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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에 빗자루 기대며
신현정(1948~2009)
이 빗자루 손에 잡아보는 거 얼마 만이냐
여기 땅집으로 이사 와 마당을 쓸고 또 쓸고 한다
얼마만이냐
땅에 숨은 분홍 쓸어보는 거 얼마만이냐
마당에 물 한 대야 확 뿌려보는 거 얼마만이냐
땅 놀래켜보는 거 얼마만이냐
어제 쓸은 마당, 오늘 또 쓸고 한다
새벽같이 나와 쓸 거 없는데 쓸고 또 쓸고 한다
마당 쓸고 나서
빗자루를 담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놓는다
빗자루야 그래라 네가 오늘부터 우리집 도깨비하여라.
가을밤을 앉아 있는
그녀의 목덜미가 하도 눈 부시게 희어서
귀뚜라미가 사는 거 같아서
달빛들이 사는 것 같아서
손톱들이 우는 것 같아서
그녀의 등 뒤로
살그머니 돌아가서
오오 목덜미에
단 한 번의
서늘한 키스를 하고
아 그 밤으로
그대로 달아난 나여.
극명(克明) -신현정(1948~2009)
이른 아침 한 떼의 참새들이 날아와서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옮겨 날고
마당을 종종걸음치기도 하고
재잘재잘 하고 한 것이 방금 전이다
아 언제 날아들 갔나
눈 씻고 봐도 한 마리 없다
그저 참새들이 앉았다 날아간 이 가지 저 가지가 반짝이고
울타리가 반짝이고 쥐똥나무가 반짝이고 마당이 반짝이고
아 내가 언제부터 이런 극명(克明)을 즐기고 있었나.
-극명은 무엇인가. 매우 분명함이요, 깊은 속까지 샅샅이 똑똑하게 밝힘이다. 아주 뚜렷함을 본다는 것이니 시인은 이른 아침에 반짝임의, 광채의 현현(顯現)을 보았다는 것이겠다.
참새들이 무리를 지어 와서 가지를, 마당을 옮겨 난다. 그 옮겨 나는 것에는 반짝임이 있다. ‘종종걸음’이나 ‘재잘재잘’이라는 시어로 표현하고 있다. 겉의 생김새나 모습, 미미한 움직임, 소리에서도 빛을 찾아낼 수 있다는 뜻일 테다. 게다가 참새가 바로 눈앞에 있을 때에만 빛이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 그 자리에도 빛이 있다. 그래서 시인은 새가 날아가고 남은 빈 가지, 울타리, 쥐똥나무, 마당, 그리고 시인의 내면에서도 반짝임이 있음을 알아차린다. 이렇게 보면 개개의 존재가 각각 광원(光源)이다.
시인은 시 ‘나비 날다’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나비야 나비야/ 오늘 입고 나온 그 눈부신 옷,/ 그동안 어디다/ 꼭꼭 쟁여두었다가 입고 나왔니.” 이 나비도 마찬가지로 봄빛 같은 반짝임을 입고 있다. -조선일보(2024.03.25)-
https://blog.naver.com/greenbasis/223215119130
눈사람을 만들다 외 5편
신현정(1948-2009, 61세)
눈과 코를 만들고
코 밑에 생솔가지를 붙여
그럴듯하게 수염을 만들어주고는
적어도 눈사람은 무슨 소리가 뒤에서 나도
서 있는 그대로 앞만 바라보게 했다
세상을 모나지 않게 둥글게 한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생각하면 뒤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저 앞만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밤에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그것을 눈사람에게 시켰는가 말이다.
-전문(p.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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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꽃에도 주먹이 있나니 한 때를 살고 망가지는 것들은 주먹을 가지고 있나니 주먹이 있기 때문에 서럽고 뜨겁고 망가진다고 말할 수 있나니 오늘 두어 송이 망가지는 주먹이여, 허공에 가만히 들이밀고 가장 고요한 주먹이여, 고요히 망가지는 주먹이여.
-전문(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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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내리는 비
그대여 무일푼의 비를 맞고 있다네.
무일푼의 비는 무일푼으로 맞아야 한다네.
무일푼은 한 푼도 없는 것이라네.
무일푼은 일 푼이 될 수 없다네.
그대여 무일푼의 비 내린다네.
무일푼은 무일푼과 합쳐서 일 푼이 되지 않는다네.
일 푼은 소란스러운 것이라네.
무일푼으로 무일푼의 비를 맞아야 한다네.
그대여 무일푼으로 무일푼의 비를 맞고 있다네.
-전문(p.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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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널면서
줄 길게 해서 바지랑대 세우고
수도가에서 퍼질러 앉아 빨래하다
그렇지 바지랑대만은 내 사는 곳 어디든지
혹 하늘로 가더라도 어깨에 올려 메고 갈 것인즉
거기서도 긴 줄 해서 제비 앉게 하고
잠자리 앉게 하고
어머나 벌써 하나님도 앉아 계시나
빨래 비틀어 짜서는 양손에 들고 탈탈 털어서는
바지든 런닝구든 아래가 위가 되게 거꾸로 매달리게 하는 것도
별난 취미이다
금강金剛처럼 바싹 마르고 또 펄럭이기까지 하여라
흔들고 밟고 북북 문지르며 닦달을 낸 게 언제인데
빨래 널고는
금세 빨래에게 말 걸고 싶어지니.
-전문(p.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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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전문(p.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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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란抱卵
어미 닭은 잘 아는 것이다
알을 얼마만큼이나 품어야 하는 것인지
또 알을 살그머니 굴리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숨이 붙고 눈이 생기고 별 같은 입이 나오고
나뭇잎 같은 날개가 돋도록
알을 굴리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껍데기를 쪼아대는 소릴 들을 때도 되었는데
어미 닭은 잘 아는 것이다
울타리 한 켠에서 개나리가 언제쯤이면 핀다는 것을
이 알들 깨어나면 이 애들 데리고
개나리 환히 꽃 핀 속으로 소풍 갈 날짜도 굴리어 보는 것이다.
-전문(p. 140-141)
발문> 한 문장: 2009년 작고 후 그의 유고시집을 내기 위해 여러 출판사를 전전했지만 거절당한 기억이 있다. 마지막에 『세계사』에서 시집을 내주어 간신히 빛을 보게 되었다. 『화창한 날』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2010년 1주기 행사를 출판문화회관에서 가졌고, 많은 시인들이 참석하여 그를 추모하였다. 어느덧 10년 너머 저쪽의 일이 되었다. 이번에 펴내는 시선집은 신현정 시인의 지음知音 윤석산 시인의 기획과 <도서출판 도훈> 이도훈 시인의 선한 뜻, 부인 이정휘 여사의 도움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p. 158) (홍일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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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정 시선집 『빨간 우체통 앞에서』/ 2024. 1. 30. <도훈> 펴냄
* 신현정/ 1948년 서울 출생, 1974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대립對立』(1983), 『염소와 풀밭』(2003),『자전거 도둑』 (2005),『바보사막』(2008),『난쟁이와 저녁식사를』(2009), 유고시집『화창한 날』(2010),
* 서라벌문학상(2003), 한국시문학상(2004), 한국시인협회상(2006), 2009년 10월 지병으로 타계(삼가 명복을 빕니다)
시집 「빨간 우체통 앞에서」을 읽었다. ‘2024’
사루비아 꽃말은 열정과 사랑. 간절하면서도 강렬한 지금의 감정을 나타낸다. 위의 시는 시인이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발표한 마지막(홍일표시인의 발문 중에서) 시다.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심정을 시로 표현했던 시인의 그때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죽어도 살고 싶다’라기 보다는 피어나는 생기였을 것이다. 꽃에게 부탁하면서 꽃처럼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마음. 신현정 시인은 갔지만, 그의 시는 남아서 우리에게 붉은 피를 수혈한다. 이제 봄, 얌전하게 입술 다물어 다시 한 번 일어서 보자. 지천으로 흐드러질 꽃들처럼.
"세상은 참 재미있는 놀이터였지.." 신현정 시인 유고집 '화창한 날' 출간
2010. 10. 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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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토끼의 귀를 달아주고 무지개를 잡아 공작새를 만들던 신현정 시인(1948∼2009). 작고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유고 시집 '화창한 날'(세계사)은 어릴 때 호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린 조약돌이 손바닥에서 눈을 뜬 것만 같다. 따는 이 세상에 놀러왔다가 그냥 가기 뭣해 몇 자 끼적거린 게 그의 유고 시편이다.
"집을 돌았다/분꽃을 따 입술에 물고 분꽃을 불면서 돌았다/분꽃 꽁무니가 달착지근했다/장닭을 불면서 돌았다/볏이 불볕 같은 장닭을 불면서 돌았다/나도 목을 길게 빼올리고는 꼬끼오도 해보면서 돌았다/개를 불면서 돌았다/(중략)/맨발로 돌았다/집아 사방을 뺑돌아 열려져라/집을 불면서 돌았다"('화창한 날')
그가 살았던 세상은 놀이하는 공간이었다. 아니, 그는 세상을 놀이하는 공간으로 살다 갔다. 오욕칠정도 잊은 채. 그는 모자를 벗고 공손히 인사를 하기 위해 세상에 온 사람이었다.
"해태에게까지 와서는 한 발자국도 더는 나아가지 않은 듯했다/해태를 돌았을 것이다/어서 오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를 몇 십 번이고 중얼거리며 돌았을 것이다/(중략)/모자를 공손히 벗어놓고는/구두도 가지런히 벗어놓고는 쉬기는 쉬었을 것이다/앉은 자리에서 풀들을 주섬주섬 뽑았을 것이다/해태를 돌다가 연분홍 패랭이꽃 핀 것도 보았을 것이다/그는 어디로."('그는 어디로')
신현정은 마지막 연 '그는 어디로'에 그 자신을 두고 갔다. 숨바꼭질하듯. 그리하여 그의 시를 읽는 모든 이들이 술래가 되어 그를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그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에 숨어 있는가. 그는 '머리카락 보일라 꽁꽁 숨어' 나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는 저 세상에 가서도 이 세상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그가 남긴 시편들은 무슨 무슨 놀이 같다.
"양지쪽에서 살랑살랑 꼬리치는 강아지풀로 콧수염을 하고서/행여 떨어뜨릴 세라 아이는"('콧수염')이 그렇고 "이 알들 깨어나면 이 애들 데리고/개나리 환히 꽃 핀 속으로 소풍 갈 날짜도 굴리어 보는 것이다"('포란(抱卵)')가 그렇고 "고추잠자리 내 눈 앞에서 딱 멈춰 섰다/그래 누가 이기나 눈싸움 해보자 하는 것이것다"'(눈싸움')가 그렇다.
그는 놀이에 빠져버린 시인이었다.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에게 이 지상의 모든 요일은 공휴일이 되고 만다. 놀이에는 아무런 목적성이 없다. 놀이에 몰두하는 순간, 어떤 댓가나 목적은 사라지고 그 자신이 놀이가 되고 만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얼마나 절박하고 지긋지긋 했으면 그는 놀이나 하고 가자고 작정을 했던 것일까. 얼마나 외로웠으면 놀이라도 붙들어야 했던가에 생각이 미치면 그의 유고 시편들은 그가 남몰래 흘린 눈물 같기만 하다.
시집엔 그가 투병 중인 상황에서 써내려간 시 '해바라기'를 비롯해 총 48편의 시가 수록됐다. "해바라기, 길 가다가 서 있는 것 보면 나도 우뚝 서 보는 것이다/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쓰고 벗고 하는 건방진 모자일망정/머리 위로 정중히 들어 올려서는/딱히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간단한 목례를 해보이고는/내 딴에는 우아하기 그지없는/원반 던지는 포즈를 취해보는 것이다/그럴까/해를 먹어버릴까/해를 먹고 불새를 활활 토해낼까/그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거겠지/오늘도 해 돌아서 왔다"('해바라기' 전문)
신현정 시인 추모 위원회가 지난 15일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마련한 1주기 추모 시제에서는 정진규 시인이 고인에 대한 회고를, 윤석산 조정권 문인수 김종해 상희구 이명수 시인 등이 고인이 남긴 시 낭송과 생전의 인연을 들려주었다. 부인 이정휘 시인이 유족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그를 먼저 떠나보낸 게 억울하다면 유고 시집을 펼쳐야 하리라.
시인은 시선집을 위해 "아아, 시는 빛의 몸 / 우리가 언제 어디서고 무엇이고 간에 / 그 어떤 파장으로도 만나게 되리 / 이 기쁨, 환희를 / 노래하자 춤추자"라는 자서(自序)를 남기기도 했다.
정진규 시인은 "왜 무의미일수록 내 심장은 붉고 크고 게걸스러워지는 것일까요. 무위(無爲)와 실컷 놀다갔으면 합니다"라는 시집 '바보사막' 속 고인의 말을 회상하며 "'실컷', 그것도 '무위'와 놀다가겠다더니 서둘러 떠나버린 그가 야속타"고 말하기도 했다.
동네 어귀 산책길에서 늘 마주치던 빨간 우체통이 사라졌다. 손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면서 우체통이 본래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옛 서정시 같은 빨간 우체통을 철거해버렸다. 우체통이 통째로 사라진 빈자리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그냥 그대로 놓아두어도 전혀 동네 미관을 해치거나 거치적거리지 않을 텐데도 왜 저렇게 재빠르게 옛것들을 없애버리는지…. 마치 그 빈자리가 세상의 벽에 뚫린 상처 입은 구멍처럼 씁쓸하고 잔인해 보였다. 그래도 빨간 우체통 앞을 지날 때면 편지, 우체부, 그리움 같은 단어들이 생각나고, 고(故) 신현정 시인의 ‘빨간 우체통 앞에서’란 시도 떠올라 괜히 하늘도 한번 올려다보고, 날아가는 새들도 바라보고, “그대여 나의 그대여” 옛사랑을 읊조려 보기도 해 참 좋았는데….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도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옛 모습들, 오래되고 낡았지만 그만큼 더 다정해 보이는 옛 방앗간이나 이발소, 사진관 등이 있어 동네 한 바퀴를 돌 때마다 기웃기웃, 두근두근, 콩닥콩닥,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지금은 그 흔적들조차 대부분 사라지고 없다. 대신 하루가 멀다고 모든 게 하나둘 새것으로 바뀌고, 세련된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 오히려 개성 없는, 획일적인 동네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구식 아날로그 세대라 그런지 이렇게 빠르게, 똑같이 변하는 것들이 무섭고 두렵다.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신개발’이란 단어는 더욱더.
괜히 마음이 속상하고 울적해져 비틀스의 ‘Please Mr. Postman’을 나직이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와 벽에 붙여놓은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을 바라본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아를에서 그린 그림. 왠지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가 한없이 너그럽고 선량해지는 기분이 들어 이사할 때마다 벽에다 붙여놓게 된다. 조셉 룰랭은 아를에서 친구 하나 없이 외롭고 쓸쓸하게 지내는 고흐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품어준 사람이다. 배고픈 고흐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스스럼없이 술친구가 되어준 사람. 모델료가 없어 모델을 쓰지 못하는 고흐에게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준, 고흐에겐 유일무이한 이웃이자 진정한 친구였던 사람. 고흐가 고갱과의 불화 끝에 왼쪽 귀를 잘랐을 때도 한 치의 편견 없이 고흐의 편에 서서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끝까지 돌보아주었던 사람이다. 나는 이 룰랭 가족만 생각하면 아, 그래도 죽기 전 잠깐이라도 고흐 곁에 이런 따뜻하고 선한 가족이 있었다니,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이들은 뼛속에서 뼛속으로 연두색 봄이 흐르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끝없이 이어져 나도, 내 인생에도 빨간 우체통을 품고 사는 고흐와 룰랭 같은 아름다운 친구가 몇 명 있었으면,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김상미 시인
“새를 띄우려고 우체통까지 가서는 그냥 왔다// 오후 3시 정각이 분명했지만 그냥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냥 왔다// 난 혓바닥을 넓게 해 우표를 붙였지만 그냥 왔다// 논병아리로라도 부화할 것 같았지만 그냥 왔다// 주소도 우편번호도 몇 번을 확인했다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그대여 그 자리에서 냉큼 발길을 돌려서 왔다// 우체통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알껍데기를 톡톡 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냥 왔다// 그대여 나의 새여 하늘은 그리도 푸르렀건만 그냥 왔다// 새를 조각조각 찢어버리려다가// 새를 품에 꼬옥 보듬어 안고 그냥 왔다.”(‘빨간 우체통 앞에서’ 전문)
신현정 시인의 시가 대개 이렇다. 대개는 한 문장이 한 행이고 그게 또 한 연이다. ‘편지=새’라는 단순한 은유를 숨기지도 비틀지도 않고 편안하게 깔아두었다. 그대에게 날아갈 테니 편지는 새가 맞다. 혹은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새가 될 테니 아직은 알이라고 해도 좋다. 시인은 편지를 새처럼 혹은 알처럼 품고 우체통에 갔다. 애타는 마음은 빨간 우체통처럼 달아올라 있지만 어쩐 일인지 그냥 돌아선다. 현실화된 욕망만 가치 있는 것인가. 시인은 아니라고 말한다. 무욕(無慾)이랄까, 혹은 무애(無碍)랄까. 반복되면서 시를 부드럽게 조이는 “그냥 왔다”의 여운이 넓다. 함께 읽으면 좋을 만한 시가 있다.
“세상은 온통 나비떼// 초인종은 세 번을 눌렀다// 검은 나비는 문 밑으로 들여보내든가 문틈에다 꽂아놓았다// 간혹 요금이 수취인 부담인 것도 있었다// 수취인 불명은 반드시 원래의 제자리로 돌려보내지 않았던가// 마감일까지 소인이 찍힌 것은 유효했다// 요즘 와서는 거의가 빠른 우편이었다// 민들레 피고// 나는 어깨에 멘 행낭을 내리고 지퍼를 활짝 열어젖혔다// 세상은 온통 나비떼// 나비떼// 정작 나는 행방불명이 되고 싶었다// 민들레 옆에 자전거를 모로 눕히고 쪼그려 앉아 담배 피운다// 아, 나는 선량했다.”(‘길 위의 우체부’ 전문)
이번에는 ‘편지=나비’의 세계 안에서 시인은 우체부가 되었다. ‘빠른 우편’의 세계를 나 몰라라 하며 이 우체부는 유유자적이다. 행낭을 활짝 열어 세상을 온통 나비떼로 만들고 자신은 행방불명되고 싶어한다. 이상하게 사람을 울리는 마지막 구절을 어떡하면 좋을까. “아, 나는 선량했다.” 자화자찬의 감탄이 아니다. 이 문장 뒤에는 ‘선량했다, 선량했는데, 그런데 왜…’가 숨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은 선량한 것만으로는 안 되는가, 자전거를 눕히고 담배를 피우는 이 선량한 우체부만으로는 안 되는가. 나는, 저 우체부는 선량했으므로 결국 불행해졌을 것이다, 라고 읽고 마는 내 자신이 난감하다.
고인이 병상에서 쓴 마지막 작품은 짧다.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이 거칠고 난폭한 세계에서 선량한 우체부처럼 아름다움을 배달하다 퇴직한 시인의 유언시답다. 이 나라는 2010년에도 피 흘리게 될까. 세상의 시인들에게 내년에도 수혈을 부탁할 수밖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추신. 그동안 ‘시 읽어주는 남자’를 아껴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년 4월에, 새로운 꼭지로 돌아오겠습니다.
[출처] 시 모음 932. 「故 신현정 시인」|작성자 느티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