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말은
'예,예.' 하든지, '아니오, 아니오.'하든지 해야합니다.
이것을 넘어서는 말은 악한 자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37]
옳고 그름에 대해서 "예와 아니오"를 분명하게 하는 일은 쉽지않다.
쉽지않은 이유는 중간지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원론의 한계가 극복된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며, 심지어는 '흑백논리'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혹자는,
'왜 흑색과 백색만 있느냐, 회색도 있지 않느냐?'면서 마치 자신은 중도적인 입장에 서 있다는 듯 행세한다.
마침내 점잖게 말한다.
'판단중지.'
"나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은 기회주의자다.
이기는 쪽의 손을 들어줄 적절한 기회를 찾아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분명하게 자기의 입장을 표명한다.
'예와 아니오.'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고민해야한다.
불의에 대해서 '예!"하고 정의에 대해서 "아니오!"한다면 획증평향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옳고 그름 앞에서는 중립이 없다.
옳으면 옳은 것이고, 그르면 그른 것이다.
예수의 '예,예.'와 '아니오, 아니오.'의 의미는 이것이다.
그런데 왜 이것을 제대로 못하는가?
이것도저것도 아닌 태도를 취하며 중립적이라하고, 악한 일에 '예,예.'하는가?
예수는 이것이 '악한 자(악)'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만 '악'이 그들의 근거다.
그들이 섬기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물신(우상)이다.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니,
대한민국의 중차대한 현실 앞에서 헛소리들을 해대는 것이다.
"차라리, 침묵하라!"
첫댓글 말을 많이 하면 자기도 모르게 허풍과 거짓말을 포함시킬 가능성이 많다.
악한 영이 말 가운데 슬쩍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니 말은 단순하고 쉽게 ‘예’면 ‘예’요, 아니면 ‘아니오’라고 하면 된다.
한 마디 말이라도 그것을 진실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수님은 옛 세대 모세의 율법을 계속 새로운 법으로 바꾸어 주신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