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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리 블루
홍 성 암 (한국소설, 2016.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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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영진리는
음악처럼 파란 바람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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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바다가 출렁이다 내 두 눈에 녹아 블루로 잠긴다
하늘의 구름을 힘껏 차 올렸더니 블루로 가득 찬 하늘이 내려와
블루의 바다와 기-ㄴ 금을 그었다.
그곳에 블루의 빛나는 꿈들이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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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금 치며 석양을 향해 앉아 있는 물떼새의 방향에선
흰 이빨을 세우며 몰려와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풍성한 블루의 화음으로 퍼지면서 겹쳐진다
나는 영진리 바다 어디쯤 잠기고 있는 것일까
-- 공계열의 시 <영진리 블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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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준영이 영임이 누나를 처음 만난 것은 제법 추운 초겨울이었다. 폭풍이 일어 파도가 무섭게 일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밀려 왔다. 파도는 높은 산봉우리를 이루며 다가와서는 갑자기 무너졌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물보라를 흩날리며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두려움을 자아낼 정도였다. 바다가 무섭게 울부짖었고 그래서 놀란 갈매기들도 모두 숨어 버렸다. 파도는 무서운 짐승이 되어 이빨을 드러내어 으르렁댔다.
그런 바다의 해변에 어떤 누나가 바닷말을 줍고 있었다. 짧은 통치마를 허리까지 끌어올리고 파도가 밀려오면 저만치 도망갔다가 파도가 밀려가면 그만치 뒤쫓아 갔다. 누나의 맨살 종아리에는 바닷말들이 거머리처럼 꺼뭇꺼뭇 붙어 있었다.
“영임아. 영임아.”
초가집 마당에서 한 아주머니가 누나를 향해서 손짓했다. 그 누나가 바로 영임인 모양이었다. 영임이 누나는 모래톱 한쪽에 수북이 쌓인 바닷말을 손가락질해 보였다. 그러자 그 아주머니는 영임이가 모아둔 해초 쪽으로 다가갔다.
“제법 많이 주웠구나. 이만하면 저녁 한 끼는 되겠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영임이가 건져 둔 바닷말을 긁어모았다. 아마도 영임이 어머니인 모양이라고 준영은 생각했다. 영임이 어머니가 집 쪽으로 사라지자 바닷가에는 다시 영임이 누나뿐이었다.
준영은 자신도 몰래 영임이 누나 곁으로 다가갔다. 호기심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누나의 하얀 다리가 갈매기의 발목만큼 가냘프게 보였다. 찬 바닷물에 적셔져서 발목이 발갛게 얼어 있었다.
“얘. 얘.”
영임이 누나가 준영에게 소리쳤다.
“그렇게 가까이 오지 마라.”
“뭐라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누나는 커다랗게 소리치지만 파도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누나. 뭘 줍는 거야?”
준영이 그렇게 묻는 순간 영임이 누나의 하얀 발목을 파도의 흰 거품이 거머잡았다. 순식간에 파도가 무릎까지 기어오르고 통치마의 한 쪽 자락이 바닷물에 잠겼다. 파도에 쫓겨 준영에게로 바짝 다가온 누나가 다시 소리쳤다.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지? 저 파도 보아라.”
“누나가 줍는 게 뭐냐니까?”
“뭐긴? 이건 말치, 이건 보리해둥이, 그리고 이건 진저리….”
그러는 동안에 파도가 다시 이빨을 드러내며 밀려왔다. 파도가 이번엔 준영의 발목도 거머잡았다. 준영의 하얀 운동화가 바닷물에 흠씬 적셔졌다.
“그것 봐라. 가까이 오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그건 왜 줍는 거야?”
영임이는 준영의 물음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왜 줍다니? 먹으려는 거지.”
“그것 그냥 먹는 거야?”
영임이는 준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핏기가 가신 그녀의 핼쑥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돌았다.
“이건 말치라는 건데. 이걸 먹어 보겠니?”
준영은 영임이가 건네주는 말치를 받았다.
“그 노란 대궁이를 씹어보렴.”
누나의 말대로 노란 대궁이를 씹으니 달큼하고 짭조름한 맛이 배어나왔다.
“달지?”
준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파란 잎도 먹어 보아라. 겉껍질을 벗기고 속살만 씹어보렴.”
누나가 시키는 대로 겉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씹자 새싹같이 부드러운 바닷말의 맛이 혓바닥에 감겨 왔다.
“다른 것도 이렇게 맛있나?”
“이 보리해둥이는 초장과 버무려서 나물로 해먹고, 이 진저리는 쌀뜨물과 함께 죽을 쒀 먹는다. 그냥은 못 먹는다.”
영임이 누나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드리운다.
“그런 걸 넣으면 밥이 더 맛있나?”
“밥이 아니고 죽이다. 맛이야 있던없던 굶지는 말아야지.”
파도가 다시 밀려 왔다. 이번 파도는 매우 거칠어서 준영의 바짓가랑이가 사뭇 물에 잠겼다.
“저런. 옷을 다 버리겠다. 네 집은 어디냐?”
“읍내에 있다. 이모 집에 놀러 왔다.”
“저기 선주댁 말이냐?”
누나가 가리키는 산언덕의 큰 개와집이 준영의 이모집이었다. 이모집은 십여 척이 넘는 어선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 마을의 어부들은 대부분 이모네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다.
“그런 집은 이런 진저리 죽은 먹지 않을 게다.”
누나는 다시 파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거친 파도가 바다를 뒤집어 놓으며 바위에 붙은 바닷말들의 뿌리를 끊어 놓았다. 날씨가 춥고 궂어서 해변엔 영임이 누나와 준영이 뿐이었다. 가난한 누나네는 이렇게 해초들을 주워서 죽이라도 쑤어야 끼니를 때우게 되는 모양이었다. 누나는 파도를 따라 달려가기도 하고 파도에 쫓겨 도망치기도 하면서 파도가 몰고 다니는 해초들을 건져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내가 좀 도울까?”
준영은 가난한 누나를 돕고 싶다는 생각에 누나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안돼. 넌 위험해.”
누나가 거칠게 준영을 밀었다. 그 순간 큰 파도가 밀려와 비척거리는 준영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가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다른 파도가 다시 준영의 얼굴을 후려쳤다. 칵, 숨이 막혔다.
“얘. 어떻게 된 거니?”
누나가 파도에 뒹구는 그를 발견하고 달려 왔다. 준영이 비척비척 일어나 몸의 균형을 잡으려는 순간 더 큰 파도가 태산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바닷물에 뒤섞여 떠돌던 해초들이 무더기로 달려들었다. 준영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나. 누나.”
준영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다시 큰 파도가 그의 입속을 틀어막았다.
“저런. 저런.”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던 영임이 갑자기 파도 속으로 달려들었다. 그녀의 아랫도리에도 해초들이 무더기로 와서 감겼다.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영임이 고함을 지르며 준영의 팔을 잡았다. 다음 순간 밀려 온 파도에 둘은 함께 나뒹굴었다. 영임이 애써 주워 모았던 해초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 살려요!”
영임은 파도에 뒹굴면서도 연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 고함소리를 들어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파도가 높이 이는 황량한 바다에는 그들뿐이었다. 다시 큰 파도에 휩쓸리면서 준영은 잠수하듯 물속으로 빠져들었다. 영임이의 갈퀴 같은 손이 그의 옷자락을 휘어잡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준영은 숨이 콱 막히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준영은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오면서 따뜻한 피부의 감촉을 느꼈다. 누군가가 준영의 알몸을 안고 쓰다듬어주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이었다. 어깨와 등을 쓰다듬던 손에 점점 힘이 가해지더니 어느 순간 준영을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뭉클한 젖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벗은 여자의 젖가슴이었다. 준영의 몸이 꿈틀 움직였다.
“이제 정신이 드니?”
작은 속삭임이 귓속을 파고들었다. 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여기가 어디야?”
준영도 속삭이듯 물었다.
“우리 집. 이불속이다.”
벗은 알몸의 감촉이 좀더 또렷이 느껴졌다.
“엄마는 선주네 집엘 갔을 게다. 네 소식을 전하려고.”
누나가 좀더 세게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빠는 오래 전에 돌아 가셨다. 풍랑을 만나서.”
그래서 누나네는 가난한 모양이었다. 추운 겨울에도 파도에 발을 적시며 바닷말을 주워야 하는 모양이었다.
“춥지? 우리 집은 매우 춥다. 불 땔 나무도 없고.”
누나는 계속 속삭였다.
“이불도 이것뿐이다.”
누나는 가난한 것이 매우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옷도 단벌이다. 그걸 물에 적셔 놓았으니 입을 것도 없다.”
누나의 홧홧한 입김이 귓볼에 느껴졌다. 이상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숨이 가빴다. 준영이 이불을 들치려니까 누나가 다시 속삭였다.
“그냥 잠자는 척해라. 엄마가 오시는 모양이다.”
바깥에서 서둘러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래. 우리 준영이 무사하단 말인가?”
이모의 목소리였다.
“다행히 제 딸년이 그 애를 구했습니다요.”
“하느님도 고마우셔라. 그래 준영은 어디에 있나?”
“잠이 들었습지요. 깨울까요?”
“좀더 두게. 크게 놀랐을 것이야. 푹 자게 하는 게 좋을 테지.”
“그게 좋겠습지요.”
준영의 귀에 집채같은 파도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좀더 뚜렷이 들려 왔다.
<2>
준영은 자주 이모네 집으로 놀러갔다. 그럴 때면 으레 영임이 누나네에 들렸다. 준영의 어머니는 영임이에게 선물하라며 사탕도 사주고 떡도 사주었다.
“영임이 아니었으면 너는 벌써 물귀신이 되었을 게다.”
준영도 그렇게 생각했다. 영임이 누나가 파도 속으로 달려와 정신을 잃은 그를 구한 것이다. 영임이 누나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새로 생긴 누나였다. 외아들인 준영에게는 더 없이 귀한 선물이었다. 바다가 준 선물인 셈이다. 준영은 자주 이모네를 방문했다. 영임이 누나가 보고 싶어서였다.
“준영이 왔구나”
누나는 퍽도 준영을 반겨 주었다. 둘 만일 때는 언제나 준영을 꼭 끌어 안아주었다. 파도에 휘말렸을 때 준영은 발가숭이가 되어 누나와 함께 누워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졌다. 몸이 훈훈히 더워지기도 했다. 누나의 작은 젖가슴의 감촉도 뚜렷했다. 누나에게서는 바닷말 냄새가 났다. 짭조름한 소금기도 느껴졌다.
추운 날에는 함께 이불 속에 누워 있곤 했다. 누나네는 온돌에 불을 지피지 못해 몹시 추웠다. 이불을 덥고 있어도 몸이 떨렸다. 춥지? 누나는 그렇게 물으며 준영을 꼭 끌어 안아주었다. 그러면 누나의 따뜻한 체온이 준영을 덥혀주었다. 그런 누나가 좋아서 준영은 자주 이모네를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모네 집에 도둑이 들었다. 복면을 쓴 도둑들이었다. 도둑들은 가족들을 모두 한 방에 감금하고 금고를 뒤졌다. 부잣집이었지만 집에는 돈이 별로 없었다. 도둑들은 매우 화를 내면서 준영을 볼모로 납치했다. 그리고 돈을 마련해서 부치라고 했다. 그러지 않으면 준영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도둑들은 준영이 부자 선주네의 아들이라고 착각했다. 나중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준영은 눈이 가리워진 채 오래 동안 차를 탔다. 트럭이었다. 덜컹거리는 차를 타고 오랜 시간을 달렸다. 준영이 눈의 헝겊을 풀었을 때는 어둑한 지하실 방이었다. 덩치가 매우 큰 형이 밥그릇을 디밀었다.
“너희 집에서 돈을 보내 올 때까지 너는 여기에 있어야 한다.”
“여기가 어딘데요?”
“그건 알 필요가 없다. 그동안 우리가 잘 해 줄 거다”
준영은 지하실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때가 되면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밥그릇을 디밀었다. 용변을 보고 싶을 땐 요강에다 보게 했다. 그렇게 몇 날이 지났다. 처음의 형이 다시 나타났다.
“너의 집에서 돈을 보내오긴 했지만, 네가 우리 얼굴을 모두 알게 되어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
“그러면요?”
“멀리 섬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곳에서도 우리 얼굴을 안다고 말하면 그때는 죽여 버리겠다.”
형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벌써 죽이려고 했지만…”
그 형은 무슨 말을 더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아무튼 내일은 이곳을 떠나게 될 테니 그리 알아라.”
내일이 되기 전의 저녁이었다. 누군가가 지하실 방으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방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뜻밖에 영임이 누나였다.
“영임이 누나!”
준영이 반겨서 소리치자 영임이 얼른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갔다.
“쉿, 조용히.”
영임이 누나는 준영에게 다가와 살그머니 손을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이끌었다. 준영은 영임이 누나를 따라 지하실 방을 나왔다. 그들은 몰래 대문 밖으로 빠져 나왔다. 큰길 바로 옆이어서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여기가 어디야?“
“서울이란다.”
영임이 누나가 준영을 꼬옥 끌어안았다.
“그동안 혼났지?”
“무서웠어.”
“그래. 나쁜 놈들이란다. 하지만 죽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누나는 준영을 데리고 버스를 탔다. 그리고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시장터로 가서 국밥 한 그릇을 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린 도망을 가야 돼. 잡히면 죽게 되니까?”
“그 사람들 누구야?”
“그놈들 중의 하나가 친척 오빠다. 그래서 너의 이모네 집이 부자란 것을 안다. 감옥살이하던 친구들과 더불어 너의 이모네 집을 털었지만 현금이 별로 없으니까 너를 납치한 것이다. 너희 집에서 돈을 보내왔지만 자기들 얼굴이 알려질까 보아서 너를 먼 섬으로 보내려고 한다. 그러다 신통치 못하면 죽일 수도 있지. 이미 너를 죽이자는 의논이 있었지만 내가 그 의논을 엿듣고 나를 먼저 죽이라고 발광을 했다. 그래서 죽이는 것만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놈들이다. 그래서 내가 식모 아주머니 주머니에 든 열쇠를 몰래 훔쳐서 너를 구한 것이다.”
영임이 누나는 그렇게 그동안의 일을 들려주고는 앞으로의 일을 말했다.
“지금쯤. 그놈들은 영동지방으로 떠나는 버스를 뒤질 게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부산지방의 차를 타려고 한다. 중간에 내려서, 몇 번 차를 바꾸어 타자. 삼척까지 가서 너를 강릉 가는 버스로 보내 줄 테다.”
“누나는?”
“나는 부산이나 대구 같은 곳으로 도망 칠 생각이다. 그놈들은 제일 먼저 우리 집부터 처들어 와서 나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야 입막음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집으로 갈 수 없다. 너도 집으로 가게 되면 네가 당한 일을 자세히 말하지 마라. 그냥 어떤 놈들에게 잡혀 가서 지하실에 감금당했다가 몰래 도망 친 것으로 해라. 그놈들은 감옥살이를 오래 한 놈들이어서 자기들의 정체가 드러나면 너를 죽이려 들 것이다. 못할 짓이 없는 놈들이다.”
누나는 준영에게 새 옷 한 벌도 사서 입혀 주었다.
“내가 돈을 제법 많이 훔쳤다. 그래서 도망쳐도 한동안 먹고 살 수 있다. 그러니 너는 내 걱정 말고 안전하게 집까지 가야 한다.”
영임이 누나는 그렇게 준영을 다독거렸다.
준영은 영임이 누나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까지 올 수 있었다. 그리고 누나와 약속한 대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음의 큰 비밀 한 가지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비밀은 누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누나만 만날 수 있다면 얼마 전에 겪은 고통보다 더 한 것도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3>
준영은 다음 해에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온통 영임이 누나 생각만 했다. 그러나 영임이 누나는 도망다니는 몸이 되었으니 만날 길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런 궁리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영임이 어머니는 딸의 소식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준영은 학교도 팽개치고 영진리로 달려갔다.
“누나 소식 몰라요?”
준영은 영임이 어머니를 만나자 대뜸 그렇게 물었다.
“글쎄다. 얼마 전에 잘 있다는 편지가 왔었다.”
영임이 어머니는 편지가 든 봉투를 준영에게 보였다.
“이 봉투를 제가 간직해도 돼요?”
“그래라. 나야 편지 내용만 알면 되지.”
그렇게 하여 준영은 영임이 누나의 새로운 주소를 알게 되었다. 누나의 주소는 서울의 노량진으로 되어 있었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노량진 본동 산 12번지. 준영은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다. 절대로 잊지 말아야지. 그러면서 혹 잘못 외고 있는지 모를 일이라고 여겨서 다시 편지 봉투의 주소를 확인하곤 했다. 누나가 보고 싶다고 편지를 써 볼까. 그러나 그 편지를 누나가 직접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누나가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는 확신도 들지 않았다. 부산이나 대구로 도망갔던 누나가 왜 다시 서울로 갔을까? 나쁜 놈들에게 다시 잡힌 것만 같았다.
준영은 직접 서울의 노량진으로 찾아갈 결심을 했다. 준영의 아버지는 한약방을 하고 있어서 돈의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약방의 금고에는 늘 돈이 가득했다. 평소에는 금고의 열쇠를 채우지만 잠시 화장실 출입할 경우엔 채우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준영은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틈을 노렸다가 금고의 돈을 훔치기로 했다. 평생 처음 해 보는 도둑질이었다. 오직 영임이 누나를 보고 싶은 일념 때문이었다.
노량진 본동 산 12번지는 한강대교의 바로 남쪽에 있었다. 한강이 발밑에 내려다보이는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곳인데 오래고 낡은 집들이 밀집해 있는 달동네였다. 준영이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침 옆으로 지나치던 어떤 청년이 준영의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임마. 너 여긴 웬 일이냐?”
준영이 쳐다보니 낯이 익었다.
“어. 형 아냐?”
“그래. 너 준영이지? 영임이 찾아 왔나?”
그는 영임이의 사촌 오빠였다.
“자식, 용케 제대로 찾아왔네.”
그는 준영을 데리고 산비탈 막바지에 있는 파란대문의 허룸한 판자집으로 데려갔다. 마당의 수도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영임이 준영을 발견하자 놀라서 소리쳤다.
“준영아. 네가 여긴 웬 일이냐?”
영임이의 사촌인 석철이 퉁명스레 말했다.
“네가 보고 싶어 찾아왔단다. 자식이 주소쪽지를 들고 어릿대는 것을 보고 대번에 알아보았지. 주문진 촌놈이란 것을 말이다.”
“그러는 오빠는 서울놈인가?”
“아무튼 쬐끄만 놈이 제법이다. 널 보고 싶다고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찾아 왔으니 말이다.”
“찾아온 건 고맙지만. 학교는 어찌하고?”
“학교가 문젠가? 상사병이 문제지.”
석철이 비아냥대었다.
“아무튼 잘 되었다. 너 같은 놈이 하나 필요하던 참인데.”
석철은 그렇게 결론지었다.
석철이 하는 일은 고철 수집이었다. 중고품인 작은 3톤 트럭을 구입해서 시골로 다니며 수집한 고철을 고철상에게 넘기고 몇 푼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예전에 엿장수들이 낡은 대야나 그릇들을 엿과 바꾸어 모으던 것과도 같았다. 그것이 현대화된 셈이다. 도시보다 시골이 어수룩해서 고철수집이 쉬웠다. 엿장수가 엿을 바라는 애들을 꾀어서 쓸만한 것들을 어른 몰래 가로채던 예전과는 달리 담장 없는 마당에 뒹구는 솥이며 유기그릇들을 그냥 도둑질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농촌 사람들이 모두 일하러 나가서 텅 빈 마을이라 도둑질을 감시할만한 눈들이 없었다. 어쩌다 나이든 노인이 집을 지키더라도 순식간에 물건들을 차에 싣고는 그냥 사라지는 것이라 속수무책이었다. 석철은 그런 도둑질에 준영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석철이 3톤 트럭을 몰고 강원도 산골을 누빌 때면 영임이는 으레 운적선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준영은 트럭의 짐칸 고물들 틈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 웅크리고 있었다. 전에는 영임이가 망을 보고 석철이 도둑질을 했지만 준영이 합세하고 부터는 준영이 도둑질을 담당했다. 석철이 운전대에 있어야 급하게 달아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둑질에 익숙하지 못한 준영이 망서릴 때마다 석철이 윽박질렀다.
“임마, 먹고 살려면 너도 일해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달래듯 말했다.
“입에 풀칠하려고 하는 도둑질은 죄가 안 되는 거야.”
그래도 쭈빗대는 준영을 보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영임이 옆에 있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다.”
준영은 영임이 누나 옆에 있고 싶었다. 영임이 누나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임은 그런 준영이 여간 안타깝지 않았다. 영임은 어떨 때는 트럭 뒤에 혼자 비닐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는 준영에게로 올라왔다. 영임은 낡은 포장을 들치고 들어와 준영을 꼭 끌어안았다. 준영의 귓가에 영임이 누나의 따스한 입김이 뿜어졌다.
“준영아. 넌 여기서 떠나야 해. 학교에 다녀야 한다.”
“누나는?”
“나야 어디에 있던 마찬가지지. 하지만 넌 달라.”
준영은 아무 대꾸없이 영임의 품에 자신의 몸을 더욱 밀착시키곤 했다.
“너에겐 이런 생활이 어울리지 않아. 음식도 그렇고.”
사실 준영은 체중이 부쩍 줄었다. 얼굴이 초췌했다. 부자집 외아들인 준영에게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생활이었다. 준영의 굼뜬 동작 때문에 몇 번이나 잡힐 번 했다. 그때마다 준영은 석철로부터 발길로 채이고 주먹세례를 받아야 햇다.
“병신, 그렇게 굼뜨게 어릿대다간 우리 모두 잡혀 간단 말이다.”
그렇게 발길에 채이고 얻어맞아도 준영의 도둑질은 익숙치 못했다. 영임이 준영의 가슴을 힘주어 껴안으며 속삭였다.
“넌 떠나야 돼.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래도 준영은 꿈쩍하지 않았다. 갑자기 차가 덜컹 멎었다. 석철이 호통을 쳤다.
“영임아. 너 거기서 뭘 하는 거야. 어서 못 내려와.”
영임은 그렇게 끌려 내려가곤 했다. 석철은 영임과 준영이 함께 있는 것을 늘 못 마땅해 했다. 석철은 영임이의 도움이 필요했다. 밥도 지어야 하고 옷도 빨아야 하고 무엇보다 석철이 도둑질할 때 망도 보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언제 사라질까 조마조마한 터인데 준영이 볼모로 잡혀 있고 부터는 한결 마음이 놓였다. 준영이 볼모로 잡혀 있는 한 영임이 그를 떠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선과 평창을 돌아 장평에 왔을 때였다. 골목길을 돌고 있는데 저만치 돌담집 마당에 제법 큰 양은솥이 눈에 띄었다. 석철이 차를 멈추고 준영을 불렀다. 준영의 눈에도 양은솥이 보였다. 그동안 몇 번 겪은 터라 준영은 석철이 차를 멈춘 까닭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트럭에서 내려 돌담집 마당으로 들어가 양은솥을 번쩍 빼들고 문밖으로 뛰쳐 나왔을 때였다.
“이놈. 이 도둑놈.”
고함소리와 더불어 방안에서 노인 하나가 뛰어 나왔다. 그리고 섬돌에 있던 지게작대기를 집어 들었다. 준영은 트럭 위로 솥을 집어 던지기 바쁘게 차에 매달렸다.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던 석철이 차의 액셀을 거세게 밟았다. 차가 먼지를 날라며 달리기 시작했다. 지게작대기를 들고 쫓아오던 노인이 어딘가로 급히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산모롱이를 돌아 차를 멈춘 석철이 준영의 멱살을 잡아내렸다.
“병신. 그럴 때는 얼른 물건을 버리라고 했잖아.”
대뜸 주먹으로 준영의 머리통을 후려 갈겼다.
“우리 셋 다 잡힐 번했단 말이다. 이 병신아.”
이번에는 발길로 허리통을 후려쳤다. 그는 간신히 주워 온 양은솥을 길바닥에 팽개쳤다.
“병신아. 물증을 없애야 하는 거라. 틀림없이 경찰에 신고했을 거라고.”
그들은 큰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검문검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엉뚱한 길을 돌고 돌아 밤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석철은 분노를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본격적으로 준영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병신새끼. 누굴 감옥 보낼 작정을 한 거야. 뭐야.”
영임이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그만 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내가 한두 번 일렀느냐고. 그런 경우는 무조건 물건을 버리라고 말이야.”
“제깐엔 잘 하려고 했던게지.”
영임이 그렇게 두둔하자 석철은 이게 어디 한두 번이냐고 으르렁거리다가 영임에게도 화살을 돌렸다. 네년이 매번 감싸니 이 모양이라는 것이다.
“쌍. 네년은 매번 걔 편이지. 네 서방이나 되냐? 뭐냐?”
“그래. 내 서방이다. 어쩔래?”
영임이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그렇게 되어 본격적으로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다. 석철이 영임에게 주먹질을 하고 영임이는 석철에게 대들어 얼굴을 할키었다. 치고받고 난장판이 되었다. 그런 싸움 끝에 준영을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결론을 지었다.
“준영아. 아무래도 네껜 이런 생활이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라. 학교엘 다녀야지. 네 부모 생각도 좀 하고.”
영임은 평소에도 준영의 귀가를 종용했었지만 준영이 듣지 않았던 것인데 일이 이렇게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준영의 가출은 그렇게 해서 끝났다.
<4>
준영이 집으로 돌아오자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단 서너 달 만에 아이의 몸이 반쪽 되었다. 얼마나 귀한 아들인가? 오직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가출해서 얼마나 굶고 고생했기에 이 모양이란 말인가? 어머니인 소돌댁은 남편을 닦달해서 귀한 한약재를 달여내게 했다. 몸보신에 좋다는 녹용이며 인삼으로 십전대보탕을 만들었다. 설악산 심마니에게 비싼 산삼도 몇 뿌리 사들였다. 그렇게 부산을 떨며 두어 달 지나니 준영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준영의 어머니인 소돌댁은 그래도 안심하지 못해서 오대산 땅꾼을 수소문해서 몸보신에 좋다는 먹구렁이 뱀탕까지 다려 먹였다. 준영의 아버지인 범부씨가 혀를 차며 타박했다.
“과유불급이라 했소. 지나치게 과하면 오히려 망치는 거요.”
“돈 있는 것 어디다 쓸거요. 하나뿐인 자식인데.”
남편이 여러 말로 만류했지만 소돌댁의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준영의 몸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아니 뒤룩뒤룩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살이 붙고 체중이 늘어나면서 준영은 몸에 이는 열을 참을 수 없어 했다. 땀을 줄줄 흘렸다. 그러자 걸핏하면 옷을 훌러덩 벗어 버렸다. 그래도 덥다고 땀을 흘리며 씩씩거렸다. 보약이 과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준영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런 증세는 더욱 두드러지더니 급기야 정신이 깜물해져서 걸핏하면 집을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자신이 어디를 돌아다녔는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허, 이러다 애 잡겠는걸,”
부친인 범부씨가 아내를 타박했다.
“내가 뭐랬소. 과유불급이라고 했지 않소. 약이 과해서 저러는 거요.”
“잠시 그러다 말겠지요.”
소돌댁은 그렇게 위안을 했다. 그러나 준영의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몸의 열을 참지 못해서 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맨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럴 때는 깜물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자신이 어디를 어떤 모양으로 돌아다닌 지도 알지 못했다. 커다란 양물을 덜렁대며 거리를 활보할 때면 여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줄레줄레 따라 다니며 돌팔매질을 하기도 했다. 소돌댁이 준영을 방안에 감금하고 한약방 약재를 써는 김씨를 딸려서 늘 감시를 시켜도 어느 사이에 집을 뛰쳐나가곤 했다.
그즈음 준영이 자주 달려가는 곳은 영진리 바다였다. 영진리 바다는 준영의 주문진 한약방에서 모래톱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곳이어서 평소에도 자주 가던 곳이다. 준영은 맨몸으로 바닷가 모랫벌에서 어정대기도 하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늦가을의 제법 추운 날씨에도 준영은 바닷물 속에 들어가 자맥질을 했다. 영진리 바다는 영임이의 집 바로 앞이었다. 그래서 늘 영임이 어머니인 송천댁의 눈에 띄었다. 송천댁은 기겁하여 물속으로 뛰어들어 준영을 잡았다. 준영은 의외로 송천댁에게는 고분고분 했다. 송천댁은 준영을 이불속에 밀어 넣고 그가 잠들기를 기다려서 곧장 해변길을 달려 준영네의 한약방으로 갔다. 송천댁은 준영의 어머니가 건네주는 준영의 옷가지를 받아 들고 한약방 김씨와 더불어 돌아왔다. 송천댁이 여러 말로 달래서 옷을 입히고 김씨로 하여금 호위해서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준영은 대부분의 경우 고분고분했다. 그러나 눈에 초점이 없고 항상 딴 생각에 골몰해 있는 듯했다. 집안에 갇혀서도 별 말이 없었다. 다만 몸속에 이는 열기를 견디지 못해 옷을 거부하고 그저 밖으로 나돌려고만 들었다.
“저러다 애 잡겠구려. 무슨 방도가 없소?”
소돌댁은 남편인 범부씨를 닦달하지만 범부씨는 입맛만 다시는 것이다.
“약이 과하다고 하지 않았소. 몸의 열기가 빠져 나가자면 시간이 걸리겠지.”
“저러다 물에 빠져 죽기라도 하면 어쩌요?”
“팔자소관이지. 낸들 어쩔 것이여.”
범부씨는 아내에게 과유불급이란 말로 보약 처방이 지나치면 안 된다고 미리 경고를 한 바도 있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아내탓만 할 입장도 못되었다. 양약 같으면 해독제라도 있어서 복용이 과한 약물을 중화시킬 처방이라도 있겠지만 보약인 경우는 대개 몇 년이 지나서야 그 효과가 나타나는 터여서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흔히들 시간이 약이란 말이 있지만 이런 경우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서 과한 약효가 서서히 줄어들기를 기다릴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근래에 준영은 영진리 영임이네 집 앞바다에 주로 있어서 송천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점이었다. 벌거숭이로 시장 거리를 헤매거나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교실에도 불쑥 나타나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일은 많이 줄었던 것이다.
그날도 준영은 영진리 바닷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그는 물론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햇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돌아왔는데 꿈결처럼 영임이의 품속이 느껴졌다. 준영은 귓속을 파고드는 영임이의 숨결을 느꼈다.
“준영아, 이제 정신을 차려야지.”
귓바퀴에 맴도는 애절한 목소리가 눈물이고 한숨이었다.
“네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니?”
가쁘게 내 쉬는 따스한 입김이 언 귓볼을 녹였다.
“누나. 여기가 어디야?”
준영의 말에 영임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너, 정신이 돌아 왔구나. 그렇지? 내가 누군지 아니?”
“영임이 누나.”
“그래 영임이 누나야. 먼 예전처럼 너는 우리 이불 속에 있는 거라고.”
영임이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넌, 바다 속에 꽁꽁 얼어 있었지. 엄마와 내가 억지로 끌고 왔단다.”
알몸으로 얼어 있는 준영을 이불속에 뉘고 영임이 예전처럼 그녀의 몸으로 체온을 뎁혀주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주문진 한약방으로 갔다. 네 옷을 가지러 말이다.”
준영은 어디에서 옷을 벗어버렸는지 바다속에선 알몸 그대로였다. 그런 준영의 몸을 영임이 쓰다듬고 매만졌다.
“이젠 정신을 차려야지. 이렇게 된 게 일 년도 넘었다며?”
준영은 자신의 정신이 깜물 나갔다가 깜물 돌아오는 과정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고 있엇다. 몸속에 열기가 펄펄 끓어 넘치는 어느 순간 정신이 혼몽하게 흐려지는 것이다. 그 열기를 못 견뎌서 옷을 벗어버리고 집을 뛰쳐나가는 것이다.
“누나는 어떻게 돌아온 거야?”
“사실은? 네께 숨길 일도 아니겠지만.”
영임은 그렇게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번에 시집가게 됐단다. 그래서 내려온 거지. 엄마와 의논할 일도 있고.”
“어떤 남잔데?”
“의정부에서 미군부대 군속으로 있는 남자란다. 어쩌다 알게 되었는데 죽자사자 덤비는구나. 사실 나는 아직 결혼할 나이도 안 되었고 그럴 처지도 못되는데. 막무가내야.”
남편 될 명식은 미군들이 사용한다는 날이 선 단도로 자신의 팔뚝을 찔렀다. 핏물이 솟구쳤다. 그 피로 영임이의 속옷에다 혈서를 썼다. 널 사랑한다. 너무 뜻밖의 경우라서 영임이는 대처할 방법을 몰랐다. 네가 아니면 나는 이 칼로 내 목을 딸 거다. 내께 죽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명식은 그런 식으로 협박했다.
“어쩔 수 없었단다. 사실 난 네가 좋은데.”
영임이 준영의 온몸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때 문득 영임이의 허벅지에 준영의 커다란 물건이 꿈틀거렸다.
“준영아. 너도 내가 좋지?‘
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우린 결혼할 수 없는 몸이지만 네께 나를 주고 싶어.”
영임이 적극적으로 허벅지를 조이며 말했다.
“나를 가져. 준영아. 그래야 너를 이렇게 만든 빚을 좀 갚을 수 있을 것 같애.”
준영이 몸을 빼치며 말했다.
“누나는 이제 시집간다며?”
“난 상관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라니까. 네가 내 첫 남자가 되란 말이야. 너도 그걸 원하잖아. 이것 보라구.”
영임은 준영의 솟구치는 남성을 두 손으로 감싸 잡았다. 그리고 힘을 주었다.
“누나는 이제 시집간다며, 시집간다며?”
엉덩이를 뒤로 빼며 웅얼거리는데 준영의 몸에서 물총처럼 힘이 빠져나갔다. 첫 경험이었다. 영임이 애무를 계속하자 풀죽었던 양물이 다시 살아나서 탱탱하게 부풀어 올랐다.
“준영아. 난 정말 너와 결혼하고 싶단다. 하지만 안 되는 거잖아.”
영임이 울먹이며 말했다.
“다신 정신을 잃지 마라. 네가 그렇다는 소식을 엄마로부터 들을 때마다 죽고 싶었단다. 다시는 정신을 잃지 않겠다고 내께 약속할꺼지?”
준영은 몸속의 끓어 넘치는 힘이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총알처럼 쏘아지는 것을 느끼며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이야. 지금이라도 난 네 여자가 되고 싶단 말이야.”
영임이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 5 >
준영은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기간이 길어졌다. 전처럼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딘가 얼이 빠진 모습이곤 했다. 그러면서도 자주 영진리의 영임이네를 찾았다. 그리고 영임이 어머니에게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주머니. 영임이 누나가 정말 시집간 거예요?”
“그래. 벌써 몇 달이나 되었구나.”
“정말이구나.”
준영은 실망한 어투로 말했다. 직접 들은 것 같긴 했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본인은 가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영임이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 스물도 채 안된 나인데 말이다. 하지만 타관에 버려진 몸이니 혼자서 살아가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모양이다.”
“남편은 어떤 사람인데요?”
“의정부에 있는 미군부대 군속이란다. 군대 제대하고 다시 미군부대에 군속으로 들어간 모양이더라.”
“그럼 군인인가요?”
“글쎄. 군에서 제대를 했더라지 아마.”
송천댁은 명식인가 하는 사위가 단도로 제 팔뚝을 찔러서 치솟는 피로 “사랑한다‘ 라고 혈서를 썼다는 말을 떠올렸다.
“결혼해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고 협박했었다나 어쨌다나. 그렇게 협박당해서 하는 결혼이란 게 아무래도 찜찜하더구나.”
송천댁은 그런 심정을 드러내어 영임의 결혼을 만류했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걸. 운명대로 살아야지 뭐”
영임이가 그렇게 나오자 송천댁은 더 이상 어째 볼 수 없었다. 인간에게는 운명이란 게 있고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그런 운명의 끈질긴 줄에 묶여 있기 마련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그런 숙명적인 명줄을 타고난다고 믿고 있었다.
영임이를 낳을 때만 해도 그랬다. 남편이 어부라 늘 불안했다. 바다에는 풍랑이 수시로 일고 그때마다 몇 척의 배들이 난파당했다. 배 한 척에 십여 명의 장정들이 타고 있었는데 대부분 함께 수중고혼이 되었다. 그렇게 남정네들이 떼죽음을 당하니 젊은 과부들 또한 떼거리로 생겼다. 남편이 없어도 자신과 가족이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과부들은 부두에서 고기내장을 따는 품팔이를 하기도 하고 함지박에 생선을 이고 다니며 행상을 해야 했다. 그 곤궁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를 낳는 것이 늘 겁이 났다. 영임이 위로 딸 하나가 있었다. 그 이후로 십여 년이 되도록 애를 밸까 늘 조심하면서 지내왔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태어날 아이는 따로 있는 것인지 어느 순간 영임이를 배게 된 것이다. 차마 남편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평소 애가 밸까 온갖 방법으로 피임하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왕 밴 아인데 하나쯤 더 기를 수도 있지. 그런 마음도 들었다. 남들이라고 두셋씩 낳아서 기르지 아니한가? 그런 마음으로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남편이 덜컥 풍랑을 만나 난파당하고 만 것이다. 뱃사람에게는 언젠가 다가오기 마련인 운명이었다. 용케 운명을 비켜가는 수도 있지만 항상 행운이 따르기는 어려운 법이었다. 어부로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아무튼 남편에게는 애를 뱄다는 사실 조차도 아직 알리지 못한 터인데 남편이 덜컥 죽어 버린 것이다. 남편을 잃은 절망감 때문에 그랬는지 모르겠다. 남편 없이 낳은 자식을 키울 자신이 없었다. 아이가 집안에 불운을 몰고 오는 횡액덩이인 것만 같았다. 송천댁은 뱃속에 태아가 꿈틀거리는 낌새만 있으면 즉시로 애를 떼는데 좋다는 피마자기름도 마셔보고 하이타이 세제를 물에 타서 마셔보기도 했다. 불러온 배를 주먹으로 내리쳐 보기도 했다. 온갖 구박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꿈쩍도 않고 제대로 자라서 꿈틀거렸다.
정월 보름이었던 것 같다.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온갖 구박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끝내 태어나려고 발버둥쳤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끝내 태어나려면 태어나보렴. 나는 변소간에서 변처럼 쏟아낼 테니까. 아픈 배를 움켜쥐고 변기에 앉았다. 다리를 벌리고 변을 보듯 몸에 힘을 주었다. 어느 순간 밑에서 큰 핏덩이가 물컹 밀려 나왔다. 무심코 밑을 내려다보니, 세상에! 보름달처럼 둥글고 환한 얼굴이 아닌가? 그 경황에도 너무나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쏟아지는 핏덩이를 속옷으로 감싼 채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잠결에 놀란 맏딸 영미가 놀라서 물었다.
“엄마, 그게 뭐야?”
“애기다. 옆집 할머니께 알려라.”
그러고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영미가 달려가서 옆집의 할머니를 모셔왔다.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래도 아이는 살아날 수 있었다. 달덩이처럼 환하던 핏덩이 아이에 대한 기억을 평생토록 잊을 수 없었다. 아이를 변소에 버리려고 했던 원죄가 있어서 송천댁은 영임이를 끔찍이 위했다. 하늘이 점지해주신 복덩이로 여기자. 남편을 데려가고 보내준 선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영임이는 평생 어머니 속을 썩이는 일이 없었다. 초등학교엘 다닐 때는 공부도 일등이었고 얼굴도 달덩이처럼 예뻤다. 늘 마음에 위안이 되는 아이였다.
평생 함께 살 줄 알았는데 영임이는 서울로 갔다. 제 사촌인 석철의 꾐도 있었겠지만 이 어촌에서는 지긋지긋한 가난밖에 없었고 그 가난에서 벗어날 길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송천댁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다. 어디에 있어도 여기보단 나을 것이란 기대였다. 영임은 서울에서 이곳저곳 공장에서 일한다며 때때로 몇 푼씩의 돈도 부쳐왔다. 늘 잘 있다는 편지와 함께 였다. 그런데 채 스물도 안된 나이에 느닷없이 시집을 가겠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나이에 시집간다는 게 도무지 불안하단다.”
송천댁은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준영에게 덧붙여 말했다.
“큰애 영미도 시집가서 애 낳다가 죽었단다.”
송천댁은 평소 누구에게 하지 않던 영미 이야기도 꺼냈다. 영미는 영임이보다 열 살이나 위였다. 그것도 아빠를 닮아 얼굴이 반반했다. 그래서 읍내의 새로 생긴 백화점 점원으로 뽑혔다. 성품이 상냥하고 성실해서 점장의 신임을 받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결혼 말이 나왔다. 고객 중의 하나가 특별히 좋아했던 모양이었다. 집안도 괜찮았다.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영미가 어리다는 핑계뿐이었는데 나이가 더 든다고 해서 더 조건이 좋아질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이 죽으려 드니 말이다.”
송천댁은 한숨을 쉬었다. 영미가 애가 들어섰다. 그런데 열 달이 되지도 않은데 진통이 심하게 왔다. 병원에선 아직 두어 달 더 있어야 아이를 분만한다며 더 참고 기다리라고 했다. 평소 잘 참는 영미였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병원의사에게 매달렸다. 산모가 워낙 아프다고 하니까 소파수술을 해서라도 아이를 분만할 밖에 없다고 했다. 손이 귀한 남편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러다 태아가 잘못되면 어쩌려고?”
그래서 얼마를 더 미적대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어 소파수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판명되었지만 산모의 통증은 분만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맹장염 때문이었다. 맹장이 터져서 이미 골수염으로 번져 있었다. 의사가 더 이상 손을 써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의사가 맹장염의 통증을 분만의 통증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휴- 그래서 뱃속아이는 겨우 살렸지만 영미는 끝내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네.”
송천댁은 준영을 보고 말했다.
“준영아. 인간의 운명은 하늘에 달린기라. 모두 하늘에 맽기거라. 그리고 편하게 살거라. 떠나간 영임이 타령 하면 뭘하냐?”
준영은 그저 멀뚱멀뚱 송천댁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아직 정신이 온전히 돌아오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 6 >
준영의 부모들은 준영이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이 견딜 수 없었다. 정신을 잃는 빈도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긴 하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였다. 친구들은 모두 학교엘 다녔지만 준영은 학교에 보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성인이나 다름 없는 큰 아이가 옷을 홀라당 벗어 버리고 시장 어귀에서 어슬렁거리는 판이니 말이다. 부친 범부씨가 과하게 처방한 약효 때문이라 여겨서 열기를 줄이는 처방을 해 보아도 별무 효과였다. 준영이 몸속의 열기를 이기지 못해 걸핏하면 바닷물 속으로 뛰어드니 저러다 무슨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한약방의 약재를 써는 김씨가 늘 감시하지만 번번히 그 행적을 놓쳐 버리곤 했다.
“저러다 하나뿐인 아들 잃으면 어쩌요?”
소돌댁은 매일 눈물이었다. 그러던 중 범부씨의 친구인 한의사 최씨가 조언했다.
“그 먹구렁이 처방이 문젠기라. 사춘기 아이에게 도가 넘치는 처방이여. 정력이 넘쳐서 저리된 것이니 장가라도 보내 보게”
몸에 넘치는 정력을 뽑아내면 한결 낫지 않겠느냐는 희망 섞인 처방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손이 귀한 집안이었다. 준영은 범부씨에 이어 2대 독자였다. 저렇게 정신을 깜물하는 사이에 교통사고를 당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집앞이 바로 바다이니 파도에 휩쓸리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물속으로 뛰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집안의 대가 끊기는 것이다. 범부씨가 늘 뇌다싶이하는 전주이씨 양반타령도 헛노릇이 될 판이었다.
그렇게 되어 준영을 장가보내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소돌댁이 사방으로 매파를 보내서 색시감을 물색했다. 튼실하고 어수룩한 처녀여야 했다. 튼실해야 아이를 잘 나을 것이란 생각이었고 어수룩해야 양물을 덜렁대는 사내를 마다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간택 된 것이 사천의 구라미마을 박씨 처녀였다. 시골에서 일만하면서 자란 터라 세상 물정에 대해서는 서툴렀다. 그러나 심성이 무던하다고 소문이 난 처녀였다.
준영은 또래의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에 장가를 가게 되었다. 준영이 제정신이 아니란 것을 주변에서 다 알고 있는 터라 드러내어 결혼식을 올릴 수도 없었다. 남들은 박씨 처녀를 약방의 식모쯤으로 알고 있을 정도였다.
준영은 잠결에 여자의 몸을 끌어안곤 했다.
“누나는 시집간다며.”
준영이 그렇게 말하며 여자의 몸을 떠밀어도 어느 순간 여자의 몸속에 잠겨 있곤 했다. 곧추 선 하체에서 물컹물컹 힘이 빠져나갔다. 영임이 누나가 손으로 그의 양물을 쥐어짜는 것이다. 몇 번이나 쥐어짰다. 전율의 한 순간이 지나고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그의 옆에 투박한 여자가 누워 있곤 했다.
“당신 누구여?”
준영은 곧잘 그렇게 물었다. 여자는 대답없이 그의 가슴에 그저 얼굴을 묻기만 했다. 놀란 준영이 엄마를 찾았다.
“엄마, 이 여자가 웬 여자야?”
“오. 이제 정신이 돌아 왔냐? 정신이 돌아왔구나.”
소돌댁은 준영이 정신이 돌아온 것만 감지덕지해서 같은 말만을 되풀이했다.
“이 여자가 누구냐니깐?‘
“차츰 알게 될 꺼다.”
소돌댁은 그렇게 말하며 준영의 질문을 피해갔다. 공연히 잘못 말해서 아이가 발광할 것이 두려운 것이다. 차츰 알게 될 꺼다. 정신이 돌아오면 알게 될 테지.
한의사 최씨의 말이 맞는 건지 준영의 의식 상태는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러면서 박씨녀에 대해서도 차츰 체념한 듯했다. 의식이 돌아와 그의 옆에 누운 박씨녀를 보아도 전처럼 야단을 치지는 않았다. 그렇게 길들여지면서 박씨녀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이런 경사가 없었다. 처음에는 식모대접 받던 박씨녀였지만 점차로 당당한 젊은 마님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달이 차자 떡두껍 같은 아들을 나았다. 준영이 때문에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날 길 없던 주문진 한약방집에 모처럼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박씨녀가 두 번째 아들을 나았다. 그럴 때쯤 되어 준영의 병도 한결 나아졌다. 정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점차로 줄어들었다. 그러면서 변화가 왔다. 옷을 벗어 던지지 않는 대신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박씨녀를 가까이하는 일도 없었다. 제 정신이 아닌 때에 본능적으로 가까이하던 육체를 아주 멀리하는 것이다.
준영은 아예 말이 없었다. 범부씨는 그런 아들에게 약재를 썰게 했다. 무슨 일이든 일을 해야 제 정신을 차리게 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약재 일을 보는 김씨가 종일 일 꺼리를 날라주었다. 준영은 아무 말 없이 고분고분 범부씨의 말에 따랐다. 김씨가 일러주는 대로 약재를 썰고 약재를 저울에 달아서 봉지를 만들고 또 봉지에다 약의 이름을 적는 일을 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시키는 대로 했다. 때로는 김씨와 더불어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니기도 하고 시골 장터로 가서 약재를 사들이는 일을 돕기도 했다.
“저러다 나을려는가?”
범부씨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제정신으로 돌아와 살아가면 좋겠지만 어느 순간 발작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었다. 준영은 박씨녀나 자기의 두 아들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워낙 귀한 손이라 두 아이는 할머니의 품을 벗어날 사이가 없었다. 집안의 보물단지였다. 온 집안이 그처럼 위하는 처지이니 아이가 귀여울만도 한데 언제나 남보듯 데면데면했다. 그러니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준영이 한약방에만 칩거하며 지내던 어느 날 영임이 어머니가 들렸다.
“영임이 어머니가 어쩐 일이세요?”
“약방마님이 묵을 좀 쒀달라고 해서 가져왔다.”
“우묵 말이군요?”
“그래. 네가 좋아한다면서 부탁했단다.”
준영은 우뭇가라리로 만득 묵을 특별히 좋아했다. 그의 입맛에 맞추느라 자주 상에 올렸는데 영임이 어머니가 쑤어온 모양이었다.
“영임이 누나는 어떻게 지내요?”
“그게 그러니 팔자에 맞지 않는 결혼이었던지 고생이 말이 아닌갑더라.”
그 말에 준영의 귀가 번쩍 띄었다.
“지금 어디에 사는데요?”
“의정부 호원동인가 하는 곳인데. 미군부대 앞이라더라. 남편도 앓아눕고 시어미도 앓아눕고 해서 영임이가 딸 둘 데리고 고생이 말이 아닌 모양이더라.”
순간 준영의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다.
<7>
준영이 영임이의 주소지인 의정부 호원동을 찾은 것은 팔월의 한 여름이었다. 호원동은 도봉산에서 사패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이었다. 영임이가 세들어 사는 집은 회룡사로 이어지는 개천가의 단독주택이었다. 그 집의 지하방에 세를 들어 산다고 했다. 집주인인 듯한 여자가 말했다.
“여긴 병자만 있구먼. 그 여편네를 만나려면 저그 역 앞의 연립주택 짓는 곳으로 가 보소.” 노파가 말하는 역 앞이란 회룡역을 말했다. 거기에 십여 채의 연립주택이 들어서고 있었다. 영임은 한낮의 때양볕을 쬐며 2층으로 오르는 층계로 벽돌을 나르고 있었다. 십여 명의 인부들이 일하고 있는데 여자는 영임이뿐이었다. 수건을 질끈 동이고 남정네와 똑 같은 양의 벽돌을 짊어지고 있었다. 비록 영임이 강인한 체력을 지녔더라도 남정네와는 차이가 있었다. 휘청거리며 이층을 오르는 모양이 여간 안쓰럽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야 공사를 지휘하는 감독인들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번엔 조금만 나르게나.”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영임이 눈을 흘켰다.
“남들처럼 못할 바엔 그만 둘라요.”
“이 아짐씨 봐라. 그 몸으로 무리라니깐?”
“돈 벌러 나왔는데 그 정도의 무리는 어쩔 수 없지요.”
“허, 하루만 하고 말 것도 아니고...”
“그러게요. 값싼 동정은 필요 없다니깐요.”
영임은 고집스럽게 우겨서 남들과 똑 같은 양의 벽돌을 싣게 했다. 준영은 그런 모습을 멀찍이 보면서 차마 나설 수가 없었다. 해가 뉘엿이 기울 때야 공사판 일이 끝난 모양이었다. 일꾼들은 모두 공사판에서 가까운 밥집으로 몰려갔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술잔도 오갔다.
“이씨 아줌마. 웬 똥고집이 그리 세요?”
영임이 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이가 술잔을 돌리며 말했다.
“똥고집은 무슨 똥고집?”
“등짐을 조금 덜어주면 모른 척 할 일이지요.”
“그러는 박씨는 나중에 무슨 말 하려고?”
“무슨 말 요?”
“십장이 이씨 좋아해서 등짐을 슬쩍슬쩍 덜어준다고 할테지.”
“그런 말 안 할낀데요.”
“한 술 더 떠서 저러다 이씨아줌마 십장 마누라 될라 하고 험담하겠지?”
“허. 아니라니깐요.”
박씨가 두 손을 절래절래 흔들면 절대 아니라고 발뺌한다. 모두들 호탕하게 웃으며 영임을 응원한다.
“그려. 이씨 아줌마. 대단허요. 아직 새파란 청춘이지. 거기다 얼굴 곱지. 남들 같으면 술집행일 텐데 이런 막장 공사판에서 버티는 것 보면 대단한기라.”
영임은 남자 동료들이 건네는 술잔을 마다하지 않았다. 저녁 식사겸 술판이 파하자 영임은 곧장 구멍가게에 들러 약간의 반찬거리를 장만했다. 영임이 개천길을 따라 자신의 집 대문께에 이르렀을 때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 누구요? ”
골목길 담벽 그늘에 몸을 감추었던 준영은 어색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아까부터 내 뒤를 밟았지요?”
준영이 담 그늘에서 벗어나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준영이구나.”
영임이는 대뜸 알아보았다.
“네가 종일 나를 엿보고 있었구나?”
준영이 여전히 쭈빗거리자 덧붙였다.
“저녁은 먹었니?‘
준영이 머리를 흔들었다.
“저를 어째? 아까 그 밥집에 가서 저녁을 시켜 먹고 기다려라. 난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식사부터 돌보아야 하니까.”
영임은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대문안으로 사라졌다. 준영은 영임이가 시키는 대로 그 밥집으로 갔다. 공사판 인부들이 돌아간 후라 손님들이 하나도 없고 그저 썰렁했다. 영임이가 시킨 대로 저녁밥 시켜 먹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한 시간쯤 지나서 영임이 나타났다.
“그냥 앉아 있었구나. 술 한 잔 하자.”
영임은 소주를 청했다.
“아까도 많이 마시더만. 너무 마시지 마라.”
주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고향에서 올라온 동생이라요. 술이라도 한 잔 대접해야지요.”
준영은 평소 술을 별로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어버리는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어서였다. 술이란 게 더욱 빨리 정신을 혼미하게 하기 때문이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영임이가 물었다.
“그래. 내가 여기 사는 것은 어찌 알았나?”
“아주머니한테.”
“그랬겠지. 나는 네 소식을 늘 듣는다. 결혼해서 아들이 둘이라지?”
준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참 우습다. 그렇게도 되는구나.”
영임은 술잔을 입속에 털어 넣었다. 전작이 있어서 제법 술이 오르는 듯 얼굴이 발그레 했다. 혀도 조금 말려 올라간 듯 했다.
“나도 딸이 둘이란다. 그렇게 되었지.”
더 이상 할 말도 없어서 둘은 다시 술잔을 주고받았다. 빈 병이 세병 째가 되자 주모가 나서서 만류했다.
“그만 마셔라. 집에 있는 아이들과 환자들도 생각해야지.”
“그럼요. 그만 마셔야지요. 하지만 고향에서 올라 온 동생이 나 사는 이야기 듣고 싶어하는데 술 취하지 않고는 말하지 못하겠네요.”
영임이는 그렇게 운을 떼었다. 너 봤지? 건축 현장에서 데모도로 일하는 내 모습을 말야. 그게 내 생활이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막노동밖에 없지 않니? 벽돌도 나르고 모래도 나르고. 48킬로 푸대에다 그런 것을 담고 때론 2층까지 때론 3층까지 나르는 일이다. 인솔자인 대장을 필두로 10명 정도가 한 조가 되어 움직인다. 그 중에 2명은 벽돌이나 미장이 기술자고 뒤처리 담당이 1명. 그리고 나머지는 나처럼 힘으로 버티는 단순 노동자다. 어떤 날은 대장이 안쓰럽게 여겨서 모래를 반쯤만 채우기도 하는데 그럴 땐 내가 단연코 거절한다. 그렇게 동정 받으며 일하려면 당장 그만두겠다고 우긴다. 그런 자존심이라도 있어야 하는게 아니냐? 아무튼 3년이 넘었다. 여름에는 얇은 옷이라 시멘트 독에 살갗이 변색되고 또 쓸려서 허물이 벗겨지고 물집이 잡혀서 고통스럽기도 했단다.
결혼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글쎄 운명적이라고 할까? 시어머니가 화장실엘 가다가 문턱에 걸려 다리가 불어졌단다. 노인이라 다리만 불어진 게 아니고 대퇴골 골반뼈도 함께 으스러진 게야. 그런데 말이다. 운명적이란 말이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데 똑 같은 자리에서 남편이 또한 넘어진 거란다. 남편은 직장에서 어머니 다친 소식을 듣고 택시로 불야불야 달려와서는 화장실 앞에 이르러 여기서 그랬단 말이지 하며 턱을 타넘는 흉내를 내던 중 꽈당 하고 넘어지지 않겠니? 그리고 시어머니처럼 오른 쪽 다리가 불어지고 대퇴골을 다친 거지.
세상에 그런 난리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이곳 도립병원에 입원하고 남편은 집에서 가까운 염정아 외과에 입원했다. 시어머니는 노인이라 상태가 매우 나빴다. 다리는 물론 몸 전체를 기브스하고 누웠는데 간병인이 옆에 붙어서 시중을 들어야 했다. 남편은 젊은 몸이어서인지 기부스한 지 며칠만에 지팡이를 짚고 다닐 수 있었다. 남편이 퇴원하는 길로 도립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찾았다. 병실에서 두 모자가 붙들고 대성통곡하는데 입원한 환자들이 모두 놀라서 쑤군거렸다.
“참 대단한 효자인 모양이네. 자신도 병객이면서 어머니를 끔찍이 생각하는 정성이 가긍하구먼.”
“어머니인들 다를까? 6 · 25때 그 아들 하나만 데리고 피란 왔다누만.”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목발 짚은 모양으로 어머니 병실로 찾아와 모자가 붙들고 통곡을 하는데 의사도 울고 간호사도 울었다. 그때 시어머니는 칠순이었고 남편도 마흔에 가까운 나이었다.
시어머니의 경우는 기부스한 몸이 점점 굳어오기 시작했다. 온몸을 기부스한 터라 혈액이 잘 돌지 않아서 그랬던지 몸이 마비되기 시작했다. 누운 자리에 동창이 나서 진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솜이불을 몇 겹 포개고 그 위에 누워 견디었다. 그래도 여름철엔 살이 썩는 냄새가 지독했다. 그냥 누워만 지내다 보니 등쪽의 갈비뼈 매듭에 고름이 잡혔다. 바늘로 고름을 짜주어야 했다. 그리고 몸을 번갈아 뒤척여 주어야 했다. 밥도 누운 채로 먹여주어야 했고 대소변도 받아주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그런 어려움에도 독한 데가 있어서 스스로 몸을 풀고 다리를 굽히고 용틀임을 치면서 매일 운동을 열심히 했다.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워낙 칠순 노인인지라 차도가 별로 없다.
남편의 경우는 젊은 장정이라 차도가 빠른 편이었다. 그런데 기부스를 풀고 지팡이만으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갑자기 입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발목 불어진 약처방이 상당히 독한 약인데 자신이 혈압 환자라는 사실을 의사에게 말을 하지 않은 까닭으로 약의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발목약이 혈압에는 치명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풍이 와서 몸의 반쪽이 마비되어 양약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하여 한방을 찾아다니며 침도 맞고 뜸도 뜨고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하방이지만 방이 셋인데 시어머니와 남편이 한 방씩 차지하고 누워 있고 내가 딸 둘 데리고 한 방 차지하고 있는 그런 생활이란다.”
영임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준영의 얼굴도 술기운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늘 너하고 살고 싶었단다. 네 애를 낳아 기르고 말야.”
영임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게 어림도 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다.”
< 8 >
준영이 한약방에 필요한 약초들을 구입하러 제기동 약령시장에 들르는 길에 영임이 누나를 다시 한번 찾았다. 그 때 영임이로부터 그동안의 생활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끝내 그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혼자 몸을 풀려고 끔찍이 노력했지만 결국 온 몸이 마비되어 굳어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단다.”
남편은 직장에서 퇴직하고 중풍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러니 제대로 생활을 구릴 수 없었다. 그래서 영임은 계속해서 품팔이 막일을 했다. 집안에만 박혀 있는 것보다 몸은 피곤해도 마음이 편했다. 일당이 2만 5천원이었는데 그 돈이면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었다. 매일의 막노동은 너무나 힘든 노역이었지만 일을 그만두면 당장 생계가 막막한 터라 영임이는 막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러다 뜻밖의 병을 얻었다. ‘자궁난소천출’이라는 병이었다. 자궁이 점점 커지는 병이었다. 허리에 간헐적으로 통증이 왔다. 통증이 심할 때는 다리가 뒤로 비틀렸다. 난소가 제 기능을 못해서 생기는 병이라 했다. 의사는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공사판에서 팀을 이루어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들의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병원에 입원할 입장이 못 되었다. 정 아파서 병원엘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지만 당장 오늘은 참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악물고 등짐을 날랐다. 통증이 점점 심해져서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자 집주인 아주머니를 보호자로 세우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이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며 내가 다시 이 병실을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 수술실로 들어갔다가 혼자 퇴원했다. 아이들도 남편도 알지 못했다. 알린다고 해서 도움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오자 혼자 울었다. 그동안 몸무게가 줄어서 45킬로밖에 되지 않았다. 작은 키도 아닌데 그런 모양이니 남들이 애처롭게 여겼다. 더 이상 무거운 등짐을 져서는 안 된다고 의사가 처방했다. 그래도 데모도로 막일을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장의 생계를 꾸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너를 두고 내가 결혼한 죄를 받은 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단다.”
영임은 그렇게 말했다. 신혼 초였다. 문간방에 세들어 살 땐데 옆방에 술집에 다니는 처녀가 세들어 있었다. 하루는 처녀가 와서 연탄불을 좀 빌려달라고 했다. 불은 빌려주는 게 아니라는 속설을 알고 있어서 언짢게 생각하면서도 워낙 추운 날씨였고 또한 혼자 사는 처녀의 딱한 입장을 생각해서 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 친구들이 몰려 왔다. 처녀가 출근하지 않아서 찾으러 왔다는 것이다. 방문이 안으로 잠겨 있었다. 영임의 문간방에서는 다락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락으로 올라가 옆방으로 들어가니 여자가 죽어 있었다. 빌려준 연탄불을 올려놓고 연탄난로를 열어둔 째 채였다.
“왠지 그게 나의 결혼에 대한 저주만 같았다. 그 이후에 모든 것이 뒤틀렸으니까.”
무엇이든 되는 일이 없었다. 도둑도 매달 들었다. 훔쳐 갈 것이 없으니 그냥 방안만 넘겨다 보고 가는 것이다. 이웃에서 신고를 해서 잡고 보니 감옥에 다섯 번도 더 드나든 전과자였다. 아무리 살펴도 훔칠 것이 없어서 그냥 넘겨다만 보았다고 했다. 남편이 비아냥 거렸다. 넘겨다볼게 왜 없겠어. 젊은 계집년도 있는데. 기회를 엿보았겠지.
집을 옮겨 새로 세를 든 곳은 정원이 백여 평 되는 집이었다. 건축업자가 마음먹고 잘 지은 집인데 식구라고는 단 둘 뿐이었다. 그래서 지하실 차고 옆에 방을 들이고 세를 놓은 것이다. 집을 돌보아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임이네가 헐값에 세를 들었다. 그런데 비만 오면 방안에 물이 고였다. 웅덩이를 파고 물을 퍼낼 정도였다. 물 고이는 집이 몸에 좋지 않다고 해서 이사를 갈 생각도 했었지만 주인아저씨가 극구 만류했다. 집을 새로 수리할 테니 조금만 참으라는 것이다. 집을 수리하는 동안 아저씨가 마련해준 셋집에서 기거하다가 수리가 끝나자 다시 아저씨를 따라 예전의 지하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번 이사 간 집엘 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라는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그만한 방을 구할만한 돈이 없었다. 방세가 거의 없을 정도였기 때문에 어째볼 수 없었다. 그러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낙상 사고가 생긴 것이다.
“참 묘한 일도 있었단다.”
집안에 액운이 끊이지 않으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특별히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점을 쳤다. 도봉산 만장봉이 바라다 보이는 언덕에 최국사라는 남자 무당이었다.
“집안에 더러운 것을 모셔두고 있구먼. 얼른 치워야 하는 게여.”
알고 보니 시어머니가 6·25때 죽은 시아버지의 유골함을 몰래 다락방에 숨겨두고 있었다. 무당의 지시대로 유골을 빻아서 마포강에다 뿌렸다. 무섭게 추운 겨울이라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었다. 돌멩이로 얼음을 깨고 물구덩이를 만들어 겨우 흐르는 물에 유골가루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 일 이후에 남편이 추위를 몹시 탔다. 한 여름에도 두터운 옷을 입고 지낼 정도였다. 무당에게 물으니 아버지의 혼을 찬 얼음물에 띄운 업이란 것이다. 그래서 천도제를 지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저런 일로 걸핏하면 무당을 찾아다녔다.
사실 시어머니가 죽게 된 직접적인 원인도 다른데 있었다. 시어머니가 극악스럽게 노력하여 마비된 몸이 상당부분 풀려서 뒤뚱뒤뚱 걸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어머니가 손녀딸 윤정이를 돌본다며 뒤뚱뒤뚱 일어서다가 갑자기 풀썩 넘어졌다. 오른 쪽으로 넘어졌는데 정작 멍이 든 것은 왼쪽이었다. 왼쪽으로 어깨, 겨드랑이, 볼기짝, 다리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무당은 평소 예뻐하던 손녀딸 윤정이의 살(煞)을 대신 맞은 거라고 했다. 그렇게 넘어진 시어머니는 평소 그처럼 위하던 윤정이를 자신 앞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아니 원수 대하듯 했다. 그러더니 3주도 안 되어 돌연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렇게 허망할 수 없었다.
“목숨이란 게 별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구나. ”
남편의 중풍도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당은 이번에는 시어머니의 살(煞)을 맞은 거라고 했다. 제 때에 굿을 해주지 않아서 업(業)이 옮아간 것이라고 했다. 시어머니가 죽는 것을 겪었음으로 놀라서 굿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무당 최국사가 굿을 도왔다. 우이동에 있는 굿당을 빌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굿을 했다. 한약발도 듣지 않고 침도 뜸질도 듣지 않으니 굿밖에 매달릴 길이 없었다.
“차도가 있었던가?”
“조금 차도가 보이는 듯하기는 한데 모르겠다.”
영임은 덧붙여 말했다.
“내가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갑다.”
< 9 >
얼마 후에 준영은 영임이 어머니로부터 영임의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 그렇수 있냐? 문서방이 며칠 째 몸이 찌부듯하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병원에나 한 번 다녀오지 하고 권했는데, 병원은 무슨. 하며 버티더니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새로 생긴 큰 병원 간판이 눈에 띄더란다. 얼결에 병원으로 들어가 진찰을 받았다네. 특별한 병세는 없고 몸이 찌부듯 하다고 했다지. 병원에서 으레 하듯 피검사 소변검사에 엑스레이까지 찍었다누만. 그런 기본적인 검사를 받았는데 며칠 후에 병원에서 전화를 걸어왔더래.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그래 부부가 함께 갔더니 폐암 말기라고 하더라네. 암이 온 몸으로 전이 되어서 수술도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는군. 다른 아무 치료도 못하고 속절없이 지내다가 몇 달 후에 그냥 죽고 말았다지. 아직 젊은 나인데 그런 수도 있을까?”
영임이 어머니는 그렇게 한탄을 하다가 덧붙여 말했다.
“영임이가 그곳 생활이 이제 지긋지긋 하다기에 모두 정리하고 내려오라고 했다. 나도 홀로 되어 늙어 가는 몸이니 손녀 딸 재롱도 좀 보고 평소 어릴 때 잘 해 주지 못한 딸한테도 좀 잘해 주고 싶고. 그래서 내려오라고 했다. 영임이도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라.”
준영은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영임이 누나가 돌아온다.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약재를 썰다가도 저도 몰래 창밖으로 멀리 뻗어나간 영진리로 향하는 해안의 모래톱을 바라보곤 했다. 백사장이 구릉을 이루며 멀리까지 이어지고 그 해변으로 파도가 와서 간단없이 부서졌다.
파도를 따라 이리 저리 쫓기며 영임이 누나가 언젠가 처럼 해초들을 줍고 있었다. 하얀 종아리에 말치검불이 거뭇거뭇 붙어 있었다. 누나. 이게 뭐야. 그렇게 묻고 있는 그의 몸뚱이로 거센 파도가 몰려왔다. 준영은 어푸어푸 하며 입속으로 밀려온 바닷물을 내 뱉았다. 더 큰 파도가 갑자기 밀려와서 그를 휘감았다. 그러자 영임이 누나가 그에게로 달려 왔다. 둘은 부둥켜 안은 채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갈매기 떼처럼. 바다오리처럼.
준영은 머리를 흔들어 어수선한 상념들을 털어버렸다. 그런 그의 눈앞에 다시 영진리 바다가 들어왔다. 이번에는 영임이와 그녀의 두 딸도 함께 있었다. 파도에 쫓기며 해초를 줍고 있었다.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을 뚫고 준영과 그의 두 아들이 함께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파도처럼 밀려가서 그녀들과 휩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