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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을 믿지 않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 2022년 8월 21일 주일 예배
본문 / 창세기 7:13-24
저에게는 두렵고 답답한 일이 있습니다. 저를 두렵게 하고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면 정말 두렵고 마음이 답답하여 깊은 탄식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는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곳입니다. 여러 번 말하지만 천국의 그 완전한 기쁨과 영원한 영광이 얼마나 대단하고 영화로운지는 도저히 이 세상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고 지옥의 그 완전한 고통과 영원한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이 세상의 말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심판대에서 천국과 지옥이 한 번 결정되면 영원히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판대에서 하나님께 내 믿음을 인정을 받지 못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지만 심판대 앞에서 울고불고 머리털을 뽑고 몸을 찢으며 잘 못했다고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잠시 경험하는 마음과 육체의 기쁨과 고통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함 기쁨보다 천만 배 더 강한 새로운 기쁨이 영원히 되는 곳이 천국이라면 이 세상에서 내가 경험한 가장 큰 고통보다 천만 배 더 강한 괴로움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지옥의 고통에 대해 말하면 그곳은 지옥이 아니라고 하셨다는 겁니다.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런 곳과 고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옥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말씀하시며 한 사람도 지옥에 가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천국도 안 믿지만 지옥은 믿습니까? 저는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 안에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그 두려운 심판 즉 천국과 지옥이 결정되는 심판을 정말 마음과 영으로 믿는다면 다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아니, 어떻게 지옥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아는데 그곳으로 가겠습니까? 천국이 얼마나 영화로운 곳인지 믿는데 그곳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에는 들어가기를 원해도 못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믿음 있는 자를 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만 있는 지옥에 가는 자들이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의 현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제대로 믿음의 길을 가는지, 내가 지금 이 믿음으로 계속가면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나는 정말 십자가를 만나 내 죄를 회개하고 죄를 끊어내고 죄와 싸우며 말씀에 순종하는 좁은 길을 가고 있는지 확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지, 어디로 가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형식과 습관만 의지하고 무턱대고 가면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십자가 앞에서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인지 진실하게 돌아보고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구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진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이 그 마음과 영에 들리지도 않고 들어도 끝내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도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십자가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자신을 돌아봅니까? 자존심이 조금만 상해도 마음을 닫습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의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 심판을 받아 지옥에 떨어져도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 이미 심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게 노아시대의 물 심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막은 불로 심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여 불 심판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안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불신자들은 심판을 전혀 안 믿다가 죽는 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고 교회에 있는 성도들은 믿는 척하다가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을 맞을 교회와 성도들이 물로 심판을 받은 노아의 시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시대에 죄악이 세상에 가득한 것을 보시고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을 보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살다가 죽을 것이고 그때 심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홍수로 역사와 세상을 심판하여 모든 사람들을 죽이셨습니다. 다 죽이고 의인이었던 노아의 자손을 통해서 새롭게 시작하면 사람들이 바로 살게 됩니까? 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이 세월이 조금 지나자 하나님과 한 번 겨뤄보자며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 새롭게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노아의 후손들에게 심판에 대하여 분명한 경고와 교훈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노아시대를 거론하며 성도들을 깨우는 것입니다.
홍수심판은 노아의 후손들에게 주시는 본보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홍수심판을 보며 깨닫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판을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닫으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의 문을 닫은 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왜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직접 닫으신 것일까요?
요즘 집중호우로 사람이 죽기도 하고 피해를 본 곳이 많습니다. 비가 오는 수요일 저녁과 그 다음날 새벽에 교회를 오고 갈 때 정말 무섭게 오더군요. 와이퍼를 최대로 작동을 해도 비가 너무 쏟아지니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가 무섭게 내리면 홍수심판이 생각이 납니다. 이런 장대비가 몇 시간만 내려도 대천시내는 물바다가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그 날까지 사람들은 심판을 믿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을 믿었다면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술이 넘어가겠습니까? 물난리가 나서 물에 떠내려가 죽는데 결혼을 하겠습니까? 시꺼먼 먹구름이 몰려와 깜깜하게 되고 비가 떨어질 때에도 사람들은 심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날이 없었겠습니까? 장대같이 무섭게 떨어지는 비를 보며 내리다 그칠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비가 그칠 줄을 모르는 겁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섭게 퍼붓는 것입니다. 삽시간에 강물이 불어나고 물이 차오르자 사람들은 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저지대에 살던 사람들은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높은 곳으로 도망가며 노아를 생각했습니다.
이게 혹시 노아가 그렇게 떠들던 홍수심판은 아닌가? 설마? 아닐 거야? 이런 비는 전에도 있었잖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던 재산과 재물을 들고 노아가 있는 방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산위에서도 물이 무섭게 내려오자 어린 아이들이 물살에 휩쓸리며 살려달라고 소리를 쳤지만 아무 것도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몇 사람들이 방주에 있는 곳에 이르러 이젠 살았다며 방주를 두드렸지만 노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물살은 거세게 몰려오고 죽음의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손이 부서져라 방주를 두드리며 노아의 이름을 부르며 살려달라고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아마 노아가 방주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었다면 살려달다고 울부짖는 것을 보며 문을 열었을 것입니다. 손이 부서져라 방주를 두드리며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찢어졌겠습니까? 그 중에는 형제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왜 열어주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한 번 닫으신 방주의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방주의 문이 닫히기 전에 방주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홍수가 시작되는 날까지도 심판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기회를 안 주셨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넘치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노아는 산 위에서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산 위에 방주를 짓던 120년은 하나님이 심판을 받아 멸망할 사람들에게 주시는 은혜였습니다. 회개하라고 말입니다. 회개하면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미 죄에 깊이 빠져 타락한 삶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산꼭대기에서 배를 만들며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할 것이라고 외치는 노아는 정신이 나간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물로 심판을 받아? 웃기고 있네! 에라 이 놈아! 정신 차려! 미친놈!
어쩌면 한 사람도 노아가 전하는 심판의 메시지를 믿고 회개한 사람이 없는지 말입니다. 노아가 우리 가족만 구원을 받으면 된다고 입을 꼭 다물고 있었겠습니까? 심판을 믿는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알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 많은 형제들과 가까운 혈육도 믿지를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만찬가지라는 겁니다. 성도들이 심판을 믿지를 않는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심판을 준비하는 삶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마음대로 제 멋대로 믿으며 천국에 갈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닫히면 그때는 더 이상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긍휼이 끝나면 오직 준엄한 공의와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며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기회는 내가 원하는 만큼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지금 문이 열려 있을 때 하나님께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말씀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지금 죽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밑도 끝도 없고 근거도 없는 구원의 확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 중에는 자신을 속이는 자들도 많습니다. 십자가를 만나 정말 회개하고 거듭났는지 말입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내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합니까? 먼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합니까?
하나님과 세상을 함께 섬기면서 무슨 구원을 받았다고 믿습니까? 인생의 주인이 내 자신이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무슨 일을 만나면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면서 무슨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까? 시험과 고난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생각지 않고 그저 내 감정과 생각과 뜻만을 주장하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까?
나에게 잘 못한 사람을 어떻게든 용서해 보려고 십자가를 붙들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까? 나를 서운하게 하고 조금만 인격을 무시해도 상대도 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받았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분해서 제 성질에 못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남을 헐뜯고 험담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나를 낮추어 남을 높일 줄도 섬길 줄도 모르고 남들 위해 올라가 대접만 받으려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며 내 것으로 도울 줄도 모르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일까? 주님이 기뻐하는 것이라면 내가 원치 않아도 순종하는 그 십자가의 길을 가지 못하는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그저 내가 편한 것과 만족과 기쁨만 체면만 찾는 사람이 구원을 받은 사람이겠습니까?
구원을 받은 사람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자들은 넘어지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고 다시 십자가를 붙들고 일어나 자기 십자가를 지고 순종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교회에는 자기 마음대로 믿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기를 원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 정말 냉철하게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지 확인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은 복 있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성도들은 천국과 지옥에 관한 말씀을 듣고 지금 심판을 준비해 해야 한다! 지금 회개해야 된다! 지금 십자가에 자신을 부인하며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고 해도 깨닫지 못하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너무 많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너무 오래 동안 넓은 길로 왔기 때문에 그게 익숙해진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을 섬기면서 한편으로 하나님을 섬겨도 문제가 없었던 것입니다. 마귀의 올무에 걸려든 것이고 죄의 사슬에 매인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십자가를 붙들고 회개하고 죄를 끊어내지 않으면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면서 심판대 앞까지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의 비극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을 고통스럽게 보고 계신 겁니다. 노아의 시대처럼 심판에 관해 들어도 그 심판을 믿지 않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얼마 전 대천변에 물이 가득차자 사람들이 나와 지켜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물이 자신에게 닥치면 어떻게 구경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물로 불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불 못에 떨어지면 불구경하듯이 지켜볼 수 있겠습니까? 지옥은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
지금 살아있으니 나는 살아있다고 하며 무섭게 내려가는 물도 구경하지만 그러나 심판대 앞에 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자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이 없으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회개하고 거듭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제가 100% 확실한 예언을 하겠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남편과 아내와 형제와 자매와 아들과 딸과 손자 손녀가 다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게 믿어지십니까? 이것이 심판을 믿지 않고 준비하지 않는 자들의 영원한 미래입니다.
사람의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주인을 모르고 내가 주인이 되어 나를 위해 산 인생은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이라도 내 생명을 찾으시면 우리는 아무리 살고 싶어도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아무 소리도 못하고 심판대 앞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그걸 아십니까?
그래서 날마다 심판을 준비하며 사십니까? 여러분은 제가 전하는 말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가 볼 때에는 사람들은 미친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미쳤다고 하겠지만 사실 잘 안 돼서 그렇지 예수에 미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영원히 고통을 받는 곳으로 가겠습니까?
세상에 미친 것입니다. 재물과 돈에 미친 겁니다. 세상의 영광과 권세와 명예와 인기와 재미와 즐거움과 쾌락에 미친 것입니다. 인생에 미친 겁니다. 자신을 섬기는 자아숭배에 미친 것입니다.
제가 과거에 무한도전을 잘 봤습니다. 얼간이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엄청 웃기고 재미있는 겁니다. 그런데 여자들은 드라마는 잘 봐도 그런 거는 별론가 봅니다. 제가 TV를 보고 있으면 아내가 무슨 말을 합니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지도 않고 해도 들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내가 한 말을 못 들었냐고 합니다. 그러면 저는 전혀 못 들은 겁니다.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말을 하는 겁니다.
사람이 육체의 정욕과 세상의 탐심에 미치면 아무리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들어도 마음과 영으로는 들리지 않습니다. 또 하는 소리구나! 뭐 심판도 있겠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마는 것입니다.
심판이 없다면 제가 미친놈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이 역사에 노아시대의 홍수를 통해서 심판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죽어라고 심판을 외쳐도 미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참되고 온전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수도 없이 듣고도 믿지 못하여 준비하지 않는 자들이 미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나의 삶이 노아시대에 심판을 받은 그 사람들과 같은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천국과 지옥과 심판에 관하여 수도 없이 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고 그저 마음과 생각은 온통 세상의 재물과 돈과 영광과 힘과 재미와 즐거움으로 육신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까?
예수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우상숭배이며 하나님 없는 자들의 삶이라고 하시고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입술로만 교회에 나와 주여 주여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못을 박는 회개와 거듭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절대로 심판의 길로 가면 안 됩니다. 며칠 전 새벽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하나님 몇 사람이나 천국에 갈까요? 한 사람도 지옥에 가면 안 되는데 하나님 제발 저를 죽여서라도 다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집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지 모릅니다. 교회에서는 자지만 집에서는 마음에 하나님을 사모하며 일어나면 무릎 꿇고 오늘도 심판을 준비하며 살게 해달다고 기도 먼저하고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하고 천국을 소망하며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며 말씀에 순종한다면 자는 것도 예쁠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을 심판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잘 자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정신을 집중합니다. 졸리면 스스로 나가서 세수하고 서서 수업을 듣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해도 다 잡니다! 자는 것도 자기만 자면 부끄러운데 다 잔다고 하니까 힘을 얻는 겁니다. 깨워라! 솔직히 자는 사람은 깨우기 싫습니다. 듣는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는 게 편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깨워라! 잠자는 자를 깨우지 않는 자는 악한 종이다!
제가 예배시간에 여러분의 육신의 잠을 깨운다고 생각하십니까? 심판을 준비하라고 영적인 잠을 깨우는 것입니다. 제발 정신 차리라고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고 멸망하였지만 오직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예수님은 너희들은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베소서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저를 통해서 여러분을 깨우고 있습니다. 영적인 잠에서 깨어 일어나 빨리 심판을 준비하라고 말입니다. 지금 스스로 잠에서 일어나 자신을 깨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심판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더 깊이 잠들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 심판을 준비하지 못하고 어느 날 생각지 못한 날에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셨습니까? 영원히 잠을 자지 못합니다.
제발 스스로 자신을 깨우십시오. 아멘! 내가 이래서는 안 되잖아! 스스로 자신을 말씀으로 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심판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종과 성도들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