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2대 왕
2023년 한 해가 다 가고 마지막 달을 며칠 앞둔 11월 28일 화요일입니다.
성경 읽기를 2월쯤에 마치고 새로 시작하여 금 년에도 해를 넘기려는지 제가 좋아하는 다니엘서 3장을 이제야 읽기에 이르러 몇 가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이름에 관해서입니다.
보통 그냥 바벨론 2대 왕으로 읽으시겠지만 사연이 많은 이름입니다.
한글 번역 성경으로는 좀 어렵겠지요?
A. Nebuchadnezzar는 60회 성경에 거론되지요. = “고귀한 보호자”라지요.
B. Nebuchadrezzar로도 31회나 나온다는 것이지요 = “하나님의 고귀한 종”이라고 합니다
위에 A는 다니엘서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보통 많이들 알고 계시니까, 생략하더라도 좀 생소하신 B에 Nebuchadrezzar는 미국의 Jams N. Hanson 교수님의 연구서를 토대로 하여 예레미야서에 27회 에스겔서에 4회 사용되었더군요. 렘 21:2, 7; 22:25, 24:1, 25:1,9; 29:21,32:1 등이고 에스겔서에는 26:7, 29:18, 19; 30:10 등이지요.
Nebu 느부,느보= 고귀한 존재
Chad 갈대아를 줄인 말이라고 하며 바벨론 제사장 계급을 의미한다네요.
nez 보호자
rez 종
zar 왕, 짜르
B.C.630년에 출생해서 562년까지 43년간 왕위에 있었다지요.
43년의 재위 기간 중에 3년 반은 다니엘서 4장에서 갑자기 왕위에서 쫓겨나 들에서 짐승들과 함께 이슬 내리는 야생에서 풀을 뜯으며 일곱 때를 보낸 징벌의 기간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보통 다들 일곱 때를 7년으로 해석하지만 바벨론의 기후는 여름과 겨울(건기)뿐입니다.
일곱 때가 아니고 7일로 되었다면 민수기 14장 34절 말씀대로 7년이 맞겠지만 일곱 때로 되어 있으므로 그래서 일곱 때는 3년 반이 되지요. 물론 다른 곳에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말씀도 있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바벨론은 B.C. 626년까지 아시리아의 속주로 있었습니다.
유다국의 히스기야 왕 때 당시 최강의 아시리아의 군대를 185,000명이나 몰살시키는 중근동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놀랍고 대단한 나라의 왕이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문병을 핑계로 염탐을 보냈었지요. B.C.721년에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켜 정복민들의 코를 줄로 꿰어 엮어서 포로로 끌고 가던 나라,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잔인하게 몰살시켜 해골의 탑을 쌓았던 나라의 대군을 하룻밤 사이에 몰살시킨 무서운 나라라고 생각하고 사신을 보냈는데 알고 보니 유다국과는 동맹을 맺기에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었고, 3중 성벽과 티그리스 강을 이용한 깊은 헤자로 둘러싸인 철옹성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여기던 니느웨, 바벨론의 1차 반란 전쟁에서 여지없이 참패하였었는데 이제는 나약한 유다국에게 조차 아시리아 대군이 몰살당하는 것을 들으면서 내부반란이 잦은 수도 니느웨를 얕보게 되었나 봅니다. 그래서 북쪽의 이웃 큰 나라 메디아(메대)에게 사신을 보내고 아스티아게스 왕의 아미티스 공주와 혼인 동맹을 맺게 되었다지요.
이 때는 아버지 나보폴라살 왕 때라서 이십 대의 아들인 Nebuchadnezzar왕자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메디아왕국도 국토의 일부를 빼앗긴 옆 나라 아시리아에 대한 적대적 반감으로 아시리아 바벨론 총독인 나보폴라살의 아들과 결혼동맹을 맺어 잔인무도한 아시리아를 B.C.612년에 쳐들어가 난공불락 니느웨 성을 당시로 처음 발명된 공성 병기로 부수고 성 내부에 진입하자 노예로 끌려가 모욕당하느니 왕궁에 불을 지르고 궁내에 있던 자들과 함께 피에 굶주린 전투종족의 아시리아의 신 샤리 이슈쿤 왕도 거대한 불길 속으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지요. 아시리아는 최초의 도서관을 세워 점토판을 소장하였었고 왕궁과 사원도 불에 타버렸다지요.
B.C.793-759년 요나의 권고로 구원받았던 니느웨가 세월이 흘러 나훔 대언자의 재차 경고를 듣지 않고 약 147년 후 메디아 바벨론의 연합군에게 B.C.612년에 멸망하게 되었지요.
근동 고대사에서 바벨론으로 시작하여 바벨론이 미약해지면 아시리아가 나타나고 바벨론이 강성해지면 사라지는 역사의 반복이 재연되어 바벨론 제11왕조 신 바벨로니아로 새롭게 다시 창업되었지요. 메디아와 연합하여 아시리아를 정복한 아버지 나보폴라살 왕으로부터 B.C.605년에 왕위를 계승한 Nebuchadnezzar 왕은 갈그미스 전투로 이집트를 굴복시키지요.
이에 앞서 B.C.609년 망해가는 아시리아를 구원하려고 북진하는 이집트 군대를 맞아 갈그미스 전투에 참여를 저지하려 했던 아시리아의 속국인 유다의 요시아 왕이 활에 맞아 전사하는 참극이 있었지요. 대언 자 예레미야께서 애가를 지어 전 국민들과 함께 슬퍼하며 요시아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였었다지요. B.C.605년 갈그미스 전투를 패배로 이집트는 더 이상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유다국은 멸망의 내리막을 치닫게 되었지요.
원인은 훌륭하신 요시아왕이 사망한 이후로 므낫세 왕이 끼친 참혹한 해악의 후유증인지 아시리아의 강압에 시달리던 유다 백성들은 그렇다 치더래도 백성들과 하나님께 모범이 되어야 할 지배 계층이 부패하였고 제사장들마저 우상숭배까지 하는 끔찍한 상태로 에스겔서에 그 죄악상들이 다 드러났지요.
느부갓네살왕은 건축가로도 유명하지요.거대한 바벨론 성의 축성과 산이 많은 북쪽 나라에서 시집온 아미티스 왕비를 위해 공중정원을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바벨론의 주신 므로닥(Marduk마르둑)은 태양과 폭풍의 신 벨(Bel)과 같은 신이라지요. 이 높은 신전을 중앙에 두고 둘레가 96km 높이 쌓으려고 두껍게 쌓다 보니 높이가 약 13m이고 두께의 폭이 약 12m의 흙벽돌로 쌓은 바벨론 성은 성벽보다 더 높은 이시타르(Ishtar)문 앞에 헤자를 건너는 다리를 놓아 출입하는 문 좌우에 청색 타일로 사자상을 새길 정도로 문명한 곳이었지요.
큰 성 둘레에 판 헤자에 유프라티스 강물을 끌어들이고 성 내부에도 물길을 통과시켜 백성들이 물을 이용하도록 하는 난공불락의 성이라는 대명사가 되었지요.
B.C.586년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의 군대에 멸망당한 남 유다의 포로들이 바벨론 축성과 공중정원 마르덕 신전을 쌓을 때 벽돌을 굽고 나르는 비참한 노예들의 고달픔 속에서 그들을 더욱 슬프게 한 것은 더위에 지쳐 바베론 강가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땀을 식히려고 하면 다가와 고향 예루살렘의 노래를 한 곡조 불러보라고 바벨론 관리들의 조롱 섞인 강권으로 시편 137편을 부르게 되었고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Nebuchadnezzar ) 중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되었지요.
느부갓네살왕이 사랑하던 왕비는 산이 많은 나라에서 살다 온 여인이라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공중정원으로 달래 주려고 배려한 것으로 추정하지요.
당시의 공법으로도 유프라티스 강물을 높은 곳으로 펌핑하여 폭포를 재현했다는 것이 감탄하게 하는 것이지요.
세계 최초로 바벨론 성을 발굴한 1899년 독일의 고고학자 로베르트 콜데바이 박사님의 글도 참조 했습니다.