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삼(玩花衫)
―목월(木月)에게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러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리.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상아탑》5호(1946. 4)수록.
―김희보 엮음『한국의 명시』(가람기획 증보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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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박목월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南道) 삼백리(三百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일간『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54』(조선일보 연재, 2008)
*조지훈의 <완화삼(莞花衫)>에 화답한 시.
천양희 시인의 시 '직소포에 들다' 는 13년만에 완성이 되고 '마음의 수수밭'은 8년만에 얻어졌다고 합니다. 신경림의 '목계장터' 같은 경우는 수정을 거듭하며 몇 군데 발표를 했는데 반응이 신통찮아 버려놓다시피 했던 것을 염무웅에 의해서 시집에 다시 수록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처럼 조지훈의 '승무' 라는 시도 오랜 기간을 두고 고쳐 썼다고 하는데 이 시의 제목 '완화삼'은 꽃무늬 적삼을 즐긴다는 뜻으로, 꽃을 보고 즐기는 선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 시는 쓰여진 시기가 일제시대이고 시대적 배경이 되다보니까 그런 해석이 나오는지 모르지만 비극적 조국의 현실 때문에 이상 세계에 갈 수 없는 현실을 나그네가 되어 유랑의 길을 떠나는 것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목월에게'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처럼 완화삼(玩花衫)은 박목월 시인에게 보낸 시입니다. 박목월 시인은 이 시를 보고 답시를 쓴 것이 "나그네" 인데 나중에 '나그네' 시가 훨씬 더 유명해졌습니다. 이 시에 대해서 신경림 시인은 '목월의 '나그네'와 비교하면서 읽으면 재미있을 것이다' 고 하면서 주고받은 시에서 차용은 허락되는 관례이기 때문에 몇 군데 이미지가 추출되었다고 모방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신경림 시인은 모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이 다르게 말하기도 합니다. 모를 때 몰랐는데 알고 보니 모작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비슷하다구요. 그러나 그렇다고 볼 수는 없겠지요. 유사한 시는 많으니까요. 가령 어떤 시를 보고 울림이 있어 글을 썼다고 해서 같을 수는 없겠지요. 영국 시인 예이츠의 '하늘의 옷감' 이라는 시를 읽어보면 한국적 정서의 시 세계를 개척했다고 하는 김소월의 대표작 '진달래꽃' 은 이 시에서 포맷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흡사한 느낌을 받습니다.
'진달래꽃'이 '하늘의 옷감'의 꿈의 이미지를 꽃의 이미지로 차용을 했고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다 예이츠가 시대적으로 앞선 사람이니 누가 봐도 소월이 예이츠의 시를 보고 착상을 하지 않았나 싶은 정도로 유사하지만 우리네 민족적 정서로 봐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의 시어들이 서정적인 울림이 크고 싯적 완성도 면에서도 나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어디서 가져왔다는 핸디캡의 꼬리를 떨쳐버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목월의 나그네 시도 대화체의 간략한 이미지로 여운이 많이 남지만 하염없이 유랑하는 고달픈 설음이 짠하게 배여 있는 조지훈의 완화삼이란 시가 좋아서 '낙화' 란 시와 더불어 줄줄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낙화' 하면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로 시작되는 이형기의 '낙화' 라는 시가 더 유명한데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주렴 밖에 성긴 별이/하나 둘 스러지고' 로 여는 조지훈의 '낙화'라는 시도 참 좋습니다.
첫댓글 우리 시조에 화답시가 많이 보이는 것 처럼, 조지훈과 박목월의 화답시도 그러한 측면이고 보면 명시 탄생을 불러 온 것 같습니다.
우리도 간혹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 화답시로 즉흥시를 읊기도 하지요.
이재무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이야기 하면서 오래 퇴고 끝에 완성한 시보다
30분 이내에 쓰여진 시가 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즉흥시가 곧 그런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정호순(1기 서울) 퇴고 퇴고 퇴고
길을 잃기도 하고
더 좋은 시가 되기도 하고
가끔 종잡을 수 없을 때도 ㅎㅎ
@김경화 퇴고하다 망친 시도 더러 있어요.
더 세련되었지만 읽는 맛이 사라지면 뭔가 아쉽기도 하고요.
@정호순(1기 서울) 긍게라
쓸수록 어려운 디카시
@김경화 맞아요. ㅎ
수 십 년 시를 써 온 시인들도 시 쓰기 어렵다고 하거든요.
완전하게 새롭다는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조지훈의 낙화로 만든 노래를 즐겨 부릅니다
낙화 제목의 시 두 편이 있는데
저는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이 시를 더 좋아합니다.
@정호순(1기 서울) 예 그 노랩니다
@유홍석 이 시가 노래로도 불리워졌나요?
낙화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김희보 편저『한국의 名詩』(종로서적, 1986)
@정호순(1기 서울) https://www.youtube.com/watch?v=nKql2-gIY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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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석
가곡으로 불리워졌군요.
좋은 시는 노래로 들어도 좋네요.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