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고백] 사도신경
[어린이시간]
[성시 교독] 35번(시편 84편)
[찬 송] 196장(성령의 은사를)
[말 씀]
성령님이 없이는 아무것도....(요15:1-6)
이번 성경학교는 어린이와 부모님들 모두가 힘에 벅찬 기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육체를 단련할 때도 힘에 부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물며 정신을 단련하는데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금욕을 실천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자유롭게 그 과정을 하려는 저의 의도는 조금 빗나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로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오늘은 성경학교 3번째 주간의 주제인 성령하나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포도나무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성령이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룩한 공교회”, “성도의 교제”, “죄를 용서받음과 몸의 부활 그리고 영생”은 성령의 활발한 역사의 결실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죽음으로 그 길이 열었지만 말이죠.
먼저, 교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교회는 “거룩한 공교회(Holy catholic church)”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적(私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우주적이고 보편적인(catholic) 교회’여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가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거룩은 다른 조직과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조직들은 그 조직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겠지만(국가도 그렇죠) 교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한 예라 하겠습니다.
예수를 머리(골1:18)로 한 그의 몸인 교회(고전12:27)는 그리스도의 편지요(고후3:3),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여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편지인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지. 혹 악취만 내뿜고 있지는 않습니까?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교회도 공교회의 일원으로 거룩한 공동체여야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거룩할 수도, 공교회와 연합할 수도, 그리스도의 편지와 향기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음과 삶에 성령으로 가득하게(성령충만) 되기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의 교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사람을 완벽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평가는 좋지 못했습니다(창2:18). 온전하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교제”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완벽할 수는 있지만 온전하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를 중심으로 하와를 만드심으로 아담과 하와는 온전해 졌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완성된 것이죠.
사람은 ‘관계 지향적인 존재’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제가 강조하는 것은 교회는 관계맺음으로 성장하고 성숙해간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개인이 아무리 완벽하다 하더라도 가족이 함께 하지 않으면 미완이고, 교회구성원으로서 “성도의 교제”가 없다면 그 개인의 신앙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미숙한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관계맺음에 목말라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동반자를 갈구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함으로 그 관계가 깨어지고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그 길을 찾게 우리를 돕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열린 새로운 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맺음을, 이웃과의 관계맺음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성도의 교제”라고 합니다. 이 교제에서는 예수님의 용서가 보이고, 화해가 결실을 맺게 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포도나무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하나님은 농부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시며 우리는 그 가지라는 것입니다. 관계를 보여주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관계가 있을 때 우리의 삶은 포도주가 주는 기쁨과 잔치의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께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우리에게 기쁨과 잔치의 삶이 끝이 났을 때 우리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잔칫집의 종들처럼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요2장). 성령님은 포도나무와 가지를 오가며 성도의 교제를 회복시키는 ‘진액’같은 역사로 우리에게 기쁨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고, 우리의 삶이 잔치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리와 죄인의 친구”(마11:19)이신 예수께서 우리를 연결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에 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그 대가를 지불해 주셨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후에 있을 우리의 “몸의 부활”을 약속해 주셨고, 하나님우편에 앉으신 모습에서 우리에게 있을 “영생”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흔한 교리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가 죄용서 받았다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사역에 기인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 믿음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만, 믿음이 약해질 때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하며 성령충만하기를 기도하시기를 권합니다.
말씀마치겠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우주적 보편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시고, 성도의 교제를 가능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일어난 죄용서와 미래에 있을 몸의 부활 그리고 영생을 맛보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의 제자들은 모여 성령을 기다렸고, 성령충만하기를 사모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 사도행전의 역사가 가능했겠습니까? 오늘 우리교회의 현재도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여, 다시 “성령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삶에 역사해 주소서!”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까?
[찬 송] 370장(주 안에 있는 나에게)
[주님의 기도]
첫댓글 성령님의 역사가 오늘 하루 저와 가족과 공동체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