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06.
불교에서
영가 상에 수저를 놓거나
잔을 올리는 것은 유교 방식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공양(식사)에는
네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네 가지를 단식(段食), 촉식(觸食), 사식(思食), 식식(識食)이라고 합니다.
첫째 단식(段食)은 인간이 먹는 음식이며, 욕계 중생들에게 해당됩니다.
두번 째 촉식(觸食)은 중음신의 대표적인 식사 방법입니다. 음식을 직접 먹지 않지만, 그 음식을 접촉하면 먹은 것과 같아 집니다.
중음신이라는 것은, 욕계 중생이 죽고 나서, 다음 태어날 세계가 정하여 있지 않은, 그 기간의 영혼(영가)을 말합니다.
유교에서 제사 때에 음식을 차려 수저를 놓는 것은, 망자를 살아 있는 이와 같이 여겨서 효(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어도 살아 있을 때와 같이 예를 차리다보니,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 똑 같이 수저를 놓는 것은, 유교식 풍습을 버리지 못한, 옳지 않은 행위입니다. 이는 영가에 대하여만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각 단에 음식 공양을 올리지만, 수저를 따로 놓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앞으로는 49재, 천도재 등에서의 영가상에는 수저를 놓아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법열(法悅)로써 공양을 받으시고,
색계와 무색계에 있는 성문·화엄성중은 선정(禪定)의 희락(喜樂)으로 사식(思食)이나 식식(識食)의 공양을 받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식(思食)은 음식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 것인데, 중음신과 색계의 모든 천인들이 공양하는 것입니다.
넷째 식식(識食)은 음식을 보기만 하면 그것이 먹는 것이 되는데, 지옥의 중생과 무색계의 중생들이 먹는 방법입니다만, 그런데 지옥 중생들은 그 음식을 눈 앞에서 보기만 하여도, 죄의 업장이 너무나 무거워, 그 음식이 눈 앞에서 사라져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늘 굶주린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모든 색계 또는 무색계의 하늘에서는 선정(禪定)의 희락(喜樂)·법열(法悅)로서 음식으로 삼는다(불설장아함경 20권)
대반열반경(29권)
그러므로 중음신의 5음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으며, 천안(天眼)으로만 볼 수가 있느니라 是故我說中陰五陰,非肉眼見,天眼所見。
이 중음신(사람이 죽고 나서 다음 생애를 받는 동안 존재하는 영혼/영가)에게는 세 가지 먹는 방법이 있으니,
첫째는 생각으로 먹음[사식思食]이며,
둘째는 닿아서 먹음[촉식觸食]이며,
셋째는 뜻으로 먹음(의식意食/식식識食)이다.
이러한 중음신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선한 업의 과보를 받는 중음신과
둘째는 악한 업의 과보를 받는 중음신이다.
선한 업을 받은 중음신은 선한 알음알이[覺觀]를 얻고,
악한 업으로 인해서는 받은 중음신은 악한 알음알이를 얻는다.
是中陰中有三種食,一者思食, 二者觸食, 三者意食. 中陰二種, 一善業果. 二惡業果. 因善業故, 得善覺觀. 因惡業故,得惡覺觀.
대반열반경 29권.
위와 같이 영가(영혼)은 사람처럼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기에
영가 상에 수저를 놓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