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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2016년 <한국소설> 7월호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시절인연(時節因緣)
시를 쓰면서 문예지를 발행하는 조 선생으로부터 문학기행을 함께 가자는 전화를 받았을 때 썩 내키지도 않거니와 지인들에게 으레 하는 인사치레려니 하여, 내가 그런 데에 잘 가는 사람이 아니잖아? 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 또 전화가 왔다. 전엔 없던 일이다.
“같이 가자니까 뭘 그렇게 뻐기고 그래?”
한사코 안 간다니까 농담이겠지만 이렇게 말한 이면에는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느냐는 힐난도 섞여 있어 더 이상 고집을 피울 수가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을 벗어나고픈 일말의 욕구도 일었고 그녀가 뒤늦게 다닌 여자대학의 문창과 동문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귀띔에 솔깃해진 면도 있었다.
그날이 왔다. 여행을 하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날씨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운이 느껴져 가로의 나무들은 계절의 변화에 단풍으로 맞설 기세가 완연했다. 나는 버스의 뒷부분에 자릴 잡고 앉아 눈을 감았다. 내 옆자리는 비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런 식의 여행을 갈 때마다 그러려니 하고 있으니. 하긴 나도 그게 편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인사와 예의를 지켜가며 하나마나한 얘기를 나누는 것도 내 취향이 아니니. 참석인원은 대략 서른다섯 명 정도. 여러 곳을 둘러본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내세운 곳이 문학과는 별 관계도 없을 것 같은 대둔산. 하긴 말이 문학기행이지 단체관광과 하나도 다를 바 없었다.
어딜 가도 거의 변함없는 순서, 여행을 주선한 조 선생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한 다음 참여하게 된 인사들을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내 순서가 됐다.
“오늘 여행이 더욱 즐거울 것 같은 예감을 들게 하는, 귀하신 분이 오셨습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분은 이런 모임에는 잘 참여하지 않는 분인데 제 얼굴 봐서 마지못해 참석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소설가 송한영 선생님이십니다.”
이런 젠장! 내게 아부할 일이라도 있나, 귀하신 분이라니? 하긴 주최자로서 여행의 격을 높이려는 의도가 분명하지만 언감생심,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거기까진 줄 알았다.
“홀아비니까 여성분들 알아서들 하세요!”
어이구, 염병할. 그게 광고할 일인가.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쏙 빼들고 나를 쳐다보는데 온몸의 피가 얼굴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조 선생과는 서로의 가정사를 얘기할 만큼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다. 내 영혼의 어두운 구석이 되고 만 아내는 진즉 갔다.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어언 십여 년. 하늘이 날 놀리는 거라며 장난처럼 여겨지던 아내의 발병과, 결코 장난이 아니라는 걸 생생히 절감하면서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투병과 죽음을 결국엔 나같이 행운이라곤 털끝만치도 없이 곳곳에 허방만 널려있는 놈에겐 마땅한 일이겠거니 자조하며 받아들였다.
물론 나라고 홀아비를 벗어나고픈 욕심이 왜 없겠는가마는 부부라는 인연은 불가의 인연설, 잠자리의 연약한 날개가 바위에 부딪쳐 그 바위가 하얀 가루가 될 만큼의 오랜 시간 동안에 딱 한 번 찾아오는 것이라고 하는데 나같이 재수가 옴 붙은 놈에게 그럴 기회나 다시 오겠는가 말이다. 더군다나 처녀총각 결혼보다 백배는 더 어렵다는 재혼의 인연이. 내 옆자리는 죽을 때까지 비어있어야 마땅했다.
서울 한 가운데를 지나치느라 시간을 많이 소비해서 그런지 천안휴게소에 버스가 멈췄다. 거의 모두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직 요의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만약을 생각해서 화장실로 향했다가 자동판매기로 가 밀크커피를 빼들고 느긋하게, 별다른 생각 없이 멀리 보이는 버스를 향해 걸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들이마시는 공기마저 서울과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고. 그때 막 휴게소 건물 위 하늘로 까치 한 마리가 획을 그으며 솟구쳐 오르자 뒤따라 또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급회전하여 산으로 사라졌다. 짝일 것이다. 미물도 저럴진대 하물며 인간인 나는? 하필이면 거기가 여자화장실 앞이었던가.
한 여자가 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내가 본 게 아니라 그 여자가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환했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을까? 그 여자뿐만 아니라 그 여자로 인하여 주변이 환한 기분이었다. 단발의 머리에 조금은 통통한 몸매, 하얀 얼굴에 안경을 끼고, 눈이 큼직한. 악의라곤 전혀 없을 것만 같고 전체적으로 순정의 빛이 나는. 참으로 강렬한 아우라였다. 그 여자는 모자를 쓴 여자와 팔짱을 끼고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가 스치듯 앞을 지나갔다. 그 순간이 3초나 되었을까. 분명히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익숙한 느낌이라니? 어디서든 본 것 같지 않은데 꼭 본 것만 같은. 나는 홀린 듯 멈춰 섰다가 홀린 듯 그녀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생각도 없었다. 내가 끌려가고 있었다. 거리를 좁히지도 못하고 서너 걸음 뒤에서 그녀들의 걸음 속도로 눈도 깜박이지 않은 채 그 여자를 응시하며 걸었다. 이윽고 그네들이 어느 버스 앞에 멈추는가 싶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올라버렸다. 이게 끝인가? 나의 허방, 매사가 이런 식이다. 꿈처럼, 결정적일 때 깨버리는 꿈처럼. 멍청히 서서 그네들을 삼켜버린 버스만 쳐다보았다.
“뭐해, 빨리 타지 않고?”
그때 옆구릴 쿡 찌르는 이가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쳐다보니 조 선생이었다.
“응? 아, 타야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조 선생이 앞장서서 걸어가 탄 차가 그네들을 삼켜버린 버스라니? 여우에 홀린 기분이 이럴까. 멀리서도 알아보았던 버스를 가까이에서 몰라본다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그렇다면 그 여자와 내가 같은 버스에 탄 동행? 나는 누가 타는지조차 별로 관심이 없어 눈을 감고 있었다. 아예 이 여행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조 선생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했을 때나 문창과 동문들을 무더기로 소개했을 때도 주의 깊게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다시 버스에 오른 그 순간부터 여행이 설레기 시작했다. 무덤덤하기만 했던 여행이, 조 선생의 청을 모질더라도 거절했어야 했다며 오줌을 싸기 전까지만 해도 후회스럽던,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나선 여행이 즐겁기 시작했다.
들뜬 내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조용하게만 가던 버스 안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문단에서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우스갯소리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여류시조시인 신 선생이 마이크를 잡은 것이다. 그녀의 특유한 목소리가 왈왈대는 개구리를 닮았다면 너무 무례한 건가. 어떤 이들은 장기자랑을 해도 보는 이가 낯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팔십이 다돼가는 나이지만 어떤 행사라도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은 데다 경직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는 타고난 재주꾼이다.
“내가요, 금강산 관광이 중지되기 바로 전에 다녀왔어요. 그때 실제로 본 얘깁니다. 같이 갔던 점잖게 생긴 신사 한 분이 북한 여성안내원에게 이렇게 묻는 거예요. 여기선 남자 고추를 뭐라고 부르나요? 아마 그 안내원을 놀리고 싶은 심보가 발동한 겁니다. 그런데 그 안내원이 걸작이었어요.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바로 그럽디다. 왜 궁금하십네까? 속살쑤시개라 부릅네다.”
그 순간 차안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킥킥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속살쑤시개. 절묘한 조어였다. 신 선생은 그 뒤에도 ‘무척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 제주 사투리로는 ‘바짝 보지그리원’이라느니,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걸 의식해서인지 아기 몇 낳고 헐렁한 여자에겐 조이그라, 허구한 날 잔소리만 늘어놓는 여자에겐 다물그라, 공주병이 심한 여자에겐 꿈깨그라가 특효약이라는 비아그라를 빗댄 너스레를 떨었으며, 금산인삼시장에 차가 멈출 때까지 남자가 여자보다 번개를 쉽게 맞는 이유가 몸의 한 중앙에 안테나가 있어서라는 익살을 늘어놓았다.
시장은 장날인데다 인삼축제기간이었다. 각종 플래카드와 애드벌룬이 걸려있고 임시 판매점과 관광차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휴게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여자는 짝꿍과 팔짱을 끼고 걸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버스에서 내려 줄곧 그 여자들의 뒤를 몇 걸음 뒤처져 따랐다. 아무도, 심지어 그 여자마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인삼박물관을 거쳐 각종 건강식품 홍보용 부스를 지나자 구성진 각설이타령을 부르는 소리가 가까워 오면서 그네들의 걸음이 조금 빨라지는가 싶더니 요란하게 치장한 남녀가 북을 치며 공연을 하고 있는 난장에 딱 멈췄다.
나도 그네들과 몇 걸음 떨어져 섰다. 얼굴은 무대를 향하지만 내가 보는 건 각설이가 아니었다. 얼굴에 미소를 담뿍 담아 어린애처럼 마냥 즐거워하는 그 여자였다. 총각 시절 첫눈에 반했던 아내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우린 서대문에 있는 소극장에서 품바 공연을 보았다. 그때의 품바가 2대인 영화배우 정승호. 맨 앞자리에서 앉아 보는데 공연 중간쯤에 갑자기 그이가 나를 보고 옆에 앉은 이가 누구냐고 물어오자 당황하여 얼떨결에 아내가 됐으면 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꼭 결혼에 성공하시라며 관객들의 박수를 유도했었다. 어찌 보면 그게 나의 어설픈 사랑 고백이었고 결혼 신청이었다. 그때부터 품바나 각설이가 예사로 보이지 않고 그 구슬프고도 흥겨운 노랫가락이 나오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지며 따라 부르곤 했다. 그 연극을 본 뒤, 실제로 아내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결국 결혼했다. 그런 아내는 떠나갔다.
이제 이 시골장터의 각설이는 불현듯 나타나 아내와 버금가게 강한 인상을 풍기는 여자를 바라보는 내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그의 노래는 ‘일자나 한 자 들고 보니’로 시작하여 구경꾼들 사이를 누비며 엿을 팔더니 ‘칠자나 한 자’에 이르러 내 앞에 서서는 ‘칠월이라 칠석날에 견우직녀가 만나는 날’이라 단정하고는 엿을 코앞에 내밀며 ‘하나 잡아보랑게요!’그랬다. 이 무슨 조화인가. 견우와 직녀의 만남. 그가 일상으로 무수히 불렀을 노래일망정 결코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으니 엿을 덥석 잡고는 만 원을 깡통 속에 넣었다. 품바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나로서는 그 만 원이 결코 아깝지가 않았다.
나는 각설이들이 공연을 중단하고 본격적으로 인삼엿 판매에 들어가자 발길을 돌리는 그네들을 따르며 어떻게 하면 인연이 이루어질지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네들이 들어간 곳은 ‘추억의 6070금산거리’라는 곳이었다. 육칠십 년대, 흑백으로만 연상되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그곳까진 따라 들어가지 못했다. 다른 곳과 달리 유난히 한산하여 내 꿍꿍이를 들킬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어영부영 점심시간이 되어 예약했다는 식당에 도착했다. 한정식이었다. 차에서 내리는 순서대로 식당으로 들어가기에 나는 자연히 뒤에 들어갈 수밖에. 신발을 벗고 안으로 막 들어갔을 때였다.
“어이 동생 이리 와.”
동행 중 나를 동생이라 부를 수 있을 만치 임의로운 이는 신 선생밖에 없었다. 옆자리를 비워놓고. 놀랍게도 거기 인연이 있었다. 바로 앞자리에. 신 선생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나는 처음으로 그 여자와 눈을 맞출 수가 있었다. 수줍은 표정이 역력했다.
“송 선생은 내게 고맙다고 해야 돼.”
“왜요?”
“아 오늘 버스 탄 여자들 중에서 가장 미인들을 앞에 앉혀 놨잖여.”
그 말에 그네들이 수줍어하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렇잖아도 감격하고 있는 참입니다.”
“말로만?”
“현물로 드리지요.”
나는 접시에 놓인 조기를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이걸로는 안 되지. 혹시 책 가져온 거 있어?”
나는 올해 두 권의 창작집이 나왔다. 혹시 몰라 각기 두 권씩을 버스에 두고 온 가방에 넣어오긴 했다. 눈치를 채긴 했으나 짐짓 의아한 표정을 지었더니.
“이러니까 홀아비를 못 벗어나지. 가지고 왔으면 밥 먹고 사인해서 이 두 분 드려. 옛날에는 독자가 작가를 찾았지만 이제는 작가가 독자를 찾아야 하는 시대여. 문창과 출신들이니 고급독자들이잖여.”
그러면서 가방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그네들에게 이름을 적으라고 주었다. 내심 나는 쾌재를 불렀다. 그러잖아도 책 생각을 했었다. 나를 알릴만한 게 책보다 좋은 게 어디 있으랴. 그러나 그럴 기회를 어떻게 만드느냐, 생뚱맞게 내가 쓴 책이니 읽어보시오,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내 눈은 그 여자가 쓰는 이름에 머물렀다. 도도심, 그리고 그녀가 언니라 부르는 모자를 쓴 짝꿍이 고정례.
“이름이 촌스러워요.”
고정례가 쪽지를 신 선생에게 건네며 수줍어했다. 그 쪽지는 이내 내 손으로 건너왔다.
도도심. 결코 촌스러운 이름이 아니었다. 언뜻 보면 이름처럼 도도한 성격의 소유자 같은 인상이다. 인연이 되든지 되지 않든지 간에 내가 살아있는 한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이름이 되었다. 인연은 어차피 상대성이다. 한쪽이 아무리 좋다한들 상대가 싫다면 이루어지지 못하니까. 밥맛도 모르고 식사가 끝났다. 나는 그 여자 앞에서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이런 기분이 얼마만인가.
호남의 금강이라는 대둔산. 셀 수 없을 정도로 다녀간 곳이다. 이 지역과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대학까지 다녔으니 오죽하랴. 산 입구 주차장엔 차들과 사람들로 빽빽했다. 여유가 많아져 그런지 행락 철엔 우리나라 어딜 가도 비슷한 풍경들이다. 나는 이런 식의 관광이 싫다. 그래서 해수욕장이 성수기일 때 바다에 가지 않고 단풍이 절정일 때 산엘 가지 않는 편이다. 또한 주말에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친구 따라 강남도 가지 않는다.
산행 시간에 대한 조 선생의 당부를 뒤로 하고 모두들 그리 높진 않지만 오르기는 만만치 않은 산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어슬렁거리며 뒤를 따랐다. 이미 인사는 텄으나 아직 가까이 다가갈 명분이 없어 먼발치로,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꼭 붙어 다니는 도도심과 고정례를 의식하며. 그러나 그녀들은 고령의 신 선생 때문에 도중에서 멈췄다. 그렇다고 나까지 멈출 수는 없어 마천대까지 겨우 올라 숨을 몰아쉬고 보니 정상에 떡하니 버티고 선 개척탑이라는 시멘트 구조물이 볼썽사나웠다.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정상의 조망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다. 불뚝불뚝 솟구친 바위와 원색의 단풍, 거기에 어우러진 소나무의 푸른 자태. 멀리 보이는 인위의 사바마저 꼭 거기에 있어야하는 것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내가 그녀들을 다시 본 건 아찔한 계곡 사이를 잇는 대둔산의 명물 구름다리를 다시 내려올 때, 오금이 저릴 정도로 출렁거리는 다리 중간쯤이었다. 고정례가 신 선생을 부축하여 앞서가고 도도심이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었다. 그녀들의 걸음이 아주 느려 보조를 맞추느라 나는 여기저기를 눈으로 해찰해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도심이 로프를 잡고 갑자기 주저앉는 게 보였으니. 의아했지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 멈췄다. 사람들은 그대로 그녀를 지나쳤다. 아주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앞으로 푹 숙인 채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정례와 신 선생은 다리를 다 건너고.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났다. 빈혈이 아닐까. 뛰다시피 걸어 다가갔다.
“도도심 씨, 괜찮으세요?”
괜찮은 게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심하게 떨고 있었으니.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무서워서요. 걸을 수가 없어요.”
나는 대번에 알아차렸다. 그녀의 고소공포증을. 우선 안심시켜야 했다.
“저를 꽉 붙잡으세요.”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천천히 걸었다. 내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가해졌다. 공포에 비례한 힘이리라. 이렇게 예정되어 있다면 신도 참 얄궂었다. 어쨌든 내겐 횡재의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를 의지하는 도도심! 한 발짝, 두 발짝. 그렇게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고정례의 놀란 몸짓이 내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 우리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오는 게 보였다.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들이, 빨갛게 물든 단풍이, 아득한 계곡이, 하늘과 구름, 그 단조로우나 무한한 깊이의 색상이 너울너울 춤을 췄다. 거기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을 가지가지 상념은 풍경에 지워졌을 것이나 나의 상념은 느닷없는 행운에 고무되었다. 상대의 공포가 나의 행운이라니! 더군다나 그 아이러니를 즐기다니! 그러나 그 시간은 짧았다. 다리를 다 건넜을 때 나를 떠난 도도심은 허겁지겁 달려온 고정례의 품에 안겼다가 다리가 풀렸는지 급기야 주저앉고 말았다.
“걸을 수 있겠어요?”
한참 후, 내가 걱정스럽게 묻자 아직도 창백한 그녀는 부끄러운 미소를 지으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신세를 졌다며 일어나 고정례와 팔짱을 끼고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갔다. 그때 알았다. 오를 때 괜찮았던 그녀가 내려올 땐 왜 그랬는지를. 그것은 기댈 수 있는 팔짱이었다. 고정례는 오를 때와 달리 내려올 땐 고령의 신 선생을 부축했다. 도도심은 홀로였고.
내 마음은 아름다운 석양처럼 물들어 대둔산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각별하게 느껴졌다. 이것도 하늘의 배려인가. 산을 다 내려갈 때나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도 더 이상의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늘은 이제 내게 그만큼의 실마리를 주었으니 알아서 하라는 게 아닐까. 친구로 만나든지, 소울메이트로 사귀든지. 그래서 돌아오는 내내 나의 고민은 이 인연의 실마리를 어떻게 풀어갈까, 하는 데 있었다.
그 여행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며칠 후 뜻밖에 고정례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책과 함께 명함을 주긴 했으나 먼저 연락을 해오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참이었다. 도도심이 아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문자가 독자로서 둘이 함께 내게 책을 준 답례로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내용이었으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 문자가 아니었다면 난 조 선생에게 전화번호를 물으려 했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어스름이 깔리는 인사동의 토속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만났다. 내 책을 읽은 소감이 먼저였다. 이야기는 고정례가 주도했다.
“선생님의 책을 읽고 너무 좋았어요. 저도 좋았지만 도도심 씨가 더 좋아해요.”
작가로서 가장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데다 인연이 되었으면 하는 도도심이 더 좋아한다? 작품보다 남자인 나이기를 바랐다. 작품도 그렇지만 나에 대한 서로의 감상도 나눴으리라. 여러 얘기들이 나왔다. 문학을 하고 싶어 문창과에 들어갔으나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는 그네들의 상심이 독서로 채워지고 있다고 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도도심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이거 비밀인데요, 도도심 씨 선생님처럼 싱글이에요, 남편이 없는. 그런 데다 선생님을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고정례가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을 꺼냈을 때 내 머릿속이 환해지면서 그 자릴 도도심을 처음 봤을 때의 아우라가 채웠다.
“선생님이 어떠한지도 모르고 이런 말씀 드리기가 좀 뭐합니다마는 저는 선생님과 도도심 씨가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선생님을 처음 뵀지만 좋으신 분 같고요. 작품에서도 그걸 느꼈어요. 도도심 씨야 제가 보증할 수 있고요. 그런데 워낙 도도심 씨가 소심하고 나서는 성격이 아니어서 스스로는 선생님께 가질 못할 거예요. 아니,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다가오셔도 쉽게 문을 열어주지 못할 거예요.”
내가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못하고, 문학적으로 성공한 축에도 들지 못하며, 성격도 외골수에 가까워 결코 좋은 사람이 못 되는데 내 인상이 사기를 친 모양이다. 아니면 작품에서 은연중에 드러나는 내 자랑에 넘어갔던지. 그것도 아니라면 인연이라서? 홀아비와 과부, 이게 인연이 아니고 무엇이랴. 더군다나 인연이라는 말로밖에 처음 본 순간을 설명할 수가 없지 않은가. 내 눈에만 보였을 아우라와 자석 같은 끌림. 인연도 아주 특별한 인연을 시절인연이라 한다는데 바로 그 시절인연이기에 첫 만남의 순간이 그토록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오면 열매를 맺듯이 사람의 인연도 때가 돼야 만나게 되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다는,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다는 시절인연. 가뭄에 쩍쩍 갈라진 논바닥마냥 내 마음은 황량했다. 외로움을 느끼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내 사랑은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거기에 단비 오듯이 한 사람이 내게로 온다? 절묘한 하늘의 배려가 아니고 무엇이랴.
“저도 처음 뵀을 때 느낌이 남달랐어요. 그래서인지 두 분은 모르시겠지만 저도 모르게 따라다니게 되더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그러셨어요? 정말 선생님과 도심 씨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줄곧 들었어요. 그렇지만 서둘지는 마세요.”
거기에서 우리의 은밀한 얘기는 멈췄다. 도도심이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충분했다. 내 직관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스스로 알아차리고 따라다닌, 내 스스로 최면을 걸고 무시하려 했으나 은근히 기다리고 기다리던 인연, 시절인연이 바로 도도심일 수 있었다. 내가 첫눈에 반하고 그녀도 내심 좋은 느낌이었다니 최고의 궁합이잖은가. 우리의 인연은 그래서 금방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그날의 만남 이후 도도심과는 새로운 문자 시스템, 카카오톡이 조심스레 오고갔다. 고정례에게서 들은 비밀은 안 들은 것처럼. 혹시라도 당황하지 않도록. 그러면서 내 본심을 넌지시 비쳤으나 그녀의 대답은 고정례의 말과는 다르게 지극히 예의를 갖춘 독자이고 조심스럽기 한량없는 유부녀의 반응일 뿐이었다. 그런데다가 커피라도 한 잔 하자거나 음악회나 그림전시회 같은 곳에 가자하면 번번이 당황하여(아무리 문자지만 허둥대는 모습이 빤히 보였다) 지방에 가있다거나 없는 남편(내가 알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핑계를 어설프게 대곤 했다. 화제가 된 영화 <begin again>이 던지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자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것만 같아 같이 보자는 말에도 그녀는 침묵했다. 기대에 들떴던 내가 그런 반응에 물론 김이 새긴 했지만 고정례의 서둘지는 마세요라는 말을 상기하며 장기전에 돌입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를 별로 하지 않던 내가 본격적으로 소식을 올리기 시작한 게 이때였다. 불특정다수가 대상이고 그녀가 내 스토리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지만 슬그머니 들어와 본다는 걸 알고 다분히 그녀를 겨냥한 나의 메시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 공개적인 메시지에도 도도심은 반응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는 말뿐이었다. 변화를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난 초조하지 않았다. 나도 한편으로는 이대로가 좋았다. 저 문 안에 있다는 것만도, 비록 문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내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그 얼마나 다행인가. 그 문은 창호지로 바른 문이었다.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다. 겁먹지 않도록 그녀도 모르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 연약한 잠자리 날개가 바위에 부딪쳐 그 바위가 부서져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날리기까지 그 인연이 어디 쉬운 인연인가 말이다.
우리의 관계는 일 년여가 다가오고 있건만 여전히 평행선이었다. 만나지도 않고 ‘지금 이대로’ 상태로 문자만이 오고갔다. 그동안에 나는 도도심에게 내 속마음을 다 보여주었으나 그녀는 보여줄 듯하다가도 끝내 속내를 내비치질 않았다. 내 카카오스토리에 이야기는 쌓여갔으나 그녀의 카카오스토리엔 배경 화면만 어쩌다 바뀔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아주 가까이, 문밖에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얘기 끝에 얼굴 잃어버리겠다는 말을 하면서 사진 좀 카카오톡으로 보내거나 카카오스토리에 올릴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잘 나온 사진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그런데 그날 밤 새벽 두 시경, 청탁받은 원고 마감일을 잘못 안 덕분에 밤을 새우고 있을 때, 카카오스토리에 새로운 소식이 떴다는 알림을 보고 무심코 화면을 움직였더니 놀랍게도 그녀였다. 내 주문에 대한 답이 분명한, 나와 처음 만난 날 추억의 6070 금산거리에서 고정례와 교복을 빌려 입고 찍은 사진을 그 시간에 올린 것이다. 그 새벽시간은 사진을 올릴까말까 무척이나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는 걸 의미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검정색의 여고생 교복. 목을 감싸는 넓고 하얀 컬러가 돋보이는, 그리고 단발머리. 그 순간을 내가 잠을 자느라 포착하지 못했다면, 그녀의 성격 상 ‘나만 보기’로 해놓거나 바로 삭제해버릴 것이기에 올린 지도 모르고 넘어갔을 게 빤했다. 나를 향한 그녀의 심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바로 고맙다는 댓글을 달았더니 깜짝 놀라는 모습이 안 보고도 그려졌다. 안 주무셨어요? 부끄러워요. 올리긴 올리지만 그 시간에 내가 볼 거라곤 기대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저장을 하고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머릿속에서 수없이 되살려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한참동안 키웠다가 줄였다가를 반복하여 쳐다보는데, 이상했다. 저 기억 깊은 곳으로부터 나를 일깨우듯이 울려오는 북소리 같은, 설렘의 극치인 전율감이 내 전신을 휘감고 있었으니. 분명히 내가 처음 만난 그녀는 문학 기행에서였다. 그런데 그 너머,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옛날, 세월의 무게에 지워져 가던 한 여학생의 아련한 모습이 그 사진에 겹쳐 보이고 있었으니.
전주에서 다니던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가 이사를 해 등굣길이 달라졌다. 하숙집을 나와 골목을 지나 철길 옆을 돌아 모래내 길을 거쳐 학교로 가는, 4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거리에서 아침마다 보게 되는 여학생이 있었다. 철길 옆을 돌아서면 꼭 기다렸다는 듯이 저만치서 나타나는 여고 1학년생. 교복을 입고 단발머리에 책이 가득 든 가방이 무거운지 꼭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모습으로 다가오는 여학생. 얼굴이 하얗고 붉은 입술에 눈은 초롱하고 볼이 상큼하게 부풀어 막 피어난 백합처럼 화사하여 주변까지 환하게 밝혀 나를 설레게 하던, 왠지 모르게 이제 막 꺼낸 도화지처럼 깨끗한 느낌만 들었던. 그 순간 얼굴을 꼿꼿하게 세워 의젓하게 걸으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걸음걸이가 이상하게 꼬이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먼 곳을 응시하며 걸어가던. 처음에는 예쁜 여학생을 보게 되었다는 가벼운 기분이었지만, 몇 번의 조우 만에 학교 가까운 곳으로 하숙을 옮기려던 계획까지 없던 일로 만들고, 가면 갈수록 그녀의 존재가 내 가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으니. 행여 시간이 엇갈려 만나지 못하는 날이면 내 걸음은 그때부터 힘이 없어지고 마음이 심란해져 공부마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하고 서로 얼굴만 스치는 사이인데도 내 상사의 깊이는 대책 없이 깊어져 책에서도 그녀의 얼굴, 수업시간에도 그녀의 모습만이 어른거려 도저히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그대로 가다간 대학에 붙을 가능성이 난망해지고 말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결국 여름방학을 앞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하숙을 학교 근처로 옮기기로 결정을 하고 편지를 써 내 심중을 전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은 다 기억할 수 없지만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을 인용하며 ‘너를 좋아하게 되었어. 요즘은 온통 너의 생각뿐. 이러다가 대학에 가지 못할 게 빤하다. 그래서 하숙을 옮긴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너도 대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다시 만나자. 내 말에 동의한다면 다가공원 가람시비 시름의 3연에 나오는 ‘볕’이라는 단어에 동그라미를 그려 줘. 이번 일요일에 가서 볼게. 나의 시름을 볕으로 녹여주길 바라며.’라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만의 일방적인 결정이고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 편지를 주었을 때, 그녀의 놀란 표정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라니. 편지의 내용처럼 일요일이 되어 다가공원엘 올랐고 가람시비를 보았다. 그러나 기대했던 동그라미는 없었다. ‘쌀쌀한 되바람이 이따금 불어온다/ 실낱만치도 볕은 아니 비쳐든다/ 찬 구들 외로이 앉아 못내 초조하노라(이병기의 시조 시름 3연)’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그 시름에 찬 화자처럼 그녀는 내게 볕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칠월의 태양을 받으며 짙은 녹음에 둘러싸여 설렘으로 다가오던 공원이 암담하게만 느껴졌었다.
그녀는 볕을,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거부당한 것이다. 거부한 그녀에게 왜 그러느냐고 따질 배짱까진 없었다. 거부한 그녀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만날 만큼 얼굴이 두껍지도 못했다. 좋아했던 만큼의 오기로 잊기로 했다. 잊는다고 잊어지는 건 아니지만 악착같이 책을 대신 붙들었고 다행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리곤 까맣게 잊었다. 아니 잊었다기보다 의식적으로 무시했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이다. 제까짓 것이!
과연 그녀일까? 아니나 다를까, 도도심은 스토리에 올려놨던 사진을 내가 봤으니 더 이상 유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어느새 삭제해버렸다. 올려놓으란다고 올린 자신이 쑥스러웠으리라. 그래도 내 전화기에는 고스란히 남았다. 만약에 그 옛날의 여고생이 도도심이라면 우리의 이 질긴 인연을 뭐라 설명할 것인가. 그 옛날에는 아직 시절이 되지 않았기에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인가. 아내를 잃고 남편을 잃고 서로가 홀로 되어 세상의 달고 쓰고 맵고 짠 맛을 다 본 다음에야 이루어지도록 예정돼 있었는가.
나는 도도심의 고향도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서울 강남의 어디쯤이란 것만 안다. 여고생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끝났다. 따라서 그 여고생이 도도심이라는 걸 확신하진 못한다. 그러나 내가 그녀를 시절인연이라 확신한 것처럼 사진을 보면 볼수록 여고생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어른거렸다. 그렇다고 그 옛날을 들먹이며 그 여고생이 아니냐고 다짜고짜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확신했다. 도도심이 그 여학생이 분명하다고. 아니 그 여학생이어야만 했다. 잠자리날개가 바위에 부딪쳐 그 바위가 가루가 되는 시절인연의 그 질긴 우연성 때문이었다.
정말 그녀일까. 넌지시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날렸다. 김춘수의 시와 함께 가람의 시조 시름의 3연을. 그걸 본 그녀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읽었음이 분명한데도 답장이 없었다. 근래엔 답이 즉각적으로 오곤 했기에 나는 초조했다. 그녀일까, 아닐까. 하루, 이틀, 사흘. 춥고 눈이 왔다. 아니라면, 그녀라면… 그동안 오만잡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 옛날, 일요일이 되기 전에 다가공원으로 달려가고 싶었을 때만큼이나. 나흘 후, 마침내 답장이 왔다.
“놀랍습니다. 저는 당시에 대학을 갈 형편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몇 번이나 공원엘 갔다가 끝내 동그라미를 그리지 못하고 돌아오곤 했어요.”
그리고 전송돼 온 사진, 다가공원에서 찍은 눈 덮인 가람시비, ‘볕’에는 동그라미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나는 감격하고 또 감격했다. 그 순간에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서정주의 시를 절감하며 그의 천재에 탄복했다. 우리 인연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인연이 시절인연이 되고 우연이 필연이 되기에는 반드시 행동이 뒤따라야 하리라. 두 가닥의 전선이 비로소 옷을 벗고 알몸으로 만나야 불이 켜지듯이. 나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고 너는 저쪽에서 이쪽으로 오는데 바로 그때, 행동하는 인연, 그게 바로 시절인연이 아닐까.(77매)
*박희주
전북 임실 출신으로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데뷔. 소설집으로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이 시대의 봉이>와 장편소설 <사랑의 파르티잔> <안낭아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