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술환국 이후 서인들은 또다시 남인을 전멸시키듯 몰살하고 자신들의 정국을 이끌어 간다. 그러나 경종이 바로 장희빈의 아들이 아닌가? 그렇기에 숙종 다음으로 왕에 오를 경종을 아애 없애고 무수리 최씨의 아들 영조를 올리기 위해 또 다시 그 불편부당한 편법과 국정농단을 또 쉬지 않고 들이대고 있었다.
병중에 우연히 읊음(病中偶吟 三首)
오상유
세간 풍파(風波)와 어지러운 소식을 듣기 싫어 문을 열지 않았더니
문외(門外)에서 여전히 풍파(風波) 거세고 인생행로(人生行路)도 어려운 듯 하더라
흐르는 물과 푸른 산은 내가 늙음을 다하게 하는데
파리한 매화(梅花)와 성긴 죽림(竹林)은 사람과 더불어 차디차(寒)구나
쇠한 나이에 병들어 누웠으니 어느 때엔가 일어날 수 있으리
늙은 눈으로 마음 아파하니 눈물 마를 날이 없도다
귀밑털이 푸르른 날 공명(功名)은 이제 꿈만 같은데
주황(朱黃)빛 젊은 안색(顔色)도 잠깐인 듯 이미 다 시들어 가는도다
其二
댕댕이 덩쿨로 장막을 치니 고요한 집에 초생달이 오른다
읽다 남은 글을 다 보고 사립문 닫으니 이내 한적(閑寂)함이 다가온다
귓가에 들리는 찬 소리는 석간(石間) 샘물이 흐르는 소리이고
눈 앞에 깔린 어둠은 어느새 산마을을 사라지게 한다
인정(人情)은 이에 이르러 마음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고
늙고 병든 지금에는 혼백(魂魄)을 잃어버리기 쉽도다
수심(愁心)으로 꾀꼬리 소리와 아름다운 꽃을 적막(寂寞)하게 보내니
한 봄을 이내 허송(虛送)하여 동산에 오르지 못했어라
其三
한 베개에 삼춘(三春)을 보내니 귀밑털이 하얗게 되었고나
병중(病中)에는 고우(故友)와 친구(親舊) 보기 더욱 어렵도다
외로운 오동(梧桐)나무 위 늙은 학(鶴)은 무슨 일로 이리 빠르게 늙는고
높은 버들에 우는 매미는 문득 청량한 맛을 느끼네
세상을 버린 도연명(陶淵明)은 몇 날이나 술에서 깨여 있었던가
가을을 서글퍼하는 송옥(宋玉)은 술로 한 평생을 지냈더라
백년(百年)을 촌촌(寸寸)이 단심(丹心)으로 살아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하늘을 부르며 애원하옵나니 만번(萬番) 죽사온들 무슨 안타까움이 있으리
風波消息不開門 門外風波行路難 流水靑山終我老 瘦梅疎竹與人寒
裏䄵臥病何時起 老淚傷心無日乹 蒼髮功名如夢𥦤 朱顔頃刻己凋殘
蘿帷幽閴月黃昏 了看殘書却掩門 耳外寒聲來石澗 眼前瞑色失山村
人情到此無知己 老病如今易斷魂 惆悵鶯花歸寂寞 一春虛負賞東園
一枕三春髩雪莖 病中難見故人情 疎梧老鶴綠何瘦 高柳吟蟬頓覺淸
遺世淵明醒幾日 悲秋宋玉任平生 百季寸寸丹心在 朝暮呼天萬死輕
경종이 우여곡절 속에서 운좋게 왕으로 등극하였는데 그 경종에게 다시 서인 조직의 카르텔로 압박을 가해 자신들 세상을 만들려던 서인들은 또 신축환국이라는 소용돌이 격랑에 휘말리게 된다. 그렇지만 그 갈등엔 이제 남인은 없고 서인 노론과 소론이 있을 뿐이다.
병신처분으로 권력을 장악한 노론은 숙종과 결탁하여, 남인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이 낳은 세자(경종)를 폐출하고 연잉군, 즉 훗날의 영조를 세자로 세우려 하였다. 이를 위해 노론은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도록 숙종에게 청하고(이이명의 정유독대), 비슷한 생각이었던 숙종도 응한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경종의 대리청정은 그를 쫓아내게 할 만큼의 흠집이 발견되지 않았고, 노론에게는 설상가상으로 숙종이 급격히 병약해져 원래의 계획을 실행할 틈도 없이 60세를 일기로 승하하고 어쩔 수 없이 경종이 왕통을 물려받는다.
갑사승 성담에게 줌(贈 岬寺僧聖曇)
오상유
인경 소리는 삼시(三時)를 울려 대고
운연(雲烟)은 한 골짜기 깊게 펼쳐졌는데
산 푸르고 물 맑은 이 곳에서
흰 장삼 입은 스님 저절로 무심(無心)해지는구나
鍾磬三時發 雲烟一洞深 靑山兼凈水 白衲自無心
이에 경종이 조선의 20대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나, 여전히 노론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왕으로 대우하지도 안했다. 경종을 옹립했던 남인은 박살났으며, 지지 세력인 소론은 ‘병신처분’으로 이미 실각한 상태였다. 노론은 더욱 공세적으로 나왔다. 집권 초부터 경종을 압박해, 장희빈의 추숭을 청한 유생 조중우를 처형하게 하고, 장희빈의 죄를 명백히 저술하라며 사실상 경종을 모욕한 사관 윤지술을 왕이 변방으로 유배하려 하자, 역시 압박하여 석방케 하는 등, 경종에게 왕 구실을 할 수 없게 했다. 참고로 윤지술은 결국 신축옥사 때 김일경 일파의 탄핵으로 사형당한다.
야밤중 금강(錦江)에 배 띄우다(夜泛錦江)
오상유
외로운 배가 금강(錦江) 가로 나를 데려가니
한만(汗漫)한 유람(遊覽)이 우연(偶然)히 한때를 얻었구나
천만(千萬)가지 근심 걱정 다 잊어버리고 한잔 술 기울이는데
하늘은 높고 강물은 머얼리 흐르니 달이 더디 쫓아오는구나
孤舟引客錦江湄 汗漫淸遊偶一時 萬累忘情今夜酒 天高江逈月來遲
당시 노론의 중심은 이이명, 김창집, 이건명, 조태채 4대신을 위시로 했고, 그중에서도 중심은 김수항의 아들 영상 김창집과 판부사 이이명이었다. 그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경종이 죽은 후를 대비하여 확실한 노론 정권을 보장받기 위해 경종에게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할 것을 강요했다. 이 때가 경종이 33살로 즉위한 지 겨우 1년 남짓이었는데 34살의 젊은 임금에게 후사는 생각하지 말고 이복동생에게 물려주라는 상식적으로 극히 불충한 주장을 한 것이었다.
중부 유수공의 춘회운을 따서 지음(次 仲父留守公春懷韻 三首)
오상유
시끄럽고 어지러운 세속 꿈에도 두려워하니
해가 지도록 사립문에 사람 하나 오질 않는다네
물방아와 구름 속에서 밭갈이로 세사(世事)를 잊으니
산중(山中)의 띠집이더라도 가난함을 모르는 구나
其二
만산(萬山) 초목(草木)이 봄의 화기(和氣)를 입었으나
가만히 흐르는 눈물만 나의 수건을 적시는 구나
연년(年年)이 우로지택(雨露之澤)은 골고루 퍼지는데
가슴에 맺힌 깊은 원정(寃情)은 봄철되니 더욱 새롭구나
其三
곤궁한 나에게는 안식(安息)할 곳 하나 없이
향관(鄕關)인 한양(漢陽) 멀리 생각하니 꿈꾸는 듯 희미하구나
침상(枕上)에서 외로운 정(灯)불을 벗 삼아 잠 못 이루고 누웠으니
뜰에는 산월(山月) 속에서 자규(子規)만 슬피 우는구나
夢魂猶怕躡囂塵 竟夕柴門無一人 水碓雲耕忘世事 山居白屋不全貧
萬木向榮漏洩春 潛然不覺自沾巾 年年雨露仁天下 滿腔幽寃觸物新
窮人無地可安棲 遙憶鄕關夢易迷 枕伴殘燈悄不窹 滿庭山月子規啼
이부터가 완전 날치기였다. 워낙 소론측에서 강경하게 반대를 하니 아예 경종의 하루 스케줄을 전부 취소시키고 오밤중에 기습적으로 노론들끼리만 입궐해 사실상 경종을 몰아세운 끝에 세제 책봉을 이룩한 것이다.
결국 노론이 지지하던 연잉군이 후계로 결정되었고 노론은 왕을 압박한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한 소론 유봉휘를 귀양 보내 버린다. 이렇게 세상은 명실상부하게 노론의 것이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