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코스 : 강천면사무소 – 신륵사
경기 둘레길 33코스를 걷기 위해 여주시 강천면사무소에 왔다. 아직 경기 숲길 구간을 다 걷지 않았는데 갑자기 경기 물길 구간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가평 구간이 산악지대로 사고의 위험이 있어 평야 지대인 물길을 먼저 걷고 꽃피는 봄에 숲의 향기를 찾기로 의견이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여주는 3년 전 여강길을 걸으면서 인연을 맺은 곳인데 지난 여강길을 걷고자 첫 번째의 방문이 우연이었다면 오늘의 방문은 필연이 된 탓인지 낯설지 않고 마음마저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강천면사무소에서 언덕길을 따라 오르는 길에 UTA란 공장이 있어 길잡이를 해 주었고 길가에는 아직 눈이 남아 있어 자동차와 교행하기에는 다소 위험할 수가 있어 주의가 요했다.
고개를 좌, 우로 돌리면 밭이 넓게 펼쳐있고 길가에 마을이 자리를 잡아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집 지키기에 바쁜 강아지들은 낯선 이방인의 발걸음에 놀랐는지 멍멍 짖어대 고요함을 깨운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우리의 어린 시절의 동네를 다시금 대하는 것 같았다. 마을의 샛길이었을 이 길은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그때 오로지 자식을 위해 우리의 어머니들께서 불공을 드리고자 신륵사까지 걸어가신 길일 것이다.
우리는 경기 둘레길을 걷는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대지의 전경을 사진을 찍으며 흥겹게 걸어가고 있지만 오로지 자식 생각밖에 없으신 어머니들께서 저 광활한 생기가 넘쳐나는 정취에 젖어 홍진의 때를 씻어내며 걸어갔을까?
불현듯 떠오르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그리워하며 가야1리에 이르렀다. 마을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마을에 대해 자부심이 얼마나 컸으면 유래비를 세워놓았을까? 산기슭에 남향으로 온화하게 자리를 잡은 마을을 지나면서 평온함을 느꼈고 신륵사까지 자식을 일념으로 불공을 드리고자 걸어가셨을 어머니의 은혜에 눈물을 지게 하였던 가야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 고려 말기 충신들이 이성계가 왕권을 잡자 정국의 어지러운 시국을 벗어나기 위해 벼슬을 사직하고 다섯 대감이 낙향을 하여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하여 이곳을 오감이라 하였단다.
현재 다섯 대감의 성씨 중 권, 이, 정, 조의 네 분 대감 성씨만 밝혀지고 한 분 성씨는 알 수 없어 미상이다. 또 가야 1리 안에는 점말과 봉 바위가 있는데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들어온 천주교 신자들이 교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옹기그릇을 만들었다 하여 점말이며 봉 바위는 부엉새 형태의 바위가 있다하여 봉 바위라 전하여 오늘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라고 마을 유래비는 적고 있다.
가보고 싶다. 점말과 봉 바위 그러나 발길은 남한강에 이르렀다. 여강길을 걸으면서 왔던 곳이다. 그때에는 봄의 기운이 만연하여 강변의 갈대가 누런빛을 띠며 넘실대며 산의 푸른 녹음과 조화를 이루는 생명이 피어나는 생기 발랄함을 마음껏 느낄 수가 있었는데
오늘은 겨울철이 되어 갈대, 나뭇가지. 잡초에 잔설이 맺혀 하얀 눈꽃 세상을 만들어주어 신비롭게 다가오며 차디찬 강추위를 이겨내며 겨울을 극복하는 고요한 정적에 마음이 평온하였다.
하지만 봄과 겨울의 차이때문일까 ? 강변에는 그대로 자전거 전용길이 놓여있고 이 길 따라 걸었는데 오늘 또다시 그 자리에 섰지만 처음 와 본 곳으로 느껴졌다. 보고 또 보고 싶은 내 여인 같은 남한강일까?
남한강의 풍광에 처음처럼을 느끼면서 걸어갈 때 강천보로 향하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걸어간 길을 아쉬워하였는데 오늘도 예외 없이 강변으로 향하지 않고 아스팔트의 길을 따라 대순진리회 본부 도장에 이르렀다.
“ 대순진리회는 증산교 계통의 종단에서 교세가 가장 크며 활동도 왕성하다. 중심교리는 天地 公事이며 종지는 陰陽合德, 神人造化, 解寃相生, 道通眞境이고, 誠, 敬, 信을 수도의 요체로 하고 安心, 安身의 두 율령을 수행의 訓典으로 삼아 毋自欺, 지상신선실현, 지상천국건설을 신앙의 목적으로 한다.”(네이버 직백과에서 퍼옴)
대순진리회 본부 도장의 건축물들의 그 장대한 규모를 보니 교세를 짐작할 수가 있었지만, 건물이 좋고 나쁨보다는 대순리회의 교리에 대해서 문답을 나누지 못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매우 아쉬웠다.
대순진리회 본부 도장 앞의 아스팔트 길의 보도를 따라 걸어가 간매교를 건너 농로에 진입하니 신륵사 6.4km를 알린다. 얼마 가지 않아 이호교를 건너 불상, 불화, 불교 목공예품 등의 유물과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목아 박물관에 이르렀다.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고 강천보 인근에서 헤어진 남한강을 다시 만났다. 눈꽃이 피어난 남한강의 풍광은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그냥 지나갈 수 없어 남한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었다.
비록 조그마한 컵라면일지라도 그 맛은 꿀맛이 이보다 더할까 ? 아름다운 경치를 선보이는 곳은 이호리였다. 신륵사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인 이호리는 마을 앞에 배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그 밑에 한강이 흘러 재미, 이암, 이호라고 하였는데 이문동과 지문동을 병합하여 이호리라고 불렀단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가야 한다. 남은 거리 4.5km, 날씨가 맑으면 이곳에서 신륵사와 강 건너의 모래사장을 볼 수가 있었는데 아쉬게도 미세먼지가 많아 백사장도, 신륵사도 볼 수 없었다.
오로지 강변을 따라 걸어갈 때 금당천이 남한강으로 합류하고 있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묵방산에서 발원하여 여주시 북내면을 관통하여 신륵사 동쪽에서 남한강에 합류하는 금당천은 단종 대왕께서 영월에 귀양 가실 때 건너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금당(金堂)은 본래 가람의 중심으로서 본존불을 모시는 전당을 말한다. 따라서 금당천(金堂川)에서의 금당은 신라 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진 신륵사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렇게 되면 봉미산은 신륵사가 기댄 주산으로, 금당천은 신륵사의 명당 국면을 감싸주는 명당수(客水)가 되는 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금당천 [金塘川, 金唐川,(한국지명유래집 )
금당천이 남한강에 합류하고 있어 가로 질러 신륵사로 향하지 않고 금당천을 우회하여 금당교를 건너니 오학동이다. 이곳에서 신륵사까지 2.8km이다. 금당천변을 따라 잠시 진행하다가 남한강 변에 이르렀으나 가는 길은 강변길이 아닌 산길이었다.
야트막한 동산이지만 강변에 솟아 있어 남한강을 더욱 아름답게 해 주는 산이다.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빛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리의 강이 아름다움을 지극히 할 수가 있었던 것이 아마도 강변에 솟아 있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산들 때문이 아닐까?
강은 산을 따라 흐르고 산은 강을 감싸 안으니 산길과 물길이 하나가 되고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신륵사가 눈앞에 왔는데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남한강을 법당 앞에 두고 있는 독특한 사찰인 신륵사를 강변을 따라 이르지 못하고 산길로 이르는 것이 서운하였다.
신륵사에 이르니 부처님의 세상답게 “ 사흘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三日修心, 天載寶, 백년 탐욕은 하루아침의 티끌이라 百年貪欲, 一朝塵”경구가 일주문에 새겨 있다.
● 일 시 : 2023년 1월 8일 일요일 흐림
● 동 행 : 박찬일 사장님. 김헌영 총무
● 동 선
- 09시30분 ; 강천면사무소
- 10시21분 : 가야1리 표지석
- 11시10분 ; 목아 박물관
- 13시05분 ; 금당교
- 13시50분 ; 신륵사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1.2km
◆ 소요시간 : 4시간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