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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는 어딜 가고
송민구가 인천을 떠나게 된 것은 군대에 입대하던 70년대 말엽이다.
그때 송민구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를 않아서 잠시 아버지의 농사일을 돌보다가 아무래도 도회지에 나가서 돈을 벌 요량으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그의 능력으로는 마땅한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인천초등하교의 선생님으로 계시는 고모부가 조카의 딱한 사정을 아시고는 친구가 경영하는 회사에 부탁을 하여 용케도 자리 하나를 얻어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인천 앞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은 이 회사는 선박에 필요한 자재를 제작하는 회사였는데 사장님은 앞으로 열심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하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회사의 업무는 반별로 일을 나누어서 하게 되어 있고 4명으로 편성된 반마다에는 반장이 한명씩 조를 책임지게 되어 있었다.
회사에서 송민구가 맡은 일은 자재를 제작하고 포장하며 오후에는 자재별 출납을 관장하는 일이다.
그가 근무하는 작업실에는 여직원 셋에 송민구를 포함해서 4명이 교대를 하게 되어 있고 반장은 수시로 작업감독을 하였는데 자재의 종류가 다양하여 출납정리가 쉽지를 않았다.
입사하던 날 반장을 맡고 있는 홍경식 반장은 자재취급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숫자를 제대로 파악해서 포장하고 이를 출고한 이후에는 그 결과를 이튿날 출 근시까지 전무님에게 일괄 보고를 하라고 하였다.
송민구는 처음 입사를 한 처지라서 작업에 대한 내막을 잘 몰랐지만 반장님이 시키는 대로 하려고 하니 기재 자체를 몰라서 절절 맬 수밖에 없었지만 한 달가량을 지나고 나서야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송민구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입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보다 석 달 먼저 들어왔다는 여직원 김순자도 고등학교 출신으로 나이는 두 살이나 아래였다.
또 다른 여직원 둘 중의 한사람은 결혼을 한 이정녀이고 민구보다 다섯 살이나 위인 박춘자라는 처녀는 겉으로는 사람이 좋아 보였지만 사리에 어긋나면 얼굴을 붉히면서 상대방에게 무안을 주는 성격으로 회사에서도 까다롭다는 말을 듣는 편이라고 하였다.
회사에 대한 내력을 들어보니 처음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외국으로 수출계약을 맺은 이후에는 회사 규모도 커지고 직원들의 숫자도 늘어나다 보니 점심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먹게 되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민구에게는 좋았다.
원래 고모부는 두 아들을 일찍 두셨고 둘 다 결혼을 시켜 큰 형은 지방의 전기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작은형은 타지에서 교사로 있어 형들이 쓰던 방을 쓰게 되니 방값은 들지를 않았지만 그 대신 용돈을 고모님께 드릴 수가 있었다.
고모님은 민구를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사랑해 주셨는데 취직이 되자 무척 좋아하셨지만 2년 전부터 당뇨병으로 고생을 하시는 바람에 밥을 얻어먹는 것이 부담스러워 속한 시일 내에 고모 댁에서 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반장인 홍경식은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경력이 있어 전무님은 항상 홍 반장에게 중요한 업무를 맡기는 편이었지만 사내의 직원들 간에는 그다지 신망이 있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홍 반장이 워낙 회사의 돌아가는 사정을 소상하게 잘 알고 있기에 민구는 그때그때 어려운 일이 있으면 그에게 물어서 처리를 하였다.
홍경식 반장은 외모로는 사람이 좋은 편이긴 하나 민구가 볼 때에는 책임감이 부족하고 늘 회사의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어서 그때마다 면구스럽기까지 하였다.
회사의 근무는 당번을 정해서 밤 11시까지 돌아가게 되어 있어서 두 사람씩 시간대로 돌아가다 보면 이틀에 한번 꼴로 교대를 하였는데 어느 날 민구가 교대를 하고 퇴근을 하다 보니 홍 반장과 김순자가 회사 뒤의 잔디밭 의자에서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것이 목격되는 것이었다.
사실 송민구는 입사하면서 김순자와 인사를 나누는 중에 그가 얼마나 마음에 쏙 드는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레는 것이었다.
김순자의 생김새는 갸름한 얼굴에 눈은 쌍까풀이고 생글 생글 웃을 때에는 보조개까지 생겨 서 더욱 예뻐 보였다.
송민구가 학교 다닐 때에는 남자고등학교라 남자들의 와일드한 생활 속에서만 지나다 보니 성격자체가 부드럽기 보다는 바위처럼 단단한 면만 강조되던 분위기였다.
그러다 보니 교실에서의 생활은 목소리가 커지고 언제나 권투시합장처럼 서로가 툭탁거림이 잦아 그야말로 살벌함속에서 학교를 다닌 것이다.
그런 억센 환경에서 다니다 보니 이따금 친구들 간의 대화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는데 방과 후에 들어보면 어떤 아이들은 여학생들과 데이트를 했다는 말까지 하는 것이었다.
사실 송민구는 그동안 여학생과의 접촉이 전혀 없다보니 혹 길을 가다가 여학생들의 무리 앞을 지날 때면 공연히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던 송민구가 회사에 취직을 하면서부터 마음에 드는 김순자와 한 직장에서 근무를 하게 되다 보니 어느 결에 김순자는 송민구의 마음 한구석을 깊게 차지하고 있었다.
퇴근을 해서 밤이 되면 얼른 아침이 돌아왔으면 하였던 것은 아침 일찍 출근을 하여 김순자를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은 욕망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홍 반장과 가까운 사이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송민구는 질투심이 나고 그 순간부터 고민이 생기는 것이다.
송민구가 이렇게 김순자로 해서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은 마음을 갖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동안 송민구가 지나온 세상에는 여자가 등장을 하지 않은 원인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에 올라와서 딱 한번 초등학교 동기 모임이 있다고 해서 참석을 하였을 때동기생 중에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황달호가 회장으로 있었는데 모둠이 끝나자 송민구를 보고 하는 말이 오래간만에 만났으니 여름 방학에 동해 바다로 해수욕이나 가자는 제의를 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송민구는 서해바다에는 딱 한번을 가본 적이 있지만 동해바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어서 선뜻 가겠다고 대답을 한 것이다.
그런데 황달호는 송민구에게 애인이 있으면 데려오라면서 자기는 애인을 동반할 것이라고 하였다.
송민구가 생각을 하니 애인은커녕 아는 여학생도 없는 판에 이런 소리를 들으니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 야 너 남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떻게 여자아이들을 안다는 거냐?”
“ 그게 무슨 말이야, 사람 있는데 여자가 있다는 말과 같이 남자에게는 여자가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냐. 그래 아직 사귀는 애인이 없다는 말이지 너야말로 참으로 한심하구나.”
황달호는 송민구가 딱하다고 혀를 차더니 그렇다면 짝이 될 만한 미인 하나를 소개해 줄 터이니 눈을 딱 감고 있으라는 것이다.
송민구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속으로 네까짓 게 하면서 학교 다닐 때도 말로는 만리장성을 쌓을 정도로 흰소리를 쳤는데 애인은 무슨 하고는 귀 밖으로 흘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황달호가 무슨 재주로 여자애들을 알게 된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하였다.
사실 송민구가 지난 일을 생각을 해보더라도 학교공부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서 아버지가 하시는 농사일을 도와야 했으니 언제 딴 시간을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학비를 아버지에게서 타 쓰는 것도 어려워서 어떤 때는 간간이 벽돌 쌓는 노동판에 가서 벽돌을 나르기도 하였고 일이 끝나면 너무 고단해서 학교의 과제를 하질 못해서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는 때가 많았다.
그런 반면에 황달호는 성격도 활달하고 통솔력이 있는가 하면 지남철처럼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갖추고 있는데다가 웬만큼 잘 살아서 같은 학교 친구 외에도 다른 학교 아이들을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짐작은 하였다.
동해 바다엘 가는 날 황달호는 누구보다도 일찍 출발지에 나타나더니 송민구에게 윙크까지 하였다.
“ 너 오늘 저녁 한 끼를 톡톡히 사야할 것 같다.”
“ 그게 뭔 소린데 .”
“ 아무 소리 말고 내가 신호를 던지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얼굴상을 장미꽃처럼 활짝 펴고 웃기나 하란 말이야 ,얼마나 멋진 아이를 데려왔는지 네가 보면 아마 나가자빠질지도 모르니깐 말이야.
”그게 정말이야 . “
황달호의 말이 흰 소리가 아니란 것은 몇 분 후에 만나게 된 이 이랑이란 여자애가 나타남으로 해서 증명이 되었는데 그 여학생은 인물도 잘 생기고 키도 훤칠한 것이 처음부터 송민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 어때 물건 괜찮지.”
송민구는 그날 처음으로 바다에서 이 이랑과 짝이 되어서 물속으로 들어가서 자맥질을 하기도 하고 고무보트를 붙잡고 수영 연습까지 하였는데 이이랑은 송민구보다 모든 것이 한 수 위였다. 더구나 수영을 얼마나 잘 하는지 수영을 하지 못하는 송민구에게 다음에는 수영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바다에서 나와서는 한 천막 속에서 구슬놀이까지 하였는데 황달호가 소개한 이상으로 민구 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이 이랑의 말을 들으니 그도 아직까지 남자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데 모처럼 친구들이 간다고 해서 쫓아오게 된 것이 그날로 송민구를 좋아하게 되었다면서 왜 갑자기 마음에 변동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고 농담까지 하는 것이었다.
송민구도 그날 이후에 이 이랑을 몇 번을 빵집에서 만나기도 하고 극장 구경도 하면서 한동안 친하게 지나려고 하였는데 송민구의 마음에 파도가 일기 시작하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이이랑에 대해서 어딘가 미심쩍은 면이 있다는 의심이 드는 것이었으니 그것은 날이 갈수록 자꾸만 거리감을 갖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송민구가 그 이유를 따져 보니 그에게는 송민구가 가장 싫어하는 험이 있었으니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이랑의 목소리가 허스키이고 그의 전화 목소리라도 들으면 학교 다닐 때의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이 이랑과는 그 후에도 몇 번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송민구의 마음에 돋아나는 상처는 점차 신경을 쓰게 하는 작용을 하였다.
황달호는 송민구가 이이랑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너 그를 수가 있냐.” 하면서 목소리가 살아가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였지만 민구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신경과민 현상으로 까지 발전이 되는 성 싶었다.
“ 이이랑 개인으로 봐서는 한 가지도 나무랄 데가 없는데… .”
사실 송민구가 허스키목소리를 싫어하는 까닭은 중학교를 다닐 때에 한 반에 덩치가 유도선수처럼 커다랗고 힘이 장사라고 하는 박유관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는 힘을 앞세워 훅닥하면 친구들을 괴롭혔는데 그 방법이 졸렬하기 짝이 없었다.
이를테면 목이 마르면 물을 떠오라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고 점심때가 되면 아무나 보고 빵 심부름을 시켜 걸리는 아이는 제 돈으로 사다가 받쳐야 했다.
아침 등교시간에는 규율부도 아닌데 등교하는 아이를 불러서는 용의가 단정치 못하다면서 발길질을 하거나 어떤 때는 차비가 없다고 친구의 호주머니를 뒤져서 돈을 뺏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매일 같이 벌어져도 반 전체가 그의 힘에 눌려 교실은 그의 왕국이었고 학교에서도 그의 행동이 학생신분을 벗어난 것을 알면서도 선생님들은 방관상태에 있었다.
그 중에도 가장 많은 괴롭힘을 당한 것이 송민구였는데 평소에는 말도 없고 외톨이로 지나게 되자 그를 불러서는 담배심부름을 시키고 심심하면 군대모양 원산폭격으로 기압을 주거나 수건을 던지고는 개처럼 물어오라고까지 시키면서 구경하는 아이들에게는 강제적으로 웃으라고 하여 웃지 않는 아이는 양동이를 머리에 씌워서는 공을 던져 찾아오라고 하여 제대로 찾지를 못하면 발로 걷어 내차서 나가곤드라지게 하였다.
이처럼 교실에서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학생들의 인격을 모독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데도 누구 하나 박유관의 행동에 제지를 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그가 어느 날 경찰 아버지를 둔 아이의 돈을 뺏다가 형사에게 덜컹 걸려 그동안의 여죄로 인해 소년원으로 송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 아이가 자기의 힘을 자랑으로 학생을 괴롭히다가 결국은 소년원으로 가게 되자 학교에서는 그 다음부터 아이들의 집단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전담교사를 배치하여 더 이상의 피해가 발생치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박유관의 목소리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오싹할 정도라고 아이들이 말을 하였는데 그의 목소리가 특이한 허스키 목소리였던 것이다.
이 이랑의 목소리를 들으면 박유관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어서 송민구는 한동안을 고민을 하다가 더 이상 그와의 접촉을 끊고 헤어진 것이다.
송민구가 김순자를 마음에 두고 사귀려 하던 중에 홍 반장과 가까운 것 같은 기미를 느끼게 되자 송민구의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중에 하루는 송민구가 근무조일 때에 전 날 상차한 수출물품의 수가 부족하다는 연락이 왔고 그것을 확인해 본 결과 출고 담당한 직원의 연가로 인해 그 날은 반장 홍경식이 처리를 했다는 것이다.
송민구는 곧이곧대로 그것을 상황실에 보고를 하였고 다음날 홍경식 반장에게 그 상황을 알리자 홍경식은 금방 얼굴색이 변하더니 다짜고짜 민구의 뺨을 후려치는가 하면 발길질을 가하는 것이었다.
“ 너 이 새끼 신입사원이라서 봐주려고 하였는데 내가 망가지는 꼴을 보려고 이제 보고를 하는 것이냐.”
홍경식은 발길질도 모자라서 나중에는 자빠트려 놓고는 손발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송민구가 녹초가 되도록 패는 것이었다.
일어나지도 못한 송민구의 눈에서는 피까지 흘러내리자 옆에 있던 김순자가 대들어서 “반장님 용서해 주셔요.” 하고 애걸을 하며 팔을 붙들었던 것이다.
그러자 “ 너는 뭐야 .” 하면서 김순자까지도 떠밀어서 쓰러지게 하는 것이었으니 반장도 화가 어지간히 났던 모양이었다.
송민구는 자기의 임무를 다하고 나서도 반장에게 발길질을 당한 것이 억울하였지만 재하자불복(在下者不服)할 수는 없어서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데 그때 사장님이 지나시다가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었고 이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얼굴이 금방 일그러지면서 아무 말도 없이 나가는 것이었다.
송민구는 바로 사장님의 배려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고 이날 밤 김순자는 꽃다발을 들고 조용히 송민구가 입원하고 있는 병실의 머리맡에다가 두고 나간 것이다.
그런데 이튿날 날 아침에 회사에서는 직원간의 불상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홍 반장을 경비실로 인사조치를 하였다.
사실 김순자도 회사에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송민구가 들어오자 그의 첫 인상이 마음에 들어 사귀고 싶은 마음에서 가까이 하려고 하였으나 그가 입사를 한 다음 날 부터 홍 반장이 매일같이 업무협의란 핑계로 김순자를 붙들어 놓는 것이었으니 그가 억지로 따르긴 하였으나 그것이 역겹게 싫어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하루는 김순자가 송민구로 하여금 가급적이면 함께 퇴근을 하도록 종용을 하였고 송민구는 김순자를 기다리느라 이따금씩 전화까지 하다 보니 반장은 송민구가 미웠고 분풀이를 한 것이 사장님에게 들키고 말았던 것이다.
홍 반장은 순자가 입사하기 전에는 미스 박춘자에게 잔뜩 눈독을 드리고 있었고 박춘자 또한 홍 반장이 접근하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드리고 수시로 저녁을 먹거나 휴일이면 바다나 산 이며 유명관광지를 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다.
그런데 김순자가 입사한 이후 홍 반장의 태도가 김순자 곁으로 접근하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평소에도 성격이 날카로운 박춘자로서는 질투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이었다.
다 된밥에 김순자라는 계집애가 들어오자마자 재를 뿌리는 격이 되고 말자 박춘자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어떻게 하면 홍 반장의 마음을 되돌아오게 하는가 하는 궁리를 하던 중에 이런 불상사가 발생한 것이니 박춘자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홍 반장이 다른 건물로 옮겨 가자 바로 박춘자를 반장으로 승진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박춘자는 다음날부터 김순자가 출근하는 시각부터 체크를 하였는데 김순자는 그날따라 사정이 있어서 10분가량을 늦게 출근을 하자 반장은 즉각 순자를 불러 세우는 것이었다.
“ 김 순자. 너 어느 놈과 붙어 지나다가 이제 왔냐. 그래 그 놈의 맛이 좋더냐. 냄새난다. 이 더러운 년아 그러니까 지각을 했지. 튀에.”
박춘자는 김순자를 향하여 몰상식한 욕을 퍼붓는가 하면 얼굴에다가 침까지 탁 뱉으니 침은 얼굴 한가운데로 포물선처럼 엉겨 퍼졌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박춘자에게 당하자 김순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 반장님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옛날에 학교 다닐 때에 지각 한번 하지 않았나요.”
“ 뭐야 이년이 간덩이가 부어도 단단히 부었구나.”
박춘자는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순자의 뺨을 후려치니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순자는 폭 고꾸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김순자는 순간 약이 바짝 올라서 한마디를 더 한 것이다.
“ 나 오늘 이 사실을 사장님한테 직접 말씀드리고 고만둘 터이니 그런 줄이나 아세요,”
평소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던 김순자의 입에서 어떻게 그렇게 속사포처럼 말이 나왔는지 김순자 자신도 신기하였다.
김순자가 하도 빡세게 나와서 그런지 박춘자는 그 말에는 대꾸를 하지 못하고 씽하고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박춘자는 홍 반장을 채간 화풀이로 김순자에게 손을 대고 몹쓸 소리를 했지만 만일 김순자가 사장님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면 자기의 생명은 끝이라는 생각을 하여서 그런지 그 다음날엔 아무 소리도 하지를 않았다.
자칫하면 홍 반장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겁을 먹고 납죽 엎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까지 사장님의 어떤 지시도 내려지지 않자 박춘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 싶게 다시 김순자에게 대하여 건건이 트집을 잡고 완성된 제품을 들고 나와서는 김순자가 잘못하여 제품에 손상이 갔다고 물건을 책상에다가 패대기까지 치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송민구가 하루는 계획적으로 박춘자가 시키는 일을 늦도록 하지 말라고 방해를 놓은 것이다.
그러자 박춘자는 송민구를 불러 세우더니 왜 순자가 하는 일에 방해를 놓느냐면서 “너도 순자와 한통속이냐 이놈아 ” 하고는 악을 쓰며 발을 구르다가 송민구의 멱살을 잡으려는 찬 라에 송민구가 슬쩍 피하자 박춘자는 허공을 잡으면서 나뒹굴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넘어진 박춘자가 일어나지를 못하더니 “이이구 다리야” 하면서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었다.
실로 순간의 일로 박춘자가 일어나지를 못하고 울고 있자 송민구는 모르는 척 할 수도 없어서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X레이를 찍어본 결과 발뒤꿈치 뼈에 금이 갔다는 것이었다.
박춘자는 그로 인해서 석 달가량을 입원해야 된다는 진단을 받아 입원을 하게 되니 박춘자의 임무를 이번에는 송민구가 맡게 된 것이다.
그러자 며칠 후인 어느 날 김순자는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만면에 웃음을 띤 얼굴로 송민구를 보면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하여 두 사람은 모처럼 바닷가로 나가서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는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갈매기가 유유히 날아다니는 바닷가를 거닐면서 김순자는 심적으로 정말 힘이 들었다는 말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이날 김순자는 모처럼 송민구의 손을 처음으로 잡으면서 얼굴은 쳐다보니 송민구도 김순자를 내려다보면서 만남의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이랑의 손을 처음으로 잡을 때도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마음에 있던 김순자와 함께 있으니 송민구의 마음은 하늘로 오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저기 수평선 좀 보아요. 자그마한 배가 지금 우리 두 사람을 향해서 들어오고 있어요. 우리 저 배를 타고 멀리멀리 가서 살아요. 네.”
송민구가 배를 바라보며 말을 하자 김순자는 그 말이 대견스러웠는지 고개만 끄덕거리는 것이었다.
“ 저 배에 지금 무슨 고기를 잡아가지고 올지 알아맞혀 보아요.”
“ 글쎄요.”
“ 그것도 몰라 나는 이미 다 알고 있는데.”
“ 그것을 어떻게 아시지요.”
“ 저기 배에서 휘날리는 깃발을 보아요. 거기에는 사랑으로 가득찬 물고기를 잡았다는 신호거든요.”
“ 호호 그렇겠네요.”
이날 송민구는 바닷가 모래밭에 앉았다가 일어서면서 자기도 모르게 김순자를 꼭 끌어안았다.
“ 사랑해.”
송민구는 이날 처음으로 김순자의 얼굴에 자기의 얼굴을 대보았다.
“ 저기 누가 보아요.”
“ 응 누가 본다구.”
송민구는 얼른 사방을 훑어보았으나 집 더미 같은 흰 파도만 모래사장으로 밀려들 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은 보이지를 않았다.
이날을 계기로 두 사람의 사랑의 노래는 파도를 헤치며 떠나가는 화물선처럼 거침이 없었고 이내 두 사람은 장차 결혼까지 하자는 약속까지 하였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을 한 송민구가 김순자 출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좀처럼 오지를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출근시간이 지나서야 연락이 왔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을 시킨다면서 결근처리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송민구는 김순자의 어머니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었고 김순자도 인사를 드리자는 소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출가하지 않은 언니를 보아서 동생이 먼저 애인을 소개한다는 것이 미안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였던 것이다.
송민구는 애인의 어머니가 입원을 하셨다는데 안 가볼 수도 없어서 퇴근 후에 병원엘 가겠다고 하자 김순자는 구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송민구는 할 수 없이 다음에 약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 때가서 곱빼기로 인사를 드리기로 하였다.
그런데 얼마 후에 예상은 하였지만 송민구에게 군대에 입대하라는 영장이 나왔으며 3개월 후에 논산훈련소로 집결하라는 것이었다.
송민구는 그동안 매년 실시하는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심장에 이상이 있다면서 병역연기가 되더니 이번에는 신체검사에 합격을 하여 영장이 나왔던 것이다.
“ 군대 영장이 나왔다고요. 그럼 군대를 가야 한단 말이에요. 그동안 나는 어떻게 해.”
김순자는 송민구의 품에 안기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송민구는 할 말이 없었다.
“ 군대 생활 2년이면 제대할 터인데 뭘 그리 걱정을 해요.”
송민구는 영장을 받은 이튿날 아버지께도 소식을 알려드리자 아버지는 당장 회사를 고만두고 집으로 내려와서 농사일이나 돕다가 입대를 하라는 말씀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김순자에게 사표를 낸다는 말을 하자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던 어리광을 피우면서 못 간다고 울면서 매달리는 것이다.
“2년이면 금방이야 . 그동안에 우리의 사랑은 더 깊어질 거야 .”
송민구는 그날 저녁을 먹자고 김순자를 달래보았지만 그는 음식에는 입도 대지를 않고는 내내 울기만 하였다.
“ 눈 깜박 할 사이에 2년이란 세월이 도망갈 거야. 너무 걱정 말아요."
" 사람의 일을 어떻게 알아요. 난 어떻게 살아야 해. 응 대답 좀 해봐. “
밤늦도록 김순자를 달래 보았지만 그의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튿날 오후에 회사에서 사장님을 뵙고 영장이 나와서 부득이 사표를 낸다고 하자 사장님은 착실한 직원을 놓진 다면서 이다음에 제대를 하게 되면 다시 오라면서 송별 금까지 주었다.
다음날 아침 고향으로 내려가니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동안 많이 초췌해지신 것 같았다.
매달 월급을 타면 농사자금을 보내드리긴 하였지만 어머니는 그 동안에 아들이 보낸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꼬박 꼬박 모아서 아들 장가 들일 때 쓰기로 하셨다는 것이다.
그 날 저녁 아버지가 부르셔서 안방으로 들어가니 아버지는 그동안 며느리를 보기 위해서 엄마와 같이 색싯감을 물색하던 중에 마땅한 신붓감을 골라 놓았으니 내일 아침 조반 후에 신부 집에 갈 준비를 하라는 청천 벽력같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닌가.
민구는 아직 아버지의 말씀을 한 번도 거역해 본 바가 없이 자라왔고 지금까지도 아버지의 말씀이라면 군대의 명령처럼 맹종을 하면서 살아왔다.
아버지는 아들이 군대 가기 전에 며느리를 보실 계획을 이미 세운 것이 1년 전의 일이고 두 분은 선까지 보셨으며 신부 집에서 결혼 날짜를 잡아 보내기만 하면 바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다는 말씀을 하시니 아! 민구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민구는 군대를 제대하면 바로 순자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하였고 장모님짜리도 그때 가서 뵙기로 한바가 있는데 부모님은 엉뚱한 계획으로 자식을 곤궁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니 민구는 그날 밤에 한잠도 자지를 못하고 일단은 아버지의 명령대로 신부를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섰던 것이다.
“ 너도 잘 알 것이야 . 얘기를 들으니 너와 같이 학교를 다녔다고 하더라. 아이가 눈썰미가 있고 맏딸로서 집안의 대소사까지 잘 챙긴다고 하니 우리 집에 오면 집안 살림은 잘 할게야.”
아버지의 말씀에 묵묵부답으로 쫓아가다 보니 민구가 초등학교 6학년 때에 한 학년 아래로 다녔다는 오경자가 신붓감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제야 생각을 하니 오경자는 얼굴이 예쁜 편이고 연극과 동화를 잘 하여 학교에서는 뽑혀서 다녔는데 그네가 서울에서 살다가 시골로 이사를 온 것은 경자의 어머니가 병을 고치려고 내려온 후에는 건강을 회복하였다고 하였다.
그날 민구는 경자의 부모에게 인사를 드렸지만 외출을 한 오경자는 만나지를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오경자네 집에 가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양가의 부모님들은 이미 사둔 댁으로 호칭까지 하며 친숙한 정도를 넘어선 사이가 되어 있었다.
민구는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에게 사귀는 처녀가 있으며 군대에 갔다 와서는 결혼식을 올리려고 약속까지 하였으니 지금까지의 혼담을 없던 걸로 해달라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어머니가 그럴 수가 없다면서 결혼이 성사가 되지 않으면 너를 아들로 보지도 않을 터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다.
민구가 아버지 말씀대로 오경자와 결혼을 한다면 김순자와 찰떡같이 한 약속은 어찌되며 민구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민구는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할 처지도 되지를 못하고 고민을 하던 중에 집으로 내려온 지 한 달 만에 결혼식은 전격적으로 구식으로 올린 것이다.
민구는 집으로 내려온 이후 순자에게는 이렇다 할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순자는 사흘도리로 편지를 보내오는 것이었으니 민구는 할 수 없이 우선 집배원에게 편지배달을 중지시키고 직접 가서 우편물을 찾기로 하였다.
언젠가 부인인 오경자가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르지만 민구로서는 순자와의 관계를 우선은 비밀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아버지가 아니라면 민구는 순자와의 결혼을 당연시할 정도가 되어 있는 판인데 아버지로 인해 모든 산통이 깨진 것이니 민구는 군대를 가서도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김순자는 민구가 입대를 한 뒤 부터는 1주일 간격으로 훈련소로 편지를 보내왔다.
편지가 오면 올수록 송민구의 마음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이 겹치고 훈련을 나가서 총을 쏘아도 제대로 맞을 때가 한 번도 없자 조교는 상판대기는 똑똑하게 생긴 놈이 총을 지지리도 못 쏜다고 타박을 주더니 어느 날은 민구의 어깨를 툭 치면서 “ 총 좀 잘 쏘아보라우.” 하며 싱긋 웃기까지 하였다.
“군대에서는 모든 고민을 잊어버려야 한다. 아무리 집의 마누라 생각이 난다 할지라도 총구를 볼 때에는 정신 집중을 해야 명중이 되는 것이야 알겠나,”
조교가 그날도 민구를 꼬집으며 “백발백중.” 하였지만 민구의 생각 속에는 두 여자의 얼굴이 번갈아서 떠올라 총구는 하늘을 향하는 것이었다.
“ 송민구 니 고민있재 무신 고민이 그리도 많노, 얼굴에 화악 씌어 있구만 .”
조교는 사람을 많이 다루어서인지 민구가 제대로 총을 쏘지 못하는 것이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였던 가 보다.
그렁저렁 논산훈련소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배속이 된 곳은 전방에 있는 철원 보병부대의 0P고지였다.
후전선이 내려다보이는 고지에서 보초를 서게 되니 처음에는 두렵기도 하였지만 자기 한 몸으로 해서 피해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가 새로워지자 그때부터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싹 가시는 것이다.
전방에서의 긴장된 생활은 민구에게는 처음에는 견딜 수 없는 고독이 엄습해오는 것이었지만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니 군인으로서의 의무감이 굳은 마음을 다지게 하는 것이었다.
일선으로 배치된 뒤에 민구는 순자에게 휴전선 고지에서 처음으로 보초를 서다 보니 너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애절함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런데 며칠 뒤에 벼락같이 답장이 왔는데 전방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면서 매일같이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절절한 내용이었다.
순자의 편지를 받고 보니 엄연히 부인에게는 편지를 하지 않고 애인에게만 한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되어 그로부터 민구는 더욱 괴로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입대 전에 부모가 정해준 결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순자에게 솔직하게 해주었어야 하는 것을 하는 후회가 매일 저녁 가슴을 쓰리게 하였다.
순자에게서는 그전과 같이 일주일에 한번 꼴로 편지가 오는 것이었으니 편지를 받을 때마다 민구의 괴로움은 더 해지는 것이었다.
날마다 근심과 걱정이 생기다 보니 민구는 어떻게 하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 하는 또 다른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람이 살아가자면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민구처럼 사랑으로 인한 괴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의 게시판을 보던 민구는 정신이 번쩍 들면서 “ 바로 이거다 .”하고는 즉시 행정실로 뛰어가서 그 내용을 파악해 보았던 것이다.
민구에게는 그런 돌파구라도 뚫고 나가야 살 것 같아서 자세히 알아보니 가능하다는 답변을 주는 것이어서 ‘야호’하고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 내용이란 바로 ‘월남파병 지원에 관한’ 것이었고 만일 파병대열에 끼게 된다면 앞으로 3년 6개월간의 복무기간엔 지금과 같은 걱정에서 벗어날 것 같았다.
지원서 제출 후에 파월여부는 추후 통보가 될 것이며 파월결정이 나게 되면 1차의 휴가를 보내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민구는 절차에 따라서 지원서를 꼼꼼히 작성을 하고 제출을 하자 이에 합세하는 병사들의 수도 많아져서 행여 차출에서 제외되지는 않을 까 하는 걱정까지 생기는 것이었다.
매일 같이 고된 훈련을 마치고 보초를 서고 돌아와서는 지원한 내용에 대해서 결과가 하달되기를 기다렸으나 보름이 지났는데도 감감 무소식이다.
그런데 지원서를 제출한지 한 달 만에 송민구는 희망했던 대로 월남으로 파월된다는 확정통지서를 받게 된 것이다.
파월출정명령을 받고 나자 부대장님은 30명의 파월출전장병들을 부대장실로 집합을 시키고 는 국위 선양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베트콩 섬멸작전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돌아오라고 하였다.
두더지처럼 땅굴 불특정지역에서 출몰하는 베트콩과의 전투에 임한다는 것은 생명을 내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부대장의 훈시를 들은 장병들은 그러나 애국의 선봉으로 나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월남 출정명령에 따라 파병전 전투훈련장인 강원도 화천군 오음리로 향하니 주민들과 인근 학교의 학생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을 해 줄때에는 뿌듯한 조국애를 느낄 수가 있었다.
전투훈련은 한 달간이었고 훈련이 끝나자 장병들은 바로 열차를 이용하여 부산항 제 3부두로 집결하였다.
제 3부두에는 월남으로 출항하는 대형 군 수송선이 대기하고 있었고 파월장병들이 승선하여 출항할 때에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환송을 해주었다.
파월장병을 실은 수송선이 월남의 나트랑 항에 도착을 한 것은 부산항을 떠난 지 일주일만인 1972년 11월1일이다.
나트랑 항에 한국군의 배가 입항을 하자 꽃 화환을 들은 월남의 아오자이를 걸친 꼬까 이들이 열렬한 환영을 해 주었는데 한국 군인으로서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다.
월남 도착 후에 송민구는 주월 한국군 사령부 정보부대에 배속을 받았으며 나트랑 항구에서 불과 4km 떨어진 지점이다.
입항 후에는 장병들에게는 당분간 외출허용이 되지를 않았으며 보름동안은 부대 안에서 총기류의 정비를 하거나 보초를 서면서 보내게 되었다.
이는 나라도 설고 지리도 선 장병들로 하여금 월남의 기후와 지리에 다소나마 익숙하게 하려는 작전 적 배려의 일환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2주가 지난 어느 일요일 새로 파월된 장병 몇몇이 고참병의 인 솔하에 나트랑 항구 밖으로 처음으로 나가서 보니 월남 도착할 때에는 미처 보지 못하던 야자나무의 잎들이 바람에 출렁거리고 해변에는 군데군데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눈에 띄어 전쟁만 아니라면 참으로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이 새로웠다.
송민구는 파병 전에 무엇보다도 3년 이상의 부대 생활을 하려면 월남 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간단한 월남 어를 저녁마다 익히고 어디에선가 한번 써보고 싶던 일요일 거리를 지나면서 만난 사람들이 있으니 다섯 명의 아가씨들이 뭐라고 짓거리며 옆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민구는 서슴지 않고 말을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 짜오꼬 만조이 컴.” ( 아가씨 안녕하세요.)
민구가 서툴게 인사를 하자 이들은 홱 돌려다보더니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짜옹 만조이 컴.” “짜옹 만조이 컴.” (아저씨 안녕하세요.)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월남인 고유의 삿갓모자에 남색 아오자이 그리고 흰 바탕의 바지차림새였는데 한국에서는 보지 못한 낯선 의상이었다.
민구는 다시 겨우 생각이 난 단어를 떠듬거려 보았다.
“또아라 다이항 ,또이 헝헝 득갑꼬.” ( 나는 한국 사람이고 아가씨를 만나서 기쁩니다)
그러자 그들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펴 보이며 소리 내어 웃는 모습이 얼마나 아리따운지 몰랐다.
그런데 그중의 한 여인이 다가오더니 손짓발짓으로 다음에 다시 여기서 한번 만나자면서 자기의 이름을 메모지에다가 적어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옹엥티하오’ 라고 하였는데 몇 번을 들어도 흉내 내기 힘들어 다시 부른다는 것이 “옹헤이야” 하였더니 아니라면서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그가 사는 곳은 바짬동거리 79번지라고 하였는데 나중에 먼저 파월된 병사의 말을 들어보니 그곳은 외국인을 상대를 해서 밤 장사를 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월남에서 앞으로 몇 년간 살자면 이곳 사람들을 알아놓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민구의 마음은 학교 다닐 때에 여학생만 만나도 가슴이 두근거리듯 기분이 들뜨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 후의 일요일이었다.
아침이 밝자 하늘은 맑고 바람까지 상쾌하게 불어오고 있어 그날이야말로 외출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낯선 굉음이 들려와서 하늘을 쳐다보니 미군의 쌍발 수송기가 지나가는데 비행기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펄펄 닳는 남국에서 크리스마스 쏭이 들려 날짜를 따져 보니 그날이 12월25일이었으니 눈이 펄펄 내릴 때의 크리스마스만 생각했던 민구는 묘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김순자를 한창 사귀고 있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그날은 마침 며칠 남지 않은 새해를 축복이나 하듯이 눈이 펄펄 날리고 있었는데 명동을 걸어가다가 어느 빵집에 들려서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순간을 떠올리니 순자가 더욱 그리워지고 어느 결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순자와의 미래를 고민하던 중에 그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온 곳이 월남 땅이고 여기에 있는 동안 마음을 다잡고 순자와의 인연을 끊어야겠다는 결딴을 내려야 하는데 다시 그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날 민구는 더 이상 순자에게 편지를 쓰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지면 가질수록 더욱 순자가 그리워지는 것이었으니 민구는 잠도 제대로 자지를 못하였다.
민구와 고참병은 다음 일요일 ‘옹엥티하오’가 일러준 주소를 찾아가자고 하였는데 그날 밤 난데없이 베트콩의 박격포의 공격을 받게 되자 이곳이 최전선이란 생각에 마음은 불안이 겹치는 것이다.
포탄은 한군데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부대막사와 민간이 살고 있는 마을에도 무시로 떨어지고 있었다.
포탄이 민구네 막사며 주위에 무차별적으로 떨어지자 병사들은 급하게 M16을 꺼내들고 모래주머니를 쌓아놓은 벙커 안으로 피신을 하는 것이어서 민구도 겁이 나서 뒤쫓아 가니 거기에는 이미 많은 병사들이 들어가 있어서 더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시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병사들이 우왕좌왕하자 그 전율이 감도는 속에서도 키들거리며 웃어대는 병사들이 있었다.
베트콩들은 미군과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막사에다 20여 분간의 짧은 시간에 수도 없이 박격포를 쏘고는 이내 지하로 숨어든다는 것을 알기에 병사들은 그것에 익숙하다 보니 웃는다는 것이다. 베트콩들은 이런 전법으로 곳곳을 누비며 파괴를 일삼으니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니 언제 박격포가 떨어진 곳이냐 싶게 푸른 하늘은 한국의 여름 하늘처럼 맑았다.
아침에 부대의 확성기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으니 지난밤에 공격으로 몇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은근히 언젠가 만나서 주소를 알려주던 ‘옹엥티하오’의 동네가 궁금하여 일요일 아침 일찍 민구는 조심스럽게 고참병에게 말을 하고 함께 바짬동을 물어서 찾았을 때에 그곳 79번지라는 곳은 박격포의 공격으로 집들은 지붕이 날아가 잔해들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월남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렇게도 반기면서 자기의 이름까지 알려주며 한번 찾아오라고 하던 그 아가씨를 만나지 못하게 되자 민구의 마음은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혹여 그 처녀가 박격포에 맞아서 부상을 당한 것도 같고 어쩌면 생명까지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가 가엽고 그의 소식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알아보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알 수가 없었다.
전쟁이란 이렇게 한 가족과 한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기도 하는 것이니 전쟁은 결코 우리 인류에게는 재앙이고 저주인 것이다.
송민구는 그 후에도 여러 번 그 번지의 주위 또는 그들이 옮겨갔을만한 곳을 알아보았지만 다시는 ‘옹엥티하오’를 만나지 못하고 말았다.
전투는 매일같이 계속되고 어떤 때는 정글지대에서 베트콩에게 포위되었다가 가까스로 아군의 구조를 받아 살아나오기도 하였다.
그동안에 순자에게서는 편지가 오지를 않았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월남파병의 일원이 될 것 같다는 출병소식만 간단히 알려주고 다시 연락을 할 것이라고 한 이후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으니 순자가 민구의 주소를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순자는 민구가 떠났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이때나 저때나 하고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고 월남전에서 매일같이 전사자가 발생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애를 많이 태웠겠지만 그러나 민구는 한번 먹은 마음을 결코 돌이켜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였지만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 순자야 너무너무 사랑하고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우리 두 사람의 미래가 결코 평탄치 않을 것 같아서 이렇게 모질게 마음을 먹고 있으니 나를 용서해 줘.”
그러면서도 이런 마음을 또 한편으로 갖게 되니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사실 민구는 아버지가 입대 전에 결혼을 해야 된다고 말씀을 하셨을 때 ‘애인이 생겨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 드릴수가 없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리고도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이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그 말을 들으시는 순간 아버지는 다시는 네 얼굴을 보지 않겠다는 불호령을 어머니와 똑같이 내리실 것을 너무도 잘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구의 부대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베트콩의 침공을 받고 동료 병사들 중의 일부는 다시는 돌아올 수없는 강을 건넜지만 민구는 그래도 한때 다리에 가벼운 부상을 입어 후송을 당하긴 하였지만 3년 6개월의 임무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마침내 귀국선 뱃머리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 볼 수가 있게 되었으니 감개무량한 마음 이루 측량할 수가 없었다.
귀국선의 배를 타고 보니 자고 깨면 전투복을 벗지 못하고 생활하던 지난날이 너무도 생생하게 머리에서 지워지지를 않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민구는 마음을 어디다가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심란하였고 순자와의 장래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고민 고민을 하다가 그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월남파병을 지원하였는데 막상 임무를 마치고 배에 오르니 또다시 마음은 순자에게로 달려가는 것이다.
부산에 내려서 부대로 귀대하기 전에 민구가 해야 할 일은 우선 순자를 찾아보는 일이었다.
그에게 그동안 편지 한 장전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만나게 되면 먼저 입대 전에 결혼을 불가피하게 했다는 것과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라도 월남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었다는 말까지 하려던 참이다.
그런데 막상 인천에 와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세워진 평화공원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깜짝 놀란 것은 순자가 살던 정하동에는 아파트 시공이 한창이어서 옛날의 흔적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순자가 살던 동사무소를 찾아서 주민등록상황을 확인해 보았으나 순자가 어디로 갔다는 행선지가 나와 있지를 않았다.
지난 3년6개월 동안에 세상은 변하고 순자는 그가 살던 동네에서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만 것이니 민구는 이제 순자를 영영 찾을 수가 없다는 말인가?
민구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