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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제19구간(범고개~산성고개)
☞ 산행일자 : 2012. 02. 11.(맑음)
☞ 산행경로 : 다람쥐캠프~범고개~운봉산~남락고개~지경고개~계명봉~갑오봉~장군봉~금정산~의상봉~산성고개
☞ 산행거리 : 도상거리 약 22.8km(접속구간 0.8Km포함)
☞ 산행시간 : 약 8시간 16분
☞ 주요구간 진행시간
- 08:26 다람쥐캠프 산행시작
- 08:43 범고개
- 09:15 운봉산
- 09:58 299.4봉
- 10:48 남락고개
- 11:17 지경고개
- 11:45~12:16 점심식사
- 12:40 계명봉
- 13:28 갑오봉
- 13:39 장군봉
- 14:44 고당봉
- 15:11 북문
- 15:28 원효봉
- 15:43 의상봉
- 16:34 동문
- 16:42 산성고개
1주일만에 다시 찾은 다람쥐캠프.. 적막감이 감도는 캠프앞에 서니 서늘한 냉기가 얼굴을 스친다.
바람이 별로 불지 않는데도 얼굴을 스치는 찬기운은 아직도 겨울이 한창임을 느끼게 하는데..
캠프장 안으로 들어서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캠프장에 쓰레기를 태우는 냄새가 코 끝을 스치고
일단의 인부들이 이미 무슨 작업을 마친 듯 차량을 타고 철수한다..
무슨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하더니 아마도 그에 따른 작업인가보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 하산때 보았던 시설물 한 개가 그새 철거되어 보이지를 않는다.
다람쥐캠프..
범고개..(08:43)
가파른 등로를 20분 가까이 치고올라 지난 구간 하산지점인 범고개에 도착하고
이어지는 방화선을 따라 본격적인 정맥길을 이어간다.
한고비 올라서니 다시 명곡마을 갈림길이 나오고.. 다시 올라서니 헬기장이다.
돌아보니 지난 구간 지나온 천성산 제1봉이 아직도 시야에 잡힌다.
다시 한고비 오르고.. 그렇게 운봉산까지 차츰차츰 고도를 높여가며 폐헬기장을 지나고 다시 한고비 올라서니 운봉산이다...
명곡마을 1.8km 갈림길..
헬기장..(08:52)
돌아보니 천성산이 아직도 보이고...
폐헬기장..(09:11)
운봉산..(09:15)
다람쥐캠프에서 50분가량 소요하고 운봉산에 오르니 가운데 삼각점이 있다.
정상석이 있다고 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정상석 비스므리 한 것도 없다.. 주변에 표지판도 없고..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분명히 운봉산인것 같은데 아무런 표지도 없다니??
운봉산이 아닌가... 하며 주변을 돌아보니 가운데있는 낡은 경계석 뒷쪽에 누군가가 운봉산이란 글씨를 써놓았다..
이게 정상석??? 피식 웃음이 난다.. 운봉산에서는 좌측으로도 내려가는 등로가 있으나 정맥길은 우측 2시방향이다..
운봉산을 지나면서부터 방화선은 사라지고 본래의 산길로 되돌아온다.
한동안 완만한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운봉산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세멘트포장도로인 운봉재에 도착하고...
도로를 건너 다시 정맥길을 이어간다.
한동안 완만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능선에 올라서니 등로는 좌우로 갈라지는데
곧바로 직진하는 길에 정맥표지기가 달려있어 표지기를 따라 길을 들어서니 계곡으로 내려서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측을 돌아보니 낮으막한 봉우리가 보이는데 느낌으론 저 봉우리능선을 따라 진행하는 게 올바른 정맥길인 것 같아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냥 진행하다보니 잠시후 우측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소로와 다시 만난다..
아무래도 좀 전의 좌우로 갈라지는 능선길에서 직진하는 길에 있는 시그널을 무시하고
우측 도로를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서는 길이 올바른 정맥길인것 같다.
잠시 후 창기리 갈림길을 지나면서 정맥길은 우측으로 산허리를 돌아 74번 송전탑을 지나고
완만한 능선길을 무턱대고 지나다보니 준.희님의 299.4봉 표지기가 나무에 붙어있다.
운봉재..(09:25)
직진길에 시그널이 달려있지만 정맥길은 아무래도 우측으로 돌아 봉우리를 넘어서는 길이 맞는 것 같다..
창기리갈림길..(09:52)
우측으로 사면을 따라 진행한다..
74번 송전탑...
299.4봉..(09:58)
봉우리의 느낌이 전혀 들지않는 능선상의 한 지점이라 자칫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299.4봉을 지나 잠시 가다가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삼각점이 있다고 했던 생각이 나 다시 되돌아가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삼각점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등로는 넓은 임도로 바뀌고 임도를 따라 내려서니 아스팔트 포장도로인 군지고개에 도착한다.
군지고개..(10:11)
도로 우측으로 유락농원 간판이 보이고 정맥길은 곧바로 도로를 건너야 할 것 같은데
도로변에 높게 설치된 휀스로 인해 좌측으로 조금 내려간 지점으로 건넌다..
군지고개에서 10여분 후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가로질러 송전탑방향으로 오른다.
이어 송전탑 아래를 지나 여기저기 벌목된 잡목을 헤치고 나가면 다시 포장도로를 만나고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가 다시 우측 산길로 들어선다.
어느듯 시간은 낮으로 접어들고 겨울같지않은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내려서니
우측으로 멀리 장군봉의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새벽에 아침을 먹은지라 슬슬 배도 고프고 해서 앞서가던 똠방님을 불러세워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휴식 후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내려서니 다시 포장된 마을길이 나오고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남락고개에 도착한다..
송전탑 방향으로..
다시 임도를 만나 잠시 내려가다가 우측 산길로..
남락고개..(10:48)
남락고개에서는 중앙분리대를 넘어 맞은 편 사일로우가 보이는 마루축산 농가 앞으로 진행하고
농가옆으로 오르면서 앞에 보이는 송전탑으로 진행한다.. 송전탑을 지나 5분쯤 올라서면 능선길.. 우측으로 진행한다..
이 능선길은 경상남도와 부산시의 경계도로라 부산시계를 등반하는 산객들의 시그널이 좌우로 붙어있다.
능선길에서 한동안 고도를 높여가다보면 산불감시초소의 잔해인 철구조물이 보이고 이어 조그만 암봉인 284봉을 지난다..
284봉은 별다른 조망이 없어 그냥 지나고 안부에 잠시 내렸다가 올라서면 멋진 조망터에 도착한다..
경부고속도로가 눈아래로 시원스레 지나고 건너편으로 가야할 계명봉과 우측으로 장군봉의 능선이 늘어서 있다.
계명봉과 장군봉 사이로 조그맣게 고당봉도 보이고..
조망터에서 내려서니 키큰 산죽사이를 한동안 지나고 부산CC옆을 지나 고속도로를 건너는 녹동육교앞에 내려선다.
남락고개를 건너면서 바라본 장군봉..
마루축산 우측도로따라..
마루축산..
부산시와 경상남도 경계.. 우측으로 진행한다..
284봉..(11:03)
전망대에서..
계명봉과 우측의 장군봉능선.. 가운데 멀리 고당봉이 보인다.
경부고속도로..
고속도로를 건너는 녹동육교가 보이고..
계명봉과 장군봉..
부산 컨트리클럽 입구..
녹동육교..(11:16)
녹동육교를 건너면 이내 1077번 지방도가 지나는 지경고개에 도착하고 횡단보도를 이용해 도로를 건너
곧바로 동네의 좁은 사이길로 들어서니 온동네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댄다..
잠시 동네 사이길을 지나다가 정맥길이 아닌것 같아 다시 되돌아 나오고 지경고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부산시와 경남 양산의 경계지점인 고개마루에 올라서니 좌측으로 표지기가 달려있고
표지기를 따라 진행하니 다시 자두농원으로 올라가는 세멘트포장도로를 만난다..
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가니 삼거리로 갈라지는 곳에서 농가의 개들이 밥값하느라 무지하게 짖어댄다..
짜식들이 쪽수만 믿고 얼마나 짖어대는지... 확.. 패 버릴까 하다가 바빠서 참는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들어서고 이내 계명봉을 향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차츰차츰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오르는데 내려오던 일행들을 만나고 비탈진 등로지만 한 곳에 자리잡고 점심상을 편다...
식사중에 간간이 계명봉을 오르는 산객들이 지나가고...
식사 후 다시 가파른 오름길을 이어가는데 금방 식사한 후라 상당히 걱정을 했더니만
의외로 생각보다는 숨이 덜 가쁘게 오른다..
군데군데 암봉구간을 지나고 가파르게 오르는 가운데에도 돌아보니 지나온 마루금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고..
그렇게 오늘 구간중 가장 힘들게 계명봉에 올라선다..
지경고개..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경남 양산과 부산의 경계인 고개마루에서 좌측으로 들어선다.
숭정재 을묘년 동짓달에 양산과 동래에서 같이 세웠다는 비석인데
뒷면의 글씨가 많이 훼손되어 누구의 비석인지는 알아 볼 수가 없다.
계명봉 들머리...
계명봉 오름길에서 잠시 돌아보니 지나온 마루금과 멀리 천성산이 보이고..
계명봉..(12:40~12:44)
금정산(金井山)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계명암과 봉수대가 있다.
닭이 운다는 뜻으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한밤에 닭울음을 듣고 붙인 이름이라고 전한다.
이에 이곳에 세운 절을 계명암이라 하고 산 이름을 계명봉이라 불렀다.
한편으로는 새벽에 기도하는 납자(衲子)들이 닭울음을 듣고 새벽을 알았다고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쌓다만 듯한 돌축대위에 정상석이 있는 계명봉에선 정작 조망을 할 수가 없고
조금 내려선 곳 전망대에서 범어사와 고당봉이 한눈에 조망된다..
범어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청련암, 내원암도 보이는데 의상대사가 한 밤중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이름을 붙였다는 계명봉엔 닭울음은 간 곳없고 까마귀 소리만 들린다..
계명봉에서는 우측 고당봉 방향으로 내려서고..
가파르게 내려서던 등로는 계명고개을 지나 범어사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나고
잠시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다시 우측 산길로 오른다.
초반 다소 완만하던 등로는 고도를 높여갈 수록 점점 더 가팔라지며 정상부에 억새가 넓게 펼쳐지는 갑오봉에 오른다..
게명봉에서 내려다 본 범어사..
고당봉을 당겨보고..
고당봉(우측)에서 원효봉, 의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계명고개..(12:55)
임도에서 우측 산길로..
갑오봉 오름길에 돌아 본 계명봉..
갑오봉..(13:28~13:33)
갑오봉은 장군봉의 갈림길..
정맥길은 장군봉을 거치지 않고 좌측 고당봉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0.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장군봉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갑오봉 이정표에서 조금 위 쪽에 있는 갑오봉 정상석을 확인하고 장군봉을 향해 넓게 펼쳐진 억새들녘을 지난다..
마치 신불평원을 연상케하는 억새들녘을 지나 암봉으로 이루어진 장군봉에 오르고..
갑오봉에서 본 고당봉...
장군봉 방면..
장군봉..(13:39~13:43)
정상에선 사방팔방으로 거칠게 없다.. 낙동강 너머 낙남정맥의 마루금인 신어산도 보이고..
가야할 고당봉과 지나온 마루금도 돌아보며 잠시 머물다가 다시 고당봉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장군봉을 내려서니 갑오봉으로 되돌아 가는 길과 우측으로 고당봉으로 곧바로 가는 길로 갈리는데...
잠시 정맥길에서 벗어나지만 우측길로 내려선다..
한동안 내려서던 등로는 약수터 갈림길에서 다시 정맥길로 복귀하고 일반 등산객들과 함께 고당봉을 향해 오른다..
이제 오늘 구간중 가장 힘든 구간은 거의 끝난지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금정산성의 환상적인 조망을 기대하며 진행한다
고당봉에 가까워올 수록 군데군데 바위구간이 자주 나타나고.. 전나무숲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다보니
어라.. 등로에 눈이 얼어있다.. 부산에도 눈이 있다니... 뜻밖의 눈길은 아쉽게도 얼마 가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이어 가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우측 가산방면으로 조금 내려서면 마애석불이 있는 곳이다..
마애석불은 예전에도 가 본 곳이지만 주변의 경관도 볼만했던 기억이 나서 다시 내려가본다.
장군봉에서 본 고당봉..
낙동강과 물금방면..
천성산과 지나온 마루금..
장군봉에서 본 갑오봉..
장군봉 옹달샘 약수터.. (13:51)
옹달샘 약수터에서 목을 추기는 길손이시여!
사랑하나 풀어 던진 약수물에는 바람으로 일렁이는
그대 넋두리가 한가닥 그리움으로 솟아나고...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여유로눈 벗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우리는 한 모금의 약수물에서 우리를 구원함이 산임을 인식합시다.
-장군봉 옹달샘 약수터를 사랑하는 사람들-
상당히 귀에 익은 싯귀라 생각했더니 대덕산의 얼음골 약수터에도 같은 문구가 있었다.
이상한 이정표..
분명히 고당봉을 향해 가고 있는데 고당봉은 지나온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금정산의 정상은 고당봉으로 알고 있는데 이정표의 정상은 또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아마도 장군봉을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이 되지만..
마애불갈림길..(14:17)
마애불로 내려서는 길에서 본 낙동강..
양산 가산리 마애여래입상
경남 유형문화재 제49호인 이 불상은 범어사의 북쪽 금정산의 화강암 절벽위에 있다.
마애불은 높이 12m, 폭 2.5m나 되는 거대한 여래입상이다.
마애불의 주변에 축대가 남아있고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 근처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암벽에 새겨진 불상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으로 심하게 마멸된 데다 바위에 균열이 많아 원래의 모습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각 부분별로 약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머리에는 관을 쓴 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눈초리를 치켜 올린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눈과 큰 코, 꽉 다문 입, 어깨까지 내려온 귀 등은
다정하고 자비로운 부처의 모습이라기보다 오히려 위엄을 갖춘 수호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손 모양이나 옷자락의 형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남아있는 옷자락의 주름 모양은 불상에서 볼 수 있는 일정한 양식을 따르지 않고,
이리저리 여러방향으로 흩어져 있으며, 두 개의 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전체적인 조형 수법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에서 카메라와 휴대폰의 밧데리도 교체하고
여기저기 조망하다보니 제법 시간을 소비하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온다..
이 구간부터는 예전에 그대로 산행했던 곳이라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후 고당봉이 한 눈에 들어오는 범어사 갈림길에 도착하고
고당봉 아래에서는 우측으로 우회하는 길을 버리고 곧바로 암봉으로 치고 오른다..
예전엔 조금 어렵게 올랐던 것 같은데 오늘은 별로 어려움 없이 이내 고당봉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도착한다..
나무계단을 지나 빙글빙글 돌아가는 계단을 오르니 드디어 고당봉에 도착하고..
여기저기 많은 산객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마애불 부근의 암봉..
고당봉...
고당봉으로 오르는 계단..
좌측은 금샘으로 우회하는길.. 곧장 오른다..
용상바위라고 하는데...
장군봉...
계명봉..
물금 방면..
낙동강...
금정산 고당봉..(14:44~14:51)
고당봉(801.5m)은 금정산의 주봉으로 부산전경과 부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부분이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 이 봉우리는
하늘에서 고모할머니가 내려와 산신이 되었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는 바,
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신앙에서 기초하였다고 볼 수 있으며, 지금도 정상 부근에는 고모당이라는 기도처가 있다.
금정산 10여봉 중 최고봉이며 가슴께에 용머리 형상의 용두암이 있고, 남쪽 산허리 쯤에는 고당샘이 있다.
동쪽 능선 허리에는 범천의 금어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살았다는 금샘이 있어서
금정산과 범어사라는 이름의 연원이 되었다.
고당봉은 선찰대본산인 범어사에서 산길을 따라 2.5km를 걸어 올라가면 1시간 30분이 걸리며
금정산성 북문에서 0.9km의 거리에 있어 바로 올려다 보인다.
금정산의 최고봉이면서 금샘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고당봉의 이름은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금정구에서는 1994년 8월 '금정산표석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이름 찾기 고증작업이 추진되었다.여기서 '고당봉(姑堂峰)' 과 고당봉(高幢峰)'의 두 가지 의견이 나왔으나
오랜 토론 끝에 "우리나라의 모든 산에는 산신이 있고, 고려 때까지 내려오는 모든 산신은 여신이었다.
금정산의 고당봉도 할미신이므로 할미 고(姑), 집 당(堂)의 고당봉이 옳다"는 우리나라 고유의 샤머니즘의 민속신앙에서
고당봉과 연계하는 학자 및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고당봉(姑堂峰)으로 확정하고 표석비를 세웠다.
돌우물 금빛고기 옛전설따라
금정산 산머리로 올라왔더니
눈앞이 아득하다 태평양물결
큰포부 가슴속에 꿈틀거린다.
- 노산 이은상 지음 (정상석 뒷쪽에 있다.)
정상 뒤로 연결되는 암봉에 올라 아래로 보이는 낙동강과 주변 조망에 한동안 머물고 싶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았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고당봉을 내려선다.... 이제 힘든 구간은 모두 끝났다...
이제부터 펼쳐질 금정산성의 아름다운 모습과 원효봉, 의상봉, 무명바위, 부채바위, 나비바위 등등..
멋진 암봉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맘이 설렌다..
고당봉 나무계단을 내려서며 고모당과 금샘갈림길을 지나고..
잠시 금샘에 들릴까 하다가 예전에 들린 적이 있고 그 때 금샘을 보고 많이 실망한 터라 그냥 지나친다..
이어 북문앞 세심정에서 물 한잔 마시고 곧이어 북문에 도착한다..
세심정에 있던 예전의 금정산장은 사라지고 대신 금정산탐방지원센터 건물이 들어섰다.
할아버지와 함께 온 꼬마들...
인사성도 밝고(할아버지가 시켰지만) 너무 귀여운 꼬마들이었다...
낙동강의 끝자락..
낙동강과 건너편 신어산..
정상석 뒷쪽 암봉에 있는 태극기..
고당봉의 멧새..(암컷 같은데 맞겠지..)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는데 날아가지도 않고 오히려 내 앞으로 점점 더 기어온다...
요즈음은 새들도 간덩이가 커져서리...
정상에서 본 가야할 마루금..
아래 붉은 지붕이 고모당.. 그 밑에 고당봉 전망대, 가운데 움푹한 곳이 북문.. 계속해서 성벽따라 원효봉, 의상봉이 이어진다..
고당봉 동북방면 암릉..
고당봉 정상부..
고모당(姑母堂)
금정산 고당봉에 있는 고모당 내부에는 고모영신(고모할미)과 산왕대신(금정산 호랑이)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고모영신은 그 품에 생산과 풍요를 안겨주는'영원한 어미'로서의 여성 산신이다.
일년 중 가장 양기가 왕성한 5월 단오날 범어사에서 고당재를 지내고 있다.
금정산 고당봉에는 평생을 불심으로 살다간 밀양 박씨 화주보살의 이야기가 서려있다.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에 밀양 사람인 박씨가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
임진왜란으로 잿더미가 된 범어사에서 화주보살이 되어 절의 살림을 꾸려나가는데 신명을 바쳤다.
어느덧 나이가 많아 이 보살은 큰스님에게 "제가 죽으면 화장을 하고,
저 높은 고당봉에 고모영신을 모시는 산신각을 지어 고당재를 지내주면
높은 곳에서 수호신이 되어 범어사를 돕겠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큰스님은 그 유언대로 고당봉에 산신각을 지어 해마다 단오날에 제사를 지냈더니
과연 범어사가 번창한 사찰이 되었다고 한다
금샘 부근의 암봉과 뒷쪽 계명봉..
고당봉을 내려서면서..
가야할 마루금...
금샘에는 들리지 않고 예전에 찍었던 금샘사진...
금샘과 범어사 설화
금샘 설화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이 예부터 신령스러운 영산임을 알려주는 것과 함께
'금정산'이란 산 이름과 '범어사'의 절 이름, 그리고 이 사찰의 창건 내력을 알려주는 것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 설화는 '동국여지승람'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금정산 산정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척이며 깊이가 7촌쯤 된다.
황금색 물이 항상 가득 차 있고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빛나는 우물 곧 금정(金井)이란 산 이름과 범천의 고기 곧 '범어(梵魚)라는 절 이름을 지었다.
이와 같은 내용이 "범어사 창건사적"과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데 신라 의상대사와 관련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도 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동해에 왜인들이 10만 병선을 이끌고 와서 신라를 침략하려고 했다.
대왕이 근심에 싸여 있는데 꿈속에 신인(神人)이 나나타
의상스님과 함께 금정산 '금샘'에 가서 칠일동안 밤낮으로 기도하면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대왕이 의상스님과 함께 친히 금샘을 찾아가 기도를 하니
땅이 크게 진동하며 부처님과 천왕과 신중, 그리고 문수동자 등이 현신하여 동해로 나가 왜적들을 격파했다.
대왕이 크게 기뻐하여 의상스님을 예공대사에 봉하고, 금샘 아래 호국사찰을 세웠으니 곧 '범어사'이다.
세심정..
금정산탐방지원센터...
예전에 금정산장이 있던 곳이다..
금정산성 북문..(15:11)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km,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오르는 자리에 있다.
금정산성의 4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이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육측 상부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익공계 팔작지붕 단층문루이며, 성문의 폭은 정면 250cm이고 측면은 350cm이다.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에는 "초봄(1808년)에 오한원 부사의 지휘로 기둥과 들보를 100여리 밖에서 옮겨오고,
벼랑 끝에서 험준한 바위를 깍아내어 메고 끌어당기는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여 들어서 만(萬)사람이 일제히 힘을 쓰니
149일 만에 북문의 초루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성문 광장 세심정 일대는 원효대사께서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라 "화엄벌"이라 하였으며
이 곳은 금정산성 방어를 위한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등의 스님을 훈련시켜 승병 양성을 한 승병 훈련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범어사 3월 만세운동 거사를 위해 기미독립 선언서와 독립운동 관계 서류를 가지고
경부선 물금역에 내려 금정산 고당봉을 넘어 청련암으로 온 통로도 북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서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장전동. 구서동, 북구 금곡동. 화명동. 만덕동 일원에 소재하고 있으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1703년(숙종 29)에 국방의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해상을 방어할 목적으로 금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약 17km, 높이는 1.5~3m이고, 면적은 약 8.2㎢에 이르는 국내 산성 가운데 가장 거대한 성이다.
처음에 산성을 쌓은 것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대에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신라시대부터 성이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그리고 1667년(현종 8년)에 통제사 이지형을 불러들여 왜구의 침략을 방어할 대책을 강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1703년 이전에 산성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산성을 축조하자는 논의는 여러차례 있었으나, 1701년(숙종 27)에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로 착공하여
이듬해에 성을 준공하였다. 그 후 1807년(순조 7) 동래부사 오한원이 동문을 준공하였고,
이듬해에는 서.남.북문의 문루를 완성하였다는 사실을 기록한 금정산성부설비가 장전동에 전해온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1974년까지 동.서.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 북문을 복원하였다. 산성의 수비는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중군과 승병장 등의 직책을 가진 중간간부와 군병 등의 상비군 및 인근 사찰의 승려가 지켰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의 3개 읍 소속의 군인과 사찰의 승려가 차출되어 지켰다.
금정산성은 바다로 침입하는 외적에 대비하기 용이한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요충에 위치하고 있어,
조선 후기 부산지방의 국방상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이다.
북문에서 돌아본 고당봉..
북문에서부터는 성벽을 따라 정맥길이 이어지고 있어 성벽을 따라 산성고개까지 진행한다.
미륵바위...
고당봉에서 남서쪽 능선에 있으며 아래에 미륵사가 보인다..
원효봉 가는 길...
새로이 나무데크로 정비가 잘되어 있다..
고당봉...
원효봉(15:28)
금정산 동쪽 가장 높은 봉우리로 먼서 어둠을 헤치고 동해에 떠오르는 햇빛을 받아 갓 피어난 매화처럼
화려한 자태의 빛깔로 수놓아 '으뜸의 새벽'원효봉(元曉峰, 687m)이라 불렀다.
금정산성 제4망루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 동해 망망대해를 한 눈에 바라보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봉우리다.
김유신장군이 원효봉에서 낭도들을 훈련시킬때 바위에서 부동자세로 오래 서 있어,
선 채로 소변을 보았는데 어느 낭도가 그 자리에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이 땅딸보 소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그 푸르름을 뽐내고 있어
사람들은 '김유신 솔바위'라고 불렀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원효봉에서 본 부산 시가지..
좌측 시가지 뒤로 회동저수지와 우측 멀리 광안리 해수욕장 방면..
원효봉에서 본 고당봉..
원효봉을 내려서면서 본 의상봉.. 좌측의 바위가 무명바위...
무명바위...
의상봉과 무명바위...
의상봉 오르면서 돌아 본 원효봉..
무명바위 상단부..
무명바위...
의상봉에서 본 원효봉과 고당봉.. 좌측 끝이 미륵바위..
의상봉에서 본 무명바위...
무명바위 상단부...
의상봉에서...
의상봉...
지나온 원효봉과 고당봉..
의상봉(義湘峰)
의상봉(620m)은 금정산성 제4망루가 있는 위쪽의 봉우리로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 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봉우리이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웅크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금정산 산신령 호랑이가 타나나
승천을 저지하기 위해 한참 격렬한 몸싸움을 하게 되었다.
마침내 무승부가 되어 두 봉우리로 변해 위쪽에는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이 되고 아래쪽에는 용을 닮은 용봉이 되었다.
이 두 봉우리를 합쳐 용호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이라 명명하여 오늘에도 부르고 있다.
의상봉과 우측 아래의 무명봉..
의상봉 아래 산불감시초소가 무척 눈에 거슬린다..
의상봉을 내려와 성벽을 따라 진행하면 거대한 부채바위가 보이고 이어지는 기암괴석에 잠시도 눈을 뗄수가 없다....
제4망루...(15:50)
의상봉과 무명바위..
동자바위...
동자바위...
부채바위 상단부..
다른 각도에서 본 부채바위..
부채바위...
거대한 암봉뒤에 제3망루가 숨겨져 있다...
좌측 제3망루의 암봉과 우측의 나비바위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억새가 바람에 흔들릴때에는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나비바위..
나비바위를 좀 더 가까이..
금정산성 제3망루..(16:08)
금정산성 제3망루는 동문 북쪽 약 1km지점에 암반이 솟아 오른 절벽위에 절묘하게 얹혀 있듯이 자리하고 있다.
이 망루는 금정산의 유명한 나비바위와 부채바위 주변의 천구만별(천구만별, 천마리의 거북과 만 마리의 자라)의 모습을 한
바위와 어울려 그 아름다운 자연경관의 찬탄을 자아낸다.
제3망루는 능선 동쪽으로 돌출되게 이어진 암반사이 경사면에 축대를 쌓고
정면 2칸과 측면 1칸의 맞배식(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벽이 삼각형으로 된 집) 망루이다.
망루의 서쪽 10여m전방 바위면에는 '번위돈'이라는 음각명이 새겨져 있어
돈대(성안 높직한 평지에 높게 축조한 포대)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제3망루 암봉에서 바라본 부채바위, 무명바위와 의상봉...
나비바위...
돌아본 나비바위...
금정산성 동문..(16:34)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나고
주민들이 가장 근접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부설비>의 기록에 의하면 "1807년(순조 7년) 늦가을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한달만에 동문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동문은 홍예식 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단층문루이며 문폭은 300cm, 홍예의 높이는 340cm이다.
동래부사 정현덕이 동문과 서문의 재건에 힘을 쓰고 있을 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동문과 서문을 보다 완벽하게 세우기 위해 이름난 석공을 수소문한 끝에
사제지간인 두 석공을 찾아 선생에게는 동문을, 제자에게는 서문을 짓게 하였다.
동문을 맡은 선생은 야욕과 욕심이 많아 웅대하게만 짓고자 하였으나
서문을 맡은 제자는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살려 스승보다 먼저 짓게 되었다 한다.
스승은 제자의 뛰어난 기술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그 당시 사람들은 그 스승을 미워하고 제자의 기술을 칭송하였다.
그러나 이들 사제는 동문과 서문공사가 끝난 뒤에는 힘을 합쳐 밀양 영남루 공사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의 동문과 서문은 물론 그 때의 모습은 아니지만
지금도 동문과 서문의 차이가 사제제간이었던 두 석공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한다.
서문은 금정산성 4대 성문 가운데 유일하게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술적인 감각이 가장 뛰어나다.
산성고개
예전엔 산성고개에서 성곽이 단절되었으나 금정산성 복원 정비계획에 의거
2011년 6월 1일 동문고개 성곽잇기 사업으로 산성고개 위로 성곽이 이어지고 있다...
산성고개..(16:42)
첫댓글 정맥탐사잘했습니다.사진으로가는것도힘드는데,한총욕봤다!!!
금정산 구간이 아주 멋진 곳이었지..
이제 낙동정맥도 거의 끝이 나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