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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학사에 빛나는 歐陽修(구양수)의 「醉翁亭記」(취옹정기)

중국 안휘성의 취옹정 모습
環滁皆山也 其西南諸峰 林壑尤美 望之蔚然而深秀者 瑯琊也
환저개산야 기서남제봉 임학우미 망지울연이심수자 낭야야
저주(滁州)는 모두 산으로 둘러있고 그 서남쪽의 여러 봉우리는 숲과 골짜기가 더욱 아름다운데 바라다 보이는 울창하고 몹시 수려한 곳이 낭야(琅琊)이다.
※ 저(滁): 강이름 저. 울(蔚): 풀이름 울.
랑(瑯): 옥이름 랑. 야(琊): 땅이름 야 울연(蔚然): 빽빽하다. 울창하다. 성대하다
山行六七里 漸聞水聲 潺潺而瀉出於兩峰之間者 釀泉也
산행육칠리 점문수성 잔잔이사출어양봉지간자 양천야
산길로 6~7리를 들어가면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데, 졸졸 양쪽 봉우리 사이에서 쏟아져 나오니 여기가 양천(釀泉)이다.
※ 잔(潺): 물흐르는소리 잔. 사(瀉): 쏟을 사. 양(釀): 빚을 양
峰回路轉有亭 翼然臨于泉上者 醉翁亭也
봉회로전유정 익연림우천상자 취옹정야
그 봉우리로 가는 길을 따라 돌아 오르면 정자(亭子)가 하나 있는데 날개를 펼친 듯이 양천(釀泉)위에 붙어있는 것이 바로 취옹정(醉翁亭)이다.
作亭者誰 山之僧智僊也 名之者誰 太守自謂也
작정자수 산지승지선야 명지자수 태수자위야
그 정자를 지은 이가 누구인가? 이 산의 스님 지선(智僊)이다. 정자의 이름을 지은 자는 누구인가? 태수(太守) 스스로 지었노라.
※ 선(僊): 춤출 선
太守與客來飮于此 飮少輒醉 而年又最高 故自號曰醉翁也
태수여객래음우차 음소첩취 이년우최고 고자호왈취옹야
태수는 손님들과 더불어 찾아와 예서 술을 마시는데 조금만 마셔도 쉽게 취하고, 나이가 또한 가장 많아서 그런 연고로 스스로의 호(號)를 취옹(醉翁)이라 하였다.
※ 첩(輒): 문득 첩, 첩취(輒醉): 쉽게 취하다
醉翁之意不在酒 在乎山水之間也 山水之樂 得之心而寓之酒也
취옹지의부재주 재호산수지간야 산수지락 득지심이우지주야
취옹(醉翁)의 뜻은 술에 있지 않나니 산수(山水)의 사이에 있고
산수(山水)의 즐거움을 마음껏 얻고자 술에 의지할 뿐이다.
※ 우(寓); 머무를 우
若夫日出而林霏開 雲歸而岩穴暝 晦明變化者 山間之朝暮也
약부일출이임비개 운귀이암혈명 회명변화자 산간지조모야
해가 떠오르며 숲에 안개가 걷히고 구름이 돌아오면 바위동굴이 어두컴컴해 지는데 그렇게 어둡다 밝게 변해지는 것이 산속의 아침저녁이다.
※ 비(霏): 눈펄펄내릴 비
약부(若夫)…에 대해서는, …와 같은 것은
野芳發而幽香 佳木秀而繁陰 風霜高潔 水落而石出者 山間之四時也
야방발이유향 가목수이번음 풍상고결 수락이석출자 산간지사시야
들꽃이 피어 향이 그윽하고 아름다운 나무가 빼어나 그늘이 무성하며 바람은 높고 서릿발이 산뜻하다가 물이 줄어들며 돌들이 드러나나니 이것이 산간(山間)의 사계절(四季節)이다.
朝而往 暮而歸 四時之景 不同而樂 亦無窮也
조이왕 모이귀 사시지경 부동이락 역무궁야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데 사계절의 경치는 똑 같지 않은 즐거움으로 또한 다함이 없도다.
至於負者 歌于塗 行者 休于樹
지어부자 가우도 행자 휴우수
짐을 진 자는 길에서 노래하고 길손은 나무 아래서 쉬고,
前者呼 後者應 傴僂提攜 往來而不絶者 滁人遊也
전자호 후자응 구루제휴 왕래이부절자 저인유야
앞에 가는 사람이 부르면 뒤에 오는 사람이 호응하고 허리 굽은 노인은 손을 잡아 이끌어 주며 오가는 사람이 끊어지지 않으니 저주사람들의 유람하는 모습이라.
※ 구(傴): 구부릴 구. 루(僂): 구부릴 루
臨溪而漁 溪深而魚肥 釀泉爲酒 泉冽而酒香
임계이어 계심이어비 양천위주 천열이주향
시냇가에서 고기를 잡는데 개울이 깊으니 고기가 살찌고 양천(釀泉)으로 술을 빚으니 물이 맑아서 술이 향기롭고,
※ 열(冽): 찰 렬
山肴野蔌 雜然而前陳者 太守宴也 宴酣之樂 非絲非竹
산효야속 잡연이전진자 태수연야 연감지락 비사비죽
산에서 안주라야 들나물들로 이것저것 섞어서 앞에 진열해 놓은 것이 태수의 연회(宴會)이고 잔치가 흥겹게 즐거운 것도 현악기도나 관악기 때문은 아니다.
※ 속(蔌): 푸성귀 속
射者中奕者勝 觥籌交錯 起坐而諠譁者 衆賓歡也
사자중혁자승 굉주교착 기좌이훤화자 중빈환야
투호(投壺)에서 살을 명중하고 바둑으로 승자를 겨루며 뿔잔을 부딪치고 산가지를 섞는데 일어났다 앉았다 하며 떠들썩하게 무리지어 손들이 즐거워 하는 모습이다.
※ 혁(奕): 바둑 혁. 굉(觥): 뿔잔 굉. 주(籌): 투호살 주.
훤(諠): 잊을 훤. 화(譁): 시끄러울 화 훤화(諠譁): 떠들다
蒼顔白髮 頹乎其間者 太守醉也
창안백발 퇴호기간자 태수취야
창백한 얼굴에 센 머리로 그 사이에 쓰러져 있는 자, 태수가 취한 것이다.
※ 퇴(頹): 무너질 퇴
已而夕陽在山 人影散亂 太守歸而賓客從也
이이석양재산 인영산란 태수귀이빈객종야
이미 석양이 산에 걸리고 사람들 그림자 어지러이 흩어지는데 태수가 돌아가니 객들도 모두 그 뒤를 따른다.
樹林陰翳 鳴聲上下 遊人去而禽鳥樂也
수림음예 명성상하 유인거이금조낙야
숲에 어둠이 깔리니 새들이 울며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는데 여기에서 놀던 사람들이 떠나니 새들도 즐거워함이다.
※ 예(翳): 가릴 예
然而禽鳥知山林之樂 而不知樂人之樂
연이금조지산림지락 이부지낙인지락
그렇게 새들은 산림의 즐거움을 알지만 사람들이 즐기는 낙(樂)은 알지 못하고,
人知從太守遊而樂 而不知太守之樂其樂也 醉能同其樂 醒能述以文者 太守也
인지종태수유이락 이부지태수지락기락야 취능동기락 성능술이문자 태수야
사람들은 태수를 따라 놀고 즐길 줄만 알뿐 태수가 그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임을 알지 못한다. 취해서 그들과 즐거움을 함께하고 깨어서는 이로써 글로 짓는 이가 바로 태수이다.
太守謂誰 廬陵歐陽修也
태수위수 여릉구양수야
태수는 누구를 이르는 것인가? 바로 여릉(廬陵)의 구양수(歐陽修)라오. 끝
<한글 해설문>
여기의 한글 해설문은 한조(寒照) 신흥식(申興植)선생의 글을 옮겨왔다. 한조 선생은 道家의 무위사상과 儒家의 도덕이념을 거쳐 佛家의 선(禪)사상에 흠뻑 빠져 평생 공부해 온 분으로서 현재 유마강원(維摩講院)을 운영하고 있다.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법구경(法句經), 채근담(採根譚), 직지(直指) 등 여러 종의 역서를 갖고 있다.
☞ 구양수(歐陽修)는 누구인가

취옹 구양수
구양수(歐陽修, 1007~1072)는 중국 송나라 인종 ~ 신종 때의 정치가ㆍ시인ㆍ문학자ㆍ역사학자이다.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
그는 정치가로서 유교원리를 통해 정계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당대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 평이하고 간결한 고문체 부흥에 힘썼다. 〈五代史記〉와 〈新唐書〉를 통해 전통 역사서의 형태와 범위를 확충했고, 정확한 기술과 도덕적 판단으로 당시의 인물과 제도를 평했다. ‘唐宋 8대가’의 한 사람이다.
구양수는 1030년 진사시험에 장원급제하여 서쪽의 수도였던 뤄양[洛陽]의 유수추관(留守推官)을 제수 받았다. 1036년 고위관리인 범중엄(范仲淹)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후난성[湖南省]의 하급관리직으로 강등되었으며, 이곳에서 1,000년에 이르는 정치적 혼란시대를 다룬 역사서 〈五代史記〉를 저술했다. 1054년 수도로 소환되어 한림원 학사가 되었다.
1057년에는 과거시험 위원장인 지공거(知貢擧:과거시험 위원장)에 임명되어, 고문체로 답안을 작성한 사람들을 합격시키는 등 자신의 문학관을 심사에 적용했다는 비판을 들었으나, 변려문보다 고문을 더 중시하는 획기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중국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한림학사로 기용되기 이전에 안후이 성[安徽省]의 추저우(湫州) 지사(知事)로 좌천돼 재직할 때 이 고장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에 매혹되어 더욱 술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호를 취옹(醉翁)이라 지은 뒤, 취옹정(醉翁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이 〈醉翁亭記〉라는 수필을 썼다. 이 글은 중국문학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출처 : daum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