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슈케크에서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국경근처 고대 도시인 오시로 이동하는 날이다. 지금까지 버스로 이동을 했는데 이번에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오쉬로 간다. 비행기로는 40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버스로 가면 610㎞를 열 시간 반 걸린다고 한다.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이므로 오전에는 각자 알아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호텔 체크아웃 시간이 12시고 12시 30분에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으로 점심식사는 공항에서 하든지 미리 준비해야 한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캐리어를 정리한다. 오쉬행 국내선 비행기의 화물 제한 중량이 15kg이니 여행용품들을 정리해 배낭과 캐리어에 적절히 배분한다. 어제 시티투어 시 아들과 딸에게 줄 꿀을 사지 않은 게 영 마음에 걸려 꿀을 사러 아시아 몰로 향한다.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아시아 몰에 도착했더니 아직 개장 전이라 잠시 기다려 지하 매장으로 들어가 꿀 3병을 산다.(710솜)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한국식당에 들러 점심으로 먹을 참치김밥을 산다.(350솜)
시간이 좀 남았지만 숙소에서 쉬다가 미리 예약된 버스를 타고 마나스 공항으로 출발한다. 마나스 공항은 비슈케크 시내에서 24km 떨어져 있는 국제공항으로 호텔에서 30분도 안 걸린다. 공항 입구에 도착해 보니 공항은 온통 공사 중이라 도로변에서 내려 캐리어를 끌고 국내선 터미널까지 300m 이상 가야 한다. 공항은 말만 국제공항이지 시설은 우리나라 시골 공항만도 못하다. 국내선이라 세관은 없지만 항공사 카운터는 좁고 낡은데다 탑승수속을 마치고 탑승구 앞 대기실로 가면 면적도 좁고 지저분하며 냉방장치가 없어 덥다.
오후 2시 반 탑승구가 열려 표 검사를 마치고 탑승구로 나가니 탑승 브릿지가 아닌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는데 공항을 한참 달려(거의 공항을 반 바퀴 돈 것 같다) 공항 한가운데 대기하고 있는 오쉬행 테즈젯(Tezjet) 항공기에 오른다. 테즈젯의 MD-83에는 'Last Mad Dog'란 이름이 붙어있다. 이제는 사라진 맥도널 더글라스의 MD-80 여객기 시리즈 중 최후 생산 기체로, 지난 세기의 물건이다. 내가 아는 Mad Dog은 이미 2019년에 미국에서 퇴역한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서는 현역인가 보다.
오후 3시 정각에 이륙한 비행기 Mad Dog은 활주 거리도 길고 연료 냄새도 많이 난다. 하얀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을 뚫고 안디잔 근처 상공을 지나자 흐릿하게 멀리 보이는 산맥들 앞으로 농경지와 사람들의 주거지가 보이고 도시의 풍경에서 산의 풍경으로 달라진다. 이륙한 지 1시간도 안 걸려 오쉬 공항에 사뿐히 착륙한다.
항공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공항 청사로 온다. 오쉬 공항은 국제공항이라지만 마나스 공항보다 작고 시설이 열악하다. 캐리어를 찾아 공항 밖으로 나오니 호텔까지 데려다 줄 여행사에서 마련한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오쉬 국제공항 활주로 옆에도 공항을 나와 오쉬 시가지를 향하는 길에도 버려진 일류산 항공기들이 수없이 많았다. 최첨단 버드스트라이크 방지 장치로 허수아비를 심어놓은 공항에서 고철이 되어가는 대형 항공기들의 모습은 마치 일류산 항공기들은 무덤처럼 보인다.
오시(Ош 러시아문자)는 우즈베키스탄 국경 부근에 위치하며,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러시아인, 타지크인 등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오시의 뒷산인 술레이만 산 중턱에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굴되어서 이곳에 농경사회가 정착된 것으로 보아 중앙아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로마보다도 더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페르나가 분지의 비옥한 지대에 있는 오시는 실크로드를 따라서 비단 생산의 중심으로서 8세기에 동서양에 알려진 도시였다. 중세시대에 인도와 중국에서 유럽까지를 잇는 무역로의 교차점으로 실크로드 중 하나가 이 도시를 통과하여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였다. 오시가 3천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지만 남아 있는 역사적 유물이 없는데 이는 13세기에 칭기스 칸이 도시를 점령하면서 철저하게 파괴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오시는 여러 칸국(汗國)들이 흥망을 거듭하다 18세기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면서 러시아의 영향력 하에 놓였고 1876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이 되면서 소련은 우즈베키스탄의 도시였던 오시를 키르기스스탄의 영토로 편입 하게 되었는데 이는 타민족끼리 서로 협조하지 못하게 하여 반란 등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사는 지역 특성상 민족 대립이 잦았고, 오쉬는 우즈베키스탄 국경과 약 5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두 나라가 농업용수와 천연가스를 놓고 1990년 6월에 오쉬 지역에서 충돌해 5백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독립 후 두 나라 간 큰 충돌이 없었으나 2010년 6월 10일, 다시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에 대립이 발생하여 여러 날에 걸쳐 수백 명이 사망하고 많은 우즈베크인들이 난민이 돼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갔다. 이런 충돌 배경을 보면 키르기스스탄에는 우즈벡계 주민들이 전체의 14%를 차지하는데, 특히 이번 폭력 사태가 발생한 오쉬와 잘랄아바드 등 남부도시 일대에는 인구의 절반 가량이 우즈벡 주민들이다. 이곳에서 우즈벡 주민들은 경제 주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키르기스계의 불만이 쌓여왔다. 또한, 2010년 4월 시민봉기로 물러난 바키예프 전 대통령 지지 기반이 주로 우즈벡 주민들이었는데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우즈벡계 주민들과 현 정부를 지지하는 키르기스계 주민들의 정치적 충돌도 한 몫 했다고 한다. 즉 키르기스계와 우즈벡계 주민들의 해묵은 감정싸움에다 최근의 정치적 혼란 상황까지 겹쳐 복잡한 양상을 띄고 있다. 두 나라 사이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은데 이 모든 원인은 소련이 국경을 제멋대로 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로 아프리카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강대국들의 제멋대로의 국경을 결정하는 바람에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다.
공항 출구에 있는 음료수를 파는 가게에는 수도꼭지 같은 것도 있고 물차 같이 생겼는데 음료수를 판다. 알아보니 막슴(Максым)이란 키르기스스탄 전통 음료란다. 막슴을 만드는 전통기술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공식등재되었는데, 주로 보리, 밀, 옥수수 등 곡물을 볶거나 끓인 뒤 발효시켜 물과 소금을 섞는데 지역과 가정에 따라 조리법이 다르지만 대체로 구수하고 담백한 맛에 약간의 신맛이 난다고 한다. 이 음료는 단순한 갈증 해소용을 넘어 여름철 더위 속에서 체력을 보충하고 소화를 돕는 음료로 오랫동안 마셔왔는데, 곡물 발효과정에서 생성되는 영양성분으로 포만감이 있으며 농번기나 장거리 이동 중에도 중요한 에너지원 역할을 했으며,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음료로 자리 잡아 가족단위로 집에서 만들어 마시던 전통이 있었고 조리법은 세대를 거쳐 전승되었으며, 현재에는 키르기스스탄 전역에서 상업적으로 생산돼 길거리나 마트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쇼로(Шоро)같은 현지 브랜드를 통해 대중화되어 전통과 현대 생활을 잇는 상징적 음료로서 일상 속에서 꾸준히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호텔(Osh Grand Hotel Chavo)에서 방을 배정 받아 짐을 정리하고 호텔 건너편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