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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 Scriptura Tota Scriptura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34
디모데전서 2장 5절 [8장 1항]
조직신학 주제에 따라 성경에 대한 고백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의 내용이라면, 2장에서 5장은 신론, 6장과 7장은 인간론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신앙과 삶의 규범인 성경을 주셨을 때(제1장)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으로 계시는지(제2장), 그리고 무엇을 행하시는지를 말씀합니다(제3-5장). 여기에는 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사실과 함께(제2장), 하나님의 작정(제3장)과 작정의 실행으로서의 창조(제4장)와 섭리(제5장)라는 주제로 설명합니다. 이어 창조라는 주제에서 언급한 인간에 대한 고백이 나옵니다. 창조에서는 성경의 표현을 따라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로 만드셨지만, 그런 인간이 타락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제6장).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서 예정론에 대하여 설명한 것처럼 택자에 한하여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은혜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을 고백합니다(제7장). 물론 은혜언약에 앞서 행위언약에 대한 설명도 하지만, 행위언약을 통해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만 드러날 뿐입니다. 아담의 첫 범죄 이후 모든 인류는 행위언약으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은혜언약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9장에서부터 18장까지, 좀 더 넓게는 9장에서 마지막 장인 33장까지 구원에 대한 내용을 다룹니다. 조직신학의 주제로 하자면 구원론(제9-18장), 교회론(제9-31장), 종말론(제32-33장)에 해당하지만 구원의 내용과 구원의 과정, 그리고 구원의 완성이라는 점에서 이 전체가 구원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원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반드시 중보자가 필요합니다. 이미 지난 시간에 살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7장에서부터 언급했지만, 타락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 생명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구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생명과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신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생명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어떻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가? 신앙고백서는 구원론에 앞서 기독론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제8장 중보자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늘 살피게 될 1항의 내용을 먼저 보시면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하신 목적 안에서 그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사42:1, 벧전1:19,20, 요3:16, 딤전2:5), 선지자(행3:22), 제사장(히5:5,6), 왕(시2:6, 눅1:33), 그의 교회의 머리와 구원자(엡5:23), 만유의 후사(상속자, 히1:2), 세상의 심판자(행17:31)가 되도록 선택하시고 정하시길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그의 씨(후손)가 되며(요17:6, 시22:30, 사53:10), 그로 말미암아 정해진 때에 구속되고, 부름 받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될(딤전2:6, 사55:4,5, 고전1:30) 사람을 영원 전부터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내용이 앞서 살핀 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3장 1항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영원 전에 그 자신의 뜻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하신 의논에 의해 장차 일어날 일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정하시되 불변토록 정하셨기 때문에 중보자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에 있어서도 변함없이 동일한 내용을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3항부터는 예정론에 대한 내용인데, 3항은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작정에 의해, 그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어떤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생으로 예정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천사들은 영원한 사망으로 예정되었다.” 4항에서는 그렇게 예정된 천사들과 사람들이 불변하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어 생명으로 예정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5항에서 7항까지 고백하는데,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내용은 5항과 6항 생명으로 예정된 자들과 관련됩니다.
먼저 5항은 “생명으로 예정된 인류에 속한 자들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며 불변하신 목적과 그의 뜻의 비밀한 의논과 선한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하셨다는 것은 택자의 영원한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까지 수단으로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6항은 “하나님께서 택자를 영광에 이르도록 정하신 것처럼, 그의 뜻의 영원하며 가장 자유로우신 목적에 의해 그것에 덧붙여 모든 방편들을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방편 안에 무엇이 있는가? 아담 안에서의 타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구속되는 것이 있습니다. 또한 적합한 때에 역사하시는 그의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도록 효력 있게 부르심을 받고, 의롭게 되고, 자녀로 삼아지고, 거룩하게 되고, 그의 능력으로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도록 보존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8장 1항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서 고백한 내용과 동일하게 고백되고 있는 겁니다. 일단 하나님은 자신의 영원하신 목적 안에서 그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를 중보자와 삼중직, 교회의 머리되심 등이 되도록 선택하시고 정하시길 기쁘게 여기셨다고 고백합니다.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가 되도록 선택하시고, 그에게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가지게 하시고, 그리하여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시는 등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을 따라 된 일이라는 겁니다. 조금 전에도 언급했지만 하나님의 작정은 불변합니다. 작정하신 바가 A라고 할 때 작정의 실행으로서 나타나는 바가 B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선택하시고 나머지는 버리신다고 할 때, 그리고 선택하신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하실 것을 정하셨다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 없는 택자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살핀 제7장 5항은 율법 아래에서 은혜언약은 유대인들에게 전해진 약속들, 예언들, 제사들, 할례, 유월절 양, 다른 모형들과 규례들에 의해 모두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실행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고, 6항은 복음 아래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졌고, 그때 그리스도 안에서 이 언약이 실행된 규례들은 말씀 설교 및 세례와 성찬의 성례들의 실행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의 주체가 누군가? 하나님이십니다. 성자와 구별된다는 측면에서 성자의 근원인 성부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은 분리할 수 없고 분리하지 않은 채 역사하신다고 할 때 이 모든 일의 주체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가 기독론과 관련해서 다루지만 신론 없는 기독론은 없습니다. 인간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만물의 으뜸이 사람이지만 하나님 없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다고 할 때 구원론은 기독론과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그러나 그런 구원론도 사실은 신론 없이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조직신학에서는 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등으로 나누어 설명하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신론적 사고가 일관되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신론 안에서 인간론을 배워야 하고, 신론 안에서 기독론을 배워야 하고, 신론 안에서 구원론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존재로서의 삼위일체, 그리고 그분의 일하심으로서의 영원한 작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하신 목적 안에서 그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를 세우신다고 할 때 어떤 분으로 세우길 기뻐하셨는가?(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삶을 읽다 참고) 먼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도록 선택하시고 정하시길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중보자라는 말은 어떤 뜻입니까? 중보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대립 또는 적대관계에 있는 사이에서 화해와 일치를 얻게 하는 자’라고 설명합니다(두산백과). 우리는 이 말 자체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첫 사람 아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한 상태를 말합니다. 원죄인 죄책과 함께 부패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부패함으로부터 자범죄를 짓는 사람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대립한 상태요, 적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으로 하자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반면 인간은 죄인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6장 6항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모든 죄, 즉 원죄와 자범죄는 하나님의 의로운 법을 위반하며 대적하는 것으로, 그 자체의 본성상 죄인들에게 죄책을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에 매여 영적이며 일시적이며 영원한 모든 비참함들과 함께 죽음에 종노릇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에 이르도록 선택하신 대상이 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서로 대립하고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를 세우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보시면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라고 말씀합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주목할 부분은 유일한 중보자가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는 데 있습니다. 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말하는가? 그분은 우리처럼 본래부터 사람이 아니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부터 잘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과 동일본체이십니다. 성부의 유일하신 아들, 성자이십니다. 그런 분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셨는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의 적대적인 관계를 화해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사람으로서 중보 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8절 이하 20절도 보시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한 가지는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이 우리의 본성으로 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포함한 조상, 즉 아담의 타락한 본성이 우리의 본성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았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받았는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예수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이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서부터 예표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어린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지만, 그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내다봄으로 대속함을 받았습니다.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대속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분이십니다. 신앙고백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원한 목적 안에서 그의 독생자이신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선택하시고 정하시길 기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 전의 일이라면, 시간 안에서의 역사는 말세에 나타내신바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가 마지막 때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에서도 동일하게 증거 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이런 중보자에 대하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 제사장, 왕이 되도록 선택하시고 정하시길 기쁘게 여기셨다고도 고백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분에 대한 내용인데, 구약에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인정하신 직분자라는 의미에서 기름을 부었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히브리어로 ‘메시아’라고 했으며 신약 성경은 헬라어로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예수님에 대하여 ‘메시아’ 혹은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그가 기름 부음을 받아 선지자, 제사장, 왕의 직분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이 있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름이 의미 하는 바 성령을 받으셨습니다. 일단 이사야 61장 1절에서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내리신 것이 곧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기름부음이 의미하는 것은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영이 언제 내렸는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입니다. 누가복음 3장 21절과 22절입니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구약의 경우는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기름으로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이 의미하는바 성령을 받으셨는데, 요한복음 3장 34절에서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고까지 말씀합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뭔가 부족하여서 받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그 자체로 부족하지 않지만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같아지셨기 때문에 성령을 충만히 받아 풍요롭게 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결코 빈 손이 아니라 모든 은사를 충분히 받았다는 것이고, 받으신 그 은사를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세 가지 직분을 행하시는데, 간략하게 그 내용을 살피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로 임명되셨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인용하고 있는 사도행전 3장 22절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는 말씀은 이 구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라고 해서 모세와 대등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다른 모든 선지자보다 우월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3장에서는 모세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히3:5-6)
이처럼 가장 우월하신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 가운데 있는 교회에게 그들을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주심과 그들의 구원에 관한 모든 것들 안에서의(행20:32, 엡4:11-13, 요20:31) 하나님의 뜻 전체를(요15:15) 다양한 실행 방식 안에서(히1:1,2) 그의 성령과 말씀으로(벧전1:10-12) 계시하심으로(요1:18) 선지자 직분을 실행하십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43). 그러하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최고의 사자요 대사이십니다(신18:18, 요4:25-26). 그분은 모든 계시의 최고의 완성이자 종결이십니다(요1:14, 히1:2). 하나님의 지혜이시며(고전1:24, 골2:3, 사9:6, 28:29, 렘32:19), 교회의 유일한 교사입니다(마17:5, 사55:4).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친히 나타내실 뿐만 아니라(요1:14,18, 14:8-9), 자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구원의 길, 즉 하나님의 충만한 구속의 복음을 우리에게 선포하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바르게 최종적으로 해석하십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사장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신앙고백서가 인용하고 있는 히브리서 5장 5절과 6절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비교하자면 예수님은 구약의 제사장들이 해온 제사 업무를 완성하셨는데, 구약의 경우 동물로 죄를 위한 제물을 드렸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죄를 사하기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구약 제사장들의 경우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속죄제물도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의인이시며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자신을 위하여 속죄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십니다. 구약의 경우 드린 제물 자체로는 죄를 속할 능력이 없었고 불완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되풀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하신 분으로서 그가 단번에 드린 제사는 완전했습니다.
이처럼 탁월하신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백성의 죄들을 사하기 위한 화목제물이 되기 위해(히2:17) 자신을 단번에 희생 제물로 흠 없이 하나님께 드리시고(히9:14,28),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중보하심으로(히7:25) 제사장 직분을 실행하십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44).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상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천상 사역입니다. 지상에서는 자신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대속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지상사역을 마치고 난 뒤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거기서도 하나님은 대속 사역에 근거해서 중보 사역을 계속해서 행하십니다. 전자를 통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를 얻게 하셨습니다. 후자를 통하여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변호하시며(롬8:33-34, 사53:12), 그들을 돕는 대언자가 되십니다(요일2:1).
셋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왕으로 임명되셨습니다. 시편 2편 6절에서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는 말씀처럼, 또한 누가복음 1장 33절에서 천사가 전한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셨습니다. 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서 한 백성을 자신에게 불러내(행15:14-16, 사55:4-5, 창49:10, 시110:3) 그들에게 직책과(엡4:11-12, 고전12:28) 규례와(사33:22) 권징을 줘서 그들을 가시적으로 다스리십니다(마18:17-18, 고전5:4-5). 또한 그의 택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부여하사(행5:31) 그들의 순종에 대해 상주시며(계22:12, 2:10) 그들의 죄에 대해 그들을 교정하십니다(계3:19). 나아가 모든 시험들과 고난들 아래에 있는 그들을 보존하여 지탱시키며(사63:9) 그들의 모든 대적들을 제어하여 정복하십니다(고전15:25, 시110:1-2).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과(롬14:10-11) 그들의 선을 위해(롬8:28) 모든 것들을 권능으로 명하시고, 또한 하나님을 모르고 복음을 불순종하는 나머지에게는 원수를 갚으심으로(살후1:8-9, 시2:8-9) 왕의 직분을 실행하십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45).
다시 신앙고백서의 내용으로 오면 중보자로서 삼중직만이 아니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와 구원자, 만유의 후사, 세상의 심판자가 되도록 선택하시고 정하시길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여기서 교회는 몸이요, 몸 된 교회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은 그가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부터 교회가 있었지만, 그리스도 없이는 교회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가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으로 우리는 그의 몸 된 교회가 된 것입니다. 골로새서 2장 19절에서는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는 말씀도 하시는데, 그가 시작일 뿐만 아니라 그가 과정도 되십니다. 몸 된 교회의 시작과 과정, 나아가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만유의 후사(상속자)라는 표현은 히브리서 1장 2절에 나옵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모든 만물을 상속 받는 분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고 말씀합니다(마28:18). 그러하기에 예수님은 모든 만물에 대한 권세를 가지십니다. 이러한 권세로 예수님은 세상의 심판자가 되기도 하십니다.
신앙고백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은 예수에게 그의 씨(후손)가 되며(요17:6, 시22:30, 사53:10), 그로 말미암아 정해진 때에 구속되고, 부름 받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될(딤전2:6, 사55:4,5, 고전1:30) 사람을 영원 전부터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 세우실 뿐만 아니라,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의 씨(후손)이 될 사람을 영원 전부터 주셨다는 것입니다. 딕스혼 부부의 책, 믿음의 고백이라는 신앙고백 해설 내용에서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택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일 수 있습니까? 선물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타락을 생각한다면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선물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의 씨가 될 사람을 영원 전부터 주셨습니다. 이것은 로마서 9장 11절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란 말씀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어떤 것을 보시고서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유로우시고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서입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타락했지만 타락했다고 해서 아들에게 주시기로 하신 선물,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의 씨가 되게 하실 사람을 버리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계속해서 고백하는 구원의 서정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의 씨가 되는 사람을 영원 전부터 주셨다고 할 때 작정의 실행으로서 나타난 역사에서는 아담 안에서 누구도 예외 없이 타락하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장 6항에서부터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택자를 영광에 이르도록 정하신 것처럼, 그의 뜻의 영원하며 가장 자유로우신 목적에 의해 그것에 덧붙여 모든 방편들을 예정하셨다.”고 하면서 “그러므로 선택된 그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하여...”라고 고백합니다. 타락까지 작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타락만 작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타락 이후의 내용도 작정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신앙고백 제8장 1항 마지막 부분의 내용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정해진 때에 구속되고, 부름 받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씨(후손)가 되게 하신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에 앞서 이런 기도로 감사드리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입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닙니다. 선택과 유기가 있다고 할 때 택자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물론 택자, 유기자 상관없이 복음이 증거 됩니다. 그러나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택자 외에는 없습니다. 그들만이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본래부터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표현이 나오는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열매가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이라는 비유로 하자면 건물이 아닌 기초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기도는 예수님의 직속 제자들에 대한 기도이고, 이 기도를 하실 때만 하더라도 합당한 열매를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에 대하여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다는 것은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열매보다는 그들의 기초가 그리스도로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영원 전부터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내게 주심으로 이제 그들은 내게 속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되면 신앙고백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로 말미암아 구원의 서정의 모든 내용을 받게 됩니다.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고, 양자가 되고, 의롭다 함을 받고,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의 보존하심 가운데 결국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감사란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영광 가운데 앉히시고야 만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하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우고자 하신 것이고, 그로 하여금 선지자와 제사장, 왕의 직분을 실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냐? 택자인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씨가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우실 정도요, 그로 하여금 선지자, 제사장, 왕이 되어 우리를 위하도록 하실 정도입니다. 이런 은혜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 찬송해야 할 것이고, 더 이상 적대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화목한 자로서 그와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불순종이 아닌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으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