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처럼 낮이 긴 날 부산 남항 야경 달빛 기행은 오후 8시부터가 제격이다. 서구 암남동 송도교차로에서 천마산로를 따라 아미동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환상의 코스이다. 부산관광고등학교와 송도성당에 이르는 천마로는 그 옛날 중구에서 송도까지 가려면 걸어야 하는 오솔길이었다. 1920년대에는 송도와 시내를 잇는 부산 최초의 신작로가 닦인다. 길이 넓어졌다. 승용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길이었다.
송도교차로에서 천마산로까지
1920년대 부산 최초의 신작로
오른편엔 남항 왼편엔 산마루
방파제 등대와 밤바다 야경
영도와 출항하는 배까지 한눈에
검푸른 바다에 하얀 물보라 더해져
속칭 송도아랫길은 절벽으로 막혀 있었기에 충무동에서 완월동 앞으로, 남부민초등학교 앞 길을 따라 송도로 갔다. 송도성당 남쪽 옆길(해양로)로 진입하여 성원맨션 옥상에 서면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송도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1925년 여름철이면 지금의 자갈치에서 송도까지 통통선 나룻배가 한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었다. 1964년에는 송도 송림산 앞 남쪽 바다의 거북섬에 케이블카가 놓이고, 이듬해엔 거북섬과 송림공원을 잇는 길이 150m의 일명 출렁다리, 흔들다리로 불렸던 줄다리도 놓였다.
성원맨션에서 해양로를 한 바퀴 돌면 천마로50번길 60번지 앞 계단길 아래에서 고 이태석 신부 생가를 만난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인 수단 남부 톤즈로 선교길 떠나 톤즈 아이들에게 미래를 보여 주고 48세의 젊은 나이에 영면한 가난한 신부의 집이다.
옛 송도상고인 부산관광고등학교는 부산농악을 부산에서 가장 먼저 전수한 학교이다. 그래서 졸업생들 중에는 농악을 전공한 이가 많다. 학교 앞에서 좌회전하여 은성교회를 지나 우리반점에서 우회전하면 '천마산로'에 접어든다. 오른편으로 부산 남항이 내려다보이고 왼편은 천마산 마루이다. 천마산로 56번지를 지나면 남항 풍경이 열린다. 남부민동 방파제의 하얀 등대와 건너편 남항동 방파제의 붉은 등대가 손에 잡힐 듯하다. 그리고 공동어시장 지붕이 넓게 펼쳐진다. 남항 밤바다가 주위 불빛들로 일렁이며 눈부시다.
초장중학교를 지나면 서구게스트하우스이다. 넓은 대지에 테라스를 두고 4개 동이 하나의 건물군으로 짜였다. 두 동은 펜션형이고, 두 동은 도미토리형(2층 침대형)이다. 모두 태양열 냉·온방이 설비되어 있다.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 경치가 일품이다. 왼쪽에서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영도다리, 새다리, 그리고 멀리 북항대교가 보인다. 마주 보이는 영도 봉래산 아래 복천사의 불빛들이 묘하게 유혹하고, 오른쪽으로 길이 1천925m의 왕복 6차로 남항대교가 시차를 두고 빨주노초파남보 멋진 조명을 연출한다.
달이 중천에 떠오를수록 부산항의 밤 경치는 변한다. 가까운 산 아래의 형광 불빛과 멀리 산 아랫동네 불빛이 달라져 보인다. 가끔 남항을 가로질러 외항으로 나가는 배들이 만들어내는 하얀 물보라가 잔잔한 검푸른 바다를 가지고 논다.
천마산로 370 한마음행복센터 2층 옥상에서 내다보는 부산항 풍경도 볼거리다. 최민식갤러리를 지나면 천마산로 끝 지점 아미골공영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아미로를 올라 산상교회 앞 휘어진 지점에 서면, 최근 길을 넓히면서 발견된 일본인 옛 무덤 위에 지은 집이 뜯다가 만 모습으로 남아 있다. 축대를 견칫돌로 쌓은 위에 기단을 가설하여 그 위에 잘 다듬은 장대석을 놓고 긴 머릿돌을 얹어 맵시 있게 돌난간 동자를 세우고 그 안에 유골을 안장했다. 이 무덤 위에 짜맞춘 듯 집을 지어 영혼과 함께 살아온 역사의 현장에서 부산항 야경 답사 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