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이야기/대나무 향기의 보약 ‘대통밥’
우리 음식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식약(食藥) 개념이다. 음식은 먹을거리인 동시에 약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음식들은 대부분 그 기원이 특별한 영감(靈感)이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리산 청학동에서 시작된 대통밥도 이런 시각으로 접근하면 설명이 쉽다. 처음 대통밥을 창안해낸 청학동 동이주막(東夷酒幕)의 김대주(49)씨는 청학동 토박이다. 이곳은 몇해 전 전기와 전화가 개설됐고 포장길이 열리긴 했지만, 아직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마을 청년들은 무학자(無學者)로 인정돼 병역이 면제되고 있다. 이같은 환경이지만 오랜 세월의 수행에 바탕을 두고 정신과 마음을 닦아온 마을 사람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남다르다고 한다. 김씨 역시 영력을 통해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경지에 접근해 있다고 주변에서는 말한다.
그래서 아무런 실험기구나 기초과학 이론을 터득한 적이 없지만 그가 창안해낸 대통밥이나 대나무숯의 효능은 이곳을 다녀간 전문학자들이 보내오는 실험결과들로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서 흔하게 자라는 대나무 속에 사람을 이롭게 하는 요소들이 많이 들어 있음을 감지하고, 처음에는 죽염과 죽력(대나무기름·竹瀝)을 만들어 약으로 내다가, 이용하는 사람들의 이해가 따라주지 못하자 대나무 효력을 밥에 접근시켜 밥처럼 먹도록 해보았는데 이것이 ‘대통밥’이다.
지름이 8∼10cm 정도인 굵은 대통에 쌀과 찹쌀현미, 차조, 수수, 검정콩, 흑미, 대추 등을 넣고 죽염으로 기본 간을 해 푹 찌면 익는 동안 죽력과 죽황이 녹아들어 대나무 특유의 향미가 밥에 배어 자연스럽게 맛있는 약밥이 된다.
대나무 속에 하얀 막을 형성하고 있는 죽황은 밥에 녹아들면서 달콤한 맛을 내주고 체내에 독과 열을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으며, 죽력은 가슴속의 큰 열과 중풍, 실음실어와 소갈증을 말끔히 낫게 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대나무물은 장기를 청결케 해주는 동시에 몸 속에 기를 소생시키고 기로(氣路)를 열어주어 순환기능을 순탄하게 해준다고 한다. 밥을 지을 때 대나무 숯을 한 조각 얹는 것은 곡물에 남아 있는 농약성분을 없애주기 위해서다.
대나무는 한 그루를 베면 밑둥은 밥 짓는데 쓰고 남은 부분은 대나무숯을 굽고 잎은 분말로 해 죽냉면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대통밥의 이론화 작업에는 국내보다 오히려 일본 학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는다고 한다. 직접 찾아와 효능과 기법을 설명 듣고 대통밥과 숯 굽는 과정 등을 확인한 뒤 돌아가 실제 분석결과들을 보내오고 있다.
(사진/지리산 대통밥집 정선행씨)
이 사람의 맛내기/ 지리산대통밥집 정선행씨
죽염으로 간하고, 대나무차 대접
지리산 화엄사 입구에 문을 연 ‘지리산대통밥집’은 지난 97년 문을 열어 그리 오랜 집은 아니다. 하지만 주인 부부의 대나무에 관한 열정과 믿음은 남다르다.
주인 정선행(53)씨는 40대 초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첫 직장인 병원 X레이실에서 방사능 과다노출과 수술 후 후유증으로 인한 항생제 과다복용 등으로 내성이 쌓여 병원치료를 포기해야 했을 때, 자연요법을 위해 청학동을 찾아가 죽염과 죽력, 대나무물, 대통밥으로 새 삶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건강을 회복하자 다시 생업으로 돌아오면서 “내가 할일은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고향마을에 황토벽을 바른 건강집을 짓고 건강식인 대통밥집을 열었다. 여섯번 구워낸 죽염으로 간을 하고 된장 간장도 죽염으로 담은 것을 쓰고, 식후에 내놓는 차도 대나무물이다. 약효는 물론 먹는 즐거움도 있어야 한다며 평소 음식솜씨가 뛰어난 부인 강양래(45)씨의 손을 빌려 전라도 한정식을 방불케할 정도의 화려한 대통밥 상차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나무 다듬는 일과 황토방 민박을 돌보는 것이 하루 일과이지만, 대나무를 다루는 일이 건강을 회복해가는 자신의 삶을 매만지는 것 같아 즐겁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이름난 대통밥집
지리산동이주막/ 대나무밥의 효시로 알려진 동이주막이 대통밥을 내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초부터이고, 본격적으로 매스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95년부터였다. 현미찹쌀을 비롯해 검정콩 등 7가지 곡식과 지리산에서 난 산채와 버섯나물, 깻잎과 된장에 담은 풋고추지 등 12가지 찬이 오른다. 대나무 삶은 물에 죽염간을 해 밥을 안치고 대나무숯을 한 조각 얹어 이런저런 냄새와 독을 한번 더 제거해 밥맛이 더욱 담백하고 쫄깃해 찬이 없이도 먹을 만하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 1인분 1만원, 죽냉면 6천원(0595-883-3934).
지리산대통밥집/ 구례에서 화엄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자리잡고 있다. 대나무물에 6번 구운 죽염으로 간을 해 밥을 안치고, 찬이 20여가지 오르는 특정식과 녹차를 연하게 타 밥을 안친 녹차대통밥 등 다양한 맛을 낸다. 2층은 장급 수준의 황토방 민박실이 9실 마련돼 있어 하루쯤 묵어올 수 있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대나무특정식 1인분 1만5천원, 녹차대통밥과 대통밥 9천원(0664-763-0997).
길낙촌/ 홍성문화원 사거리에서 홍성기능대학과 혜전대학쪽으로 언덕을 넘어 서 있다. 전남 담양에서 대나무를 구해다 밥을 짓는데, 밥이 대통위로 수북이 솟아오르도록 지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20가지가 넘는 찬이 충청도식 백반상 상차림으로 나와 토속적이고 푸짐한 맛이 있어 이채롭다. 주문과 함께 즉석에서 밥을 지어주는 것이 특징인데, 40분 정도 소요되므로 도착예정시간을 알려주고 가는 것이 좋다. 충남 홍성군 고황면, 1인분 1만원(0451-634-1603).
고가(古家)/ 분당 신시가지 서현동 음식골목 안쪽에 옛날 기와집을 그대로 고쳐쓰고 있다. 한국차와 중국차, 일본차 등을 전문으로 하는 전통찻집을 경영하면서 차와 함께 대통밥을 지어낸다. 예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통밥을 주문하면 밥과 함께 차까지 곁들여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