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자아실현의 욕구에서 시작된 초기 등산
초기의 등산은 자아실현을 위한 도전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최고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다.
1786년, 인류가 최초로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 등정에 성공하기 전까지만 해도 산 정상은 신의 영역이며 악마가 살고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스위스의 자연과학자 소쉬르Saussure, 1740~1799는 산 정상에 가보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특히 알프스 몽블랑(4,807m)의 장엄함에 감동한 그는 정상에 오르는 이에게 상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등정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고, 그로부터 무려 26년이 지난 후에야 한 의사와 광물채취업자가 몽블랑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이듬해 소쉬르도 20여 명의 짐꾼들과 함게 정상에 올라가 측량을 했다. 아무도 오른 적 없는 신비스러운 알프스 산의 정체를 밝혀낸 것이다. 소쉬르는 오늘날 '근대 등산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후 산 정상은 더 이상 신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도전 대상이 되었다. 신 중심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인간이 중심이 되는 등산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몽블랑 등정 이후 알프스의 여러 고봉이 많은 개척자의 도전을 받으며 하나 둘 등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알프스의 황금기'라고 하는데, 1854년 베터호른Wetterhorn(3,701m) 등정을 시작으로 1865년 최후의 난봉이던 마터호른Matterhorn(4,478m) 정상에 오름으로써 등정이 마감되었다. 이 기간에 60개가 넘는 4,000m 높이의알프스 고봉들이 모두 등정된 것이다.
당시 등정에 나서던 사람들은 대부분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귀족이나 학자들이었다. 인간의 기본 욕구가 충족된 상태였기에 최상위 욕구인 자아실현을 실천한 것이다. 이들은 빙하를 탐사하고, 측량하고, 지질을 분석하기 위해 대자연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것들을 실천하고 이룩해냄으로써 스스로 최고의 존재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의 등산을 시작하는 첫 계기를 마련하였다.
자아실현의 욕구는 등반방식을 변화시켰다.
등산 초기 3,000~4,000m에 이르는 알프스의 봉우리들을 오르던 등반방식을 등정주의라 한다. 정상 등정만을 목표로 하던 이 시대를 '피크헌팅peak hunting의 시대'라고도 한다. 피크헌팅이란 '산의 최고점(정상) 사냥'이라는 뜻으로 정상에 선다는 의미를 지닌다.
자아실현 욕구에는 한계점이 없다. 생물학적 욕구에는 한계점이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 충족되면 그 욕구가 사라지지만 자아실현의 욕구는 충족될수록 더 강해지고는 한다. 따라서 정상을 오르고자 하는 욕구가 충족되자 보다 강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정상 등정이 목적이 아니라, 보다 어려운 등산 루트를 선택하여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가치를 두게 된 것이다(등로주의). 이후 알프스의 수많은 고봉의 암릉과 암벽에 보다 새롭고 어려운 루트들이 개발되었다.
근대 등산은 자기한계 극복이다.
이러한 등반방식이 변화는 자기한계 극복으로 나타났다.인간의 능력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수직벽 등반을 시도하고, 3,000~4,000m 높이의 알프스 지역에서 8,000m 높이의 히말라야로 무대를 옮겨가고, 단독등반과 무산소등반을 시도하는 등 인간한계 극복의 도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암벽등반 역시 장비에 의존한 인공등반에서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만 오르는 자유등반의 시대를 맞이한다.
산악인은 스스로 어려운 과제를 선택하여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즐기며 궁극적으로는 자아실현에 최상의 가치를 둔다. 이러한 극한 과정을 거치면서 강한 정신력과 건강이 부산물로 얻어지는 것이다.
2. 대자연에 대한 감탄과 터치는 등산의 특권
우리는 감탄을 그리워한다.
포유류 중에서도 가장 미흡하게 태어나는 동물이 바로 인간이다. 다른 포유류 새끼들은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걷고, 어미의 젖을 찾아 먹지만 인간의 아기는 그저 목청껏 울어대기만 할 뿐이다. 어머니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의 감탄에 학습되어 성장한다. "그랬어" "어이구~" "까꿍!" 등 어머니는 아기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아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말을 걸고 웃어주고 만져준다. 몇 년 동안 끊임없이 아기의 섬세한 변화를 눈치채고 감탄해준다. 그리고 아기가 성장하고 변화할 때마다 행복을 느끼며 아기에게 감탄을 전해준다. 우리는 어머니의 감탄을 받으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죽을 때까지 행복해지고 싶어 하고, 감탄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하루에 몇 번이나 감탄하는가? 직장에서는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만 늘어가고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교육비와 부인의 잔소리에 감탄은 커녕 한탄만 나오는 게 현실이다.
우리는 터치 받고 터치하고 싶어한다.
세포가 분열하여 아기가 태어날 때 뇌로 가는 세포와 피부로 가는 세포가 발생학적으로 같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는 뇌로 생각하기보다는 피부로 생각하며 엄마가 만져줄 때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엄마의 끝없는 터치에 의해 성장하는 것이다. 실제 연구 사례를 보면 전쟁고아가 성장이 늦은 편이라고 한다. 아기의 세심한 변화에 감탄해주지 않고, 만져주지 않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주변의 친한 사람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우리는 안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해주곤 한다. 기쁜 일이 있어도 서로 껴안으며 좋아한다. 이처럼 우리는 누군가에게 터치 받고, 터치할 때 자기 존재감을 확인한다. 간혹 사회적 지위와 명성이 높은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부와 명예에 상관 없이 누군가에게 감탄 받지 못하고 위로받지 못하여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할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많은 사람들은 산악인이 암벽등반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산악인들은 수직의 벽에서 손끝에 걸리는 바위의 턱을 잡고 오를 때 비로소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장엄함은 이해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감상하는 것도 감탄하고 감탄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은 그것을 이해해야 제대로 감탄할 수 있다. 전문적 지식이 없으면 아무나 감탄하지 못한다.
자연을 감상하는 데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산 정상에 올라 대자연이 만들어낸 장엄함과 숭고함을 보는 순간 막혔던 가슴이 뻥 뜷리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감탄하게 된다. 흠뻑 땀 흘리고 온 힘을 다해 고생하며 올라온 수고를 일순간에 보상 받는 것이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장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감탄하게 만드는 위대함이 있다. 별다른 설명도 필요하지 않다. 이는 등산만이 지니고 있는 특권이다. 우리는 감탄이 그립고 터치가 그리워서 산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3. 등산은 삶의 의식도 변화시킨다.
건강을 위한 등산에서 등산을 위한 건강으로
나이가 들면 체력이 저하되고 정신력도 약해지면서, 자신감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근육은 점점 소실되고 복부에 지방이 늘어나 결국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와 같은 사회적 만성질환의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최근 산행을 시작한 대부분의 중장년층에게는 이와 같은 건강의 위협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건강해지기 위해 등산을 시작하여, 실제로 근육과 심폐기능이 좋아지는 걸 느끼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성격도 밝아지고,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희망이 생기는 것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행복해진다는 희망 때문에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도 생긴다. 실제로 산행 다음 날에는 엔도르핀endorphin 수치가 높아진다고 한다.
마이너스 발상에서 플러스 발상으로
건강이 좋지 않으면 부정적 사고를 하게 된다. 쉽게 화를 내고, '안 될 거야' '힘들 거야' 같은 부정적 사고를 일상적으로 하게 되어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등산을 통한 건강 증진으로 행복과 희망을 발견하면 자신감이 향상되어 '할 수 있어' '이겨낼 거야' 같은 긍정적 사고를 하게 된다. 산에 가는 것을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기도 한다. 등산을 통해서 사고의 전환이 되고 자연스레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긍정적 사고는 고통도 견뎌내게 한다.
산행의 어려움은 주관적이다. 같은 곳을 산행하더라도 나타나는 현상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오르막길을 가더라도 어떤 이는 힘들게 올라가는 반면 어떤 이는 아주 가볍게 오른다. 산행이 힘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동시에 자신의 소심함을 이겨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인간은 바람직한 행위를 하면 이로운 호르몬이 분비되는 조직을 체내에 갖추고 있다. 등산을 할 때도 아무리 괴롭고 힘들다 해도 그것을 통해서 건강을 얻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이로운 호르몬이 분비되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산행 중 사용되는 근긴장성 섬유라는 근육이 자극을 받으면 뇌내 모르핀morphine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힘든 산행 중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등산은 인간다운 삶으로의 변화다.
생리적 욕구만을 추구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상위의 욕구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추구한다. 인간은 결핍의 욕구가 채워지면 상위의 욕구를 추구하는데,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이다.
등산은 생리적 욕구가 아닌 자아실현의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지금의 나보다 향상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인간은 성장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고, 익숙하고 편안한 것의 희생을 감수한다. 등산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즉, 등산은 한쪽이 많아지면 그것을 억제하는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최고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구는 제어 장치가 없으므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아를 발견하기 위한 행위를 끝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더 멀리' '더 높은' '더 험한' 산을 찾아 나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Three Fingers 등정대
첫댓글 인간을 시험히기 보단 그저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