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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宗과 敎宗
1.선종(禪宗)
■정의
참선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
■내용
조선 세종 때 모든 종파의 폐합에서 남은 두 종파 중의 하나이다. 1424년(세종 6) 예조의 지시에 따라 7종파를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의 두 종파로 폐합할 때, 조계종(曹溪宗)·천태종(天台宗)·총남종(摠南宗) 등 세 종파는 선종이란 이름으로 단일화되었다.
선종은 전국에 18개 사찰 및 4,250결(結)의 전답과 1,970명의 승려를 가지게 되었다. 사찰의 수는 교종과 같았으나 전답(교종 3,700결)과 승려의 수(교종 1,800명)는 교종보다 많은 편이었다.
선종은 흥천사(興天寺)를 도회소(都會所:總本寺)로 하여 모든 종무(宗務)를 집행하였다. 세종의 종단폐합 이후 성종 때에 척불정책이 심하였으나 양종(兩宗)과 승과(僧科)의 제도는 형식적이나마 존속되고 있었다. 연산군 때는 유학의 총본산인 성균관을 기악의 장소로 삼았는가 하면, 선종의 도회소인 흥천사와 교종의 도회소인 흥덕사(興德寺), 그리고 성안의 절들을 모두 공해(公廨)로 삼았고, 사사(寺社)의 토지와 노비를 관에서 몰수하였다.
선종은 광주(廣州)의 청계사(淸溪寺)를 도회소로 삼아 종단의 명맥을 가까스로 부지하게 되었다. 중종의 즉위와 함께 승과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선종과 교종도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550년(명종 5년) 12월 당시 섭정하던 문정대비(文定大妃)에 의하여 다시 선·교 양종이 부활되었고, 선종은 봉은사(奉恩寺)를 본사로 삼고 허응당(虛應堂)보우(普雨)가 판선종사도대선사봉은사주지(判禪宗事都大禪師奉恩寺住持)를 맡았다.
1565년 문정대비가 죽자 양종제도가 폐지되어 선종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국가의 권력에 의하여 선종이라는 이름이 박탈되어 종도 없고 파도 없는 산승(山僧)의 불교로 숨어 살아야 했지만, 선종(특히 조계종 계통)에는 적지 않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산중불교시대라고 할 수 있는 어두운 시기에 산속 깊숙이 숨어 살면서 불경과 선법을 부지런히 닦고 전하여 많은 제자와 법손을 배출시킨 인물로 지엄(智嚴)을 들 수 있다.
지엄은 일찍이 북방의 야인을 토벌할 때 종군하여 전공을 세운 바 있었으나, 28세에 출가하여 수선(修禪)과 지계(持戒)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연희(衍熙)로부터 ≪능엄경 楞嚴經≫을 공부하고, 정심(正心)으로부터 선법의 인가(印可)를 받았다. 그의 문하에 영관(靈觀)·일선(一禪)·설은(雪誾)·원오(圓悟) 등의 고승이 배출되었다.
특히, 영관은 조선시대 불교의 중흥조라 할 수 있는 휴정(休靜)의 스승이라는 점에서 더욱 유명하다.
영관에게는 휴정·선수(善修)·법융(法融)·영응(靈應)·정원(淨源) 등 제자가 많았다. 이 중에서 휴정과 선수는 암흑기의 조선불교를 중흥시킨 고승이었다. 서산대사(西山大師)로 널리 알려진 휴정은 사실상 조선 중기 이전의 불교암흑기를 딛고 일어서서 그 이후의 불교계에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다. 사실 그는 조선 중기 이후의 불교, 즉 종명 없는 선종의 시조격인 고승이었다.
그에게는 유정(惟政)·일선·인영(印英)·원준(圓俊)·법견(法堅)·해일(海日)·언기(彦機)·태능(太能)·인오(印悟) 등 이름있는 제자가 70여 명이었고, 그의 문하에서 배운 제자가 1,000여 명이나 되었다. 휴정의 그 많은 제자 중에서도 후대에까지 법손이 크게 성하였던 대표적인 제자로는 유정·일선·언기·태능 네 사람을 꼽으며, 이들을 서산문하 4대파라고 한다. 간략하게 각 문파의 계보를 보면 다음과 같다.
① 사명파(四溟派):사명은 유정의 당호로서 흔히 사명당이라고 부른다. 유정의 법을 이은 제자가 응상(應祥)이며, 그에게는 명조(明照)·쌍언(雙彦)·천오(天悟) 등이 있었는데, 그 중 법을 이은 제자는 명조이다. 명조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 전공을 세운 이름난 의승장(義僧將)인데, 그 점에서는 유정과 비슷한 데가 있다.
명조에게는 의흠(義欽)·학흠(學欽)·숭헌(崇憲)·상민(尙敏)·시승(時勝) 등의 제자가 있었다. 또 의흠의 제자로는 계휴(繼休)·일종(一宗)이 있었고, 계휴에게는 지원(智圓)·계언(繼彦)이 있었으며, 지원에게는 선언(善彦)·자환(自還)·능문(能文) 등이 있었고, 선언에게는 국선(國禪)·청매(靑梅)가 있었으며, 국선에게는 사준(思俊)·혜심(慧諶)·금호(錦灝)가 있었고, 혜심에게는 치흡(致洽)·명규(明奎)·임성(任性), 임성에게는 처종(處宗)·초율(初律) 등이 법을 이어 내려왔다.
② 편양파(鞭羊派):편양은 언기의 호이다. 언기는 처음 출가하여 인영에게서 배웠으나 나중에 휴정의 문하로 가서 그 법을 얻었다. 그의 법을 이은 제자는 의심(義諶)이며, 그 밖에도 석민(釋敏)·홍변(弘辯)·계진(契眞)·의천(義天)·혜상(惠常)·천신(天信) 등이 있었다. 이들은 각기 문파를 이루어 편양문하 7파라고 하는데 각기 법손들이 흥성하였다. 서산문하에서는 이 편양파의 문손(門孫)이 가장 성한 편이었다.
언기의 뒤를 이은 의심에게는 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정원(淨源)·도안(道安)·설제(雪霽)·서운(瑞雲)·찬영(贊映)·원휘(圓輝)·풍열(豊悅)·삼인(三印)·운밀(雲密)·명찰(明察)·자징(自澄)·도정(道正)·법징(法澄)·장륙(藏六) 등이 있어서 14파를 이루었다. 풍담문하 14파 중에서 가장 성한 문파가 도안 계통이다. 도안에게도 많은 제자가 있어서 추붕(秋鵬)·처호(處湖)·설형(雪泂)·영담(靈湛)·수일(守一)·금하(錦霞)·선웅(善雄)·진수(振秀)·대청(大淸) 등이 각각 문파를 이루었다.
이 중에서 추붕의 문파가 가장 성하였다. 추붕의 아래에는 낙하(落霞)·원조(圓照)·법종(法宗)·새봉(璽篈) 등 많은 제자가 그 법을 이었다. 풍담문하에 문손이 성하였던 또 하나의 문파로 설제파를 들 수가 있는데, 거기에는 지안(志安)·지점(智霑)·형오(泂悟)·삼인(三印)·청일(淸一)·만회(萬回)·개혜(開慧)·만기(萬機)·성초(性草) 등이 배출되어 각기 문파를 이루었다. 이 중에서도 지안이 유명하며 그 문손이 매우 성하였다.
③ 소요파(逍遙派):소요는 태능의 호이다. 그의 문하에도 수백 명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현변(懸辨)·계우(繼愚)·경열(敬悅)·학눌(學訥)·처우(處愚)·천해(天海)·극린(克璘)·광해(廣海)·사순(思順)·뇌운(雷運)·수일(守一)·정현(靜玄)·탁옥(琢玉) 등이 각각 문파를 이루었다.
현변의 문하에는 호연(浩然)·문신(文信)·옥균(玉均)·태의(太義)·종륵(宗勒)·약휴(若休) 등이 있었다. 태능의 제자인 경열의 문하에는 운학(雲學)·삼성(三省)·삼우(三愚) 등이 있었고, 삼우의 뒤를 문신이 이었으며, 문신에게는 회정(懷淨), 회정의 뒤는 각훤(覺喧), 각훤에게는 즉원(卽圓), 즉원 밑에는 혜장(惠藏) 등이 있어서 그 문파를 이었다.
④ 정관파(靜觀派):정관은 일선의 호이다. 정관에게는 충언(沖彦)·태호(太浩)·계훈(戒訓)·충휘(沖徽)·성희(性熙)·충인(沖忍) 등의 제자가 있었다. 충언에게는 각민(覺敏)·영신(英信)·영운(靈運)·지근(志勤) 등의 제자가 있었고, 지근에게는 천승(天勝)·경뢰(敬雷)·철웅(哲雄)·행수(行修)·태충(太沖)·태감(太鑑)·유문(有文) 등이 있었으며, 유문의 법은 자수(子秀)·관문(貫文)·혜영(惠永) 등이 이었고, 자수에게는 설영(雪瑛)·처우(處愚)·영봉(靈峯)·회경(懷瓊)·청휘(淸輝)·취일(就一) 등의 제자가 있었다.
정관 문하의 하나인 충휘에게는 일여(一如)·영서(靈瑞)·보철(普哲)·지문(志文)·석숭(釋崇)·희안(希顔) 등의 제자가 있어서 그 뒤를 이었다.
*부휴(浮休) 및 벽암(碧巖)문파:휴정과 더불어 조선 중기 이후의 불교계에 쌍벽을 이루었던 선수의 호가 부휴이다. 그의 문하에 700여 명의 제자가 배출되었다. 그 중에서도 각성(覺性)·계익(戒益)·응묵(應默)·희옥(希玉)·성현(聖賢)·희언(希彦)·선택(善澤)·혜일(惠日)·인문(印文)·담수(淡守) 등이 유명하였다.
특히, 각성·응묵·희옥·성현·희언·인문·담수 등은 각 파를 형성하여, 부휴문하 7파라고 한다. 그러나 부휴문파가 더욱 흥성하였던 것은 그 제자 각성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각성에게도 휴정처럼 뛰어난 제자가 많았다.
그에게는 수초(守初)·처능(處能)·정특(挺特)·진언(震言)·혜원(慧遠)·정현(正玄)·인욱(印旭)·율계(律戒)·응준(應俊)·인영(印英)·천연(天然)·청순(淸順)·현일(玄一)·승준(勝俊)·성오(性悟) 등 뛰어난 제자가 매우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수초·처능·정특·진언·혜원·인욱·정현·율계 등은 각각 문파를 이루어 벽암문하 8파라고 불렸다.
벽암문하에서 가장 성하였던 파가 수초의 취미파(翠微派)였다. 수초에게는 성총(性聰)·해란(海瀾)·민기(敏機)·철조(徹照)·천해(天海)·각현(覺玄)·처신(處信) 등 훌륭한 제자들이 매우 많이 배출되었다. 수초의 법을 이은 성총의 제자에 수연(秀演)·명안(明眼)·만훈(萬訓)·전각(雋覺)·전익(雋益) 등이 있었으며, 수연에게는 약탄(若坦)이 있었고, 약탄에게는 세찰(世察), 세찰의 뒤를 최눌(最訥)이 계승하였다.
최눌의 문하에 낙현(樂賢)·장언(莊彦)·교평(敎萍)·관혜(冠慧)·도일(道一)·선기(禪機)·혜학(慧學)·전령(展翎) 등이 있어서 그 문풍을 이었다. 비록, 종명은 없었지만 그와 같이 휴정과 선수 이후의 법손들이 선법의 계통,
즉 선종을 흥성하게 이어와서 포교활동이 자유로워진 한말에 원종(圓宗)에 이어서 임제종(臨濟宗)의 이름을 붙였다. 다음에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이라 이름하다가 1941년에 조계종이라는 종명을 확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2.교종(敎宗)
■개요
불교의 경(典), 논(論) 등을 소의(所依)로 하여 사상적인 이론을 세우는 종파. 선종에서는 불교를 크게 나누어 선종(禪宗)과 그 밖의 모든 종파를 교종(敎宗)으로 구분한다.
선종은 참선이나 공안 참구를 위주로 하는데,
교종은 교종ㆍ경전 등을 근거로 하여 간경(看經)과 교종수행법을 위주로 한다.
한국불교 수행자들은 일반적으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하여 처음에는 경전공부에서부터 출발하여 궁극적으로는 선(禪)의 경지로 들어가는 방법을 많이 택하고 있다.
교(敎)는 점수(漸修)의 수행법, 선(禪)은 돈오(頓悟)의 수행법이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고려 말에는 11개 종파가 있었고, 그 중 교종의 성격을 띤 종파는 6종이 있었다. 1406년(태종 6) 3월 조정에서는 전국의 사찰수를 11개 종파에 242개의 절로 정하였으며, 나머지 절들의 토지·노비와 모든 재산을 국가에서 몰수하였다.
1407년에는 전 종단을 11종에서 7종으로 축소시켰는데, 이때 도문종(道門宗)이 화엄종 속으로 들어가고, 중도종(中道宗)과 신인종(神印宗)이 합쳐져 중신종(中神宗)으로 되었기 때문에 교종의 성격을 띤 종파는 4종이 되었다. 그리하여 교종에 속한 절들의 남게 된 숫자는 화엄종(華嚴宗)과 도문종을 합해서 43개, 자은종(慈恩宗) 36개, 중도종과 신인종을 합쳐서 30개, 시흥종(始興宗) 10개 등 총 119개였다.
1424년(세종 6) 4월 예조의 계청에 따라, 그때까지의 7개 종파를 선교양종(禪敎兩宗)으로 폐합시킬 때 화엄종·자은종·중신종·시흥종의 4종을 합쳐서 하나의 교종으로 만들었다. 교종은 18개 사찰에 전답이 3,700결(結)이며, 승려는 모두 1,800명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한 교세를 가지고 교종은 흥덕사(興德寺)를 도회소(都會所: 총본사)로 삼고, 덕행이 높은 고승을 판교종사(判敎宗事)로 삼아서 종단 안의 모든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이때부터 교종은 선종과 나란히 존속되었으나, 어떠한 인물이 배출되고 어떻게 종단을 이끌어나갔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 뒤 연산군이 교종의 도회소인 흥덕사와 선종의 도회소인 흥천사(興天寺) 등 성안의 큰 절을 공해(公廨)로 삼고 절의 토지를 모두 관부(官府)에 몰수하였다. 아울러 승과제도도 실시하지 않게 되자 교종은 광주의 청계사(淸溪寺)를 임시 도회소로 정하여 종단의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종이 즉위하여 승과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교종은 없어지게 되었다.
1550년(명종 5) 12월 당시 섭정을 했던 문정대비(文定大妃)는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봉선사(奉先寺)를 교종의 본사로, 수진(守眞)을 판교종사로 삼았다. 1565년 문정대비가 죽자 양종제도가 폐지되고 교종은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나 휴정(休靜) 당시에도 교학자(敎學者)라는 말이 보이며, 그 뒤 조선 말기나 최근에 이르기까지도 화엄종사(華嚴宗師) 또는 화엄종장(華嚴宗匠)이라는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 적지않게 배출되었다.
[교종의 종파]
일반적으로는 선종에 대한 모든 종파를 교종이라고 보고 있다.
① 비담종: 구사종(俱舍宗)이라고도 하며 세친(世親)이 지은 《구사론(俱舍論)》을 근본으로 하여 세운 종이며, 설일체유부종(說一切有部宗)의 일파이다. 불멸 후 900년경 세친이 나서 《비바사론(毘婆沙論)》을 연구하여 의심을 품고 경부(經部)를 배우면서 그 장점을 취하여 《비바사론》을 비평, 마침내 새로운 기축(機軸)을 열었다. 그 뒤 안혜(安慧) 등이 주석서를 지어 한때 인도에 성행했다. 563년 진제(眞諦)가 《구사론》을 번역, 비로소 중국에 전파했고, 현장(玄奘)이 다시 번역함으로써 구사론의 연구가 번창했다.
그 문하에 원유(元瑜) 등이 나서 《광기(光記)》ㆍ《보소(寶疏)》 등을 지어 《구사론》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 뒤 회소(懷素) 등이 소승을 연구, 구사종의 대의는 설일체유부종의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의 종지를 말함에 있으나 안으로는 경부(經部)의 현재유체(現在有體), 과거무체(過去無體)에 동의를 나타냈다. 곧 무표색(無表色) 십사불상응법(十四不相應法), 삼무위(三無爲)같은 것도 유부종(有部宗)에서 실체가 있다고 함에 반하여 그것은 가정적(假定的) 존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 그 일례이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때에 전해졌다.
② 성실종(成實宗): 하리발마(Harivarman)가 지은 《성실론》을 근본경전으로 삼는 종지(宗旨). 4세기경 하리발마가 《성실론》을 지은 데서 시작되어 412년에 구마라집이 번역하면서 형성된 종파. 승예가 강의를 계속하여 도고 등이 전력을 기울여 매우 융성했으나, 수나라ㆍ당나라 때 와서는 점점 쇠운(衰運)했다.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혜관(慧灌)이 수나라에 가서 가상사 길장(吉藏)에게 삼론종과 성실종의 깊은 뜻을 배워왔고, 신라의 원광(圓光)은 진(陳)나라에 가서 성실종을 전해왔다. 원효(元曉)도 《성실론소(成實論疏)》 10권을 지었다. 624년 혜관이 이 성실종을 일본에 전했다. 이 성실종의 교의는 소승 비담(毘曇)의 일파로부터 다시 한 걸음 나아가 아공(我空) 밖에 법공(法空)을 말했으므로 그 실천문에서는 공관(空觀)을 철저히 하고 삼종심(三種心)을 멸하는 동시에 삼계를 여읜다고 하며 향상수행(向上修行)의 과정을 27위로 나눈다.
③ 삼론종(三論宗): 성종(性宗)ㆍ공종(空宗)ㆍ파상종(破相宗)이라고도 하며 인도 대승불교의 중관계(中觀系)ㆍ유가계(瑜伽系) 중의 중관계에서 시작되어 중국에서 크게 번창한 종파이다. 용수(龍樹)가 지은 《중론(中論)》ㆍ《십이문론(十二門論)》과 제바(提婆)가 지은 《백론(百論)》의 삼부를 주요 경전으로 하여 성립된 종지(宗旨)로서 용수에서 두 파로 갈렸다. 그 중 한 파는 제바(提婆), 구마라집(鳩摩羅什)이고, 다른 한 파는 청변(淸辯)에게 전했다.
또, 구마라집 문하에서 승조, 도생 등이 나오고 다시 도생, 승전, 법랑, 길장으로 차례로 이어왔는데, 승전에서 길장에 이르러 종의가 크게 이루어졌다. 따라서 길장 이전을 고삼론(古三論), 이후를 신삼론(新三論)이라 구별한다. 구마라집이 《중론》ㆍ《백론》ㆍ《십이문론》ㆍ《지도론》을 번역하고, 그 제자들이 모두 삼론 대의를 품수하고 가상(嘉祥)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다가 선종이 들어오면서부터 점점 쇠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 원효가 4론의 《종요(宗要)》를 짓고, 백제의 혜현(慧顯)이 삼론을 강설했으며, 고구려의 혜관이 일본에 이 종을 전했다.
④ 열반종(涅槃宗): 중국 불교의 일종파로서 《열반경(涅槃經)》을 근본경전으로 하고 모든 중생은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어 이를 증득하여 나타낸 것이 열반이라고 하는 열반의 적극적인 해석을 종지(宗旨)로 삼는다. 412년 북양(北凉)의 담무참이 《대반열반경》을 번역한 데서 성립되었다. 그 뒤 도장사(道場寺)의 혜관 등은 이 북본(北本)과 그전에 번역한 법현(法顯) 역본과를 교합(校合) 수정하여 《남본열반경》을 만들고 이 종의 5교시판(五敎時判)을 정했다.
그 뒤 혜정(慧靜), 담무성 등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각기 주석을 지으며 또는 강설에 힘써 송(宋), 제(齊), 양(梁), 진(陳), 수(隋)에서 융성을 보았다. 당(唐)의 도선(道宣)ㆍ법보(法寶) 등도 그 뜻한 바가 이 종에 있었다고 전하지만 천태종이 생긴 뒤에는 《법화경》과 《열반경》은 뜻이 같은 교라는 말에 압도되어 천태종에 병합되고 독립적인 힘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무열왕 때에 보덕(普德)이 개종(開宗)했다. 그 뒤 원효ㆍ의상(義湘)ㆍ경흥(憬興)ㆍ의적(義寂)ㆍ대현(大賢)이 《열반경》의 소초(疏鈔)를 지어 경의 뜻을 밝혔다.
⑤ 지론종(地論宗): 세친(世親)이 지은 《십지경론(十地經論)》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종파. 북위(北魏) 혜광율사 광통(慧光律師 光統)을 개조로 한다. 《십지경론》은 북위(北魏) 선무제의 명으로 북천축 보리유지(菩提流支), 중천축 륵나마제(勒那摩提), 북천축 불타선다(佛陀扇多)가 함께 번역하기 시작. 중도에 서로 의견을 달리하여 마침내 삼본의 번역이 나왔다. 혜광은 삼본의 같고 다른 것을 비교하여 특히 보리유지와 륵나마제의 뜻을 조화하여 하나로 만든 것이 지금 전하는 12권으로 지론종이 일어난 근본이 되었다. 이로부터 혜광의 교를 받은 혜원(慧遠) 등과 그 문하의 일파와 보리유지에게 배웠다고 하는 도총(道寵)의 일파가 그 종지를 강론하고 선양한 결과, 교세가 대단히 성했다.
당나라에 현장과 규기(窺基)의 법상종이 일어나고 또 법장(法藏)이 화엄종을 열게 됨에 겨우 《화엄경》의 일 부분을 해석한 《십지경론》을 근거하고 있는 지론종은 점점 쇠하여 마침내 화엄종에 병합되었다. 이 종지는 팔식(八識)을 세우는 것은 법상종과 같으나 제8식은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진여(眞如)라 하고 나머지 칠식은 진여가 연(緣)을 따라서 진여의 자체가 7가지의 망식(妄識)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했다. 수행방법으로는 《십지론》에 말한 바를 따라 망(妄)을 없애고 진(眞)을 나타내는 것을 주로 삼는다.
⑥ 섭론종(攝論宗): 무착(無着)이 지은 《섭대승론》을 근본경전으로 하는 종파. 서인도 진제삼장(眞諦三藏)이 546년 중국 남해에 오고, 548년 역경사업에 종사할 때 《섭대승론》을 번역했다. 이때부터 종의(宗義)가 널리 퍼져 크게 성했고, 645년 천축에 갔던 현장이 돌아와서 법상종을 여니 이에 병합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신라 원광법사가 수나라에 가서 전해 왔고 원효도 《세친석론약기》를 지었다.
⑦ 천태종(天台宗): 천태법화종(天台法華宗)ㆍ천태법화원종(天台法華圓宗)ㆍ태종(台宗)ㆍ태가(台家)라고도 한다. 중국 수나라 때 절강성 천태산에서 지의(智顗)가 창립한 종파이다. 《법화경》과 용수의 사상을 기본으로 한다. 지의는 선구자로서 북제의 혜문(慧文)과 진의 혜사(慧思)가 있었다. 이들을 합하여 지의를 천태종 제3조로 하기도 한다. 지의의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불교를 통일하고 적극적으로 《제법실상론(諸法實相論)》을 주창하며 불교철학의 심오한 체계를 세워 《법화문구(法華文句)》ㆍ《법화현의(法華玄義)》ㆍ《마하지관(摩詞止觀)》을 지어 한 종을 이룩하고 그 뒤에 장안(章安), 담연(湛然) 등이 계승했다.
담연은 삼대부(三大部)의 주석을 지어 그 때 융성하던 법상종ㆍ화엄종ㆍ선종 등에 대항하여 천태종의 면목을 발양, 그 뒤 의적(義寂) 등이 전해오다가 5대(五代)의 전란에 종전(宗典)이 흐려지고 사조(思潮)가 떨치지 못했다. 의적은 그 종전을 다시 고려와 일본에서 구하여 종의(宗義)의 연구가 성행했다. 송나라 때에는 산가(山家)ㆍ산외(山外)의 두 파로 대립하기도 했다. 산가파의 으뜸은 사명지례(四明知禮)로 그의 학풍은 천태종 본래의 사상인 물(物)ㆍ심(心)을 같이 취급하는 사상을 굳게 지키고, 또 현재의 자기를 여의지 않고 전체를 해결하는 데 치중했다. 산외파는 인악(仁岳) 등이 영도했다. 그 학풍은 연기론(緣起論)에 반하여 믿음을 근본으로 삼아서 온갖 것을 해결하는 데 있었다. 명나라 때의 지욱(智旭)이 종풍을 빛낸 것이 마지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현광(玄光)ㆍ법융(法融), 고구려의 파야(波若), 고려의 체관(諦觀) 등이 천태종을 연구했다. 또 의천(義天)은 송나라에 가서 종지를 배우고 돌아와서 1097년(고려 숙종2)에 개성에 국청사를 창건하여 천태교의를 강설함으로써 천태종이 성립되고, 그 문하에 덕린(德麟) 등이 그 교법을 전하고 남숭산(안동 금오산), 북숭산(해주 수양산) 등이 그 소속 도량이었다. 이 천태종은 《법화경》ㆍ《대열반경》ㆍ《대품반야경》ㆍ《화엄경》ㆍ《금광명경》ㆍ《유마경》ㆍ《지도론》ㆍ《중론》ㆍ《법화론》 등을 소의경론으로 삼고 주창했다.
⑧ 화엄종(華嚴宗): 《화엄경》을 근본경전으로 하여 세운 종파. 또는 이 종의 교의를 조직ㆍ대성시킨 현수의 이름을 따서 현수종(賢首宗)이라고도 한다. 중국 불교의 전성시대에 삼론종, 천태종, 율종, 정토종 등 여러 종파에 대응한 통합적인 불교로 성립되었다. 두순(杜順)을 시조로 하고 제2조 지엄(智儼)을 거쳐서 제3조 법장(法藏), 곧 현수(賢首)에 이르러 크게 융성했으며, 다음에 징관(澄觀)과 종밀(宗密)이 계속 선양했으므로 이들을 종주의 화엄 5조라 하며, 또 인도의 마명(馬鳴)과 용수(龍樹)를 더하여 7조라고도 한다. 그 뒤 중국에서는 선(禪)과 가까워지다가 점차로 쇠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문무왕 때 독창한 원효를 초조(初祖)로 하는 해동종(海東宗)과 당나라에 가서 지엄의 중통을 전하여온 의상(義湘)을 초조로 하는 부석종(浮石宗)이 있었으나 후세에까지 오래 전해진 것은 부석종이다. 의상이 태백산의 부석사를 종찰(宗刹)로 하여 크게 번창한 뒤를 이어 승전(勝詮), 지통(智通) 등이 종풍을 선양했다.
⑨ 법상종(法相宗): 유식중도종(唯識中道宗)이라고도 한다. 소의경전은 《해심밀경(解深蜜經)》ㆍ《성유식론(成唯織論)》ㆍ《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이다. 인도에서는 무착(無着)과 세친이 세우고, 중국에서는 현장(玄奘)이 인도의 계현론사(戒賢論師)에게 배워가지고 와서 규기(窺基)에게 전했다. 규기는 자은사에 있었으므로 일명 자은종(慈恩宗)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원측(圓測)이 당나라에 가서 현장에게 《유식론》ㆍ《유가론》을 배우고 《유식소초(唯識疏抄)》를 지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때에 진표(眞表)가 금산사(金山寺)에서 계법(戒法)과 점찰법(占察法)을 겸해 닦아 실행하고 법상종의 종지를 제자 영심(永深) 등에게 전하여 법주사ㆍ동화사 등에서 크게 융성했다. 이 종은 우주만유의 본체보다도 현상을 세밀히 분류ㆍ설명했으므로 법상종이라 하며, 유식종이라 함은 온갖 만유는 오직 식(識)이 변해서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 종파의 주장은 불교의 유식론으로써 만유는 오로지 아뢰야식(阿賴耶識)으로 연기(緣起)한 것이라고 한다. 그 연기의 주체인 능변(能變)의 시초는 제8식이요, 2능변은 제7식, 3능변은 제6식이라고 하고, 이것들은 다 내심(內心)으로 외경(外境)을 변현하는 것이므로 삼계유일심(三界唯一心), 심외무별법(心外無別法)이라고 말한다. 만유를 분류하여 오위백법(五位百法)으로 정하며, 만유의 참된 실재와 허망과를 밝히기 위해 3성(三性)을 말한다.
식이 바깥경계를 인식하는 과정에 나아가서는 이를 4분으로 나누어 세밀히 설명하고 유식의 이치를 깨달아 알게 하는 방법으로 5중유식관을 세웠다. 중생의 해탈하는 방법에 나아가서는 5성이 각각 다르다고 말하며 영구히 해탈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또 그 중의 삼승교(三乘敎)만이 진실하고 다른 종파의 1승교는 가설이라 하므로 일반에서는 이 종은 권대승(權大乘)이라 일컫는다.
인도에서는 원래 중관종(中觀宗)에 대립하여 유가종이라 부르던 것인데, 불멸 후 900년경에 미륵(彌勒)이 중인도에 내려와서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ㆍ《분별유가론(分別瑜伽論)》ㆍ《대장엄론(大莊嚴論)》ㆍ《변중변론(辨中辨論)》을 말하고 무착 세친이 이를 이어 받아 《섭대승론(攝大乘論)》ㆍ《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또는 《섭대승론석》ㆍ《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 등을 지어 교의를 발휘했다. 호법(護法) 등 10대논사(十大論師)는 세친의 《유식삼십송》을 주석하여 유식의 이치를 크게 선전했다. 호법의 문하에 계현(戒賢)이 당시에 중국으로부터 건너간 현장에게 그 법을 전했다.
현장은 돌아와 호법이 지은 《성유식론(成唯識論)》을 번역하고, 그의 제자 규기는 《유식론술기》ㆍ《유식론추요》를 지어 본종의 교의를 크게 이루었다. 이 《유식론추요》와 혜조(慧照)의 《유식요의》 등과 지주(智周)의 《유식변비초》는 유식의 3대소(三大疏)라 하여 본종을 연구하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⑩ 진언종(眞言宗): 밀종(密宗)이라고도 한다. 716년 선무외(善無畏) 삼장이 《밀종론(密宗論)》을 번역함으로부터 중국의 진언종이 비롯되었다. 금강지(金剛智) 삼장과 불공(不空) 삼장이 선양하여 오래 전해 내려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의 혜통(慧通)이 당나라에 가서 선무외 삼장에게 인결(印訣)을 얻어가지고 664년(문무왕4)에 돌아온 것이 처음이었다. 영묘사의 불가사의라는 사람은 불공 삼장에게서 받아오고 명랑(明郞)도 당나라에 가서 신인(神印)을 얻어 가지고 돌아와 신인종을 세웠다.
신인종파의 광학(廣學)과 대연(大緣)은 고려 초기 개성에 현성사를 지어 밀교의 근본도량을 삼았으나 조선 초기에 없어졌다. 이상이 교종에 속하는 중국의 10개 종파의 내역과 종지, 그리고 교종의 한국 전파 경로이다.
고구려 때부터 받아들였던 한국의 불교는 1424년(세종6)에 당시 8종으로 분립되었던 것을 선ㆍ교양종으로 통합 정리했다. 조계종ㆍ천태종ㆍ총지종ㆍ남산종을 합하여 선종으로 하고, 자은종ㆍ화엄종ㆍ시흥종ㆍ중신종을 합하여 교종으로 통합한 것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불교대사전 인용>
<참고문헌>
『태종실록(太宗實錄)』
『세종실록(世宗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명종실록(明宗實錄)』
『불조원류(佛祖源流)』(채영)
『조선불교통사』(이능화, 신문관, 1918)
「한국선종약사」(권상로, 『백성욱박사화갑기념불교학논문집,』 1959)
『한국불교사』(우정상·금영태, 신흥출판사, 1969)
『이조불교』(고교형, 보문관, 1929)
『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1930)
●교종과 선종의 주개념
1) 교종
교종은 불교의 수행 방법의 하나로 특정한 불교경전에서의 가르침을 불교의 진수로 간주하여, 이것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주력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교종은 불교교리와 경전을 중시하고, 이 가운데 불교의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고 이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교종의 가르침에는 인간과 자연이 현실적으로 연기의 법칙에 따라 서로가 원만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를 깨닫고 실천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불교가 삼국시대에 도입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불교를 도입하게 됨으로써 정신적 통일을 이루고, 이를 왕권 강화와 삼국 통일의 정신적 기반으로 삼았다. 특히 신라 시대의 불교는 교종이 주를 이루었는데, 당시 귀족 사회의 특성 때문이다. 귀족은 특권 의식을 가지고 있고, 평민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익힘으로써, 귀족들만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난해한 불교 교리를 배우고 그를 통해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종의 논리는 귀족들의 요구와 일치하게 되고, 귀족층을 중심으로 교종이 발전하게 된다. 신라시대 불교를 대표하는 화엄종도 교종의 일파 인 것이다. 특히 화엄종을 이끌었던 의상대사는 귀족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귀족들의 후원을 많이 받게 된다. 그래서 의상대사는 대규모 불사를 행할 수 있었고, 천년 고찰의 많은 곳이 의상대사와 연관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려 시대 중기까지 교종이 발달하게 되는데, 고려 사회가 귀족 사회였기 때문에 교종의 발달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려에 들어서는 신라 말에 형성된 선종과의 대립이 잦아지고, 교종과 선종의 대립은 종파 통합의 노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조선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적 사상아래 불교를 탄압하게 됨으로써, 교종도 교세가 많이 축소되게 되고, 세종 6년에 하나로 통합된다. 교종은 흥덕사를 총본사로 하였는데 조선의 억불 숭유 정책의 영향으로 많이 쇠퇴하였다.
2) 선종
선종은 교종에 비교되는 불교수행의 한 일파이며 선불교라고 하기도 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주장하는데, 선종에서는 인간은 원래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품성을 지닌 존재라고 전제하고, 개인이 수행과 해탈을 통해 부처의 성품임을 깨달을 때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종은 언어나 문자를 거치지 않고 부처의 마음을 온 세상에 전하므로 불심종 - 부처의 마음이 통한다 - 이라고도 하며, 수행법으로 주로 참선을 중시한다.
하지만 선종은 참선 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동작에서도 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노동을 통해서라든가 혹은 속어를 사용하는 일상적 문답법으로 그 이념을 실현코자 하였다. 이 종파는 인도 승려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졌는데, 이후에 혜능이 남종선을 개창하면서 더욱 발달하게 된다. 선종이라는 명칭은 당나라 중기부터 그 종파가 크게 발달하여 교종과 대립하기에 이르게 되고 교세가 확장되자 교종에 대비하여 선종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한국의 선종은 법랑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중국 선종을 계승 발전시키는데 기여하게 된다. 고려 초 선종은 교종의 기세에 눌려 다소 침체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러나 고려 중기 이후 지눌과 보우의 출현으로 중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13세기 초 지눌이 조계산에 수선사를 짓고 선종이 크게 부흥하면서 선종 내에 조계종파가 성립되었다. 14세기 중엽에는 보우가 불교계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조계종이 불교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가 교체되던 시기에는 조계종의 나옹이 조선 왕실의 후원을 받아 불교계를 주도하였고, 하지만 조선 왕조의 억불 정책은 불교계의 큰 타격이었고, 선종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중기 서산대사가 활동하여 교선 일치를 주장하였다.
2.확장 개념
1) 화엄종
화엄종은 화엄경을 경전으로 발달한 불교 종파로 경전에서부터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때 법장이 창시하고 측천무후의 후원을 받아 발달하기도 하였다. 화엄종에서는 모든 사물이 서로 원융한다고 보는데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라고 바라보면서 우주 만물이 서로 조화롭고 화해하며 융통한다고 본다.
한국에서는 화엄사상을 신라의 원효대사나·의상대사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고, 우리 나라의 승려 의상대사는 두순에게서 화엄사상을 배운 후, 신라에서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종을 열어 해동 화엄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화엄일승법계도라는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방대한 화엄경의 내용을 정리, 요약한 것으로 화엄학 연구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8세기 신라의 승려 심상은 일본에 건너가 화엄교리를 강의하고 일본 승려 양변에게 불법을 전파하여 일본의 화엄종을 성립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 나라의 화엄종은 고려 초에 교종성립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고려에 이르러 균여는 화엄종 발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대각국사의천은 화엄사상·선종·천태종을 통합하여, 고려불교의 종파통합의 노력에 힘썼다.
2) 선
선종 불교에서 중시하는 참선 방법. 명상과 참선을 통해 정신을 통일하는 방법을 말한다. 선은 선정의 줄임말이다. 선은 인도에서는 불교 이외에도 일찍부터 일반화된 수행방법으로 조용히 앉아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잡념을 떨쳐내어 마음을 집중하는 것으로 이를 좌선이라고 한다. 선은 인도에서 발생한 관습이나 사상을 불교와 결합하여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선의 방법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우리 나라의 선종에서는 조용히 묵상하고 참선하는 것을 중시 여겨, 그 깊은 사고의 폭을 선수행을 통한 문답법을 통해 해소하고 있다.
3.관련 지식
1) 교외별전
교외별전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교(敎)밖에 별도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경전에만 의존하지 않고, 경전 외적인 가르침을 중시여기는 것이다. 즉 마음과 마음으로 불교의 가르침을 전한다는 말이다. 교외별전이란 경전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불교의 가르침이 전수된 것이 있고, 경전에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입장의 표방이다.
교종이 경전의 의미나 가르침을 위주로 공부함으로써 불교의 참 정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선종에서는 부처의 진정한 진리는 단순히 어구나 문자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게 된다.
교외별전은 선종과 교종을 구분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교종은 경전의 해석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만, 선종은 경전의 자구에 얽매이지 않고,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므로, 교외별전은 불교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외별전은 경전에 담긴 근본적 취지를 벗어나 전혀 다른 가르침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문자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경전의 가르침의 근본인 마음으로 직접 유도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외별전은 교종을 전혀 배척하는 것도 아니다. 교외별전은 문자로 전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과 마음으로 진리를 전하는 방식이므로 이심전심(以心傳心)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 불립문자
불립문자란 불교에서 선종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은 경전의 어구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불립문자는 교외별전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며, 불립문자란 문자에 집착하지 않고 보편타당한 명제를 확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의 표방이고, 따라서 경전의 문구에 대해서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스러운 수행을 강조하게 된다.
불립문자는 중국에서 혜능에 의해 성립되고 강조되었다. 신라 말에 중국으로부터 선종 불교가 전파되었는데 당시 불교는 귀족과 결탁하게 되어 보수화되고, 세속화되었다. 이들은 당시의 한계를 인식하고 구체적 실천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개혁함으로써, 불심을 전파하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즉 우리 선종도 경전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 대한 집착을 타파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 인용>
■참고 :
□한국의 불교 종파
* 불교종파의 흐름
*조계종,천태종,화엄종의 차이점
조계종은 백화점이라 보시면되고 다른 종은 전문상가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조계종 : 조계종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참선으로 깨우침을 얻은 유명한 혜능스님이 살고 계셨던 절의 뒷산 이름이 조계산이라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화엄종, 법화종, 천태종 이런 종단들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종단이
수입된 것이지만 조계종은 산이름은 중국에서 따 왔지만 종단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만
들어진 것이라 우리나라만의 종단입니다.
부처님이 가르침을 교학이라는 방법(공부해서 알게되어 깨우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
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교종"이라고 하고 참선이라는 방법(마음을 고요하게 하여 느낌
으로 깨우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선종"이라고 합니다.
고려 때 우리나라에는 많은 선종과 교종이 있었고 이중 유명한 9개의 선종을 하나로
묶어서 조계종이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일제때 일본사람들이 스님들을 강제로 결혼시켜버리는 바람에 결혼하신 스님
과 독신으로 사시는 스님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 두개의 종단으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그중 결혼하신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종단을 새로 만들게 되고 이것이 태고종이 되었습
니다.
그후에 참선을 여전히 중요시여기는 풍습에 생각을 달리하는 분들이 천태종, 진각종등
의 새로운 종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천태종 : 동아시아 불교의 대표적인 종파.
'천태종'이라는 명칭은 6세기의 승려로서 이 종파의 실질적 개조이며 위대한 설법자였던 지의(智)가 거주하며 가르침을 폈던 중국 동남부의 산에서 유래한다.
이 종파의 기본경전은 〈법화경 法華經〉이며, 이때문에 '법화종'으로 불리기도 한다.
천태종의 기본적인 교의는 '삼제원융'(三諸圓融)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데,
첫째, 모든 현상은 존재론적 실체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공(空)의 진리,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임시적으로는 존재하고 있다는 가(假)의 진리,
셋째, 모든 현상은 비실체적이며 동시에 임시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첫째와 둘째의 진리는 포용하면서도 초월한다는 절대적인 중(中)의 진리이다.
이 3가지 진리는 각각 다른 두 진리를 서로 포용하며 각각은 나머지에 이미 속해 있다고 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점에서 현상적 세계를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와 동일시한다. 삼제원융의 가르침은 북제(北齊) 혜문(慧文)의 가르침이지만 천태종의 창립에 크게 공헌하여 개조로 간주되는 인물은 제3대 조사 지의이다.
지의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르렀을 당시에 이미 불교의 온갖 교의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으며 다만 듣는 이들의 정신적 자질에 따라 점차적으로 펼쳐내었다고 전제하고, 이러한 전제에 의거하여 불교 경전 전체를 체계화했다. 그 가운데 〈법화경〉을 석가모니의 모든 가르침을 담고 있는 최고의 교리서로 간주했다.
화엄종 : 화엄경 華嚴經〉을 주요경전으로 삼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당초 인도에서는 화엄종의 시조는 용수(龍樹)·세친(世親)이었다.
중국에서는 창시자 법장(法藏)이 측천무후(則天武后)에게서 '현수'(賢首 : 보살의 이름)라는 법호를 하사받았으므로 현수종이라고도 하고,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을 주장했으므로 법계종이라고도 불린다.
화엄종의 특색은 법계연기론에서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理:본체)와 사(事:현상)는 서로 장애가 되지 않으며, 사와 사 또한 서로 원융하다고 본다.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여서 우주 만물이 서로 융통하고 화해하며 무한하고 끝없는 조화를 이룬다
****************
* 현재 한국의 불교 종파
아래는 현재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등록된 종단명들입니다. 이외에 종단협의회에 등록되지 않은 종단도 부지기수입니다.
1. 대한불교조계종
2. 한국불교태고종
3. 대한불교천태종
4. 대한불교진각종
5. 대한불교관음종
6. 대한불교총화종
8. 대한불교보문종
9. 대한불교원융종
10 불교총지종
11 대한불교원효종
12 대한불교법화종
13 대한불교조동종
14 보국불교염불종
15 대한불교법상종
16 대한불교진언종
17 대한불교용화종
18 한국불교법륜종
19 대한불교본원종
20 일붕선교종
21 대한불교대승종
22 대한불교삼론종
23 대한불교미타종
24 한국불교여래종
25 대한불교대각종
26 한국불교미륵종
27 대한불교 정토종
28. 대한불교화엄종
29.대한불교일승종
30.대한불교법연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