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내 심복이라/몬 1:11-16
성경본문: 빌레몬서 1:11-16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신약성경 중 빌레몬서는 단 한 장으로 되어 있는 특별한 책입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 말기에 로마 감옥에 있으면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편지입니다.
빌레몬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칠 때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는 사회 지도급인사였을 뿐만 아니라 종들을 거느릴 만큼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들 중에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이 오네시모가 주인집에서 도망쳐 로마까지 와 숨어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특별한 일로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고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합니다. 이후 바울은 오네시모의 숨겨진 개인 사정 이야기와 주인인 빌레몬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회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다시 돌려보내기로 작정합니다.
당시 도망치는 종들은 대부분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도망을 치게 마련이었습니다. 주인의 자녀를 죽이거나, 주인의 재물을 훔치거나, 때로는 여주인을 강간하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네시모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도망한 종이 잡히면 꼼짝없이 죽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개인 서신을 함께 보냅니다.
그를 선대해 주도록 부탁하면서
세 가지로 그의 변화된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오네시모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범죄 하여 그 분을 떠났던 오네시모 같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의 신분과 위치가 달라지고 사명이 새로워졌음을 발견합니다.
I. 나와 네게 유익한 존재라
오늘 바울 사도는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한" "유용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유익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유익한 존재였던 오네시모가 도망침으로 오히려 무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과는 정반대의 존재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유익한 존재로 창조되었으나 타락과 죄로 말미암아 무익한 존재가 되어 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바울 사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다시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란 어느 편에 서 있는지, 누구에게 속한 존재인지에 따라 유익한 존재로 혹은 무익한 존재로 남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거리의 악사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에 남루한 옷차림의 한 소녀가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양말도 제대로 신지 못한 이 소녀의 발 앞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구걸하기 위한 깡통이 있었고 그 속에는 동전 몇 푼이 들어 있었습니다. 소녀가 연주하는 그 바이올린 솜씨가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이곳을 지나가던 한 신사가 이 모습을 보고 소녀를 대신하여 그 바이올린을 쥔 후 기막힌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며 그의 연주에 빠져듭니다. 이윽고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더불어 그 동냥 깡통에 돈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냥 그릇은 순식간에 가득 차 버렸습니다. 연주를 마친 신사는 바이올린을 그 소녀에게 되돌려주면서 자신이 "파가니니"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바이올린 자체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었지만 단지 그것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무엇을 위해 쓰여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에 붙잡힌 십자가의 제자가 되어 무익한 존재에서 유익한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 유익한 존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I. 저는 내 심복이라
심복이라는 말의 뜻은 "내장" 또는 "심장"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애정이 깃들어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 구절의 정확한 번역은 ""그는 곧 나의 심장이다(my own hear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심장을 돌려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심복이란 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의 애정과 나의 정열과 나의 마음을 그대로 실어 보내는 것, 그가 곧 내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요 바울은 곧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심복입니다. 예수님의 심복으로 여기 보냄을 받으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복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인의 뜻을 바르게 헤아리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심복은 대통령의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복은 예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 주인의 뜻을 깨달았으면 어떤 위험이나 고통이 수반되어도 그대로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군(軍)에서 지휘관의 심복은 지휘관을 위해 자기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자여야 합니다.
셋째로 심복은 자신의 소유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소유는 모두 주인을 위해 있는 것이요 주인의 뜻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심복으로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언제나 살펴야 합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추천하고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복음 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III.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
16절에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게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했습니다. 형제란 사랑의 교분 뿐 아니라 동역자로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앞으로 전개될 신비한 사역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큰 애정과 사랑으로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참으로 미천한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잘못된 것이나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를 자신의 심복으로 믿고 자신의 형제로 받아 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익한 사람이 아니라 유익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추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향한 사도 바울의 애정과 구속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바울과 같이 형제를 애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같이 사람을 바르게 보고 사랑할 때 우리들 역시 하나님의 사랑과 복을 받습니다. 우리 역시 오네시모와 같은 범죄자요 쓸모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참으로 유익하고 그리스도의 심장과 같은 복음의 사역자로 변화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너는 나의 심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을 듣고 심복으로서 그리스도의 뜻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분신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축복 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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