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들은 삶이 고달파도 희망을 안고 살았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대며 대학을 다녔지만, 졸업과 함께 직장을 잡을 수 있었다. 달동네에서 단칸 셋방살이로 신혼을 시작했지만, 한푼 두푼 모아 집을 늘려갈 수 있었다. 서울에서 집을 장만하기 어려운 이들은 인천·경기 등 수도권 위성도시에서 시작해 서울로 진입하는 꿈을 이뤄냈다.
그 바람에 서울 인구는 계속 불어났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1014만7107명으로 인구 1000만 시대를 열었다.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3저低 호황 직후인데다 올림픽 특수가 일어 경제성장률이 두자릿수를 기록했다. 소득이 늘며 중산층이 두꺼워졌고, 마이카의 꿈을 이뤘다. 단독주택보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가구가 늘면서 아파트 공급 부족 현상이 심해지고, 서울 강남 아파트가 3.3㎡당(약 1평) 1000만원을 넘어섰다. 노태우 정부는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고, 일산·분당 신도시도 이때 건설됐다.
지난해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다. 그새 서울로의 인구 유입은 지속돼 1992년 1093만5230명으로 곧 1100만명에 다가서는 듯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값이 오르면서 서울 진입이 어려워지고 일산·분당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자 서울 인구는 1992년에 정점을 찍고 이듬해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서울로 들어오는 전입인구보다 빠져나가는 전출인구가 많아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