학교 2학년 박은선
불꽃 축제
말 없는 방안은 어딘가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불에 누워 창 밖 불꽃 축제를 바라보면
시린 손목에서 맥박이 뛰지 않는 것 같았다
좁은 내 방에서
회색 선풍기 바람은
끈적하게 달라붙었고
책상 위 쌓인 문제집의 시선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천장에서 갈 곳 없는
파리의 날개짓 소리가 들려오면
축제가 한창인 창 밖에서는
엥엥거리는 파리보다 더 큰 폭죽소리가 펑, 펑,
내 귓가를 적셨다
눅눅한 베개를 베고 눕는 날이면
방안 가득 차오르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
나는 말 없이 고여갔다
조용한 내 숨소리에
창 밖에 만개하는 불꽃은
더욱 밝게 빛났다
축제가 끝난 뒤,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공원을 바라보면
이미 죽은 폭죽 막대기가 굴러 다녔다
바닥에 날리는 잿가루 위로
내 그림자가 타버린 심지처럼 메말라갔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1
성심여자고등학교 3학년 최재원
축제
배에 시동이 걸렸다고 해서
오늘이 뭍으로 빠져나와
축제를 벌이는 날이라는 것은 아니다
배에 실은 온몸을 떨어가며
물 빠진 갯골이 완전히 차기를 기다리다가
뭍에 다다라서야 뱃고동소리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는 아이들은
모두 섬에서 태어났다
입원실 칸막이마다 쳐진 커튼이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의 임부복보다
넓은 품으로 부풀어 오른다
검사를 받는 엄마의 배에는
내가 나온 서막이 항적으로 남아 있다
섬처럼 부른 엄마의 배가
밀물과 썰물이 오가듯 움질일 때면
뱃고동소리 대신 동생의 심장소리가
내 귓가에 선명하게 박힌다
옆자리의 젊은 여자가
내 첫 항해의 흔적에서 눈을 떼지 못하기에
엄마는 축제가 시작되기 전 잔잔하던 바다에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축제가 끝나서도
며칠 동안 번개가 내리쳤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아직도 바다에 파편으로 떠오른 섬에
사는 아이들은 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동생의 뱃고동소리가 뭍까지 울려퍼지면서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2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안 휘
발푸르기스의 밤
어둠 속에서 축제의 막이 열리지 달을 한입 파먹고 우리를 찾아온 마녀들 오늘은 마녀들의 축제날이야
빗자루를 타고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마녀들 깔깔 웃으며 모자를 벗어던지지 아래로, 떨어진 모자가 우리의 머리 위에 씌워지면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같은 밤하늘 마녀들은 별가루를 흩날리며 꿈을 배달해
그러니까 우리는 작별 인사를 하는거야 썩은 우유 같은 하루와 숫자로 적힌 이름들, 뱀처럼 기어가던 칠판 위의 글자들에게 안녕을 말하며 마녀처럼 하늘을 나는거야 교과서를 찢어 꽃가루처럼 뿌리고 조각난 글자들을 마음대로 이어붙여 판타지 소설을 지어내며 키키, 우리는 웃지 마녀들을 쫓아가며 즐기는, 아 즐거운 축제 가방도 교복도 다 던져버리고 우리는 무중력 상태로 거리를 배회해
오독오독, 마녀들의 밤을 씹어먹으며
누군가 말해, 축제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는 마녀의 모자를 꽉 눌러쓰고 가로등의 불빛을 피해 날아다니지 마법에 걸려 흐물흐물해진 시계가 점점 단단해지는데 안돼, 날카로워진 초침이 마녀를 찌를거란 말야 우리는 여러 겹의 눈꺼풀을 만들어 온몸으로 눈을 감지만 저 멀리서 아침이 어둠을 걷어내고 있어 어둠과 함께 우리의 머리 위에서 모자가 벗겨져 날아가고
축축한 베개 밑엔 마녀들이 죽어있었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3
서울 문영여자고등학교 3학년 박유진
폭죽을 삼키다
길목만 떠올려도 펼쳐지는 고향 읍내
작지만 소란스러운 미용실에 어머니가 계실 거다
풍덩한 고쟁이 차림으로 드레스 코트를 맞춰
몸의 모양새에 따라 숨이 죽는 의자에 앉으면
좀먹는 자리에 엉덩이 지문이 새겨진다
머리 자릅니다, 투박한 글씨로
축제의 개막을 거리에 알리면
폭죽같은 소문을 이고 지정석에 앉는 아낙네들
논 마 지기 팔아먹은 남편의 술주정에
다 된 설거지 도로 담그는 시어미의 등쌀이
행여 푹죽처럼 터져 천장에 흔적이 남을까
평상 위 아낙들 수다에도
끝끝내 속내를 감춘 어머니는
다 바래어버린 머리칼보다 더 얄팍한 가슴을 가졌다
미용실 소파에 앉아
대롱대롱 발을 튕기던 어머니
라디오의 잡음에 리듬을 맞추면
흰 머리는 더 무성해지고
어깨까지 내려온 흰 머리칼에
졸고 있는 낮잠을 그르칠 때마다
집안의 폭죽들은 조금씩 없어질 거다
축제의 호흡에 맞춰 머리카락이 잘려나간다
집안의 불꽃은 남몰래 터트려야
집안의 자식들이 잘풀린다는 전설들
저 하늘에 여백이 없어지는 날
축제의 절정에 몰래 불 붙이면
새하얀 구름다리가 넘실넘실 놓인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여름
덜덜거리는 낡은 선풍기 소리
이제는 비어버린 미용실을 가득 채운다
거리에는 색색의 미러볼만이 하염없이 돌아갔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4
안양예술고등학교 3학년 정새얀
새의 사원
벚꽃 축제 마지막 날
소나기가 초청한 그들이 마지막 공연을 시작한다
안개로 빚은 나무 아래 무대로
고개를 천천히 들며 올라선다
잠시 종적을 감췄던 그들을 보기 위해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며 모여 들고 있다
카세트 테이프를 누르자
낮은 소리로 흘러 나오는 달의 허밍
오색 가지 깃털을 몸에 두른 채 춤을 춘다
한때 나무 신을 경배 하던 새의 부족
시든 나뭇가지에 올라가 사나흘을 머물며
햇빛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그들의 교리는 문병
피지 못한 꽃 이나 날지 못하는 나비 에게
경쾌한 박자를 가진 별똥별을 건네었다
하지만
저승을 돌보던 새의 부족은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 지하의 세계로 돌아 오라는 약속을 어기고 말았다
그때 부터 였을까
지금 땅 속에 묻혀져 있는 저 새들이 날지 못하게 된 것이
새의 피를 물려 받아
품을 추며 돈을 구걸하는 저 사람 들은
생매장된 새의 박자가 공기 중에 전염 되고 있다는 걸 알까
축제의 피날레를 장식 하는 노래가 희미해져 간다
앵콜을 외치는 바람에 꽃잎이 떨어지고
오늘 밤
새의 심장 같은 달이 뜬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제19회 전국 고교생 문예백일장 – 장려5
서울 무학여자고등학교 2학년 조서빈
번지점프
퇴근 시간 열차 안에는
노약자석을 넘어 몇몇 일반자석조차
구부정한 동선이 이어진다
어수선하게 띄워진 공기
육체의 고단함을 피할 수 없어
자꾸만 감기는 눈을
오고 가는 큰 목소리가 깨운다
나도 모르게 일그러지는 눈썹
눈에 보이는 이들은
노인인지 중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들의 육체는 생생하다
주름진 청춘들은 알고 있을까
당신을 골칫덩이로 보는 우리의 시선과
항상 따라붙는 단어는 적자일 것 같은 느낌을
멍 때린 내 머릿속에
늙는다는 것은 한 순간일지도 모른다고
음미하지 못하는 시간 동안
여기저기 쪼그라들고 있는
아무렇게나 그어진 선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