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의하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노예로 살다가 탈출한 이스라엘들은 원래 그들이 살았던 고향인 가나안 땅(지금의 이스라엘이 있는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향했는데, 마침 가나안에는 여리고라는 성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공격하기 전에 먼저 두 명의 첩자를 보내서 여리고 성에 몰래 들어가 살펴보도록 했는데, 이때 그들을 라합이라는 창녀가 숨겨주고 “내가 당신들을 숨겨주었으니, 당신들도 나와 내 가족을 살려주십시오.”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첩자들은 그렇게 할 테니 자신들이 오면, 분홍 줄을 창문에 매달아 표시를 하여 보호를 받으라고 약속을 하고는 여호수아한테 돌아가 자신들이 보고 들은 일들을 모두 알렸습니다.
여호수아는 곧바로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여리고 성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신이 준 보물인 언약의 궤를 어깨에 멘 7명의 사제들이 성을 6일 동안 계속 한 바퀴씩 돌다가, 7일이 되는 날에 미리 여호수아가 일러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함을 지르고 나팔을 불자, 여리고 성의 성벽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일제히 성으로 쳐들어가 남녀노소와 모든 가축들을 칼로 쳐 죽이고 성을 점령하였다고 구약성경 여호수아기 6장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만 라합과 그녀의 집 안에 든 사람들만은 살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구약성경에 실린 여리고 성 설화의 내용은 과연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설화는 진실과 거짓을 반반씩 담고 있습니다.
우선 구약성경에 그 이름이 언급된 여리고, 원래 이름인 예리코라는 도시가 있었던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에 인접한 사해 북쪽의 폐허가 된 유적지인 예리코는 기원전 8천 년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년 전에 벌써 도시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예리코는 사막 한가운데에 발생하는 일종의 샘물인 오아시스가 있는데, 인간의 생존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인 물을 갖추고 있다는 점 때문에 오래 전부터 사막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와서 도시를 지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한 예리코는 이집트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으며, 이러한 지리적인 장점을 살려 육상 무역의 중계 역할을 하면서 수많은 상인들과 여행자들이 여리고를 방문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예리코의 유적지에서 방사성 탄소 연대법을 사용해 조사한 결과, 1만 년 전에 햇빛에 말린 벽돌을 사용해서 만든 건물들의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이러한 건물들을 두고 단순히 여리고 주민들이 잠을 자기 위해 지은 거주지가 아니라, 예리코를 방문하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이 며칠 동안 묵거나 잠을 자기 위한 일종의 여관이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류 최초의 호텔은 이미 1만 년 전의 예리코에 벌써 있었던 셈입니다.
1만 년 전의 예리코에 살았던 사람들의 숫자는 고고학적 발굴의 결과, 대략 2천 명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인구 1천 만의 대도시가 즐비한 현대인들의 눈으로 보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불과한 적은 숫자이지만, 컴퓨터도 전기도 자동차도 비행기도 철도도 없던 인류의 문명이 원시적인 시절인 1만 년 전에 2천 명의 인구라면 대단히 많은 수였습니다.
외부인들이 머무는 숙소 이외에도 예리코에는 4미터 높이에 2미터 넓이의 성벽도 세워졌었으며, 8.5미터 높이의 탑도 들어섰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외부의 적을 막거나 감시하기 위한 방어 시설들이며, 이는 예리코 성에 사는 사람들이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예리코 성의 거주자들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1만 년 전부터 예리코에 살았던 최초의 거주자들은 약 700년 후, 감쪽같이 행방을 감춰버렸습니다. 그 후에 새로운 거주자들이 나타나서 예리코에 살았으나, 1300년 후에 그들도 도시를 떠나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로부터 1500년 후인 6500년 전, 그러니까 기원전 4500년에 세 번째 거주자들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나 그들도 500년 후에 도시를 떠나서 행방을 감추었습니다.
1200년 후인 기원전 3300년, 네 번째 거주자들이 예리코 성에 들어와서 살았습니다. 이들은 약 1천 년 동안 여리고 성에 정착하여 꽤나 오랫동안 버텼지만, 기원전 2300년 무렵 아모리족들이 예리코성을 침공하여 약탈을 저지르는 바람에 네 번째 거주자들도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400년 후인 기원전 1900년 가나안인들이 예리코 성에 들어와서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구약성경에도 나오는 바알과 아세라 신앙을 지키며, 340년 동안 번영을 누리며 살았으나 기원전 1560년, 동북쪽에서 말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쳐들어온 힉소스족의 공격을 받아 예리코 성은 폐허로 변했습니다.
그로부터 2백 년 후에 여호수아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인들이 이 예리코 성을 방문한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미 그 때 예리코 성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스라엘인들은 아무도 없는 폐허를 점령했던 셈입니다.
출처: 지도에서 사라진 도시들/ 도현신 지음/ 서해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