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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유시민의 공감필법
2019. 08. 08 그래도
뭐든지 그렇다. 한 번 좋으면 끝까지 좋아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여행지, 음식, 풍경, 심지어 브랜드까지. 그래서 종종 사람들에게 핀찬을 듣는다.
“언니야, 하필이면 하얏트호텔 뷔페까지 왔으면 연어 정도는 먹어 줘야지. 국수만 네 번 받아먹을 거면 여기까지 뭐 하러 오겠노? 하다못해 대게 다리라도 뜯어라.”
“엄마, 세상에 얼마나 좋은 곳이 많고 많은데 뻥끗하면 베트남이에요? 이제 베트남은 그만 가세요. 메콩강이 베트남만 흐르는 건 아니거든요.”
사람도 그렇다.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으면 그만 좋다. 덮어놓고 좋아한다. 유시민이 그중 한 사람이다. 말 많은 남자 딱 질색하면서 유시민의 말 많음은 너무 아는 게 많아서, 너무 박식하고 재미있어서, 소신이 있어서, 성깔도 부릴 줄 알아서 좋아한다니. 그래서 유시민의 책은 신영복, 박완서, 장영희선생님의 책처럼 주로 돈 주고 사서 본다.
이 책은 ‘공부와 글쓰기’라는 유시민의 강연을 ‘공감필법’으로 제목으로 바꿔 원고를 다시 손보아 만들어진 책이다.
“책을 읽을 때는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둔 생각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독서가 풍부한 간접 체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간접체험을 제대로 해야 책읽기가 공부가 됩니다. 그리고 남이 쓴 글에 깊게 감정을 이입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가상의 독자에게 감정을 이입하면서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 가운데 타인의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골라낼 수 있고, 그것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쓰게 됩니다.”
자유인의 서재에서 유시민 -
나는 책도, 글도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고, 쓰고 싶은 대로 쓴다. 공감을 의도할 새도 없이 후다닥 쓴다. 당연히 그 중요한 퇴고도 제대로 해서 올리는 적이 드물다. 내게 책읽기와 글쓰기는 심심하면 홀짝거리는 커피 같은 거다. 하지만 이번에 ‘유시민의 공감필법’을 읽으며 청춘의 독서도 다시 꺼내 읽고 이 시점에서 나와 타인을 공감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로 삼으려고 한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내게 주는 스스로의 과제로.
“책을 읽을 때는 지식을 배우고 정보를 얻는 것만 아니라 글쓴이와 심리적으로 거리를 두지 않고,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것,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의 변화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자기 변화는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자기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바뀌어야 개인의 변화도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책 속에 심어놓은 생각과 감정을 읽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와 인간과 나 자신을 더 깊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공부의 한 면으로 나답게 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공부는 인간으로서 최대한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진화생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공분을 느끼는 능력은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로 사회적 공분을 느끼는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의 생물학적 본성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결정하는 데 참고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야 합니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제대로 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다. 내 생각, 내 행동이 사회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고 가까스로 안심한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이나 생각, 행동을 정당화 하거나 합리화 하려는 구실로 삼는 경도가 잦다. 말과 행동은 어찌어찌 해서 겨우 모양새는 조금 바꿀수는 있지만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까지 바꾸지 못하기에 나 자신의 변화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가치나 의미, 사회적, 도덕적 책무는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을 찾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하는 덕담중에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믿지도 않는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어찌 꽃길만 걸을 수 있겠는가? 진흙탕 싸움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결과가 손실만 치달을 걸 알면서도 가끔은 어려운 길을 택할 때가 있다. 연대가 그렇고,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밝힐 때가 그렇다.
“글쓰기는 인지혁명으로 생겨난 활동으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이다. 종교, 인권 등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중력이나 자기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누군가 그것을 믿든 믿지 않든 상관없이 중력과 자기장이 존재한다는 것은 논리적,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은 그렇지 않아요. 과학의 기준으로 보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인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적용하면 인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믿지 못한다면 그건 세상의 일부분 밖에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성 너머의 영역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이, 성인성녀의 삶이, 의사와 열사, 우리 주변에서 가끔 보게 되는 의인이 그렇다.사람이 인공지능과 비교될 수 없는 거룩함과 희망도 여기에 있다.
”인지혁명의 핵심은 언어입니다.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닙니다.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전제조건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스스로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감정을 느끼는 데도 언어가 필요합니다. 분노, 사람, 연민, 복수심, 어떤 것이든 마음속에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게 뭔지 인지하려면 그 감정을 나타내는 말을 알아야 하니까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글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어휘를 알아야 합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의 양을 늘리는 것이 글쓰기의 기본이에요.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쓸 수 없어요. 그래서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먼저 어휘를 늘리라고 권하는 겁니다. 어휘를 늘리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독서입니다. ‘토지, 자유론, 코스모스, 사피엔스, 시민의 불복종’처럼 풍부하고 정확한 어휘와 명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한 책을 다섯 번 열 번 반복해서 즐기며 읽는 거예요. 읽고 잊고, 다시 읽고 잊고, 또 읽고 잊어버리고, 그렇게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끝없이 언어의 집을 지을 수 있는 건축자재를 끌어 모으게 됩니다.
나는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볼 생각이다. 나뿐만 아니라 1학년 아이들에게도 이 방법을 훈련시켜 볼 생각이다. 단어사전을 만들어 감정단어와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나타내는 표현을 문장카드로 만들 작정이다. 몇 년동안 적어 두었던 수첩들을 꺼내서 정리와 분류를 할 생각이다. 구슬은 이미 내 손안에 있으니 실천이라는 실로 꿰기만 하면 보배가 될 것이다.
나만의 언어로 쌓아올린 집을 지을 생각을 하니 부푼 꿈에 마음이 들뜬다.
“확고한 신념을 가진 민주시민이 되고 싶다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믿어야 합니다. 신경 생리학자들은 그 천사가 우리 대뇌피질 전체에 깔려있는 ‘거울신경세포시스템’ 이라고 합니다, 거울신경세포는 연민, 공감, 연대의식을 담당한다고 합니다. 문명이 발전해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생긴 게 아니라 자연의 진화과정에서 인류가 획득한 거울신경세포가 문명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니, 저는 거울신경세포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혹시 인류가 스스로를 절멸의 위기에서 구해낼 능력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인 거울신경세포시스템을 믿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 바탕에 선한 천사가 있다고 확신한다. 친구나 주변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 나간다. 아이들은 생색도 안 낸다. 약간의 멋쩍은 웃음만 웃을 뿐 그럴듯한 이미지를 구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훌륭한 인생보다는 내게 맞는 인생을 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좋아하고 또 잘하기도 하는 일, 글 쓰는 직업으로 돌아왔죠.
그 뒤로는 전보다 조심스럽게 세상과 관계를 맺게 되더라고요.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되도록 끼어들지 않으려고 하는 겁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내가 언제까지 스무 살 청춘처럼 살 순 없잖아.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게 있다잖아.
이렇게 태어난 것도 운명인데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해 의미 있게 살아야죠.”
그 운명 속에서 의미 있게 인생을 살려고 최선을 다했지요.“
우리는 각자의 운명 속에 산다. 그 운명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다. 그래서 공분하고, 연대한다. 공분하고 연대해야 세상이 바뀐다.
‘올로프 팔메’는 왜 좌파가 되었을까요?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인생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누구든 팔메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거짓말을 할 때는 불편을 느낀다. 진실하면 마음이 편안하다. 옳지 못한 일을 보고 마음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거울신경세포시스템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조차도 떠안고 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바뀌고 정화된다. 아름다워진다.
위로라는 것은 친밀한 사이에서 오고가야 마땅한 거라고 봐요. 그런데 책은 다릅니다. 글쓴이와 친분이 전혀 없어도 상관없어요. 감정이입을 하고 위로를 받는 것은 다 저 혼자 하는 일입니다. 글쓴이가 텍스트에 담아놓은 감정과 생각을 발견하고, 나 혼자서 그걸 먹고 마시고 뱉고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는 겁니다. 그들이 저를 위로해주는 게 아니라 제가 저 자신을 위로하는 것일 뿐이에요. 결국 책 속에서 위로를 발견하는 건 책을 읽는 사람 자신이에요.
너무 자주 위로받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함부로 남을 위로하려고 하지도 마시고요. 삶은 원래 고독한 것이고, 외로움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견딜 만큼 견뎌보고, 도저히 혼자서 못 견뎌낼 때, 위로를 구하는게 좋은데, 요즘은 다들 위로를 남발하는 경향이 있어요.
남에게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책과 더불어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을 기르는 쪽이 낫다고 저는 믿습니다.
외로움, 고독은 인간의 숙명이다. 그래도 그것을 친구 삼아 잘 데리고 살면 자신이 고양된다. 어느 시인도 ”그대 아름다운 것 치고 외롭지 않은 것 보았는가?“라고 말하지 않던가. 내가 타인으로부터 기대하거나 혹은 기대하지 않았을 때 듣는 위로보다는 책이나 자연, 음악이 주는 위로가 더 편안하고 좋다.
‘제러미 리프킨’- 21세기는 공감의 시대입니다. 남을 밟고 올라서는 능력은 경쟁력이 아닙니다. 남을 이해하고 남에게 공감하고 남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경쟁력입니다. 좋은 의미의 경쟁력이죠. 저는 과학혁명의 시대에는 더욱더 확실하게 공부의 본질을 붙들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인간만 할 수 있다고 오랫동안 믿었던 지적 노동 가운데 많은 것을 인공지능이 대신하게 되겠지만, 공감하고 공감을 끌어내는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독서도 글쓰기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포함한 공부도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그 인생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경험은 가장 원초적인 공부법입니다. 원래 사람은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을 확실하게 배웁니다. 체험보다 강력하고 효과 있는 공부 방법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인생이 너무 짧고 세상은 너무 많은 얼굴이 있기에 모든 것을 체험으로 공부할 수가 없을 뿐입니다. 그래서 간접 체험으로 배우는 것이죠. 독서가 제일 보편적인 간접체험 방법입니다.
직접체험은 예나 지금이나 빠뜨리면 안 될 공부법입니다. 기부와 연대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책을 읽는 것보다는 몸소 봉사활동을 하고 헌혈을 하고 기부를 해보는게 낫습니다.
체험은 정말 강력한 공부법이에요.
독서와 글쓰기만으로 무언가 부족하다 싶으면 체험이라는 방법을 쓰시기 바랍니다. 공감을 끌어내는 능력을 기르려면 자기 자신과 타인을 모두 잘 이해해야 합니다. 타인의 처지에 서서 세상사를 바라보는 경험이 필요해요.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공감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타인이라는 단어보다 내 자신에 대한 이해에 호흡을 길게 한다. 나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바탕이 없이 타인에 대한 이해는 위험하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나 먼저 사랑하고, 나 먼저 다독여 주고, 나 먼저 돌보고 행복하게 해준다. 그 행복함이 거룩함으로 승화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독서에서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맛’입니다. 한권이라도 음미하면서 읽고 행복한 상상을 하는 게 그런 것. 좋은 책은 천천히 아껴가면서 읽어야지요. 우리 삶에는 우리 자신이 부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내가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요. 저는 저의 길을 걸어갈게요. 내가 경험하고, 내가 믿고 따르는 가치를 위해 용기 있는 삶을 꾸려나갈 거예요. 의미 있는 내 인생이니까요. 그렇게 하려면 책이, 그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비춰보여 줄 거울이 필요하죠. 그게 성당이고, 책갈피고, 마중물이고, 직장입니다.
저는 하늘에 보화를 쌓질 못해요. 그래서 그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이 가는 대로 시간을 내고, 손을 보태고, 마음을 더하죠
. 내가 아플 만큼은 아니지만 가끔 호주머니를 열기도 한답니다. 그러고 나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l는 거 같아 기쁘죠. 당분간은 그 정도만 하며 살아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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